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28
*Pygmalion: 피그말리온이란 자신이 만든 조각상에 반해,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기도하여 조각상이 살아나는 기적을 얻은 조각가이자 사이프러스의 왕, 고대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조지 버나드 쇼의 연극 '피그말리온' 또한 이 고대 신화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타라의 이야기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제목이 등장한 이유는, 그녀가 캠브리지 대학에서 만난 스타인벅 교수가 타라를 만나고 '피그말리온' 연극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버나드 쇼의 극 중 인물 헨리 히긴스가 촌뜨기 엘리자 두리틀을 상류 사회의 일원으로 만든 것처럼, 그가 타라로 하금 어디 내놔도 꿀릴 것 없는 학자로서 재능을 다 펼칠 수 있도록 타라를 키워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대단한 사람들이 모인 대단한 학교에서
타라는 영국의 킹스 칼리즈에 도착해, 그 고풍스러운 웅장함에 깜짝 놀란다.
The first time I saw King's College, Cambridge, I didn't think I was dreaming, but only because my imagination had never produced anything so grand. My eyes settled on a clock tower with stone carvings. I was led to the tower, then we passed through it and into the college. There was a lake of perfectly clipped grass and, across the lake, an ivory-tinted building I vaguely recognized as Greco-Roman. But it was the Gothic chapel, three hundred feet long and a hundred feet high, a stone mountain, that dominated the scene.
도착한 다음 날, 천정이 높은 멋진 건물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타라는 자신이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녀는 BYU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 앉은 긴 테이블에 끼여 앉아 식사를 했다. 같은 학교에서 온 여학생들은 영국 캠브리지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맞춰 새로 산 옷 얘기를 하고 있었다. 타라도 분위기에 맞게 옷을 차려입고 싶었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그녀는 캠브리지까지 오는 비용을 장만하는 것만도 벅차, 학생 론까지 내야 했으므로, 옷을 사는 데 돈을 쓸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설사 옆의 여학생들이 입은 것 같은 옷이 있다 해도, 그들처럼 멋지게 잘 차려입을 자신도 없었다.
막일하는 집 출신의 마인드
타라와 미국에서 함께 온 학생들은 캠퍼스 채플을 둘러보는 자리에 초대를 받았고, 타라를 영국으로 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케리 교수도 합류했다. 그들은 건물 지붕 위에까지 올라갔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어서 모두 겁을 내며, 몸을 낮추어 벽을 붙들고 게걸음으로 덜덜 떨며 걸었다. 케리 교수는 타라가 전혀 겁이 안나는 듯 똑바로 서서 걸어 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너무나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케리 교수가 어떻게 땅 위를 걸어 다니듯 편안한 태도로 걸어 다닐 수 있는지 타라에게 묻자, 타라는 지붕일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케리 교수가 그렇게 자란 덕분에 다리가 튼튼해서 바람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물었다. 타라는 그래서가 아니라, 땅 위에선 바람이 불어도 아무도 몸을 숙이거나 옆으로 게걸음으로 걸을 필요없이 잘 견디지 않냐고, 땅 위와 지붕 위가 다를 게 없을 뿐이라고. 지붕 위에서 바람 때문에 몸을 낮추고 구부려야 한다고 느끼는 건, 머릿속에서 작용하는 공포심일 뿐이라고 말했다.
"I've roofed my share of hay shed, " I said finally.
"So your legs are stronger? Is that why you can stand in this wind?"
I had to think before I could answer. "I can stand in this wind, because I'm not trying to stand in it, " I said. "The wind is just wind. You could withstand these gusts on the ground, so you can withstand them in the air. There is no difference. Excapt the difference you make in your mind."
He stared at me blankly. He hadn't understood.
"I'm just standing, " I said. "You are all trying to compensate, to get your bodies lower because the height scares you. But the crouching and the side stepping are not natural. You've made yourselves vulnerable. If you could just control your panic, this wind would be nothing."
"The way it is nothing to you, " he said.
그 순간, 타라는 스스로가 학자의 마인드보다 지붕일 하는 사람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음을 보았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은 도서관에 어울리지만, 자신은 막일 건축 현장이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스승님을 만나다
한 주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둘째 주부터는 각 학생들의 연구활동을 도울 지도 교수가 정해졌다. 타라의 지도 교수는 Jonathan Steinberg라는 저명한 교수이자, 전 캠브리지 대학 부 마스터였다. 특히 그는 유대인 대학살에 관한 글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타라를 향한 그의 첫 소개와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스타인벅 교수라고 하네. 자네는 무엇을 읽고 싶은가? (I'm a Professor Steinberg. What would you like to read?)
타라는 자신이 현재 관심 있는 역사편찬학에 관해 말했다. 그녀는 역사가 아닌, 역사가들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역사가 아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고 자란, 집 밖을 나오자마자 발을 딛고 설 토대를 잃은 그녀의 입장이 필요로 하는 지식에 대한 열망이었다.
I mumbled something about historiography. I had decided to study not history, but historians. I supposed my interest came from the sense of groundlessness I'd felt since learning about the Holocaust and the civil rights movement - since realizing that what a person knows about the past is limited, and will always be limited, to what a person knows about the past is limited, and will always be limited, to what they are told by others. I knew what it was to have a misconception corrected - a misconception of such magnitude that shifting it shifted the world. Now I needed to understand how the great gatekeepers of history had come to terms with their own ignorance and partiality. I thought if I could accept that what they had written was not absolute but was the result of a biased process of conversation and revision, maybe I could reconcile myself with the fact that the history most people agreed upon was not the history I had been taught. Dad could be wrong, and the great historians Carlyle and Macaulay and Trevelyan could be wrong, but from the ashes of their dispute I could construct a world to live in. In knowing the ground was not ground at all, I hoped I could stand on it.
스타인벅 교수는 타라에게 학업 이력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아이다호에서 자랐다고 말했지만, 교수는 그 대답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타라는 결국 자신이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는 것을 털어놓아야 했다. 타라의 말을 다 들은 교수는 대단하다고, 마치 타라를 만나게 된 이 상황이, 자신이 조지 버나드 쇼의 연극 '피그말리온'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Tell me about your education. Where did you attend school?"
The air was immediately sucked from the room.
"I grew up in Idaho, " I said.
"And you attended school there?"
It occured to me in retrospect that someone might have told Professor Steinberg about me, perhaps Dr. Kerry. Or perhaps he perceived that I was avoiding his question, and that made him curious. Whatever the reason, he wasn't satisfied until I had admitted that I'd never been to school.
"How marvelous, " he said, smiling. "It's as if I've stepped into Shaw's Pygmalion."
두 달 동안 매주 스타인벅 교수와 타라가 만나며, 교수는 타라의 읽기와 쓰기를 지도한다. 그는 타라가 BYU에서 겪어 본 적 없는 매우 특이한 교수법으로 작문 지도를 한다. 맞춤법 같은 건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는 문법과 글 내용, 형식과 본질을 구분하지 않았다.
None of my professors at BYU had examined my writing the way Professor Steinberg did. No comma, no priod, no adjective or adverb was beneath his interest. He made no distinction between grammar and content, between form and substance. A poorly written sentence wa sa poorly conceived idea, and in his view the grammatical logic was as much in need of correction. "Tell me, " he would say, "why have you placed this comma here? What relationship between these phrases are you hoping to establish?" When I gave my explanation sometimes he would say, "Quite right, " and other times he would correct me with lengthy explanations of syntax.
교수는 타라에게 에세이 숙제를 내어주었다. 이 작문 과정을 통해 타라가 지금까지 책을 대했던 방식 - 두려워하거나 신봉하거나 - , 을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책을 접하는 연습이 되고 있었다. 타라는 점점 더 자신이 책 - 타인의 다양한 사상과 철학 - 앞에서 약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두려움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들기 시작했다.
He suggested I write an essay comparing Edmund Burke with Publius, the persona under which James Madison, Alexander Hamilton and John Jay had written The federalist Papers.
From my father I had learned that books were to be either adored or exiled. Books that were of God - books written by the Mormon proshets or the Founding Fathers- were not to be studied so much as cherished, like a thing perfect in itself. I had been taught to read the words of men like Madison as a cast into which I ought to pour the plaster of my own mind, to be reshaped according to the contours of their faultless model. I read them to learn what to think, not how to think for myself.
Books that were not of God were banished; they were a danger, powerful and irresistible in their cunning.
To write my essay I had to read books differently, without giving myself over to either fear or adoration. Because Burke had defended the British monarchy, Dad would have said he was an agent of tyranny. He wouldn't have wanted the book in the house. There was a thrill in trusting myself to read the words. I felt a similar thrill in reading Madison, Hamilton and Jay, especially on those occasions when I discarded their conclusions in favor of Burke's, or when it seemed to me that their ideas were not really different in substance, only in form. There were wonderful suppositions embedded in this method of reading: that books are not tricks, and that I was not feeble.
타라는 2주 동안 거의 잠도 못 자고, 주어진 숙제를 마쳤다. 그녀는 자신의 글이 형편없다고 욕먹을 각오를 했다. 교수에게 글을 제출하고 그의 의견을 기다렸는데, 그는 놀랍게도, 타라의 글에 대해 엄청난 칭찬을 했다.
자네의 에세이는 내가 캠브리지 대학에서 30년을 가르치며 읽은 글 중 가장 훌륭한 에세이 중 하나라네.(I've been teaching in Cambridge for thirty years, and this is one of the best essays I've read.)
타라는 교수의 반응에 심히 당황했다. 타라는 누가 소리치고 학대하는 것에 익숙했지, 이런 칭찬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방을 뛰쳐나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어떤 잔인한 학대도 참을 수 있는타라지만, 이 친절한 칭찬만큼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교수의 찬사는 타라에게 목숨을 위협하는 독처럼 느껴졌다. 목이 졸린 것 같았다. 숨이 막혀 어지러울 정도였다. 차라리 교수가 소리를 질러주었으면 싶었다.
I could tolerate any form of curelty better than kindness. Praise was a poison to me; I choked on it. I wanted the professor to shout at me, wanted it so deeply I felt dizzy from the deprivation. The ugliness of me had to be given expression. If it was not expressed in his voice, I would need to express it in mine.
교수가 타라에게 대학원에 언제 원서를 넣을 건지 물었다. 타라가 어느 학교에서 공부하건, 그가 반드시 입학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하버드 대학은 가본 적이 있는지? 캠브리지 대학이 더 나은지 타라의 의향을 물었다. 타라는 자신이 그런 멋진 대학의 졸업 가운을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장 타라가 변기통에 머리를 처박히는 자신의 모습을 불러왔다. 타라는 자신의 두 가지 자아 - 학자와 매춘부-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둘 다 진짜일 수는 없다. 적어도 하나는 거짓일 것이었다. 타라는 교수에게 돈이 없어서 대학원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교수가 "학비 문제는 나에게 맡기게, "라고 대답했다.
너는 정금 같은 존재야
캠브리지에서의 마지막 밤, 성대하고 격식 있는 디너파티가 열렸다. 고급스럽게 차려진 테이블에, 멋지게 차려입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틈에서, 타라는 방에 혼자 있고 싶어 졌다. 저녁을 다 먹고 디저트가 나올 때쯤 타라는 파티 장소를 빠져나왔다. 케리 교수가 자리를 떠나는 타라를 보고 따라 나왔다.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케리 교수가 타라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내가 자네를 쭉 지켜봤는데, 자네는 다른 사람을 사칭하는 사람처럼 행동해. 마치 그 일에 네 인생이 달린 것처럼 말이야. (I'd been watching you, and you act like someone who is impersonating someone else. And it's as if you think your life depends on it.)
케리 교수는 타라에게,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 만큼, 타라 또한 여기 캠브리지에 있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타라는 그의 말에, 자긴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받아먹는 것보다 음식 서빙을 하는 게 더 편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케리 교수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스타인벅 교수님을 믿어야 해. 그분이 자네가 학자라고 말하셨네. 정금이라는 표현을 하셨어.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자네는 정금이 맞네. (You should trust Professor Steinberg. If he says you're a scholar - 'pure gold, ' I hear him say - then you are.)
타라가 "여긴 참 마법 같은 장소예요, 여기선 모든 것이 반짝여요, "라고 대답했다. 케리 교수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자네는 어떤 종류의 빛 아래서만 반짝이는 가짜 금이 아니야, "라고 말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건, 자네가 누구인지는 변하지 않아. 여기 캠브리지가 아닌 곳에서도, 자네 안에 진짜 모습 - 금 - 이 있을 걸세. BYU로 돌아간대도, 고향 산골 마을로 다시 돌아간대도 말이야. 환경이 자네가 금인 걸 바꿀 순 없는 거라네. 자네가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하는가가 다른 사람이 자네를 어떻게 볼지를 다르게 만들 수는 있네 - 진짜 금이라도 어떤 종류의 빛 아래서는 평범한 돌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 하지만 그건 착각이라네. 자네가 누군가에게 귀한 금으로 보이지 않은 적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착각한 것이야. (Whomever you become, whatever you make yourself into, that is who you always were. It was always in you. Not in Cambridge. In you. You are gold. And returning to BYU, or even to that mountain you came from, will not change who you are. It may change how others see you, it may even change how you see yourlself - even gold appears dull in some lights - but that is the illusion. And it always was.
타라는 케리 교수를 몹시 믿고 싶지만, 주차장에서, 집 화장실에서 구타당하던 소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의 내면에 무언가 썩어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케리 박사가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결정 요인은 그 사람 자신 안에 있다네. 스타인벅 교수는 이것이 피그말리온이라고 말했어. 피그말리온 연극 이야기를 생각해 보게. 주인공 여자는 멋진 드레스를 입은 촌뜨기였을 뿐이지. 그녀가 자신을 믿어주기 전까지. 자신을 믿어주고 난 이후부턴, 어떤 드레스를 입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지.(The most powerful determinant of who you are is inside you, " he said. "Professor Steinberg says this is Pygmalion. Think of the story, Tara. She was just a cockney in a nice dress. Until she believed in herself. Then it didn't matter what dress she wore.)
진짜 스승
타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저런 스승 - 스타인벅 교수, 케리 교수 같은 사람들 -을 얼마나 갈구하였는지가 생각났다. 내 안의 재능과 장점을 찾아 이끌어줄 스승을 너무나 원했었다. 그런 좋은 스승이 내게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에 대해 나는 내내 모종의 원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깨닫는다. 왜 타라에게는 저 스승들이 필요했고, 나에게는 필요 없었는지. 타라는 자신에게, 자신의 내면에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 자꾸만 자신이 바닥 생활에 속한 사람이라는, 그래야 마음이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녀를 바닥에서 잡아끌어올려줄 스승들이 필요했고, 타라를 만나는 교수들은 자신이 그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내 안에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되고 갈고닦아지면 영롱히 빛날 진짜 보석, 정금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내내 믿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스스로를 교육하며, 도전하며 부딪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어떤 교수, 어떤 현자를 만나도, 그들이 나를 위해 딱히 뭘 더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게 틀림없다.
나에게 그 믿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지금 놀라는 중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에 한 번 더 놀라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성함도 얼굴도 기억 안나는 50대쯤 된 여자 선생님이 반 아이들 모두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너희들 각자 안에는 아주 빛나는 보석이 있어. 그것을 항상 기억해. 때때로 보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 왜냐면 그 보석은 그냥 빛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야. 늘 부지런히 닦아주어야 빛나는 거란다.
나는 어린 마음에 선생님이 하는 말의 의미를 가늠할 수 없었음에도, 어떤 보석 이미지가 내 안에 강렬하게 남았고, 그 말을 내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 믿음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심지어 집에서 심한 입덧으로 침상 생활만 했을 때도, 아기들이 먹고 싸고 자는 것을 돕는 원초적인 씨름으로 초췌한 삶을 살면서도, 나 자신을 내내 믿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나는 진짜 보석이라는 것을, 그 보석이 어디 가는 게 아니라는 걸 믿었다.
내가 자각도 못하는 사이에 사람을 살리는 진짜 스승이 이미 내 인생에 다녀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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