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29. 졸업 후 나는 유학을 선택했다

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29

by 하트온

챕터 29. 대학 졸업 (Graduation)



타라의 사고 변화


타라가 캠브리지에서 BYU로 돌아온 이후, 그녀는 익숙하던 생활로 돌아와 캠브리지의 기억을 잊을 만도 했으나, 스타인벅 교수는 타라가 그 기억을 잊어버리게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는 Gates Cambridge Scholarship이라는 것에 지원할 서류 양식을 보내왔다. 이 장학금을 받으면, 캠브리지에서 공부하는데 필요한 학비와 생활비 모두를 지원받게 된다고 했다. 타라는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장학금은 말도 안 되는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스타인벅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 덕분에 결국 타라가 마음을 고쳐 먹고 지원을 시도했다.


타라가 점점 마음을 고쳐 먹고 있는 부분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몰몬교의 일부다처제 교리에 대해서, 그리고 몰몬으로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짚어 보기 시작한다. BYU에서 만난 같은 몰몬 친구와 함께 일부다처제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Not long after, I noticed another difference, another small shift. I was spending an evening with my friend Mark, who studied ancient languages. Like me, and almost everyone at BYU, Mark was Mormon.
"Do you think people should study church history?" he asked.
"I do," I said.
"What if it makes them unhappy?"
I thought I knew what he meant, but I waited for him to explain.
"Many women struggle with their faith after they learn about polygamy, " he said. "My mother did. I don't think she's ever understood it."
"I've never understood it, either, " I said.
There was a tense silence. He was waiting for me to say my line: that I was praying for faith. And I had prayed for it, many, many times.

몰몬교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는 40명의 아내를 두었고, 56명의 자녀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몰몬 교회는 1890년에 일부다처제를 금했지만, 교리에서 삭제한 것은 아니었다. 타라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주일학교에서, 하나님이 일부다처제를 복원하실 거라고. 그리고 천국에 가면, 남자들은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게 될 거라고 했다. 남자가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가에 그 아내의 수가 비례한다고 했다. 타라는 그런 말들이 제 속에서 편하게 소화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누군가의 아내, 수없이 많은 아내들 중 한 아내가 되는 상상은 타라에게 전혀 좋은 느낌을 주지 않았다. 몰몬교적 여성관은 타라에게 내내 몹시 불편했더 무엇이었다. 하나님이 그런 결혼을 하라고 명령하신다 해도,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못할 거라는 걸 깨달았다.

I had never made my peace with it. As a girl I had often imagined myself in heaven, dressed in a white gown, standing in a pearly mist across from my husband. But when the camera zoomed out there were ten women standing behind us, wearing the same white dress. In my fantasy I was the first wife but I knew there was no guarantee of that; I might be hidden anywhere in the long chain of wives. For as long as I could remember, this image had been at the core of my idea of paradise: my husband, and his wives. There was a sting in this arithmetic: in knowing that in the divine calculus of heaven, one man could balance the equation for countless women.

I searched my mind and discovered a new conviction there: I would never be a plural wife. A voice declared this with unyielding finality; the declaration made me tremble. What if God commanded it? I asked. You wouldn't do it, the voice answered. And I knew it was true.


타라의 고조할머니


타라는 엄마가 전해주신 자신의 고조할머니, 애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노르웨이 출신의 이민자였고, 가족 모두에게 몰몬교를 전파한 믿음의 선구자였다. 그들 가족 모두는 몰몬 세례를 받은 후, 몰몬 창시자 조셉 스미스가 사는 미국 땅으로 이주해야 하겠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가족은 돈을 열심히 모았고, 2년 후 가족의 일부가 미국으로 먼저 떠났다. 애나는 이때 떠나지 못하고, 노르웨이 땅에 남았다.


미국으로 건너가는 과정은 너무너무 길고 힘들었기에, 그들이 아이다호에 도착했을 때쯤, 애나의 엄마는 병이 깊게 들어 죽어가고 있었다. 그 엄마는 죽기 전에 딸을 다시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으므로, 애나의 아버지가 애나에게 미국으로 오라고 편지를 썼다. 그때쯤 애나는 어느 청년과 사랑에 빠졌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약혼자를 떠나 바다를 건넜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미국 땅에 발을 딛기 전에 그녀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남은 가족은 심히 빈곤한 상태였다. 애나를 노르웨이 약혼자에게 다시 보내 줄 돈이 없었다. 한 비숍이 그녀에게, 부유한 농부의 후처로 들어가라고 설득했다. 그의 본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애나가 후처로 들어가 임신하자마자, 본처의 질투가 너무 무섭게 타올라, 애나는 아기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 집 친정으로 돌아와 아기를 낳았다. 쌍둥이를 낳았지만, 그 겨울 척박한 개척지에서 한 명 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여전한 아버지


타라가 마침내 Gates scholarship at Cambridge 최종 후보 리스트에 올라, 인터뷰를 해야 했다. 타라는 앤 테일러 아웃렛에 가서 정장 바지와, 신발을 샀다. 핸드백은 사지 못하고, 룸메이트 로빈에게 빌렸다.


인터뷰를 2주 앞두고, 타라의 부모님이 애리조나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타라와 집 앞 인도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그때쯤, 아버지가 심한 화상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했다는 이야기가 온 마을에 입소문이 나면서, 어머니의 허브/오일 사업이 매우 잘 되고 있었으므로, 아버지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음식을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아버지가 타라가 듣는 수업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열을 내며 큰 소리로 20세기 역사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타라가 배운 역사 지식과는 상반된 내용의, 유대인 학살은 사실 유대인이 일으킨 것이다 같은 당황스러운 말들 - 위조문서로 밝혀진, 1903년에 히틀러가 쓴 문서에서 유래된 - 을 늘어놓아 타라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타라가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는 말들이,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사람의 존재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항상 부모님 말을 잘 알아듣고 이해했던 딸이었던 그녀 자신의 변화에 타라는 속으로 조용히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아버지가 했던 여러 주제에 관한 말들 중에 타라를 가장 경악시킨 건, 세상 종말이 온다는 말을 했을 때였다.

"But the world is about to end!" he said. He was shouting now.
"Of course it is, " Mother said. "But let's not discuss it over dinner."
I put down my fork and stared at them. Of all the strange statements from the past half hour, for some reason this was the one that shocked me. The mere fact of them had never shocked me before. Everything they did had always made sense to me, adhering to a logic I understood. Perhaps it was the backdrop: Buck's Peak was theirs and it camouflaged then, so that when I saw them there, surrounded by the loud, sharp relics of my childhood, the setting seemed to absorb them. At least it absorbed the noise. But here, so near the university, they seemed so natural as to be almost mythic.

그 날 함께 있으면서 타라는 아버지가 말했던 모든 것들을, 지금까지 철석같이 확실한 역사적 사실이며 정당한 견해로 믿어 왔다는 사실, 세상 모든 것이 잘못되었고 아버지만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자각하며 타라의 마음은 충격으로 소용돌이쳤다.


타라는 아나폴리스에 소재한, 세인트 존 대학에서 Gates Cambridge Scholarship 인터뷰를 했고, 다음 날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것은 아이다호 지역 사회의 경사이기도 했으므로, 타라는 수많은 인터뷰를 하고 티브이에까지 출연했다. 기자들이 고등학교 교육 경험과 교사의 영향 등을 질문했지만, 타라는 그런 질문들에 거짓말까지 곁들이며 영리하게 말을 돌렸다. 어떤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산골 집에 들렀을 때, 아버지는 그녀의 장학금 수상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며, 왜 홈스쿨 했다고 말하지 않았냐며 타라를 나무랐다.


아버지는 타라가 캠브리지 대학으로 대학원 진학을 하는 것도 나무랐다.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그 사회주의 국가들을 탈출했건만, 네가 어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냐? 가족의 뜻을 저버리고 그 지겨운 땅으로 다시 간다고?(Our ancestors risked their lives to cross the ocean, to escape those socialist countries. And what do you do? You turn around and go back?)


아버지는 타라의 졸업식에 오겠다고 말하며, 타라의 졸업식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교수들을 야단치고 한 마디 하겠다고 말했다. 타라가 그러지 마시라고 하자, 아버지는 하나님의 영이 환영받지 못하는 곳이라면 가지 않겠다며, 완전히 기분이 상해 버렸다. 그날 밤, 아버지는 타라에게 세상 종말의 날에 미국에 있으면 어디에 있어도 구하러 갈 수 있는데, 유럽에 있으면 바다 건너 구하러 가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If you're in America, " he'd whispered, "we can come for you. Wherever you are. I've got a thousand gallons of fuel buried in the field. I can fetch you when The End comes, bring you home, make you safe. But if you cross the ocean..."


타라는 졸업식 전 날 저녁, 역사학과 "최우수 졸업생" 수상자로서 저녁 초대를 받았다. 부모님께 연락해서 오시라고 했지만, 부모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날도 명예 졸업생들을 위한 점심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타라의 부모님 자리만 공석으로 비어 있었다.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부모님이 차에 문제가 있어서 못 오신다고 둘러댔다.


타라가 점심 먹고 집에 전화를 넣자, 어머니의 말씀이, 아버지가 타라가 사과하기 전에는 못 간다고 했단다. 타라는 사과하며, "아버지가 말하고 싶은 거 다 말하셔도 돼요. 제발 와주세요, " 아버지를 설득해야 했다. 타라의 부모님은 졸업식 장면 대부분을 놓쳤다. 타라가 상을 받는 장면도 보지 못했다. 타라는 부모님을 기다리면서 다른 졸업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사진 찍고 예쁜 옷 입고 선물 받은 보석으로 치장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졸업식이 끝났다.


타라의 부모님은 그때서야 나타났다. 어머니가 타라를 안아 주었다. 한 친구가 타라와 부모님이 함께 선 모습을 사진 찍어 주었다. 그날 사진 속의 타라와 부모님의 모습은 자연스럽지도 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죄책감을 해결해야 한다


타라는 교육을 받으며 아버지가 몰고 가는 집단 망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다시 세우는 중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사고 직후 말을 하기 힘들 때 잠시 타라의 말을 들어주며, 타라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이 변한 것 같더니, 결국은 자신의 망상 속으로 다시 돌아가, 딸이 얼마나 훌륭한 성취를 하고 대학을 졸업하는지 제대로 축하해 주지도 못하고, 제대로 함께해 주지도 못하고 끝까지 타라가 잘못된 길을 선택하고 있다고 가스라이팅 하며 딸에게 상처를 준다.


부모는 언젠가 성인으로 우뚝 선 자식의 눈으로 평가당하게 된다. 자식은 가능한 부모를 끝까지 좋게 보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럴 수 없을 때, 좋게 보기 힘들 때, 부모를 향해 원망과 비난의 마음이 자랄 때, 부모에게 문제가 많다는 평가를 하게 될 때, 심한 죄책감을 갖게 된다.


타라도 나도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타라는 이미 방법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부모의 인성과 정신병까지 훤히 드러나는 글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 세계만방에 알린 걸 보면 말이다. 나도 그럴 수 있는 날까지, 부모와 완전히 분리를 이루어 내는 그 날까지 글을 열심히 써 나가보려 한다.


대학 졸업 후 부모를 떠나는 것


의식하고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점점 부모에게서 멀어지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미국 서부로,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한국에 가려면 비행기로 하루를 꼬박 가야 하는 곳에 살면서, 20년간 한국에 한 번도 다니러 가지 않는 선택을 하여 나 스스로를 20년 장기수로 만들었다.


내가 지금 한국에 간다면 나는 정말 외국인이 처음 방문한 한국땅에 적응하는 수준으로 난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나의 선택에 대해, 그 결과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 삶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타라도 떠났다. 산골에서 대학 도시로, 대학 도시에서 영국으로. 그녀는 지금도 영국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도 미국 아이다호 고향을 떠나, 타주도 아닌, 타국인 영국에 정박시킨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곱씹고 또 곱씹을 것이다.


삶이 나를 데려가는 곳, 나도 모르게 삶에 이끌려 다닌 여정, 나의 유년기부터 지금까지의 내 삶을 이해하기 위해 온 에너지를 쏟고 있는 느낌이다. 내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으리라고 믿기로 했기에,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 마음의 요구에 충실하려고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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