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30. 너무 다른 두 세계를 오가는 삶

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30

by 하트온

3부


챕터 30. 하나님의 손길 (Hand of the Almighty)


캠브리지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고 배우게 된 것들


타라는 캠브리지에 도착하고, 이번엔 방문 학생이 아닌, 캠브리지 대학에 적을 둔 한 일원으로 당당히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다.

Cambridge was just as I remembered: ancient, beautiful. I was different. I was not a visitor, not a guest. I was a member of the university. My name was painted on the door. According to the paperwork, I belong here.


하지만, 뿌듯함보다는 자신이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는 이질감 같은 것이 더 빨리 밀려온다. 다른 학생들은 말하는 게 더 세련되고 학식 있어 보이는 반면, 자신은 웅얼거리는 편인 데다 심지어 가끔은 말을 더듬기까지 하는 경향이 있어, 뭔가 부족하게 생각된다.

I dressed in dark colors for my first lecture, hoping I wouldn't stand out, but even so I didn't think I looked like the other students. I certainly didn't sound like them, and not just because they were British. Their speech had a liltig cadence that made me thnk of singing more than speaking. To my ears they sounded refined, educated; I had a tendency to mumble, and when nervous, to stutter.


또한, 강의를 들으면서 궁금한 게 생겨도 섣불리 질문하지 못한다. 이사야 벌린의 자유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긍정적 자유'라는 개념이 너무나 와 닿아 그것에 관해 더 알고 싶었지만, 누구에게도 궁금함을 드러내지 못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다 상식적으로 아는 것일까 봐. '나는 여기에 올 자격이 없는 사람이오' 하고 외치는 꼴이 될까 봐.

The lecturer tried to clarify. He said positive liberty is self-mastery- the rule of the self, by the self. To have positive liberty, he explained, is to take control of one's own mind; to be liberated from irrational fears and beliefs, from addictions, superstitions and all other forms of self-coercion.

I had no idea what it meant to self-coerce. I looked around the room. No one else seemed confused. I was one of the few students taking notes. I wanted to ask for further explanation, but something stopped me - the certainty that to do so would be to shout to the room that I didn't belong there.


산골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캠브리지에 괜히 온 건 아닌가 싶다고 엄마에게 감정을 토로했다. 엄마는 타라의 차크라가 불균형 상태라며 타라에게 에너지를 보내주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타라는 오전 시간 대부분을 도서관 작은 창가 자리에 앉아 공부하며 보냈다. 어느 날 아침, 학부 친구 드류가 이메일로, 노래 하나를 보내주었다. 그 유명한 밥 말리의 “Redemption Song”이었다. 타라에겐 처음 들어 보는 가수의 처음 듣는 노래였다. 타라는 노래를 듣는 순간 훅 빠져들어, 듣고 또 들었다.

He said it was a classic but I had never heard to it, nor of the singer. I played the song through my headphone. It gripped me immediately. I listened to it over and over while staring out at the north cloister.

Emancipate yourselves from mental slavery
None but ourselves can free our minds

I scratched those lines into notebooks, into the margins of the essays I was writing. I wondered about them when I should have been reading.

노래를 듣고, 밥 말리라는 가수가 이 곡을 썼던 당시 사연 - 현대 의학을 믿지 않는 어떤 관습적 사고에 얽매여 그릇된 판단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 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자신이 가진 현대 의학에 대한 공포를 곱씹었다. 아버지의 세계를 떠나왔지만, 그렇다고 이 반대쪽 세상에 완전히 발붙이고 살 용기도 없는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는 - 다른 사람들은 어릴 때 다 맞는 - 백신을 다 맞기로 결정했다.


타라는 수요일마다 참석한 세미나에서 만난 여학생들 - 카트리나와 소피- 과 함께 커피를 마시러 나가보기도 한다. 커피는 몰몬교회에서 금지하는 음료였으므로, 타라는 그때까지 커피를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뭘 시킬지 몰라 아무 거나 시켜본 타라는 결국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받아 들었다. 카트리나와 소피가 열심히 페미니즘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동안, 타라의 마음속에는 이 커피를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타라는 도서관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커피 마시며 들었던 페미니즘과, 초기 페미니스트에 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느꼈던,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리에 대한 불편했던 감정을 설명할 언어들이 거기에 들어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타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깨고 나오기를 갈망했던 - 자신 같은 - 여자들이 있었다는 걸 아는 것 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I left the cafe and went to the library. After five minutes online and a few trips to the stacks, I was sitting in my usual place with a large pile of books written by what I now understood to be second-wave writers - Betty Friedan, Germaine Greer, Simone de Beauvoir.

I returned to the Internet and then to the shelves, where I exchanged the books of the second wave for those that preceded the first - Mary Wollstonecraft and John Stuart Mill. I read through the afternoon and into the evening, developing for the first time a vocabulary for the uneasiness I'd felt since childhood.

I carried the books to my room and read through the night. I loved the fiery pages of Mary Wollstonecraft, but there was a single line written by John Stuart Mill that, when I read it, moved the world: "It is a subject on which nothing final can be known." The subject Mill had in mind was the nature of women. Mill clained that women have been coaxed, cajoled, shoved and squashed into a series of feminine contortions for so many centuries, that it is now quite impossible to define their natural abilities or aspirations.

Blood rushed to my brain; I felt an animating surge of adrenaline, of possibility, of a frontier being pushed outward. Of the nature of women, nothing final can be known. Never had I found such comfort in a void, in the black absence of knowledge. It seemed to say: whatever you are, you are woman.



크리스마스에 고향집을 방문하고 깨닫게 된 것


타라는 크리스마스 휴가에 아이다호 산골 집으로 간다. 타라가 없는 사이 그녀의 부모님이 집을 크게 넓혀, 교회 강당 같은 규모의 천정이 높은 공간이 새로 생겨나 있었다. 타라는 그 공간이 아버지에게 참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크고 너무 부조화가 심하다는 점에서.

It was a single massive room the size of the chapel at church, with a vaulted ceiling that rose some sixteen feet into the air. The size of the room was so ridiculous, it took me a moment to notice the decor. The walls were exposed Sheetrock, which contrasted spectacularly with the wood paneling on the vaulted ceiling. Crimson suede sofas sat cordially next to the stained upholstery love seat my father had dragged in from the dump many years before. Thick rugs with intricate patterns covered half the floor, while the other half was raw cement. There were several pianos, only one of which looked playable, and a television the size of a dining table. The room suited my father perfectly: it was larger than life and wonderfully incongruous.


알고 보니, 어머니의 에센셜 오일 사업이 대박이 나서 집에 돈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그 돈으로 음식과 연료, 그리고 폭격에 대비한 피난소까지.. 하나님을 위해서 쓰고 있다고 - 종말의 날 준비를 더 철저히 하고 있다고 - 했다. 타라는 웃음이 나는 걸 참았다. 돈이 아버지의 정신병을 더욱 크게 세상에 드러내는 꼴이었다.


리처드 오빠 가족 - 그의 아내 카미와 갓 태어난 아기 조카 도노반 - 도 크리스마스를 지내기 위해 산골집으로 왔다. 그는 아이다호 주립 대학에서 화학 학사 과정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타일러 오빠의 아내 스테파니처럼, 리처드 오빠의 아내 카미도 매우 정상적인 - 타라의 가족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 사람이었다. 리처드 오빠가 두 개의 다른 세상을 어떻게 오가는지 타라가 지켜보니, 그는 두 개의 세상 모두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아버지가 말할 때는 아버지의 기분을 살피며, 아버지가 좀 비상식적인 말을 한다 싶으면 카미의 기분을 살피며,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다, 카미의 남편이 되었다,...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타라의 눈에 보였다.


일주일 가량이 흘렀고, 산골엔 강추위가 불어 닥쳤다. 온도가 영하 30도 이하로 심하게 떨어져서 모두가 집안에 갇혀있던 어느 날, 숀 오빠의 아내 에밀리가 덜덜 떨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신발도 신지 않고, 외투도 없이 티셔츠 차림으로 남편 숀에 의해 쫓겨난 것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빨갛게 언 에밀리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엉엉 우는 그녀를 달래주었다. 식료품점에서 장을 봐 왔는데, 아이 크래커를 잘못 사 왔다고 화가 나 그녀를 차가운 눈밭으로 쫓아내고 문을 열어주지 않더라고 했다.


타라는 그 순간, 그걸 보고 걱정하고 당황하는 리처드 오빠의 아내 카미에게 화가 나는 걸 느꼈다. 가족의 수치를 외부인에게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라는 카미에게 다가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에밀리에게 매우 "사적인" 일이니, 어머니 아버지만 남아 상황을 처리하시도록 맡기고 모두 방에 들어가자고 설득했다. 리처드 오빠와 카미는 잠자리에 들고, 타라는 다시 부엌으로 나와 상황이 돌아가는 모습을 관찰했다. 아버지가 숀에게 전화해서 "네 와이프 데려가라"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그 순간 타라는 감지했다.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다는 걸. 모두가 자신의 역할 맡은 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외부인을 따돌리는 타라 자신의 역할까지도 이미 연습이 많이 된 것임을 자각했다.

It would be many years before I would understand what had happened that night, and what my role in it had been. How I had opened my mouth when I should have stayed silent, and shut it when I should have spoken out. What was needed was a revolution, a reversal of the ancient, brittle roles we'd been playing out since my childhood. What was needed - what Emily needed- was a woman emancipated from pretense, a woman who could show herself to be a man. Voice an opinion. Take action in scorn of deference. A father.




너무 다른 두 개의 세계에 발을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


미국에서 자라는 많은 이민자 가정 아이들은 모두가 타라와 같은 경험을 하며 자라가게 된다. 사회 문화적 거리가 크게 다르지 않은 유럽계 이민자 아이들에 비해, 아프리칸이나 아시안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 거리가 너무 멀어서 큰 혼란을 겪는다. 많은 경우 청소년 시기가 되면, 외모 차이가 불러오는 낮은 자존감, 자기혐오에, 적응하기 힘든 문화적 거리에, 은근한 인종차별에, 사춘기까지 겹친 정서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그 여파로 많은 한인 가정들은 자녀들이 자해하거나 마약에 빠져 사는 고통을 겪고, 가정 파탄을 경험한다. 한국의 전통적인 세계관과 미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내면에 세워지는 세계관이 극과 극으로 달라 결국 충돌하게 되기 때문이다. 타라가 제 안에서, 그리고 가족 안에서 두 개의 다른 세계가 충돌하는 것을 경험하듯이 말이다.


두 개의 다른 세계 사이에서 어떻게 적응하는지는 사람 성격마다 다르다. 리처드 오빠처럼 적당히 양쪽 비위를 맞추며 미국 사람들과 있으면 미국 사람, 한국 사람들과 있으면 한국 사람이 되는 사람도 있으며, 완전히 한국인들끼리만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모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극도로 한국인을 혐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에 지친 사람들은, 절대 옳은 가치를 가지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된다. 미국이라는 환경적 특성이 많은 이민자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면이 있다. 정신적으로 붙들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미국 교회로 흡수되고, 어떤 사람은 한국 교회 한국 사람을 고집하며, 어떤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행위 자체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고, 나름대로의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타라는 교육이 만들어 준 세상과 자신의 옛 세상을 어떻게 접목시킬지 답을 찾아내야 할 필요가 있는 입장에서, 리처드 오빠가 어떻게 하는지를 관찰한다. 그리고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다른 색채를 띠며 양쪽을 다 오가는 오빠의 모습을 본다.


결혼하고 보니, 남편이 영어로 말할 때는 더없이 쿨한 젠틀맨 미국인이 되는데, 집에 가족들과 있을 때- 특히 부모님과 한국말로 이야기할 때 - 세상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무척 이상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영어로 말할 때와 한국어로 말할 때의 온도 차가 너무 컸다. 문을 열고 나가면 미국,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오면 한국이었던 그의 세계, 두 개의 다른 세계 어느 쪽으로 향한 연결도 끊어지지 않게, 양쪽에 다 속하기 위해 방어기제처럼 몸에 밴 방식이었다.


두 세계 사이에서 행복한 지점을 찾는 일은 나에게도 숙제였다. 몇 년간, 한국 음식과 한국말을 잊어버리기로 작정하고 미국인들 틈에 깊숙이 들어가 하루 종일 영어만 말하며 지낸 적도 있고, 한인 커뮤니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한국 사람만 만나고 한국말만 하고 지낸 적도 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깨닫고 있었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히 속할 수 없는 두 세계에 맞추려고 노력하다 치이고 차이면서 지쳐버린 것이었다. 내가 편안한 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했다. 내가 만들어 가는 나의 세계는 마치, 불고기 햄버거, 치즈 떡볶이 같은 퓨전 그 자체다. 한 마디로 나 편한 대로 먹고, 나 편한 대로 사는 거다. 내 세계는 달리 말하자면,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삶이다.


타라도 언젠가는 이 세계에도 저 세계에도 꼭 맞추려 하지 않고, 자신이 편한 지점, 자신만의 퓨전 세계를 만들어 낼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두 세계 (혹은 그 이상의 세계)에 발을 걸치고 양쪽을 다 맞추려고 아등바등 살아가다 지쳐버리는 게 아닐까. 그렇게 모두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 나다운 삶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모두가 독특한 게 아닐까. 그러니 우리 모두는, 나와 좀 다르다는 것에 대해 관대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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