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자기만의 방

by 하트온


이 글은 나오미 작가님과 하는 '자기만의 서재 공간 꾸미기 이벤트'에 참여하는 인증 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내가 버지니아 울프 작가의 책에 매료되어 그녀의 책을 끼고 살았던 때가 아마도 내 나이 20세 전후였던 것 같다. 울프 작가의 책이 전하는 메시지나, 문장이 뿜어내는 그녀의 정서에 강한 끌림을 느꼈지만, 나는 사실 그녀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그 책을 썼는지 배경 지식도 얕고, 경험도 너무 짧았다. 나는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 기억에 남은 것들이 있었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남성이 혹은 사회 문화가 정하는 왜곡된 여성성에 갇히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기본 수입과 자기만의 방 -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분리하여 자신답게 성장시키는 공간 - 이 꼭 필요하다는 두 가지였다. 나는 그것을 인생의 숙제처럼 마음에 품고 지키려고 노력해 왔던 것 같다.



나만의 작업 공간 만들기


엄마가 되고 보니, 나만을 위한 공간을 주장하기가 힘들었다. 안방에 작은 책상을 하나 사서 놓아 보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 때문에 내 방, 내 책상이 있어도 내 방에만 앉아있을 수 없었다. 수시로 아이들의 필요를 챙겨주어야 하고, 아이들의 동선을 살펴야 하니, 내가 머무르는 공간은 아이들 곁이어야 했다. 저절로 아이들이 계속 드나드는, 집 한가운데 있는 부엌 식탁 한 구석이 내 공간이 되었다. 식탁 자리에 오래 머무르다 보니 그곳이 정해진 내 자리가 되어 버렸다. 모두가 잠들고 난 이후에도, 나는 계속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곤 했었다. 사실 부엌 식탁은 불편한 점이 많았다.

컴퓨터에 혹은 중요한 서류에 음식이나 물이 쏟아질 위험이 항상 있었다.
식탁 구석에 책과 노트가 어질러져 있는 것도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다.
한참 작업하고 있는데 식구들이 옆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떠드는 것이 때로 방해처럼 느껴졌다.


몇 달 전에 나는 자리 이사를 했다. 나만의 작은 서재 공간을 만들자고 계획을 세우고,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다가, 이렇게 자리 배치를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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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작업 공간

많이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이 공간이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머리를 들면 집안 전체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위치다. 아이들이 집 어디에 있어도 아이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느껴지는 지점이다.
창이 뒤에 있는 것이 생각보다 명당자리를 만든다. 특히 오전 시간에 책상으로 내려앉는 아침 햇살을 느끼며 독서하는 시간이 즐겁다.
아이들이 오전에 창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곤 하므로, 나도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 들면 가족이 함께 책 읽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밤에 조명을 켜고, 창 밖에 가로등까지 가세하면, 꽤 운치 있는 작가의 책상이 만들어진다. 밤에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 이 공간이 뿜어내는 감성은 설레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정도다. 밤에 여기 앉아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책상 자리를 여기로 옮기고부터,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어져서 절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먹고 떠드는 공간과, 조용히 작업하는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확실히 더 좋다. 책상은 책상대로 나 말곤 누구도 손대지 않는 안정감이 있고, 식탁은 식탁대로 더 식탁답고, 밥 먹을 때마다 내 물건들을 치워내지 않아도 되니 더 편하다.


오래도록 여기 이 자리는 내 작업공간으로 사랑받을 것 같다. 보잘것없지만, 나에겐 더없이 큰 만족감을 주는, 세상이 뭐라 해도 나를 나답게 성장시키는, 나만의 공간, "자기만의 방"이다.


조만간 이 공간에 앉아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이런 공간을 만들라고 어렸던 나에게 충고해 주었던 그 울프의 글이, 그 글을 쓴 당시의 울프와 나이가 비슷해진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내 경험과 지식이 성장한 만큼 얼마나 다르게 느껴질까. 많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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