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35. 가족 모두에게 버림받았다

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35

by 하트온

챕터 35. 태양의 서쪽* (West of the Sun)


*'태양의 서쪽'이라는 표현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 나온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태양의 서쪽'이란 이성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soomaning/220185781680


오빠를 잃다


타라는 다시 곧 돌아올 것처럼 보이기 위해 짐을 반쯤만 싸서 집을 나와 도망쳤다. 드류와 함께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휴가를 마저 보내고, 곧장 캠브리지로 돌아왔다.


몸은 캠브리지로 잘 피신했지만, 타라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친구들과도 잘 만나지 않았다. 숀이 앞 뒤 정황을 다 맞춰보고, 오드리와 타라가 숀에 관한 진실을 가족에게 폭로하려 했다는 것을 완전히 깨닫게 될 때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가늠하는데 타라의 온 신경이 가 있었다. 그날 밤 있었던 일은, 본진이 일어나기 일어난 전진에 불과한 것이었다.

After the New Year I returned to Cambridge, but I withdrew from my friends. I had seen the earth tremble, felt the preliminary shock; now I waited for the seismic event that would transform the landscape. I knew how it would begin. Shawn would think about what Dad had told him on the phone, and sooner or later he would realize that my denial - my claim that Dad had misunderstood me - was a lie. When he realized the truth, he would despise himself for perhaps an hour. Then he would transfer his loathing to me.


타라가 예상했던 대지진은 3월에 일어났다. 숀이 타라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인사도 없고 내용도 없었다. 성경, 마태복음에서 따온 한 구절*만 적혀있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O generation of vipers, how can ye, being evil, speak good things?)


타라는 이 이메일을 보자마자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1시간 후, 숀이 전화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쾌활했고, 20븐 정도 조카의 건강에 관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야기의 주제가 달라졌다. 숀은 의논할 것이 있고, 타라의 조언이 필요하다며 본론을 꺼냈다.

내가 너를 직접 죽일지, 청부 살인을 해야 할지 결정을 못하겠네. 거기까지 가는 비행기 값을 고려하면 누굴 고용하는 게 더 싸겠지.(I can't decide whether I should kill you myself, or hire an assassin. It might be cheaper to hire someone, when you figure in the cost of the flight.)


타라가 못 알아듣는 척했지만, 그게 그를 더 자극시켰다. 그는 이제 대놓고 욕을 하고 위협하며 분을 드러냈다. 타라는 도무지 그를 진정시킬 방도가 없어, 전화를 끊어보기도 했지만, 그는 계속 다시 전화해서 같은 말만 반복했다. 등 뒤 조심하라고, 청부 살인마가 찾아올 거라고 위협했다.


타라는 부모님 집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오빠가 그런 뜻이 아니었을 거라고, 그럴 돈 없을 거라는 말만 했다. 아버지는 증거를 대라고, 전화 통화 내용 녹음했냐고만 물었다.


마침내 숀이 더 이상 전화하지 않았다. 부모의 설득으로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숀이 타라를 자기 인생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타라에게 마지막으로 이메일 해서 다시는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 자기는 형제들 중 타라를 가장 사랑했었다며, 그런데 타라는 그런 자기 뒤통수를 쳤다며 원망했다. 오빠를 잃고 충격에 빠진 타라에게, 부모는 숀이 그럴만했다는 쪽으로 타라가 정당한 이유도 근거도 없이 오빠에게 심하게 화풀이하고 괴롭혔다는 쪽으로 몰고 가기만 했다. 타라가 분노를 표현한 정도가 숀에게 너무 위협적이어서 숀이 자신의 가족을 보호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숀이 그 날밤 타라의 손에 쥐어준 칼에 대해서도, 처음엔 '위협할 목적이 아니었다'라고 하다가, 나중엔 '칼이 없었다'로 말을 바꾸었다. 진실은 점점 변형되고, 타라는 점점 믿을 수 없는 존재,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정상이 아닌 존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가 되어갔다.

He wrote, telling me to stay away from his wife and child, and to stay the hell away from him. The email was long, a thousand words of accusation and bile, but by the end his tone was mournful. He said he loved his brothers, that they were the best men he knew. I loved you the best of all of them, he wrote, but you had a knife in my back the whole time.

It had been years since I'd had a relationship with my brother, but the loss of it, even with months of foreknowledge, stunned me.

My parents said he was justified in cutting me off. Dad said I was hysterical, that I'd thrown thoughtless accusations when it was obvious my memory couldn't be trusted. Mother said my rage was a real threat and that Shawn had a right to protect his family. "Your anger that night." she told me on the phone, meaning the night Shawn had killed Diego, "was twice as dangerous as Shawn has ever been."

Reality became fluid. The ground gave way beneath my feat, dragging me downward, spinning fast, like sand rushing through a hole in the bottom of the universe. The next time we spoke, Mother told me that the knife had never been meant as a threat. "Shawn was trying to make you more comfortable," she said. "How knew you'd be scard if he were holding a knife, so he gave it to you." A week later she said there had never been any knife at all.

"Talking to you," she said, "your reality is so warped. it's like talking to someone who wasn't even there."

I agreed. It was exactly like that.


언니를 잃다


그해 여름, 타라는 여름 동안 파리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드류도 타라와 함께 파리로 갔다. 타라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에 집중하려,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생각들을 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오드리 언니에게서 온 이메일을 펼친 순간, 타라의 얇은 평화는 순식간에 박살 났다. 편지에는 오드리는 하나님이 숀을 깨끗하게 해 주셨다는 것을 믿으며, 숀을 온전히 용서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숀 오빠에게 따졌던 것은 타라가 자꾸 부추기고, 자신의 화를 돋워서였다고 했다. 타라가 오드리를 끌어들이고 가족을 배신한 것은 타라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버리고 사탄의 왕국에서 두려움에 빠져 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타라는 두려움에 사탄에 휘둘리는 위험한 존재이므로 중재자 없이 오드리를 방문하지도 말고 연락도 하지 말라고 편지는 끝맺고 있었다.

I had been in Paris for several weeks when, one afternoon, returning from a French lesson, I stopped at a cafe to check my email. There was a message from my sister.

My father had visited her - this I understood immediately - but I had to read the message several times before I understood what exactly had taken place. Our father had testified to her that Shawn had been cleansed by the Atonement of Christ, that he was a new man. Dad had warned Audrey that if she ever again brought up the past, it would destroy our entire family. It was God's will that Audrey and I forgive Shawn, Dad said. If we did not, ours would be the greater sin.

I could easily imagine this meeting, the gravity of my father as he sat across from my sister, the reverence and power in his words.

Audrey told Da that she had accepted the power of the Atonement long ago, and had forgiven her brother. She said that i had provoked her, had stirred up anger in her. That I had betrayed her because I'd given myself over to fear, the realm of Satan, rather than walking in faith with God. I was dangerous, she said, becuase I was controlled by that fear, and by the Father of Fear, Lucifer.

That is how my sister ended her letter, by telling me I was not welcome in her home, or even to call her unless someone else was on the line to supervise, to keep her from succumbing to my influence. When I read this, I laughed out loud. The situation was perverse but not without irony: a few months before, Audrey had said that Shawn should be supervised around children. Now, after our efforts, the one who would be supervised was me.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


타라는 언니까지 잃고, 이제 가족을 다 잃은 것처럼 느꼈다. 오드리 언니까지 등을 돌렸다는 것은, 산골 가족 친지 모두가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는 의미임을 타라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드리에게 했듯이 한 사람 한 사람 방문하며 모두가 타라에게 등 돌리게, 타라를 믿지 못할 존재로 만들 것임을 알았다.


이 와중에 타라는 하버드 대학 방문 연구(visiting fellowship)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산골 무지렁이 소녀가 하버드에서 연구할 기회를 얻다니! 감격하고 기뻐 날뛰어야 할 순간이었지만, 타라는 그렇게 벅찬 소식을 지극히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타라 자신이 겪고 있는 이 모든 가족과의 미친 갈등이, 교육의 대가로 치르는 고통인 것만 같아 화가 났다.


오드리의 편지를 읽고 난 이후부터, 과거에 대한 기억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오드리 언니에 대한 기억부터였다. 그녀와 함께 놀며 즐거웠던 순간들이 모두 손상되고 변질되어, 옛 추억들이 모두 끔찍한 느낌으로 변해 버렸다. 가족 모두에 대해 같은 과정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가장 심하게 손상을 입은 건, 스스로가 느끼는 자아상이었다. 그때의 그 여자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가족을 무자비하게 위협하고 삼키려 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타라는 이 상황을 편히 납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만 했다. 가장 쉬운 답이 있었다. 스스로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었다. 그러면 가족들의 태도도 이해가 되고, 그녀 자신도 더 이상 악한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자신은 그냥 정신이 많이 아픈 존재가 될 뿐이었다.

My memories of them became ominous, indicating. The female child in them, who had been me, stopped being a child and became something else, something threatening and ruthless, something that would consume them.

This monster child stalked me for a month before I found a logic to banish her: that I was likely insane. If I was insane, everything could be made to make sense. If I was sane, nothing could. This logic seemed damning. It was also a relief. I was not evil; I was clinical.


타라는 자신이 미쳤다고 믿기 시작하고, 자신의 기억을 신뢰하지 않기 시작했다. 타라는 드류에게 확인하곤 했다. 그녀가 보는 무엇이, 실제 존재하는 실체가 맞는지. 같이 경험했던 것 중에 둘이 다르게 기억하는 것은 없는지. 자신을 계속 의심했다.


문제는 일기장이었다. 일기까지 잘못된 망상이라면, 기억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뜻이었다. 망상병이 깊다는 뜻이었다.

My journals were a problem. I knew that my memories were not memories only, that I had recorded them, that they existed in black and white. This meant that more than my memory was in error. The delusion was deeper, in the core of my mind, which invented in the very moment of occurrence, then recorded the fiction.


이렇게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의심할수록, 자신의 기억, '진실'을 옹호하려는 의지가 더 격렬하게 치고 올라왔다. '숀 오빠가 폭력적이고 위험한 사람이며, 아버지는 숀 오빠의 보호자'라는 사실만큼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었다. 타라는 그 사실을 증명할 방법을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타라는 숀의 옛날 여자 친구인 에린에게 이메일을 썼다. 자신이 오빠에게 이런 학대를 겪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망상인 건지 좀 말해달라고 대놓고 말했다. 에린에게서 금방 답장이 왔다. 그녀는 타라가 미친 것이 아니며, 숀이 자기에게 '매춘부'라고 소리 지른 적도 있고, 자신을 목졸라 죽일 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목 졸리기 전에 비명을 지를 수 있었고, 비명을 듣고 할아버지가 나와 구해주었다고 했다.


에린의 증언을 듣고 타라는 잠시 모든 게 바로잡히는 듯 느껴지는 듯했지만, 바로 다시 어긋나기 시작했다. 에린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그녀도 망상에 빠진 상처 입고 병든 사람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다른 증거가 필요했다.


운 좋게도, 타라는 유타주로 연구 자료를 찾으러 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그 다른 증거를 얻었다.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젊은 남자가, 타라의 성이 웨스트오버인 것에 반응했다. 타라의 이름을 보고, 그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혹시 숀과 어떤 관계세요?"라고 물었다. 타라가 오빠라고 대답하자, 그가 말했다.

내가 당신 오빠를 예전에 본 적이 있는데. 당신 오빠라는 작자가 내 사촌 여동생의 목을 조르고, 애 머리를 돌벽에 세게 치고 있었어. 우리 할아버지가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내 사촌 여동생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야.(Well, the last time I saw your brother, he had both hands wrapped around my cousin's neck, and he was smashing her head into a brick wall. He would have killed her, if it weren't for my grandfather.)


타라에게는 그보다 완벽한 증언이 없었다. 더 이상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증언을 들은 건, 가족에게 버림받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족에게 차단당하고 몇 년간, 타라는 지독한 고통 속에 살았다.





이단에 빠진 가족 집단 안에서,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이단 종교를 벗어나려 하는 경우, 이런 종류의 가스 라이팅과 차단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그 가족 구성원이 얼마나 의롭고 좋은 사람인지에 상관없이 집단의 안위와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족의 명예와 질서를 깨지 않기 위해, 오빠나 사촌 오빠에게 강간 성폭행 혹은 성추행당한 딸이 도움을 청할 때 무참하게 그 청을 저버리고 오히려 그 딸에게 입 닫고 조용히 살라고 화내고 몰아붙이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집단을 지키기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그런 모습은 보기 힘든 풍경이 아니다.


내가 그 가족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까. 집단의 명예와 안위를 선택하는 대신,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내 삶에 그것이 아무런 가치도 이득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나까지 버림받을 수 있고 물리적 심리적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면, 부모의 사업을 돕고 있어 밥그릇까지 달려있다면, 사회적 지탄 및 내부의 비난을 견디기까지 해야 한다면, 나는 과연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진실스럽게 포장한 거짓에 대충 속아 넘어가 주는 그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만, 말이 안 되는 일이, 집단의 이기와 연합하여 말이 되는 진실로 둔갑하는 것이 현실이고 세상이다.


나는 가끔, 내가 잘못된 인간인지,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세상에 맞춰 함께 돌아가는 사람은 이렇게 느끼지 않는다. 멈춰 서서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나 의심하는 순간 딜레마에 빠진다. 멈출 수밖에 없는 내가 잘못된 건지, 계속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잘못된 건지 결정을 해야 한다.


이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은 내가 미쳤다는 증거를 찾거나, 아니면 세상이 미쳤다는 증거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 결론을 내고 세상과 내가 편안하게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내야만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대와 불안정에 시달린다 해도 비빌 가족이 있었던 상태와, 완전히 가족에게 버림받은 상황은 천지 차이일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부조리한 상관을 욕하면서도 계속 회사에 소속된 입장과, 회사에서 억울하게 해고된 상황의 차이 같은 느낌, 아니 그 보다 더한 것이지 싶다. 타라가 느끼는 정신적 고통이 짐작도 되지 않는다. 부모 형제조차 믿어 주지 않는 삶, 부모 형제조차 믿을 수 없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 삶을 살아내고 스스로를 일으켜 낸 작가 타라 웨스트오버를 응원할 뿐이다. 앞으로도 쭉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를, 치유와 회복이 삶에 가득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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