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36
하버드 대학에서 새로운 시작
그해 9월, 타라는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It was a sunny Septenber afternoon when I heaved my suitcase through Harvard Yard. The colonial architecture felt foreign but also crisp and unimposing compared to the Gothic pinnacles of Cambridge. Wedener library was the largest I had ever seen, and for a few minutes I forgot the past year and stared up at it, wonderstruck.
새로운 시작을 희망하면서, 그녀는 공부에 매진하고, 흥미로운 수업들로 일상을 꽉꽉 채웠다. 새로 배운 프랑스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프랑스어 스터디 그룹에도 가입하고, 뜨개질 모임에도 가입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 타라는 무료로 제공되는 미술 스케치 수업에도 등록했다.
타라는 또한 유명한 사상가들의 - Hume, Rousseau, Smith, Godwin, Wollstonecraft, and Mill- 책도 많이 읽었는데, 타라는 그들이 말하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가족에 대한 의무와 사회 전체에 대한 사람의 의무에 대해 말하는 부분들을 집중해서 읽었다. 읽은 것들을 바탕으로 박사 논문도 한 챕터 썼다. 자신이 느끼기에도 잘 썼다 싶은 글을 썼다.
I became obsessed with their ideas about the family - with how a person ought to weigh their special obligations to kin against their obligations to society as a whole. Then I began to write, weaving the strands I'd found in Hume's Principles of Morals with filaments from Mill's The Subjection of Women. It was good work, I knew it even as I wrote it, and when I'd finished I set it aside. It was the first chapter of my PhD.
부모님의 하버드 방문
어느 토요일, 오전에 있는 스케치 수업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머니로부터 이메일이 와 있었다. 타라의 부모가 하바드로 온다는 내용이었다. 타라는 믿기 힘들었다. 아버지는 애리조나로 자동차 여행 가는 거리 이상의 여행을 평생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사탄에 사로잡힌" 딸을 만나러 보스턴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다는 생각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타라는 곧 깨달았다. 아버지가 자신을 "구하러" 오는 것임을. 어머니의 이메일에는 벌써 비행기 표를 끊었다고 적혀있었다. 타라가 연락해서 "호텔 잡아 드릴까요?" 물었지만, 부모님은 됐다고, 타라의 기숙사 방에서 지내겠다고 하셨다.
며칠 뒤, 타라는 우연히 전에 사용했던 적이 있는 온라인 채팅 프로그램에 접속을 했는데, 거기 첫 남자 친구였던 찰스가 들어와 있어, 두 사람은 1시간 정도 함께 대화했다. 타라가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찰스는 무척 놀라워했다. 타라가 찰스에게 대학 졸업하고 뭘 하는지 묻자, 찰스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고 했다. 대학 2 학년 때 아들이 태어났고, 아내가 아파서 엄청난 병원비가 들어, 학교를 그만두고 와이오밍 주에서 석유 굴착 장치 작업 일을 시작했고, 아직도 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타라는 찰스에게 숀 오빠에 대해 말해주었고, 오빠와 가족으로부터 차단당하는 중이라는 말도 했다. 찰스는 조용히 듣더니, 긴 한숨을 쉬며 물었다. "가족을 멀리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어? (Have you ever thought maybe you should just let them go?)" 타라는 한 번도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다고 대답했고, 지금 차단당하고 있지만, 오래 가진 않을 거라 말했다.
가족들 마음 내가 바꿀 수 있어. (I can fix it.)
이 말을 들은 찰스가 대답했다.
네가 이렇게 많이 바뀔 수 있었으면서, 또 한 편으론 여전히 17살 그때 같다는 게 희한하지. (Funny how you can change so much, but still sound the same as when we were seventeen.)
가을 단풍이 한창일 무렵, 캠퍼스의 풍경이 가장 예쁜 시간에, 타라의 부모님이 하버드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하버드 대학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타라는 부모님에게 시내 구경을 시켜드렸다. 길을 가다 노숙자가 나타나 1불만 달라고 구걸하자, 아버지는 그에게 빳빳한 50불짜리(5만 원 정도)를 주었다. 타라가 보스턴에서 노숙자 만날 때마다 그만큼씩 돈을 주면, 돈 하나도 안 남게 될 거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비즈니스가 요즘 너무 잘돼서 실컷 쓰고도 남을 만큼 돈이 많다고 응수했다.
밤에는 좁은 기숙사 방에서 부모님과 함께 잤다. 아버지가 침대를 차지하시고, 어머니는 타라가 빌려온 에어 매트리스 위에 주무시고, 타라는 타일 바닥에서 잤다. 부모님이 코를 많이 고셔서, 타라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이 되고 해가 떠올랐지만, 타라는 눈을 감은채 누워 있었다. 부모님이 일어나 타라의 냉장고를 뒤져 아침을 들며 타라를 어떻게 재개종(reconvert)시킬지, 어떻게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할지 계획하는 소리가 들렸다. 타라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그 퇴마 장단에 어떻게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를 계획했다. 잘만 장단 맞추면, 자신이 한 모든 말을 없던 것으로 하고, 깨끗이 씻김 받은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 가족과 다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The Lord has commanded me to testify," Dad said. "She may yet be brought to the Lord."
While they plotted how to reconvert me, I plotted how to let them. I was ready to yield, even if it meant an exorcism. A miracle would be useful: if I could stage a convincing rebirth, I could dissociate from everything I said and done in the last year. I could take it all back - blame Lucifer and be given a clean slate. I imagined how esteemed I would be, as a newly cleansed vessel. How loved. All I had to do was swap my momories for theirs, and I could have my family.
구원 여행, 추억 여행
아버지는 Sacred Grove (Palmyra, New York)라는 뉴욕 숲 속 지역으로 가고 싶어 했다. 거기엔 몰몬교 창시자인 죠셉 스미스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성지 교회가 있었다. 타라의 아버지는 타라에게 그 교회 건물을 만지라고 했다. 교회에 서린 힘이 타라를 깨끗하게 해 줄 거라고 말했다. 타라가 아버지가 시킨 대로 걸어가 교회 돌벽에 손을 갖다 대었다. 눈을 감고 기적이 일어나길 믿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타라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차가운 돌만 느껴졌다.
My father wanted to visit the Sacred Grove in Palmyra, New York - the forest where, according to Joseph Smith, God had appeared and commanded him to found the true church. We rented a car and six hours later entered Palmyra. Near the grove, off the hightway, there was a shimmering temple topped by a golden statue of the angel Moroni. Dad pulled over and asked me to cross the temple grounds. "Touch the temple," he said. "Its power will cleanse you."
I studied his face. His expression was stretched - earnest, desperate. With all that was in him, he was willing me to touch the temple and be saved.
My father and I looked at the temple. He saw God; I saw granite. We looked at each other. He saw a woamn damned; I saw an unhinged old man, literally disfigured by his beliefs. And yet, triumphant. I remembered the words of Sancho Panza: An adventuring knight is someone who's beaten and then finds himself emperor.
When I reflect on that moment now, the image blurs, reconstituting itself into that of a zealous knight astride a steed, charding into an imaginary battle, striking at shadows, hacking into thin air. His jaw is set, his back straight. His eyes blaze with conviction, throwing sparks that burn where they lay. My mother gives me a pale, disbelieving look, but when he turns his gaze on her they become of one mind, then they are both silting at windmills.
I crossed the grounds and held my palm to the temple stone. I closed my eyes and tried to believe that this simple act could bring the miracle my parents prayed for. That all I had to do was touch this relic and, by the power of the Almighty, all would be put right. But I felt nothing. Just cold rock.
타라와 부모님은 교회 마당을 떠나 Sacred Grove로 갔다. 거기서 오랜 나무 벤치를 찾아, 부모님이 타라의 양옆에 나란히 앉았다. 타라의 아버지가 긴 설교를 시작했다. 2시간 동안의 긴 연설이었다. 그러고 나서 타라에게 속삭였다.
너는 사탄의 손아귀에 잡혀 있어. 네 기숙사 방안에 들어가자마자 그걸 느꼈다. (You have been taken by Lucifer. I could feel it the moment I entered your room.)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입을 꾹 다물고 땅만 보고 계셨다. 아버지는 타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타라는 열심히 제 내면을 뒤지며 아버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찾았지만, 그 말은 타라 안에 없었다.
하버드로 돌아가기 전에, 타라는 부모님을 설득해 나이아가라 폭포에 들렀다. 아버지는 타라 때문에 속상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폭포를 보고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카메라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음에도, 사진 찍자고 먼저 나섰다. 그 순간 폭포에서 타라는 가족과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느꼈다.
하버드로 돌아와 타라는 다시 한번, 호텔 잡아드리겠다고 했지만, 부모님은 거절했다. 일주일 내내 함께 그 좁은 방에서 함께 먹고 자고 지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나시기 전 날 밤, 아버지가 타라를 위한 선물로 신권 축복 (priesthood blessing)을 하사하겠다고 했다. 몰몬교에서 신권 축복은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조언하고, 상담하고, 아픈 자를 치료하고, 악마를 쫓아내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는 일을 하도록 직위를 안수받는 것을 말한다. 주로 남자에게 주어지는 직위였다. 중요한 판단의 순간이었다. 이 제안에 응하면, 아버지는 타라를 깨끗이 씻어줄 것이었다.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지금까지 타라를 조종하여 가족에게 미움받게 만든 악마를 쫓아주실 것이었다. 아버지 앞에 항복하고 5분만 참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타라는 싫다고 말했다.
Dad said he had a gift for me. " It's why I came," he said. "To offer you a priesthood blessing."
In Mormonism, the priesthood is God's power to act on earth - to advise, to counsel, to heal the sick, and to cast out demons. It is given to men. This was the moment: If I accepted the blessing, he would cleanse me. He would lay his hands on my head and cast out the evil thing that had made me say what I had said, that had made me unwelcome in my own family. All I had todo was yield, and in five minutes it would be over.
I heard myself no.
아버지는 지금까지 가족에게 일어났던 모든 힘들었던 사고들이 하나님의 뜻임을, 현대 의학보다 강한 하나님의 힘을 증거 하시기 위해 타라의 가족이 선택받은 것임을, 그들이 하는 허브 오일 사업이 하나님의 사명임을, 그간의 힘든 훈련으로 이제 더 많은 병을 고치는 능력을 얻었음을 타라에게 쭉 설명하고, 타라에게 재앙이 닥치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신권 축복을 제안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타라는 다시 한번 거절하였다.
Dad's eyes were fixed on me. It was the gaze of a seer, of a holy oracle whose power and authority were drawn from the very universe. I wanted to meet it head-on, to prove I could withstand its weight, but after a few seconds something in me buckled, some inner force gave way, and my eyes dropped to the floor.
"I'm called of God to testify that disaster lies ahead of you," Dad said. "It is coming soon, very soon, and it will break you, break you utterly. It will knock you down into the depths of humility. And when you are there, when you are lying broken, you will call on the Divine Father for mercy." Dad's voice, which had risen to fever pitch, now fell to a murmur. "And He will not hear you."
I met his gaze. He was burning with conviction; I could almost feel the heat rolling off him. He leaned forward so that his face was nearly touching mine and I said, "But I will."
The silence settled, undisturbed, oppressive.
"I will offer, one final time, to give you a blessing," he said.
The blessing was a mercy. He was offering me the same terms of surrender he had offered my sister. I imagined what a relief it must have been for her, to realize she could trade her reality - the one she shared with me - for his. How grateful she must have felt to pay such a modest price for her betrayal. I could not judge her for her choice, but in that moment I knew I could not choose it for myself. Everything I had worked for, all my years of study, had been to purchase for myself this one privilege: to see and experience more truths than those given to me by my father, and to use those truths to construct my own mind. I had come to believe that the ability to evaluate many ideas, many histories, many point of view, was at the heart of what it means to self-create. If I yielded now, I would lose more than an argument. I would lose custody of my own mind. This was the price I was being asked to pay, I understood that now. What my father wanted to cast from me wasn't a demon: it was me.
Dad reached into his pocket and withdrew a vial of consecrated oil, which he placed in my palm. I studied it. This oil was the only thing needed to perform the ritual, that and the holy authority resting in my father's misshapen hands. I imagined my surrender, imagined closing my eyes and recanting my blasphemies. I imagined how I would describe my change, my divine transformation, what words of gratitude I would shout. The words were ready, fully formed and waiting to leave my lips.
But when my mouth kpened they vanished.
"I love you," I said. "But I can't. I'm sorry, Dad."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더 이상이 이 악마 들린 방을 견딜 수 없다며 나가셨다. 비행기 예약은 다음 날 아침으로 되어 있었지만, 아버지는 악마와 한 방에서 지내는 것보다 길가 벤치에서 자는 게 낫다고 말하며 어머니와 함께 짐을 싸서 떠나버렸다.
타라는 예전 같으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쉽게 했을 일을 이젠 할 수가 없다. 자신의 마음, 판단력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기 마음 자기 의지가 있는 것이다.
나는 스무 살 되던 해에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7대째 내려오는 독실한 불교집안이었다. 아들을 대대로 낳게 해 준다는 조건으로 스님과 약속해서 지켜야 하는 것들이 대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심지어 할머니가 다니는 절 자체도 우리 집안에서 지어 준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그 절과 집을 오가며 스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사신 역할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교보단 미신에 가까운 행위들이 더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할머니가 만나는 그 스님은 예언을 했고, 사주를 봐줬으며, 모든 집안 행사의 날짜를 잡아주곤 했다.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묏자리가 안 좋다거나, 조상신이 어쩌고 하는 말을 했고, 인형을 만들어 어디에 묻거나 던지라고도 시켰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너무 싫었다. 조상귀신이 좋아할 만한 일을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퇴마 작업을 수시로 해야 하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명령에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끌려다니는 삶이 끔찍이 싫었다. 나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이 마인드 조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해방감을 느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자유를 주러 오셨다는 것이 너무 안심이 되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니, 귀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제사 따위 묏자리 따위 잊어버려도 된다는 게 너무나 좋았다.
할머니는 집안에 두 종교가 있으면 집안 망한다고, 스님께 부적을 받아와서, 내 가방, 내 옷, 내 방 구석 구석에 붙여놓았다. 나는 그것에 고분 하게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 물건에 붙은 부적만 떼서 쓰레기통에 버린 게 아니라, 원래부터 대문 위에, 방문 위에 붙어 있던 부적들도 다 떼서 다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할머니와 손녀라는 친근한 관계는 온데간데없고, 원수끼리 전쟁을 벌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 후 고모가 집에 찾아왔다. 평소 따뜻하게 웃어주고 항상 나를 예뻐해 주는 고모인데, 그 날 나를 바라보는 고모의 눈빛이 너무나 차갑고 못마땅해하는 듯 보였다. 고모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차피 고모의 말을 들을 마음이 없었기에 나는 그 말들을 모두 흘려들은 탓일 것이다. 기억이 안나도 고모가 했을 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두 종교는 안된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 오고, 엄마까지 미국에 오시고, 한국에 남아 있는 아들과도 사이가 멀어져 연락이 끊어진 상황에서, 한 번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전화해서 나에게 호통을 친적이 있었다. 내가 미국에 온 이후부터는 아버지에게 생활비나 용돈을 드리는 물주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적이 전무후무했었다. 게다가 국제통화 요금 걱정에, 필요한 용건을 얼른 말하고, 날씨나 안부인사같은 것을 가볍게 주고 받는 이상의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는 국제 통화를 걸어 화를 내야 할 만큼 감정이 상해 있었다. 아버지가 화를 내는 이유를 듣고 나는 아버지와 나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를 깨달았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왜 너희는 아무도 제사를 지내러 오지 않는거야? 어떤 무식하고 배은망덕한 것들이 조상한테 그렇게 소홀히 하고 살아? 너희는 교육도 안받았냐?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디? 어떤 벌을 받으려고.
나는 내내 아버지를 봬러가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아버지는 제사날 나타나 정성으로 제사지내지 않는 것에 화가 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말이 통하지 않는 관계인 것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던 사람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될 때, 판단력을 갖추고 마인드가 달라지는 것을 볼 때, 통제하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그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아닐까. 내 말을 신봉하지 않는 존재, 내게 중요한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존재를 견딜 수가 없으니, 딸이라도 손녀딸이라도 마음에서 끊어내 버리는 것이 아닐까. 말이 통하지 않게 되면, 천륜에 피붙이도 아무 관계가 없어져 버리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 멀리 와 있고, 친가 쪽 식구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타라의 상황과 내가 차이가 있다면, 타라처럼 어머니도 그들과 한 마음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 그러니 내겐 모든 걸 잃고도 여전히 어머니와 동생이라는 가족이 남았고, 타라에겐 지금 아무도 없다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클 것이다.
타라에게 가족이 말하는 진실 이상의 진실을 볼 수 있게 한 것이 대학 교육이었다면
나에게 가족이 말하는 진실 이상의 진실을 볼 수 있게 한 것은 성경 교육이었다.
나는 어쩌면, 하나님을 믿고 싶었다거나 종교를 가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킬, 내 마음을 세우고 성장시킬 피난처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어 준 하나님의 존재야 말로, 내 내면에 진정한 부모로 자리잡은 것인지 모른다.
타라가 말을 안들으면 재앙을 일으키고 벌을 주는 하나님의 세계로부터 도망쳐 나와 교육 안에서 마음을 세우고 성장할 피난처를 얻었다는 것은 사실은 내가 겪은 것과 다른 것이 없는 것이다. 사실 타라나 내가 도망쳐 나와야 했던 건, '몰몬교'나 '불교'인 것이 아니라 종교 규칙을 등에 업고 휘두르고 통제하는 건강하지 못한 심리적 학대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내면을 세뇌시킨 논리를 깨 주고, 그 이상의 진실을 말해주는 무언가 - 타라에게는 대학 교육, 나에게는 성경 말씀 - 를 만났을 때 해방을 얻고 자유를 얻은 것이다.
사진출처: https://www.harvard.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