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40
타라가 찾은 평화
타라 작가는 어렸을 때, 자신의 마음이 성장하고 경험이 축적되고, 자신의 선택들이 스스로를 “사람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가기를 바랐었다고 한다. 타라는 산에서 빚어진 산사람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떤 모습으로 시작했는지가 그 끝을 결정하는 것일까 - 사람이 빚어진 첫 모양이 진정한 그 사람의 모양인 것일까 - 궁금해했었다고 한다.
When I was a child, I waited for my mind to grow, for my experiences to accumulate and my choices to solidify, taking shape into the likeness of a person. That person, or that likeness of one, had belonged. I was of that mountain, the mountain that had made me. It was only as I grew older that I wondered if how I had started is how I would end - if the first shape a person takes is their only true shape.
타라 작가는 외할머니 장례식 이후로 몇 년 간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그녀는 타일러 오빠, 리처드 오빠, 그리고 토니 오빠와 친하게 지내왔다고 한다. 그들로부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산골 부모님 댁에서 일어나는 온갖 드라마 - 사고, 폭력, 그들 사이의 인간관계의 변화 - 에 관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문일 뿐, 타라의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거리감이 어쩌면 선물인지 모른다. 부모님과 완전히 연락을 끊고 영원히 살게 될지, 언젠가는 관계를 맺고 살 길을 찾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타라는 자신의 평화로운 삶에 만족하고 있다.
As I write the final words of this story, I've not seen my parents in years, since my grandmother's funeral. I'm close to Tyler, Richard, and Tony, and from them, as well as from other family, I hear of the ongoing drama on the mountain - the injuries, violence and shifting loyalties. But it comes to me now as distant hearsay, which is a gift. I don't know if the separation is permanent, if one day I will find a way back, but it has brought me peace.
타라는 자신의 평화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아버지가 잘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세고, 모든 원망을 끄집어내고, 아버지가 잔인했던 순간들, 자신을 방치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자신이 아버지를 인생에서 끊어낸 결정을 정당화시키려고 애썼다. 자신의 내면에서 정당화가 이루어지고 나면, 죄책감에서 풀려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타라는 그런 입증이 죄책감을 다룰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인을 향한 분노가 죄책감을 제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죄책감은 그 상대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자신의 비참함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타라는 끊임없이 원망감을 들쑤시거나 아버지의 죄와 자신의 죄를 비교하는 대신, 자신의 결정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인정하고 나서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타라가 아버지와 연락을 끊은 것이, 아버지가 딸에게 그런 일을 당할 만해서가 아니라, 타라 자신을 위해 필요한 일이어서, 연락을 끊는 것이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어서 그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받아들인 후에야 죄책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한다.
That peace did not come easily. I spent two years enumerating my father's flaws, constantly updating the tally, as if reciting every resentment, every real and imagined act of cruelty, of neglect, would justify my decision to cut him from my life. Once justified, I thought the strangling guilt would release me and I could catch my breath.
But vindication has no power over guilt. No amount of anger or rage directed at others can subdue it, because guilt is never about them. Guilt is the fear of one's own wretchedness. It has nothing to do with other people.
I shed my guilt when I accepted my decision on its own terms, without endlessly prosecuting old grievances, without weighing his sins against mine. Without thinking of my father at all. I accepted, finally, that I had made the decision for my own sake. Because of me, not because of him. Because I needed it, not because he deserved it.
It was the only way I could love him.
아버지와 딸 사이의 거리를 만든 새로운 자아
타라는 깨닫는다.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놓인 거리에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변화된 자아였다. 타라는 아버지가 키우던 그 아이가 더 이상 아닌데, 그는 그 아이를 키우던 아버지라는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What has come between me and my father is more than time or distance. It is a change in the self. I'm not the child my father raised, but he is the father who raised her.
타라는 아버지와 자신 사이가 확 벌어진 때를 그날 밤으로 회상한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숀이 오드리의 목숨을 놓고 위협했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증거를 대라고 하고, 울분이 터진 타라는 화장실로 뛰어가고, 타라가 나와보니 아버지가 숀에게 전화해서 다 말하고, 결국 숀이 개를 죽인 칼을 들고 왔던 그 날밤. 그 상황 전개 자체도 한 편의 드라마였지만, 그 날밤 일어난 일 자체보다, 자신이 아버지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화장실로 뛰어갔던 그 순간, 화장실 안에서 일어났던 변화 -16살의 자아를 도무지 끄집어낼 수 없었던 - 가 타라에게는 가장 큰 사건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왜냐하면 그전까지는 비상시엔 항상 튀어나와 주는, 학대를 묵묵히 견디는 돌덩어리 같은 자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교육을 받고, 아무리 외모가 달라져도 항상 어쩔 수 없이 어떤 순간이 되면 그때의 아이로 되돌아 가곤 했었는데, 그날 밤은 아무리 그 아이를 불러도 대답이 없었던 것이 타라에게는 큰 변화의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If there was a single moment when the breach between us, which had been cracking and splinting for two decades, was at last too vast to be bridged, I believe it was that winter night, when I stared at my reflection in the bathroom mirror, while, without my knowing it, my father grasped the phone in his knotted hands and dialed my brother. Diego, the knife. What followed was very dramatic. But the real drama had already palyed out in the bathroom.
It had played out when, for reasons I don't understand, I was unable to climb through the mirror and send out my sixteen-year-old self in my place.
Until that moment she had always been there. No matter how much I appreared to have changed - how illustrious my education, how altered my appearance - I was still her. At best I was two people, a fractured mind. She was inside, and emerged whenever I crossed the threshold of my father's house.
That night I called on her and she didn't answer. She left me. She stayed in the mirror.
그 날 이후 타라가 내린 결정들은 그 아이가 내릴만한 결정들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것들은 변화된 자신, 새로운 자아가 선택한 것들이었다. 그러한 자아의 확립을 사람들마다 다르게 부를 수 있다. 변형, 변신, 망조. 배신. 타라 작가는 그것을 '배움'이라고 부른다.
The decisions I made after that moment were not the ones she would have made. They were the choices of a changed person, a new self.
You could call this selfhood many things. Transformation. Metamorphosis. Falsity. Betrayal.
I call it an education.
타라는 아버지와 자신의 분리를 이루어 내고 평화를 얻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마음을 지키며 아버지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자신은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자신을 위해 살면 되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닌 독립된 어른으로서의 자아를 스스로가 인정하고 죄책감을 씻어내는 일도 스스로 해내었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데도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죄책감을 깨끗이 씻어주지 않았던 것도 나 자신이었다. 수치심에 쉽게 휘둘리고 나를 방치한 것도 나 자신이었다.
타라 작가에게서 나는 큰 것을 배워 간다. 내가 한 모든 결정들이 나를 위한 결정이었다는 것. 그것이 때로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그 나이에 그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는 것. 그것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가장 옳은 선택들이었다는 것. 그것을 나는 인정해 줄 참이다.
앞으로도, 나는 가능한 가장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며 살아갈 것이다. 옳은 선택의 바탕이 되어 줄 지혜를 갖추는 일에 열심을 다 할 것이다. 한 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내 편을 들어줄 것이다. 나의 선택들에 대해 더 이상 수치심이나 죄책감은 근접하지 못하도록 내 마음을 잘 지켜낼 것이다. 수시로 스쳐가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나는 부지런히 씻어 주고,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줄 것이다. 나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격려해 줄 것이다.
지금까지 이 긴 독서 치유 성장의 여정을 함께 걸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