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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Apr 07. 2021

반려컴과 마지막 시간

내 오랜 친구 맥북 에어가 점점 힘들어한다.

반려컴이 죽어간다


맥북 랩탑을 쓴 지 어언 8년째, 이 아이가 힘들어하는 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일처리 하는 시간도 느려지고, 충전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짧아지고, 갑자기 꺼지기도 하고, 밝기 조절도 통제가 안 되는 느낌이 있다. 충전 케이블 끝이 갈라지고 찢어지기 시작해서 검은 전기 테이프로 응급처치를 하고 쓰기 시작한 것은 한참 전 일이다.  키보드마저 위에 검은 코팅들이 하나 둘 벗겨지면서, 알파벳이 전혀 보이지 않아, 손가락이 한글 자판과 영어 자판을 모두 외우고 있는 게 천만다행인 상황이다. 


마침, 아이패드 프로도 장만했고, 큰애가 랩탑을 구매하기 전에 잠시 쓰던 컴퓨터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이 랩탑을 대체할 아이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워낙 오래 이 맥북 시스템과 키보드 느낌에 익숙해져 있어, 다른 키보드 및 마이크로소프트 시스템으로 옮겨가기를 주저하고 있달까. 익숙하디 익숙한 맥북이 너무 아쉬워서 이 아이의 사망을 최대한 늦추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어제오늘, 컴퓨터 안의 각종 파일들을 모두 대용량 USB에 옮기고, 맥북 자체는 깨끗이 비우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숨 쉴 여유를 만들어 주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 있어주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컴퓨터 청소를 하고 있다. 


내가 나의 맥북에게 더 이상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내가 이 아이에게 의존하고 있던 것을 하나 둘 덜어 내, 이 아이를 보낼 준비를 하려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마치, 많은 일을 하게 하고 큰 짐을 부리곤 하던 말과 소에게, 말년에는 짐을 지우지 않고 함께 산책이나 하는 것과 비슷한 행위인지도 모른다. 얘가 곧 죽으면 난 어떻게 하지 두려운 마음을 비워내고, 언젠가 곧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함께 하는 남은 시간을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려는 것이다.



버리기 힘든 반려컴


이렇게 반려컴의 마지막 시간을 받아들이며,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은, 지난 경험으로 오랜 시간 함께 하던 반려컴이 갑자기 고장 나거나 망가져 교체하는 일이 얼마나 마음이 힘든 일인지를 충분히 겪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용하다 버린 랩탑과 데스크탑이 5-6대쯤 되는 것 같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도, 떠나보내고 새 아이에게 적응하는 일도 매번 쉽지 않았다. 


누군가 반려컴의 마지막을 제대로 처리해주고, 아직 살아있는 부품들이 재활용, 새활용 될 수 있도록 처리해 주는 비지니스를 연다면, 나는 얼마가 들더라도 반려컴을 그곳에 보내고 싶다. 나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주고, 새로이 쓸만한 무언가로 재탄생시켜, 다른 누군가의 반려 기기로 새 삶을 살 것임을 확신한다면, 나는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오래된 아이를 보내고 새로운 아이를 맞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쓰던 자동차를 파는 것처럼 말이다. 자동차를 사는 업체가 내가 넘긴 자동차에서 내 흔적을 지우고, 더 깨끗이 손보고 수리해서 누군가 잘 쓸 수 있게 만들어 팔 거라는 걸 알기에, 자동차는 언제 팔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컴퓨터도 이런 시스템을 잘 갖춘 업체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 아이를 보수하고 수리해서 활용할 수 있다면,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이 힘들어하는 아이가 완전히 죽기 전에 보내주고 싶다.



새로운 반려컴에 대한 나의 태도


나는 은근히 익숙한 것을 원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 모양이다. 마음 한 구석에 이 아이를 보내고 똑같은 것, 혹은 아주 비슷한 것을 사고 싶은 욕구가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집에 있는 기기들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다. 그것이 어떤 시스템이건 내가 새로운 것에 적응하면 된다. 내가 나 자신을 정의하기 나름의 일일 것이다. 내게 꼭 익숙한 것이 아니어도, 나는 새로운 것도 도전하고 배워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하면 어떤 종류의 반려컴과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하고 편한 것, comfort zone에서 벗어날 줄 아는 내가 더 마음에 들기에, 나는 새로운 일,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선택을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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