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하동 외할아버지께서 순대를 만들어 주신 날
순대를 좋아하던 동생, 순대를 나쁜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나
동생은 컵라면, 소시지, 햄, 스팸, 참치 캔,... 마트에서 파는 모든 음식을 다 잘 먹었다. 자신이 먹는 음식들이 어떤 동물 어떤 부위를 사용하여 어떤 방식으로 제조되는지 몰랐다. 그저, 최종적으로 상위에 오른 것이 맛이 좋으면 그만이었다.
동생은 순대, 어묵, 떡볶이, 국수, 전, 잡채,... 시장에서 파는 모든 음식도 다 잘 먹었다. 마찬가지로 어떤 조리과정을 거쳐 이 음식들이 만들어지는지 세세히 몰랐다. 그저 최종적으로 제 앞 접시에 놓인 것이 맛이 좋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면 잘 먹지 않았고, 몸에 좋은 성분 가득한 자연산이 아니면 입에 대지 않으려고 했다. 어릴 때 내내 허약했던 덕분에, 몸에 좋은 것, 안전한 음식을 많이 따지는 성향이 생겨났던 것 같다. 엄마 손으로 만든 집밥 말곤 찾지 않았다. 엄마가 간식거리로 시장에서 음식을 사 오실 때가 가끔 있었는데,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순대만큼은 절대 먹지 않았다. 순대는 색깔부터 거무튀튀한 것이 뭔가 인체에 해로워 보였다.
엇갈린 순대 사랑
외할아버지는 정말 못하는 게 없는 분이셨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지리산 산촌 마을은 찾아가기 쉬운 곳이 아니었다. 포장된 길도 없어서, 차를 타고 울퉁불퉁 흔들리며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들어가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가야 드문드문 몇 가구가 모여 사는 산촌 마을이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문명과 거리가 먼 그곳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거뜬히 살아가실 수 있는 분이었다.
우리 가족이 도착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정말 마술사처럼 뚝딱뚝딱 닭을 잡고 염소를 잡고, 거기에 30가지 정도의 각종 산나물 요리로 상을 꽉꽉 채워 밥상을 차려 주셨다. 지리산 계곡에서 수영하고 놀다가 닭다리 하나 들고 뜯으면 정말 꿀맛이었다. 우리가 먹은 닭은 약초 가득한 지리산 산골에서 뛰어놀던, 금방 잡은 신선한 유기농 오골계였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밥상을 차려 주시고도 한시도 쉬지 않고 우릴 위해 음식을 만드셨다. 닭이나 염소를 잡을 때는 주로 우리가 보이지 않는 집 뒤편으로 가셔서 작업을 하셨기 때문에 조리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는데, 한 번은 할아버지가 마당 한가운데 불을 지펴놓고 몇 시간을 서서 조리를 하셨다. 시골 환경이 생소한 동생과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대청마루에 앉아 할아버지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엄마가 집에서 저녁 차리는 노력의 차원을 넘어서는 뭔가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는 게 느껴졌다. 뭔가를 이리저리 조리하고 섞어 만드시더니, 길고 얇은 반투명 껌 같고 고무 같은 재질의 튜브 안에 만든 음식을 쭉쭉 밀어 넣고, 뻘건 액체를 흘려 넣으셨다. 다른 어른들은 옆에서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는데, 나는 저게 음식이 될 수 있나 싶은 생각까지 들만큼 이상해 보였다. 저 뻘건 액체가 뭐냐고 물어보니, 돼지 피라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게 순대라고 엄마가 옆에서 거들며 대답했다. 그 순간 동생은 토할 것 같은 얼굴로 방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나 이제 절대 순대 안 먹어.
순대를 그렇게나 잘 먹던 동생이 순대를 안 먹겠다고 선언하던 그 날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내 기억에 오래오래 남아 있다.
나는 그날부터 순대를 먹었다. 순대 색깔이 거무튀튀한 게 더러운 손으로 만들거나, 쓰레기 먼지가 들어가서 그런 게 아니라, 자연적인 음식 고유의 색이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외할아버지가 만드시는 거라면 믿을 수 있었다. 그전까지 외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해마다 보내주신 모든 것이 몸에 무척 좋은 거라고 어른들이 귀하게 여기며 먹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내 마음엔 지리산과 외할아버지에 대한 큰 신뢰가 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금방 쪄내신 따끈따끈한 순대, 먹어 보니 너무나 맛이 있었다. 그런 순대를 이제 안 먹겠다고 하는 동생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고집이 센 동생은 한 번 안 먹는다고 하면 안 먹는 아이였다. 동생은 자라면서, 각 음식의 제조 방법을 이해하면서 먹지 않게 된 음식이 늘어갔다. 반면 나는, 더러운 게 아니었구나, 이렇게도 만들 수 있는 거구나 깨달으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점점 더 늘어갔다.
아직 못 먹어 본 음식
그럼에도, 나 같은 겁쟁이가 하나하나 음식을 신뢰하고 먹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순대와 국밥류, 고기구이류, 회를 포함한 해산물 해조류 대부분은 다 섭렵하고 왔는데, 20대 중반에 미국에 오게 되면서, 미처 시도해 보지 못하고 온 음식들이 제법 있다. 산 낙지, 홍어회(삼합?), 육회, 닭발, 곱창, 간장 게장,... 언제 시도해 보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신뢰하는 지리산 외할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더라면, 나는 더 많은 음식을 먹어 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가끔씩 한국으로 돌아가서 사는 것을 상상해 볼 때, 내 마음은 항상 지리산 산골 마을 외갓집에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