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야기 1
내 태도, 전통 발로 차는 반항아 제임스 딘
나는 스스로에 대해, 구습 타파 주의자 (iconoclast), 혁명가(revolutionist)라고 생각했었다. 전통적인, 관습에 따르는, 오래 정체된 것, 퀘퀘 묵은 것들을 나는 곱게 보아 줄 마음이 없었다. 나는 항상 오래 묵은 것들의 가치를 깨뜨리고 부수고 바꾸고 혁신시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최초에 내가 펜을 든 것은 혁명을 이루기 위해 총칼 대신 든 무기의 의미에 가까웠다. '이게 전통이다, 이게 우리 고유의 방식이다, 묻지 말고 따라라' 이런 말에 극렬한 반항심을 내내 품고 살아왔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동네, 롤랜드 파크
내가 사는 곳, 롤랜드 파크 (Roland Park)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1890 - 1920)에 옴스테드 형제 - 뉴욕 센트럴 파크와, 많은 미국 대학 캠퍼스를 디자인한 유명한 조경 건축 전문가이자, 도시계획 전문가 -에 의해 디자인된 100년 이상된 고풍스러운 대저택들이 모여 있는 아름다운 동네다. 우리 집은 이 동네인 듯 아닌 듯한 위치 끝자락에 있는 매우 작은 집이다. 박사 과정 중에 학교 근처에 있는 집을 장만한 것이었고, 이 동네가 그렇게 엄청난 동네인지 모른 채 들어와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시절 볼티모어 항구는 뉴욕항에 버금가는 각종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이 지역의 경제성장은 엄청난 규모였다고 한다. 그만큼, 떼돈을 벌어들이는 부자들이 많이 생겨났고, 그 부자들을 위한 타운을 조성한 것이 이곳, 롤랜드 파크라고 한다. 이곳은 부자들이 동네를 자기들만의 리그로 깨끗이(?) 유지하기 위해 흑인들을 포함한 유색인종은 근처 반경 얼마 안으로 집을 짓지 못하게 하고, 통행도 제한한 오랜 인종 분리(segregation)와 차별의 어둡고 더러운 역사가 깊이 새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롤랜드 파크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생겼다. 네 조상들이 돈 좀 가졌다고 돈 있는 인간들끼리 모여, 궂은일엔 흑인들을 가축처럼 부리며, 함부로 인간차별 인종 차별했던 사람들이라 이거지? 조상에게 물려받은 큰 저택 자랑하는 당신의 태도, 역사와 전통을 내세우는 롤랜드 파크 커뮤니티에 속해 있음을 과시하며 사는 당신의 마인드는 과연 당신 조상과 다를까?
내 마음에 내 성향상 쉽게 밀려드는 인종차별주의자의 후손에 대한 선입견이 차곡차곡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런 편견과, 그들에게 나는 영원이 낯선 이방인인 듯한 고립감이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으면서도, 나는 동시에 20년 가까운 내 시간을 보낸 이 곳을 미워하고 아니꼬워할 수만은 없었다. 이 동네 곳곳은 나와 내 가족들의 시간과 추억이 배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나쁘게 생각하기는 참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웃에 대해 그런 혐오감을 갖고 사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을 일은 결코 없다. 내가 일상을 살아가는 이 공간 안에서 나는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어울려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길을 찾아내야만 했다.
아름다운 전통의 슈나이더 철물점
나는 지나친 편견과 고립감과 자의식을 내 의식에서 걷어 내기 위해, 매일 내 생각을 들여다 보고 다시 재정비 하기를 반복해 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125년 된 '슈나이더 철물점'을 만났다. 마침 아웃도어용 끈이 하나 필요한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철물점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미국 웬만한 도시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철물점 가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중국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싸게 들여와 저렴한 값에 박리다매식으로 운영하는 월마트(Wal-mart)가 도시 구석구석 파고들면서, 웬만한 도시의 잡화점들을 다 죽였다고 보면 된다.
어떻게 살아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이렇게 목이 썩 좋지 않은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 철물점이 말이다.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는 경험을 해 보고서야 나는 '역시!'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너무나 친근하고 친절했다.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평생 보아온 오랜 단골도, 지금 막 새로 입장한 나 같은 낯선 손님도, 그들은 오랜 친구처럼 반갑고 소중하게 맞아 주는 기술이 몸에 배어 있었다. 가게에 들어가서 보낸 10분 여의 시간 동안, 나는 이 가게가 125년 동안 한 번도 문 닫거나 매매한 일 없이 한 집안에서 쭉 운영해온 역사를 가진 가게 임을 알게 되었고, 이들이 대대 손손 전하는 '친절'이라는 전통의 가치를 진하게 맛보았다.
가게를 나오면서 슈나이더 철물점을 지킨 것은, 슈나이더 철물점 주인들의 '친절'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동네 시작부터 함께 있었던 이웃이 문을 닫고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롤랜드 파크 커뮤니티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들은 더 싸게 살 수 있는 월마트라는 옵션 대신, 더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동네 작은 가게를 선택하는 작은 희생들을 기꺼이 했을 것이다. 지킬 가치가 있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이어져 왔을 작은 헌신과 의리 깊은 마음들이 내 눈 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결국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소중한 이웃을, 아름다운 가치를, 마음을, 사람을 지킨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내 마음을 열고 들어왔다. 오랜 전통에 관한 편견에 잠식되었던 내 마음이 이제야 눈을 제대로 뜨고, 전통의 진정한 의미를 확실히 보게 된 것이다!
나 오랜 전통 좋아하네
나는 사람에게 고통과 부담을 주는 악습을 싫어하는 것이었을 뿐임을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 나는 아름다운 전통은 길이길이 지켜지고 기억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전통이라는 말만 들어도 거부감을 일으키던 내 세포 하나하나가 다 무안해졌다. 전통에게 많이 미안했다. 전통의 단점만을 늘 부각해서 생각하고, 전통의 장점은 봐주려 하지 않았다. 나쁜 전통과 악습에 치였던 마음이 트라우마가 생겨, 좋게 봐 줄 여유가 전혀 없었다. 내 마음이 힘들다고 함부로 판단했고, 오랫동안 내 시선이 비뚤어져 있는 줄도 몰랐다. 전통을 무조건 거부했던 내 마음,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참 나빴다. 이 자리를 빌려 전통에게 마음 깊이 진심 어린 사죄를 고한다.
전통을 내 삶의 일부로 초대하고 함께 잘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좋은 전통의 가치와 능력을 깨달은 만큼, 내 삶에, 내 가족 역사에도 좋은 전통이 좀 진두지휘해 달라고 부탁한 바도 있다. 약자에게 함부로 하지 않고,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친절과 배려의 좋은 전통이 자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갔으면 좋겠다. 눈 앞의 이익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 굳건한 소신과, 아름다운 가치들을 알아보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도 함께 지켜졌으면 좋겠다.
나는 더 이상 편견에 비틀린 전통 타파 주의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전통을 소중히 지키고 세우고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내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 마음을 새로이 정비하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해야 하는 작업임을 새삼 깨닫는다. 내친 김에, 롤랜드 파크 동네와 이웃들의 좋은 점들에 대해서도 더욱 파헤쳐 보자는 마음으로 '우리 동네 이야기' 시리즈를 써 보자고 마음 먹는다.
그러니 타파해야 할 구습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내 생각 안에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내 안의 거짓과 정체된 악습을 끊임없이 타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생각, 좋은 삶, 나아가 오래오래 지킬 가치가 있는 좋은 전통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동네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 나는 내 안의 각종 편견과 선입견을 씻어 내고, 그 자리를 배우고 지켜낼 만한 좋은 가치, 아름다운 전통으로 채워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