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기억난 크레파스 집
벽화가 떠올린 그림
자주 가는 농장 식당의 벽 한쪽 면에 누군가 농장 풍경을 벽화로 그려놓았다. 벽화 속엔, 집과 나무와, 오리, 새, 아이, 연못, 그리고 푸른 자연이 가득하다.
친근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벽화를 유심히 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 내가 크레파스로 그렸던 집 그림들이 떠올랐다.
집을 그리는 마음
나는 집 그리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틈만 나면 집을 그리곤 했던 기억이 가득하다. 초록이 무성한 충분히 너른 땅 위에, 튼튼한 벽돌집을 올리고, 예쁜 색의 물샐틈없는 꼼꼼한 지붕을 올리고, 적당히 큰 창문을 내고, 친근한 나무 문을 달았다. 집 앞엔 봄마다 예쁜 꽃이 만발한 나무 한 그루와 집 앞 화단을 장식하는 화초들이 줄지어 서 있고, 멀리 보이는 산이 집을 감싸고, 밝은 햇살이 집을 비추고, 귀여운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면 내 집 그림은 내 마음에 흡족하게 완성되었다.
집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마음에 집을 짓는 행위다. 마음에 자꾸 집을 짓는 사람은 지키고 보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키고 싶은 나 자신, 지키고 싶은 가족, 지키고 싶은 평화, 지키고 싶은 나와 우리 가족만의 시간. 그리고 집에 초대해서 함께 하고 싶은 주변 사람들과의 시간. 내가 그리는, 집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 모든 행위는 소소하고 흔해 보이지만, 일상과 일생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삶이 일어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삶을, 삶을 채우는 모든 것을 잘 그려내고 싶은 간절함이 집 그림 속에, 집 그리는 사람의 마음에 충만하다.
여전히 집 좋아하는 어른
나는 여전히 집을 좋아한다. 아직도 나는 길을 다니다가 몰래 남의 집 사진을 찍곤 한다. 남의 집 정원에 앉아 그림을 그릴 수 없으니 사진에라도 담아 오는 것이다. 집이 정말 좋다. 집이 주는 안정감이 좋다. 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 낯선 환경에 던져져도 사람 사는 집을 보면 금방 마음이 편해진다.
나는 예쁜 식당, 카페, 가게가 즐비한 도시 번화가, 혹은 역사적 유적지 매력적인 관광지도 좋지만, 그냥 평범한 동네를 산책하며 사람 사는 집들을 둘러 보는 것도 그만큼 좋다. 내게 사람이 사는 집은 삶 이야기와 조형물이 함께 어우러져 큰 안정감과 위로를 주는 하나의 독특한 예술 작품이자 치유제로 다가온다.
집집마다 독특한 감성과 문화가 뿜어져 나온다. 집과 이야기의 규모가 항상 같은 비율인 것은 아니다. 집이 작고 낡았다고 그 삶까지 작고 낡은 것이 결코 아니다. 때론 대의를 위해, 혹은 감당해야 할 삶이 너무 커서 집 장만에 신경 쓸 틈이 없었던 이야기도 있고, 집 외관은 호화찬란한데 남의 것을 뺏고 도둑질했던 이야기만 가득한 삶도 있다. 한 번 보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이 담긴 집에 대해, 평가를 하려 하기보단, 존중하는 마음,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젊은 날, 청춘의 날이 힘든 팔 할 쯤의 이유는 내 집이 없어서가 아닐까. 내 시간과 자유가 침해당하지 않을 나만의 공간. 매일 나에게 쾌적한 휴식과 설레는 에너지를 뿜어주는 공간. 그런 공간이 없을 때, 사람은 많이 힘든 게 아닐까. 아무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 없었던 인생 초반의 시간 동안, 그런 공간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의식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것 없어도 내 집이 있으면 훨씬 마음이 행복할 것 같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인정하는 순간, 당장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는 집 무게만큼의 욕망에 짓눌릴 까 봐, 그만큼의 불행감이 내 마음을 치고 들어올까 봐, 감히 내가 집을 원한다고 인정하지 않고 집에 대한 그 어떤 마음도 맨홀 뚜껑 열린 검은 하수구인 듯 우회하며, 청춘의 시간을 흩날리는 눈송이처럼 여기저기 되는 대로 내려 앉으며 보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솔직히 인정하자면, 언제나 나는 내 집을 원했다. 지금도 가장 투자하고 싶은 나만의 대상은 주식도, 코인도 아닌 나의 공간이다. 나는 공간에 대해서 만큼은 물질과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 편인 것 같다. 나에겐 지금 사는 집을 마련한 것도, 가끔 다니는 여행도 내게 휴식과 에너지와 영감을 주는 공간에 투자를 하는 의미다.
앞으로 그리는 공간
공간에 대한 꿈이 커서, 나는 브런치 작가 호텔 같은 상상의 세계를 펼쳐보기도 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 대출금 상환이 다 끝나고 나면, 산속 오두막집 별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워보기도 한다. 한국에 놀러 가는 계획을 할 때도, 나는 누굴 만나고 뭘 할까 하는 계획보다, 어떤 장소에 어떤 공간을 마련해 놓으면, 내가 사랑하는,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공간을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을 하는 편이다. 공간을 꼼꼼히 계획해 두지 않은 계획은 나에게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 브런치 작가들을 만날 생각을 할 때도, 마음속에 브런치 작가 호텔부터 먼저 짓는 것이다.
건물이 주는 안정감, 안전감을 구하는 마음. 어른이 되어도 마음에 집을 자주 짓는 사람의 마음은 그대로다. 나를, 내 시간과 자유를, 내 사람들을, 그들과의 의미 있는 시간을 지키고 보호하고자 하는 갈망은 사라지지 않고 내내 살아 있다. 그리고 이젠 안다. 오래 그리는 꿈은 언젠가 분명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그리는 그 마음은 결국 제 마음에 흡족한 완성을 이룬다는 것도.
이제 브런치라는 글 세계에 입문하여 독자들과 교류하면서 새롭게 그리기 시작하는 꿈은 나를 어떤 공간으로 이끌어가고 있을까. 독자와 작가가 함께하는 더 나은 공간을 꿈꾸고 그리는 이 마음은 무엇을 짓고 있는 걸까.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중일까. 10년 후 20년 후 완성될 곳은 어디에 어떻게 지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고 그리면, 언젠가 작가 감성 불꽃 폭발하는 브런치 작가 호텔 건물도 완공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