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과의 대화를 기록하고 싶은 날
비 온 뒤의 하늘은 새파랗기 그지없고, 뭉게구름은 두둥실, 깨끗하게 갠 날씨가 더없이 화창하고 상쾌하다. 방학 (우리집 홈스쿨 기준)을 맞은 아이들은 자유롭게 동네 아이들과 하루 종일 뛰어 논다. 봄과 여름 사이의 놀기 딱 좋은 날들을 하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다는 듯 끈질기게 모여 논다. 낮에는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나무와 돌을 쌓아 집을 짓기도 하고, 저녁 먹고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뒷집 아저씨가 야외 영화관을 만들어 주면, 동네 아이들은 또다시 모여 밤늦는 줄도 모르고 함께 영화 보고 수다 떨며 논다.
형과 동네 친구들과 잘 어울려 노는가 싶더니, 중간에 얼굴이 벌게져 들어와 씩씩 거리는 둘째 아들. 아무 말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터질듯한 감정의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다. 어릴 때 같으면 당장 달려가서 품에 안고 무슨 일인지 꼬치꼬치 물어보겠지만, 아이가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뒤론, 나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못 본 채 하는 편이다. 이젠 더 이상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기보다, 자기들끼리 해결하고 조용히 혼자 삭히고 싶어 하는 성인 남자 성향이 자라나고 있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은 웬일인지 아이가 내 옆에 자리 잡고 앉아 말을 꺼낸다.
"아이들이 모두 형아하고 더 놀고 싶어 하고 형아를 더 좋아해. 내 성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나하고 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그 말을 하는 둘째의 눈빛이 비교와 질투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다. 순간적으로 크게 엄습한 결핍감에 푹 빠져있는 아이에게 나는 그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상기시켜 주고 싶다.
"엄마는 네가 너무나 자랑스러워."라고 말을 시작하자 아이의 눈이 둥그레지는 게 너무 귀엽다.
"너는 벌레도 싫어하고, 철없는 아이들과 노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집에서 혼자 책 보고 레고 만들고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잖아. 그런 성향의 네가 친구를 만들고 함께 놀아 보겠다고 나가서, 형아가 몇 년이나 같이 놀아 온 동네 아이들 틈에서 어울리기 시작했잖아. 그게 고작 얼마 되지 않았는데 너는 벌써 이만큼이나 왔잖아. 어려운 조건에서도 너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 냈고, 너하고 성격이 잘 안 맞는 아이와도 잘 어울려 노는 법을 배워 냈잖아. 이렇게나 친해졌잖아. 지금 네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네가 얼마나 큰 일을 해낸 건지 보여? 엄마는 네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멋있어. 너도 네가 해 낸 것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네가 많이 자랑스러울 걸!"
"맞아..."
어느새 아이의 눈빛이 달라져 있다. 아이를 묶어 극단적인 한 방향으로 달리던 독한 감정들이 다 흩어지고 없다.
"엄마, 그럼 지금 나 스무디 사 줘."
다른 집 아이가 스무디 먹는 걸 보고 먹고 싶었다고 한다. 아이가 사춘기 변화를 겪기 시작하면서, 부쩍 아빠만 따라다니고, 엄마와 외출하는 일이나, 엄마와 둘이서만 하는 일을 피해온 터라, 나는 너무 반가워서 당장 지갑을 챙기고 신발을 신고 나선다. 아이는 엄마가 이렇게 흔쾌히 응하고 초고속으로 문밖으로 나서는 것이 약간 당황스러우면서도, 제가 먼저 꺼낸 말인 만큼 신발을 주섬주섬 찾아 신고 따라나선다.
걸어가며, 형아와 같이 살기 힘들 때가 있다는 둥, 말다툼하게 될 때마다 괴롭다는 둥 감정을 실컷 하소연하더니, 향긋한 과일향과 신나는 음악이 가득한 스무디 가게에 들어서자 마자부터 기분이 확 바뀐다. 딸기 스무디를 두 개 사서 하나 형에게 줘도 되겠냐고 하니, 지금 화가 나서 딱히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화가 났다고 형에게 나쁘게 하는 건 더 싫으니, 엄마가 알아서 계획한 대로 하란다.
스무디를 받아 한 모금 마시더니, 완전히 기분이 풀려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거의 뛰다시피 경쾌해진다. 집에 오니, 첫째가 문을 열어 주며, 스무디를 들고 들어오는 나와 둘째를 보고, 뭔가 아쉽고 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자, 이건 니 꺼."
내 손에 들고 있던 스무디를 첫째에게 건네니, 첫째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진다.
"이거 정말 나 주려고 산 거야? 엄마 꺼 아니야?"
"응. 엄마는 스무디 안 먹고 싶어서 안 샀어. 이건 너 주려고 산 거야."
"엄마, 너무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진짜 고마워!"
첫째는 목숨이 걸린 일에 큰 은혜를 베풀어 준 은인에게나 지을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동생이 저와 친구들에게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간 상황에 대해 뭔가 야단을 맞으리라고 예상하고 잔뜩 주눅 들었던 마음으로 - 심지어 엄마와 동생만 스무디를 사 먹고 들어 왔나 순간 질투의 불길이 일었던 기분으로 - 제 몫의 스무디가 있으리라곤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 몫의 스무디를 건네받으니 무척 감격스러운 모양이다.
아들 둘이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스무디와 스낵을 야무지게 챙겨 먹고, 기분 좋게 어울려 밖으로 또 나간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둘이 다시 집에 들어오는데, 말다툼을 하며 들어온다. 첫째에게 서로 감정이 좀 식을 때까지 방에 올라가 쉬라고 했는데, 첫째가 올라가려다 말고 내 옆에 와서 앉아 차근차근 무슨 상황인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옆에 와서 말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많은 걸까 속으로 기뻐하며 말을 들어준다.
"나는 뭘 하다가도 동생이 말을 걸면, 다른 친구들이 말 걸 때보다 훨씬 더 잘 들어주고 성의껏 대답을 해 주려고 노력하는데, 얘는 지가 뭘 하고 있을 때 내가 뭘 물어보거나 하면, 내 말을 무시할 때가 많아. 똑같은 질문을 다른 친구가 하면 대답을 훨씬 더 잘해주니까, 내가 따돌림당하는 것 같은 소외감이 느껴져."
나는 첫째에게도 잘 안 되는 일보다, 잘되고 있는 것들, 많이 발전한 것들을 상기시켜 주고 싶다.
"네 마음을 엄마에게 이렇게 차분한 말로 잘 설명해주니 고맙다. 너의 감정 조절 능력, 감정 표현 능력이 많이 발전한 거 너 알아? 이만큼 말 잘하게 된 거, 발전한 거 정말 멋지고 자랑스럽다. 네 마음 완전 이해해 엄마는. 너는 신경 써서 잘 챙겨주려고 그만큼 노력하는데, 상대는 그만큼 노력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것 같으면 섭섭하지."
이까지 말하는데, 둘째가 자기도 말해도 되냐며 끼어든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어떤 놀이에 푹 빠져 있다가 못 들을 수도 있고, 친구가 말 시켜서 그 아이 말 듣다 보면 형아 말소리 못 듣거나 그럴 수 있잖아. 사람이 실수할 수 있잖아."
"그렇지. 그럴 수 있지. 하지만, 형아가 그 순간에 소외감을 느낄 수는 있는 거잖아. 아까 형아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네가 소외감을 느꼈던 것처럼. 둘 다 실수로 그랬지만, 상대가 감정은 느낄 수 있는 거잖아."
둘째는 곁에서 다른 일을 하는 척 하지만, 귀는 온통 형아와 엄마가 하는 얘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그래. 난 지금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느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뿐이야."
첫째가 둘째를 탓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해 주자, 둘째는 한결 마음을 놓는 눈치다. 첫째는 자신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더 말을 이어간다.
"내가 친구들에게 뭘 보여주고 있으면, 얘가 자기가 더 재밌는 거 보여준다고 애들을 뺏어가는 형국이 될 때가 자주 있어. 그럴 때마다 나는 방해받고, 소외되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나빠져."
"엄마가 볼 때는, 너희 둘 다 비슷한 성향이라, 친구들 사이에서 비슷한 역할을 맡으려고 하니까 자주 경쟁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 같아."
큰애가 뭔가 짚이는 데가 있는지 조용히 경청한다.
"너희 둘 다, 뭔가 주목을 끌고 싶어 하고 관객을 필요로 하는 면이 있어. 그래서 뭔가 재미있는 것을 생각해 내고, 만들고, 그림 그리고, 영상 만들어서, 친구들이 그걸 봐주고 들어주면 기분이 좋지. 마치 관객을 필요로 하는 연주자가 여러 명 있는 상황과 같아. 한꺼번에 연주자들이 다 연주를 하려 하면 어떻게 될까."
"오케스트라를 하면 되잖아."
"그것도 방법이지.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연주를 하는 방법도 있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어떻게 어떤 순서로 연주를 하고 어떻게 놀 건지 연주자들끼리 계획을 잘 세우면 좋겠지. 다 같이 재미있을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아서 말야. 그리고, 연주자가 연주만 하려고 하면, 연주를 안 할 때 재미가 없겠지. 때론 좋은 관객이 되어 다른 사람의 연주도 즐길 줄 알면, 연주를 안 할 때도 소외감 느끼지 않고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좋은 관객이 되는 법도 배워보면 어떨까."
첫째는 뭔가 떠오르는 게 많은지,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이 되더니, 곧 둘째와 다음에 어떻게 놀지 둘이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어떤 놀이가 좋을 것 같은지, 어떻게 놀면 더 잘 놀 수 있을 것 같은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저녁을 먹자마자 또 밖으로 나간다.
그리곤, 금방 또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온다. 친구들이 저녁 먹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해서 같이 못 논단다.
내 아이들은 논다. 매일 놀고, 끝없이 논다. 이렇게도 놀고 저렇게도 논다. 중학생이 되어도 놀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놀 것이다. 아이들은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수많은 종류의 감정들과 마주하게 되고, 그것을 감당하는 방법을 배운다. 수없이 많은 실패와 수없이 많은 난관과 거절과 방해를 마주하며 그것들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을 배운다. 나는 아이들이 내가 그들 곁에 있는 동안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실패와 좌절을 다 경험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더 놀게 내버려 두고, 스스로 알아서 챙기지 않는 한, 부모가 무엇을 막아주거나 준비시켜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지금 겪는 힘든 감정과 난관은 아이들이 무엇을 해도 어떤 길로 가도 세상 끝날까지 따라다닐 일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순간에, 나는 아이들이 다시 스스로를 토닥이며 꿋꿋이 일어서 헤치고 나아가는 강한 사람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의미 있는 꿈과 일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그 과정을 곁에서 돕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이 혼자 스스로 날아오르는 그 날까지만 말이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건, 내 개인적인 꿈이 무언이건,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는 1순위 사명은 변함없이 내 몫이다. 처음엔,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인 내가,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을 키워내야 하는 엄청난 일을 맡아 벌벌 떨었는데, 어느새 나는 강한 사령관, 든든한 멘토가 되어 있는 스스로의 힘을 느낀다. 엄마라는 자리가 만들어 가는 내가, 이만큼 성장하고 달라진 내가 가슴 벅차게 마음에 든다. 어떤 어려운 자리가 내게 주어져도 두려워할 일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통령도 맡겨지면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 덤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내가 될 수 있게 힘을 키워준 엄마라는 자리에 한없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