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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May 19. 2021

설레는 노후를 위하여

변화가 필요하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비가 자주 내리는 요즘. 내 마음은 다소 초조해지고 있다. 연초에 마음먹었던 계획들이 뭔가 흐지부지, 빗물에 속절없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약간의 슬럼프가 발끝에 스며드는 찝찝한 느낌도 있다. 이런저런 크기의 슬럼프를 수도 없이 겪어 보아 그 첫 느낌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들은 항상 뭔가 내 생각의 방향에 변화 혹은 수정이 필요할 때 스며들기 시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단 지금 내 발끝에 스며드는 이 찝찝함을 구성하는 감정들이 무엇인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금 일상에서 가장 크게 일어나는 감정은, 몇 가지 일상 습관 리스트 중에 손대기 싫은 게 생겼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모든 재미가 없어진 것들 뒤에는 조금씩 재미를 먹어 들어가는 부정적인 감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가장 큰 마음의 변화는, 잘 듣고 있던 <데이브 램지 쇼>나 <수지 올먼 쇼> 같은 은퇴 및 노후 재정 가이드 방송이 듣기가 싫어졌다. 듣기만 싫은 게 아니라, 이 주제에 관해 읽기도 싫어졌다. 사실 처음엔 꽤 재미있었다. 빚을 전투적으로 다 갚고, 집 대출금을 집중적으로 상환하고,.. 그까지는 정말 인생을 안정시킬 수 있는 옳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깊이 들어가서, 요양병원 보험을 들어야 하는 시기, 유산 상속을 쉽게 하기 위한 절차들, 적절한 사회 보장 연금 (social security) 수령 시기,... 등등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는 더 이상 감정이 즐겁게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퇴 노후 재정 공부에 대한 이중적 감정


은퇴 및 노후 재정에 대해 배우고 계획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지난해부터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재미가 없어진 것은,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늙어 힘든 날들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하자는 취지임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상, 지금 이 순간들을 내가 많이 아프게 되는 날들, 더 이상 수입이 없는 날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재정적 준비에 몰두하자는 생각은, 마치, 한 평생 편안한 생계유지를 위해 10대를 학습 감옥에 갇혀 지내자는 발상만큼이나 숨 막히는 구석이 있다. 그만큼 불안하고 힘든 감정을 견디며 억지로 가야 하는 면이 있다. 


물론 둘 사이엔 큰 차이가 존재한다. 10대 수험준비가 일할 수 있는 날들을 위한 준비였다면, 은퇴 노후 준비는 일할 수 없는 날들을 위한 준비다. 또한 10대의 준비가 제한된 기회를 놓고 경쟁과 비교의식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었다면, 은퇴 노후 준비는 돈이 부족하진 않을까, 돈 더 많이 벌 방법, 더 돈을 불릴 방법은 없을까 하는 돈에 대한 강박과, 병과 죽음이 지척에 왔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는 무엇이다.  


젊은 시절 내내 먹고 살 걱정을 하다가, 안정이 되는 순간부터는 가능한 적은 고통 속에서 죽어갈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인 듯 숨이 막혀온다.



소신이 필요하다


10대의 수험준비는 그렇지 못했다. 소신이란 것이 전혀 없었다. 내 내면은 문 없는 집처럼 외부 침입에 취약하기 짝이 없었다. 각종 외부 기준이 불러오는 불안감과 비교의식에 너무 많이 시달렸고, 외부 기준에 합한 모범 케이스가 되고자 몸을 혹사하고 자신을 심히 몰아붙였다.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하고, 매일 변하지 않는 일상에 물린 입에서 신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모든 상상과 고통이 더 이상 너무 발전하기 전에 고등학교 생활이 종료되었다. 

 

그랬기에 나는 소신 없이, 외부 기준에 휘둘리며, 감정적 고통에 대한 아무런 대안 없이, 너무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일이 굉장히 삶을 위태롭게 할 수 있음을,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10대 시절을 다시금 되돌아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시험을 망치고, 대학에 떨어지는 상상을 하며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친구들보다, 가고 싶은 대학에서 즐거운 캠퍼스 생활을 상상하고, 어떤 꿈을 펼쳐갈지를 상상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들이, 자신이 해낼 것임을 굳게 믿는 친구들이 좀 더 차분히 꼼꼼하게 준비하고 잘 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남보다 좀 더 천천히 가고, 때론 구비구비 돌아가더라도, 결국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자신의 길을 찾고, 자신의 소신을 단단히 정립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은퇴와 노후에 대한 소신이 필요하다.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시작해야 갈 수 있는 길, 해낼 수 있는 준비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고 병들고 죽어가는 나를 상상할 일이 아니라, 즐거운 노년의 일상, 설레는 노후의 하루하루를 상상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그리는, 탄탄한 비전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이 대충 보편적 기호에 입각해 그려주는 그림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내 기호와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꼼꼼히 그리는 그림이어야 하리라고 믿는다.



설레는 노후


무엇이 나를 설레게 하는가. 아마도 지금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이 그때의 나도 설레게 하겠지만,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신체적으로도 어느 정도 에너지 감소나 외모 변화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내 몸이 쳐지고 늙어가는 시간을 설레는 시간으로 여기기는 무척 힘든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기쁨과 설렘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외모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되, 집착은 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매일 운동하고 건강관리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패션 센스를 배우고 장착하여 깨끗하고 매력적인 차림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집착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더 이상 외모에 집착하려는 시선과 에너지를 돌려 주변을 사랑하는 삶을 지향하는 내면 에너지로 쓸 것이다. 아름다운 내면 관리, 세상과의 의미 있는 소통과 공존을 위해, 나는 끊임없는 노력을 할 것이다. 그 노력의 큰 부분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좋아하는 일, 내게 의미 있는 일을 끊임없이 내 건강이 허락하는 시간까지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난 그때는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도 실컷 만나고 교류하고 싶어질 것이다. 내가 바라는 라이프 스타일, 내 시간을 억압하고 통제하지 않는, 내가 내 일정에 맞게 시간 분배를 할 수 있는, 언제 어디서나 일과 일상을 함께 동행시킬 수 있는 그런 일을 찾아가고자 한다. 프로젝트 베이스의 일, 재택, 원격 업무로 할 수 있는 그런 일 말이다. 내가 지금 매일 열심히 글을 쓰고 준비하는 것이, 내가 꿈꾸는 그런 일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다.  


내 마음이 향하는, 내 비전이 제시하는 꿈을 향해 걸어가는 길 자체가 굉장한 노후 준비임을 깨닫는다. 그것을 노후 준비의 중심으로 세우고, 나머지 부수적인 것들은 - 재정 준비를 포함한 -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고 보험 들고 서류 정리하는 일로 여기며 기꺼이 감수하고 나아가리라고 마음먹는다. 


힘 닫는 데까지 돈을 열심히 벌고 최선을 다 하겠지만, 돈에 대한 걱정, 돈을 불릴 방법을 찾는 강박은 여기서 멈출까 한다. 10대 시절에 등수에 대한 걱정을 멈추고, 분명 기회가 있으리라고 내가 해내리라고 마음 편히 먹고 나의 길을 갔다면, 내 내면이 상하는 일 없이 더 좋은 결과를 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걱정과 강박을 멈추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노후를 분명히 그리고 만들어 내리라고 꿈꾸고 믿으며 나아간다면, 내 맘에 더 흡족한 더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FuS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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