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헤어지기 위해 아들은 오늘도 오븐을 씁니다
우리 집 큰애는 지금 만 14살이다. 한국에 살았다면 중3 정도의 나이일 것 같다. 지지난해엔 240인 내 발 사이즈를 넘어서고, 지난해엔 변성기가 와서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지는가 싶더니, 올해는 165인 내 키를 넘어서서 계속 하늘 향해 쭉쭉 자라고 있다.
한참 크는 시기라 그런지, 큰애는 언젠가부터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이 되었다. 갑자기 너무 허기가 진다고, 한밤 중에 먹을 걸 찾곤 하는 게 귀찮아 10시 이후엔 부엌문을 닫니 마니 실랑이를 벌이곤 했던 게 얼마 전의 일인데, 요즘은 배고프다고 간식을 달라는 일이 없다. 가만히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을 알아서 챙겨 먹을 방법을 나름 마련해 놓고 있다.
오븐 사용법을 조금씩 배운 것이다. 사실 오븐 사용법이야 제가 가진 아이패드 사용법만큼이나 쉽다. 메뉴에 따라 이미 온도와 시간이 세팅되어 있어, 이름 찾아 버튼만 누르면 되는 시스템이다. 다만 조리 후 오븐에서 꺼내는 단계에서 다치지 않고, 흘리지 않고, 음식을 꺼내 담는 일에 약간의 용기와 요령이 필요하다.
큰애가 오븐 사용을 스스로 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남편이 한동안 냉동 피자 굽기를 아이에게 전담시키고 냉동 피자를 냉동고 가득 채워 놓기를 몇 달. 냉동 피자를 굽는 일은 쉬운 일 같지만, 몇 가지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있다. 우선 냉동 피자를 감싼 비닐을 뜯되, 최대한 치즈가 쏟지 않게 조심하면서 비닐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피자 브랜드에 따라 피자 아래 종이판이 깔려있는 경우도 있어서, 함께 오븐에 넣어 불붙어 타거나 음식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잘 확인해야 한다. 또한 피자 굵기와 크기에 따라 온도나 시간을 미세하게 가감해야 하며, 자신이 오븐에 피자를 굽고 있었다는 걸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알람 설정을 해서 되도록 제시간에 꺼내야 한다 (시간이 완료되면 오븐은 저절로 꺼지지만, 오븐에 열기가 남아 있는데 너무 오래 두면 타거나 딱딱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리가 완료되면, 나무 도마에 잘 담아 식탁까지 잘 옮겨 피자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 써는 일이 남아 있다.
이 과정을 100번쯤 했을까. 어느새 냉동 피자 전문가가 되더니, 이제 오븐 사용이 좀 편하게 느껴지는지, 다른 시도들을 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보니 빵 사이에 치즈를 넣어 구워 먹는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Grilled Cheese Sandwich)'를 혼자 만들어 먹고 있다. 어릴 때 아이들 간식으로 내가 많이 해 주었던 음식이라, 아이가 본 적이 많았을 것이다. 일단 뜨거운 오븐에 겁을 먹지 않고 요령이 생기니, 엄마가 하는 걸 본 것들은 자기도 할 수 있겠다 싶은 것 같다. 내가 '요알못'이라, 늘 아이에게 따라 하기 쉬운 것들만 해 준 덕분(?)도 있다.
스스로 해 먹는다는 재미가 큰지, 하루에도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를 몇 개나 만들어 먹는다. 남편은 빵 종류가 사람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되도록 자주 사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아들이 한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걸 보고, 아빠가 나서서 식빵과 치즈를 열심히 사다 나른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그 타이밍에 무엇이든 최대한 지원한다는 교육 소신을 가지고 있는 남편다운 행동이다. 그는 빵을 그리 좋은 식품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아이가 샌드 위치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시점에는 자신의 음식 가치관을 내려놓고 빵을 무더기로 사다 날라 주는 교육 지원을 하는 것이다. 또한 배우는 분야에 대한 가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샌드위치 조리법 배우기나, 오븐 사용법 배우기의 가치 - 스스로를 잘 먹이는 기술을 배우는 것의 가치 -가 영어나 수학 배우기의 가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샌드 위치 배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니, 100번이고 샌드위치 조리를 연습할 기회와 자원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나는 남편의 교육관, 가치관이 마음에 든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 초엔, 내가 자라 온 환경 문화의 영향으로 남편과 다소 다르게 생각했었던 부분 - 내가 남편보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더 의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 들이 있었지만, 나는 함께 살면서 점점 남편이 하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외부 시선 같은 것들을 떨치고 자유로워져 지향해야 할 건강한 가치관이 그쪽이라는 확신이 들어, 우린 쉽게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었다.
요즘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느낌은 아이들이 이제 내 손을 거의 떠난 느낌이다. 갓 태어난 어린 야생마 같은 아이들을 어느 정도 품에서 키워 마구 마음대로 뛰쳐나가 달리고 싶어 할 때쯤, 남편이라는 훈련소로 보낸 느낌이다. 남편이 그 야생마의 고삐를 꽉 틀어쥐고, 가까이서 세심한 관찰을 하며 밤낮으로 훈련과 보살핌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당분간 나는 그냥 남편 곁에서 남편을 지원하며 함께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편한 길이 펼쳐져 있는 것만 같다.
강아지 같은 어린 아들 둘을 낳아 키우는 동안 - 남편이 영유아 남아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간 - 은 정말, 뽈뽈 거리며 한계를 치고 튀어 나가는 두 녀석을 보느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시간이 없어 언제나 허덕였었다. 제 때 밥도 먹지 못하고, 급히 애들 남긴 음식으로 배 채우고, 부족한 잠을 어쩌지 못해 믹스 커피 후다닥 타서 입에 털어 넣고 필요한 카페인을 공급하던 날들의 연속. 그땐 정말 내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는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내게 안아달라고 손 벌리고 달려드는 아이들이 없어졌다. 소년이 독립적이고 멋진 성인 남자가 되고자 맹훈련에 뛰어든 걸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때가 왔다.
이 지점이 내 아기였던 아들과 정신적 헤어짐을 제대로 깨끗이 해내야 하는 때가 아닐까 싶다. 아들이 나로부터 분리하고 독립하려고 애쓰는 시간. 그를, 그의 노력을 지원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오븐 하나를 그가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내주고, 좀 실수하고 어질러도 눈감아 주며 혼자 알아서 음식 챙겨 먹는 연습을 계속할 수 있게 응원하고 격려하며 정신적 지원을 해 주는 것이리라는 감이 온다.
아이가 변하고 성장하기에,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도 계속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란 한 번 부모가 되고 끝인 존재가 아니라, 때에 맞는 사랑을 제대로 적절히 하기 위해 번데기의 고뇌를 거쳐 탈바꿈하기를 거듭하며, 언제든지 요구되면 달라질 수 있도록 만능 변신술을 익혀야 하는 존재다. 자녀와 함께 변하고 적응하고 성장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전엔 오븐을 사용해서 먹을 걸 만들어 공급하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스스로 만들어 먹는 아이에게 오븐을 내주고 식재료를 사주고 연습하게 돕는 존재가 되었다. 언젠가는 아들이 자기 집에 자기 오븐을 사서 독립하는 날, 자신의 가정, 자기 식구들을 만드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뒤돌아서 약간의 눈물을 훔치더라도, 앞에선 한껏 기뻐하고 축하하고, 제 식구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아들의 등을 두드려 주며 뿌듯해하는 존재로 탈바꿈해 있을 것이다. 탈바꿈에 점점 자신이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