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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Jun 03. 2021

얌전히 틀에 갇혀있던 중3을 깨운 자

엘빈 토플러

제3의 물결 (The third Wave)


엘빈 토플러의 이 책을 접했을 때, 나는 중 3, 만 14살이었다. 나와 세상, 그 관계와 존재 의미를 이해하고 싶은 지적 욕구가 끓어오르는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는 교사들을 찾아다니며 내 나이에 읽으면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금 생각하면, 교사들은 중3에게 맞는 적당한 책을 알지 못했다. 아니 그들은 나를 나의 독서 역사와 역량을 알지 못했다.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도서가 많이 없었던 시절인 것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 그들은 그들 각자의 관념과 가치관이 이끄는 대로 책 제목들을 나열해 주었다. 내가 만났던 교사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니, 플라톤이니 칸트니 하는 철학서와, 노벨 문학상을 받은 대문호들이 쓴 고전 소설들, 독립 열사들의 전기들을 권했고, 나는 교사들을 믿었으므로, 그들이 권해 준 책들을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이해가 안 가도 재미가 없어도, 책을 권해준 교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머릿속에서 아무리 이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이상한 헛소리 늘어놓은 책 집어던지고 재밌는 소설이나 읽자고 아우성을 쳐도 나는 '인생의 답을 얻기 위해서 읽어내야 할' 책에서 결코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런 지루한 독서를 이어가던 어느 날, 한 책이 내 무지와 몰이해를 뚫고 심장부로 습격해 들어왔다. 엘빈 토플러가 쓴 <제3의 물결>*이라는 책이었다. 


*<제3의 물결>은 미국의 작가이자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1980년에 쓴 책으로, 이 책을 통해 그는 물결 이론 -그는 세계 시대의 변화를 물결로 설명하는데, 제1 물결은 본격적 문명 시대를 초래한 농업 혁명, 제2 물결은 산업혁명이 초래한 대량생산 대량 분배의 산업사회, 제3의 물결은 탈대량화와 탈선형화가 일어나는 정보화시대 (후기 산업화 시대)를 의미한다 -으로 현대 정보사회의 도래를 설명하였다. 그의 책은 20세기 후반뿐 아니라, 21세기 사회까지 통찰하였던 책으로 유명세를 누렸다. 



미국인 엘빈 토플러가, 중3 한국인 여학생에게 던진 충격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온몸이 덜덜 떨려오는 것을 경험했다. 지금까지 배우고 읽어온 뭔가가 하나로 꿰뚫어지면서, 누군가 내 뒤통수를 탁 때리는 충격과, 전에 못 보던 새 세상이 환히 열리는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엘빈 토플러 작가의 통찰이 내 눈을 확 틔운 것이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도구와 기술의 발달이 끊임없이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켜왔고, 앞으로도 변화시켜 갈 것이라는 것.
그러한 끊임없는 변화에 대한 준비 대처를 잘해야 할 것이라는 것
내가 다니는 이 학교는 지금의 산업적 필요를 위해 말 잘 듣는 일개미를 양산하는 곳이란 것.

 

처음으로 내가 속한 환경의 한계를 자각했다. 내가 속해 있는 이 학습 환경이 내가 되고 싶은 나,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나, 미래 사회를 위해 준비된 내가 될 수 있도록 나를 훈련시키는 곳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정보는 일방적으로 주입되고 이미 정해진 정답 찾기만 요구될 뿐, 나의 타고난 성향이나 재능이 키워지는 일도, 창의성과 리더십, 토론 능력이나 연구능력, 주도적 학습 능력이 키워질 기회도 전혀 없는 커리큘럼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등학교에 가면 좀 더 나아지려나 기대했지만, 고등학교는 모든 면에서 더 심하게 사람을 수동적으로 몰고 가는 곳임을 금방 깨달았다. 예체능 시간조차도 툭하면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글쓰기와 독서마저 시간 낭비로 생각되는 환경에서, 심신의 건강과 타고난 재능, 예술적 감성과 창의력마저 죽어가겠구나 생각이 들뿐이었다.


결국 내가 다니는 학교라는 곳은 출퇴근 시간을 지키고 엄수하는 인간, 하루 종일 앉아 일하는 - 요구되면 야근도 곧 잘하는 - 인내심을 가진 인간, 주입식 명령을 받고 시키는 대로 복종할 수 있는 산업 사회 일꾼을 양산하고 있는 장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자각을 분명히 하게 되면서, 이대로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생각 가진 사람 모여라!


내가 깨달은 이 모든 것을 친하게 지내며 생각을 자주 나누던 친구에게 들려주었고, 그 친구가 같은 생각을 하는 또 다른 친구들을 데려와 총 6명의 친구들이 모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을 스스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교과서는 우리를 속이고 있는 무엇일지 모르니, 교과서만 믿지 말고, 진짜 역사와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과 신문을 찾아서 읽기로 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정한 주제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토론하는 시간을 갖자고 합의했다. 또한 리더십을 키우기 위해, 모두가 돌아가면서 모임을 리드하는 경험도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여기에 더해, 체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쉬는 시간 틈틈이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거나, 달리기도 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공휴일이나 방학엔, 집 안에서도 틈나는 대로 테니스 라켓을 손에 쥐고 공을 위로 튕기면서 팔목의 힘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또한, 가능한 대로 미술 전시회 및 음악회를 찾아가는 노력을 하였고, 서점도 부지런히 찾아다녔으며, 배움을 얻고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애쓰기도 했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홀로 찾아가는 험난한 길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내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재미있는 활동 가득한 시간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다. 너무나 마음이 힘들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가는 길과 역행해서 걸어가는 일은 어린 여학생이 감당하기에 심리적 부담이 너무나 큰 일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아 울고 싶은 날이 많았고, 학교를 그냥 믿고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이 수시로 떠올랐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미 의심이 시작된 이상 포기하고 돌아갈 길은 끊어진 지 오래였다.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내가 나의 심신을 지키고 건강하게 성장시킬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일, 내 미래를 위해 나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일, 그것은 한 마디로 수험준비에 더 해, 고생을 더 사서 늘리는 '이중고, 삼중고'였다. 뭔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는 듯 보이는 나를 교사들이 좋게 볼 리도 없었으므로 일은 자꾸 쉽게 꼬이고, 오해받고, 교사에게 괜히 야단을 맞는 일도 많았다. 한 번은 믿고 배우고자 했던 대학생 언니에게 속아, 언니가 시키는 대로 데모 전단지 복사 심부름을 하다가, 형사의 추적을 받고, 학교가 발칵 뒤집히고 학생 주임 교사에게 매일 불려가 온갖 잔소리와 으름장을 다 감당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 언니가 우릴 이용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해서, 독립열사처럼 입을 꾹 닫고 신념과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만 앞세우다 모든 것을 혼자 뒤집어쓰고 교사들의 질책과 미움을 한 몸에 받는 '억울한 욕받이'가 되기도 했었다.


성인 멘토 없이 우리끼리 하는 공부도 토론도 쉽지 않았다. 우리의 토론은 툭하면 말다툼이 되었고, 감정이 널뛰는 사춘기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만큼,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하기도, 서로의 생각을 수용하고 다양성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음을 긍정적으로 지키고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나아가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고3이 되어 수험준비에만 전념하겠다고 나오는 친구를 향해 쓸데없는 배신감을 느끼고 변절자 취급을 하기도 했다. 


내게 고등학교 생활은 홀로 고행길을 걸었던 것 같은, 힘들어 미칠 것 같았던 기억 가득한 고난의 나날들이었다. 대학만 가면 학과 공부에만 몰두하면서 단순하고 쉽게 살아가리라 결심했었다. 


하지만, 인생은 녹록지 않았다. 어디에도 주어진 길만 따라가면 되는 편한 길이란 건 없었다. 어디서건 나에게 맞는 나의 길을 찾아내야만 하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믿고 따라가는 일, 남의 말만 듣고 가는 일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 결코 선택할 수 없었다. 


언제나 안전한 길은, 나의 길, 나를 위한 길을 찾아내야 하는, 때론 역행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홀로 걸어가는 외로운 길이었다. 이 길에서 나는 많이 울었고 많이 힘들어하고 외로워했지만, 이젠 홀로 걷는 이 좁은 길을 당연한 나의 길로 받아들일까 한다. 어차피 이 좁은 홀로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최대한 이 길을 즐기며 나아가 보겠다. 


얌전히 주어진 틀에 갇혀 있던 중3 여학생을 불러내 야생의 길을 개척해 혼자만의 길을 걸어가게 만든 최초의 사람이 엘빈 토플러였다는 것이 문득 생각나, 글을 써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는 너무 큰 감정이 혼돈으로 뭉쳐있는 시간이라 끄집어 내어 글을 쓰기가 쉽지 않은 구간입니다. 저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저의 큰 감정을 담은 글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들께 어떤 느낌으로 다가가는 글이 될지 늘 조심스럽지만, 오늘도 용기 내어 발행을 꾹 눌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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