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숙이 묻었던 마음을 꺼내 돌보다
희생하는 엄마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사람들, 특히 어머니들은 희생의 화신 같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 무슨 일이건 달려들어 솔선수범한다. 설사 다치고 피가 나도 하던 일을 멈추는 법이 없다. 내 몸보다 일이 완성되고 목표가 완료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어머니들은 자신의 감정 따위는 돌아보지 않는다. 아무도 감정이 중요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한국 전쟁 직후의 어려운 환경을 헤치고 먹고살아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어디건 무엇이건 닥치는 대로 달려가 일하고, 먹을 것을 구해 나와 가족을 배불리 먹이는 일 그것이 목표일 뿐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몸을 아끼지도 않은 사람들이 타인의 감정을 소중히 여길 수는 없다.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고 착하고 온화한 사람도 기본 가치관이 그렇게 박혀 있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금쪽보다 아끼고 사랑해도, 빠릿빠릿 싹싹하게 솔선수범하지 않는 태도를 용인할 수가 없다. 보편적 틀에 딱 맞춘 인간형이 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인간이 될 수 없다고 느낀다.
감정 같은 건 도저히 생각해 줄 수 없다. 공감은커녕 이해조차 해 줄 수 없다. 도무지 그럴 여유도 없지만, 애초에 그럴 능력이 전혀 없다. 어디서도 사람의 섬세한 감정을 헤아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무 말이나 하고 살아왔다. 어떤 말에 대해서도 그런 말은 사람에게 해선 안 되는 말이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아이들을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데 관심 없었다. 공부를 잘하고 돈을 잘 벌어 식구들 끼니를 책임지고 챙기거나, 집에서 끊임없이 밥을 해대고 궂은일들을 다 처리하며 가족들 뒷바라지를 완벽히 해내는 사람을 만들어 내야 할 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되는 목표로 다가가는데 감정은 방해물일 뿐이었다.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예민한 사람 피곤한 사람이었고, 그건 좋은 인간으로 간주되지 못했다. 그래서 모두가 마음을 꾹꾹 안으로 참고 삭히는 법만 배웠다. 모두가 뾰족한 감정을 스스로 다 잘라 떼내 버리고 둥글둥글 억지웃음 뒤에 감정을 숨겨 지내는 법을 배웠다. 둥글둥글한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이래저래 두드려 맞거나 상종 못할 몹쓸 사람이 되는 무서운 세상을 살아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정서적 학대일지도 몰라
나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희생한 엄마에게 정서적인 학대를 당했다는 말 같은 건 생각만 해도 천벌을 받을 것 같아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허락조차 하지 않던 생각이었다. 엄마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싫다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람의 딸로 오래 살다 보니 나도 저절로 어떤 감정들은 글로도 나오지 않을 만큼 깊숙이 꽁꽁 묻어 두는 법을 몸에 익히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숨겨 둔다고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에 대한 불편하고 아픈 감정이 점점 더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든 감정을 오랫동안 덮어두고 살아온 엄마와, 엄마에 대한 감정을 마냥 덮어두고 살아온 나의 케미는 참 묘하게 불편하고 아팠다. 서로를 챙겨주고 서로를 위해 덮어놓고 희생하려는 마음, 문득 보면 좋은 마음, 아름다운 관계인 것 같지만, 어디서부터 흘러온 것인지 알 수 없는 화와 슬픔에 잔뜩 젖어 있어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래 무거웠다. 무거워서 미칠 것 같았다. 그냥 이대로 둘 수는 없겠다고 생각되는 지점까지 이르렀다.
나는 이 몇십 년 묵은 감식초처럼 깊숙이 묻어두었던 말을 꺼내기 위해 몇 달을 벼르고 별러왔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몰라서, 무언가 깨지고 쏟아지기라도 하면 감당을 할 수 있을지 몰라서, 나는 많이 생각하고 또 재고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거쳐야 했다.
한동안은 흙을 계속 파헤쳐야 했다. 여기가 아니던가. 저기였나. 이곳저곳을 파면서, 글을 쓰다 완성하지 못하고 서랍에 갇혀있는 글만 10여 편. 그러다가, '감정 학대'라는 단어 - 엄마가 듣는다면 기가 차고 억울할 - 를 감히 인정해 버리는 순간 고구마 줄기에 줄줄이 연결된 것들이 모두 나타나기 시작했다.
감정의 차단
나의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 세계는 완전히 차단당했던 것이었다. 엄마에게 너무 감당하기 부담스럽고 복잡하게 느껴졌던, 처음부터 문을 걸어 잠그고 절대 열지 못하게 강요당했던 나의 내면. 엄마가 폭력을 쓰거나 억압적으로 한 것이 아니지만. 엄마의 미묘한 온도차가 있었다. 내가 마음 상하는 일이 있을 때 마음 상하는 사람은 나인데도 결국은 내가 마음 상해서 미안하다고 매번 사과를 했다. 그래야 냉랭해진 엄마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다고, 편안한 일상의 온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껴졌었다.
나는 그때 그 아이가 상황에 자연스럽게 반응할 뿐이었을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매번 죄책감을 느껴야 했었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프다. 분재 식물도 아닌 아이가 자신을 너무 뒤틀어 가며 자라야 했던 것이 마음이 아프다. 아이는 들어주지 않는 부모, 들어줄 수 없는 부모 앞에서 더 예민하고 감정적인 사람, 극단적인 사람이 되어 갔던 것 같다. 귀를 막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더 큰 소리로 외쳐 주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 큰 몸짓으로, 더 자극적인 표현으로 묘사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의식이 강했던 아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보는 자신을 '나'로 받아들일 수 없어 아이의 정체성은 강풍 아래 놓인 어린 나무처럼 늘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흔들리며 위태롭게 서 있었다.
나는 아팠고 답답했고,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을 아프게 했으면 그건 일종의 학대인 거야. 그 시대에 태어나 더 아픈 삶을 살았던 엄마를 탓하진 않아. 엄마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하지만 나는 정서적 학대 상황 안에 놓여 있었던 거야.
이렇게 어두움 속에 갇혀있던 말들을 꺼내서 말리니 나는 속이 시원해진다. 나는 감정에 대한 보살핌을 받은 적이 없어, 건강하게 감정을 다루고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났고, 아슬아슬한 정체성은 무자비한 아픔을 부르는 결핍감과 수치심의 근거지였다.
이젠 내게 내면 아이의 감정을 돌봐줄 능력이 풍성히 있으니
이제 내 마음을 꺼내 뜨거운 볕에 잘 말렸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아무도 탓하지 않겠다. 해 줄 수 없었던 엄마도. 본받고 배울 수 없었던 결핍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나도. 수치스러워할 일 같은 건 없다. 닫아 두었던 걸 열어 깨끗하게 잘 말리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엄마는 이십 대 초반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이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최선을 다 했고. 나는 이제 많이 성장하여 혼자서 감정을 다루고 소화할 능력이 생겼으므로 엄마에게 감정을 돌봐달라고 의지할 필요가 없다.
그래, 이젠 나에게 모든 능력이 생긴 것이다. 잘 키워진 내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기대하고 또 실망하던 어릴 적 습관을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고,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도무지 감정을 감당할 수 없는 엄마에게 부담을 주기도 했었다. 이젠 그 어린 습관을 끊어내고 나의 성장에 집중하고 살아가리라 마음 먹는다. 이 결심은 완전한 어른으로 성숙해가는데 큰 한 걸음이 될 것이다. 나의 감정을 돌보는 능력으로 아이들을 돕고 성장시키고, 점점 약해져 가는 엄마까지 도울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제 나를 돕고 내 주변 사람들도 도울 수 있다. 처음엔 그 능력이 없어 아팠던 만큼, 없어서 서러웠던 만큼 내 전부가 나를 강하게 키워낸 것이다. 정체성을 확립하고 마침내 꽃을 피워낸 것이다. 결핍은 결국 풍성히 채워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Efraimstoch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