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이유 살고 싶은 이유

어른들을 위한 감정 코칭 2

by 하트온

살고 싶었던 이유


목숨을 스스로 끊을까 말까 고민했던 순간 끈덕지게 내 손목을 잡고 삶의 남은 미련들을 떠올려 주었던 이유들. 대학 1학년 심리학 수업 시간에 사람들 앞에서 말해주었던 이유들은 다음과 같았다.


관계


나는 혼자 있는 존재인 것 같기도 했지만, 어떤 시스템 안에서 무언가를 함께 이루고 있는 존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뜬금없이 물질과학적인 예를 들자면, 서로 전자를 공유하며 결정구조를 이루고 있는 하나로 뗄 수 없는, 더 큰 단위의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 같은 느낌이 있었다. 내가 정말 홀로 떨어져 나온 하나의 알갱이 같은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나는 목숨을 끊는 일에 좀 더 과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를 없애는 일이,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것은 나 자신의 몸에 감히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가족, 각종 커뮤니티, 사업 같은 시스템을 스스로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면서, 여러 관계, 시스템 안에서의 책임이 자아를 보호하고 지키려 하는 느낌은 더욱 강해졌고, 자살을 원하던 마음을 등 돌리고 먼길을 떠나온 이후, 더 이상 그것은 잡념으로도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


이 세상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다. 사랑의 관계는 마치 어떤 곳으로 낙하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꼭 잡아 올릴 수 있는 강력한 끈끈이처럼 사람을 붙든다. 나에겐 엄마가 수퍼 끈끈이였고, 거기 내가 가서 얻어먹을 따뜻한 사랑이 있는 한,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몸을 부딪치거나 수면제를 털어 넣거나 손목을 그어 몸을 차갑게 식히는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사람은 차가운 것보다 따뜻한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 죽음보다 차갑게 느껴질 때에야, 사람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 사람이라도 저를 향해 반가워하고 웃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아이는 결코 잘못되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후로 나는 아이들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도, 늘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나는 웃어준다. 그것이 내 일생일대의 사명인양,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고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는 듯 나는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손을 흔들며 웃어준다. 내가 얼굴을 가진 이유가 반가운 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되도록 마음을 다 한다. 나는 살리고 싶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타인도 다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살리고 싶다.


희망


잡을 수 있는 희망의 끈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비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선생님들이 지금은 힘들지만, 너희들 대학 들어가고 어른 되면 좋은 날 온다고 하던 말. 지금 당장 아이들을 감옥소 같은 교실에 밤늦게까지 잡아 두기 위해 막던지는 말 같아 그리 신뢰하지 않았던 말이 어느새 내 마음속에 한 줄기 비전이 되어 살아 있었다. 더 좋은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내 마음 안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어두움 속에서 주저앉는 대신 그 빛을 따라가는 선택을 했다. 빛을 발하고 있는 미래가 너무나 궁금했다.


내가 교육을 선택한 것은 아이들에게 그런 내면의 빛을 심어 주고 싶어서였다. 사람의 내면에 비전이 얼마나 중요한 작용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렵지만, 지금은 잘 못하지만, 너는 성실하고 머리가 좋으니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잘 이겨내고 능숙하게 잘 해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그런 말들을 해 주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보았고, 나는 그 역할에 힘을 다 쏟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발견한다. 내가 평생 이루어 가야 할 사명이 있는 한 나에겐 주어진 명을 거슬러 죽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죽고 싶었던 이유


이제야 나는 내가 죽고 싶었던 그때의 그 감정으로 편하게 다가간다. 그럴 수 없어서 나는 오랫동안 그때의 나를 방치하고 숨겨왔다. 쳐다보지도 않았고,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부끄러워했고, 싫어했다.


고2에서 고3으로 올라가는 겨울이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는 무너지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하기 위해 친구들과 모여 교과서가 아닌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던 우리들은 대학입시 준비에 대해 다급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고, 하나 둘 모임을 빠져나가고 있었고, 누군가가 판을 짜 놓은 데모 준비에 끌려들어 가 형사와 학교의 감시와 취조를 동시에 받으며 아까운 시간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나를 죽음 직전으로 몰아간 것은, 나의 첫 남자 친구와의 관계였다. 나는 내가 그 나이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에 대해 큰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학생은 공부만 해야지, ' 모범생 프레임에 갇혀 있던 나는, 그 나이에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것은 날라리 낙오자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의 덫을 스스로 쳐 놓고 나를 옭아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혈기왕성한 소녀의 마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고, 전화를 걸고,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날엔 나는 정말 심한 갈증을 앓다 물을 마신 사람처럼 살 것 같은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힘들고 불안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세상으로 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도파민의 쓰나미가 밀려오는 쾌감은 짜릿하고 행복했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려 주어진 방관의 비틀린 자유와 분노가 깃든 가난이 만드는 경계면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반면 나는 무서운 아버지의 억압 속에 한치도 틀림없는 긴장 모드로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에게 몰래 전화를 하고 몰래 편지를 하면서도 성적을 유지하고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밥을 굶고 잠을 아껴가며 최선을 다 해 공부하는 나를 보면서, 아버지의 기준에 맞추어야 하고 맞추어 내는 나를 보면서, 그 아이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뒤늦게 짐작만 될 뿐 그때의 나로선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집 앞에 찾아온 그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원래 하던 대로 공부나 해. 안 어울리는 나 같은 놈 만나려고 하지 말고. 다신 편지도 전화도 하지 마. 깨끗이 연락 끊자. 난 네 아버지 무서워.


많이 화가 나 보였다. 왜 갑자기 찾아와 화를 내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그냥 다리 힘이 풀리는 걸 느꼈을 뿐이었다.


그날부터 고 3 새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한 3-4개월가량, 검은 늪 수렁에 점점 빠져들어가는 느낌으로 죽음만 생각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아마도 그 친구가 그 당시의 나에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자, 현실 탈출구, 숨 쉴 구멍이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말들은, 나로선 처음 느껴보는, 그래서 몹시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거부였고, 거절이었고, 차단이었다. 쇳덩이처럼 차갑고 무거운 마음에 내가 눌린 것이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내 마음의 충격과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감히 고등학생이 연애'라는 이 덫이 나를 너무나 두려워하고 숨어들게 만들었다. 나를 아는 모두로부터 조롱당하고 비난당할 것 같았다. 내 삶에 엄청난 강도로 일어난 첫사랑과 실연을,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기를 혼자서 낳은 여자처럼, 내 안으로 삼키며 혼자 울었다. 아무에게도 표현하지 못하고 발산하지 못한 그 큰 감정이 나를 오랫동안 우울하게 하고 오랫동안 수치스럽게 했다.


내 안의 늑대가 감정 정글을 헤치고 그 소녀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아냈고, 덕분에 이제야 나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이해하고 있는 참이다.


늑대가 소녀에게 다가가 말해준다.


너는 잘못하지 않았어. 고등학생에게도 사랑이 올 수 있는 거잖아. 사랑이 시작되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잖아.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네가 그 나이에 누군가를 좋아한 건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일이야. 그것이 아름다운 일이 되지 못하게 만든 건 당시 학생들이 공부만 하기를 바랐던 어른들이 만든 기준이고 프레임일 뿐이야. 이제 그 덫을 깨고 나와 그 일을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으로 기억하자. 너는 그때도 지금도 너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최선을 다 하는 책임감 강한 좋은 사랑이야.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좋아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었을 뿐이야. 더 이상은 숨기지 말고, 네 마음에 폈던 사랑의 꽃을 집 앞 화단에 당당하게 심고 더 풍성히 자라게 하자. 내가 도와줄게. 네 마음 안엔 수치스러워할 만한 게 보이지 않아 내 눈엔. 다 예쁜 꽃인 걸! 그러니 당당히 집 밖으로 가져 나와 심고 돌보고 예쁜 꽃과 열매가 만발하게 하자. 타인이 억지로 씌웠던 모든 관념의 덫을 벗어내 깨끗이 치워버리고, 이제 너를 네 마음을 자유롭게 해 주자.


이전 01화감정의 정글에서 살 길을 찾는 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