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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Nov 21. 2021

소중한 존재에 대한 기억 단상

기억 습작 

내가 본 그녀의 최초의 모습은 아직 여드름을 다 벗지 못한 단발머리의 아주 어린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응석을 부리며 자란 적이 없는 만큼, 매사에 성실하고 열심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 큰 이불들을 하나하나 다 털어 말리고 정리하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되었다, 아침 식사를 차리고, 방을 쓸고 닦고, 한 무더기의 빨래를 하고, 군것질을 좀 하며 장을 보고 오면, 금세 또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고 있었다.


나는 내내 그녀의 등에 업혀있거나, 손을 잡고 걷고 있거나,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내내 그녀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던 내 마음. 엄마 제발 나 좀 봐줘요. 나 좀 안아 줘요. 나하고 좀 놀아줘요. 엄마는 일하는 사이사이 조르는 나에게 엄마 비행기도 태워주고, 글자도 가르쳐 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간식도 만들어 주셨다. 스무 살을 갓 넘은 그 어린 여자가 아이를 참으로 정성으로 키웠다. 엄마의 품에 코를 푹 파묻고 꼭 안겨 누워있을 때면 온 세상이 평화로운 안전한 만족감이 차올랐다.


하루는 엄마가 외출하고 나는 다른 친척집에 맡겨졌다. 엄마가 나를 데려간 곳에는 큰 아이들이 마구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친척 아주머니는 어느새 보이지 않고, 거친 아이들의 소리와 움직임은 나를 두려움에 움찔거리게 했다. 나는 방에 가만히 앉아 혼자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릿속에 엄마의 얼굴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나는 왜 이 사람이 이토록 보고 싶은 거지? 왜 이 사람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거지? 저 아주머니는 나를 귀찮다는 듯 방치하는데, 왜 내 머릿속의 이 여자는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한 번도 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스럽게 돌보는 거지?


나는 지금 당장 옆에 없는 실체가 마음을 가득 채우고, 그 존재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불안하고 힘든 기이한 경험을 하면서 엄마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이에게 엄마가 없는 한나절이 영겁임을 확실히 체험했다. 엄마가 나타난 순간 엉엉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서야 친척 아주머니는 슬쩍 얼굴을 보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이 아주머니를 다시는 혼자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엄마라는 존재와 떨어지기 싫다고 결심했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josealbaf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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