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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Dec 17. 2021

한 사람에게라도 힘이 되자고

글을 쓰는 이유

초심 정기 점검의 시간이 왔을 뿐이고


거대한 해일 같은 브런치 공모전이 또 한 번 지나갔다. 공모전이 해일처럼 느껴지는 건 내가 그만큼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수상 결과를 접할 때마다 내가 쓰는 글 같은 건 아무 가치가 되지 않는 듯한 좌절감이 내 뺨을 서너 차례 치고 지나간다. 아직도 외부 기준에 쉽게 흔들리는 내 연약한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며 떠밀려 다니는 미역줄기가 아니기로 한다. 나는 나의 초심에 뿌리를 잘 묻고 서 있는 나무라는 것을 기억해 낸다. 브런치 공모전과 같은 거센 파도가 치고 지나갈 때마다, 초심의 흙을 꼭꼭 눌러 밟아주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뿌리를 단단히 잘 내리고 서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공모전 결과가 나온 후가 딱 적당한 글쓰기 초심 정기점검의 시간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알아주는 글이 되자고


나는 내 글을 읽고 한 사람이라도 힘을 얻으면 된다. 그래서 글을 쓴다. 내 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 글을 전할 수 있으니 힘이 나고 즐거운 것이다.  처음부터 그것이 목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음을 전하는 데는 대단한 어휘도 지식도 필요치 않다. 누구나 연애편지는 쓸 수 있고 한 번씩은 다 써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부족한 모습으로도 자신 있게 나섰다. 지나가는 흐린 표정의 누군가에게 생선 한 마리라도 얹어 주며 생기를 불어넣고, 집에 가서 잘 먹고 잘 살다가 또 필요해지면 찾아오라고 시끌벅적 응원해주는 자갈치 아지매라도 되어 보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진심 하나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고, 문학적 가치가 있을까 싶은 글도 과감하게 발행을 꾹 눌러 글이 500여 개가 쌓이기에 이르렀다.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알아주는 글이 되고 싶은 내 초심 위에 나는 잘 서 있는 것일까? 벌레 같은 잡념이 끼어들어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진 않을까. 매연처럼 따가운 외부 시선에 내 소신을 잠시 잊고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닐까.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고, 매연을 뿜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결국 이 나무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나다. 나밖에 없다. 아무도 내 마음처럼 내 글이 나아가는 길을 돌볼 수 없다. 


나는 브런치 공모전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흔드는 자체가 싫다. 그래서 결심한다. 갈수록 그것에 대해 늘 찰싹찰싹 밀려왔다 지나가는 작은 파도처럼 여기겠다고. 나는 내 초심이 더욱 거대한 물결을 일으켜, 작은 파도 정도는 쉽게 품어 흡수해 버리기를 바란다. 



무서운 것은


무서운 것은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게 되는 것일 거다.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보다 많은 인기를 노리고 내 마음이 아닌 글을 쓰려고 방향을 틀어 나무를 상하게 하는 것일 거다. 가장 무서운 것은 초심도 잃고, 진심도 잃고, 남의 시선 따라가다 뿌리 뽑혀 흔들거리며 썩어가는 나무가 되는 일일 것이다. 


요즘 한국 문화 트렌드가, 출판사들이 어떤 글들을 좋아하는지 궁금한 마음을 꾹 접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기로 한다. 나는 내 안의 나무가 깊이 뿌리내리고 성장하는데만 집중하기로 한다. 내 진짜 마음, 나만 낼 수 있는 목소리, 나다운 나만의 표현에 집중하기로 한다. 모든 것 우위에 나를 내 글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지키기로 한다. 


나의 번데기 속 애벌레 같은 글이 언젠가는 저절로 나비로 성장하고 변신할 때까지, 나의 불안하고 어린 나무가 언젠가 굵고 든든한 몸통으로 자라날 때까지 나는 때를 기다리며 지금의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로 결심한다.  


잠시 무거워졌던 마음이 다시 가벼워진다. 나는 번데기에 갇혀 있는 이 시간, 어리고 연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무슨 꽃이 피어날지 모르는 봉오리처럼, 어디로 나아가는지 모르는 글을 한 장 한 장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 시간,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한 문장 한 문장 기록하는 이 시간을, 아끼고 즐길 것이다. 다른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나에겐 내가 내 삶이 내 글이 최고 소중한 가치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lavna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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