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오늘 제 기분은 맑음입니다.
엄마 생신이어서 엄마를 모시고 예쁜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파스타, 생선요리를 알차게 먹고 집에 와 쉬고 있는 길입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엄마를 집에 모셔와 함께 지내고 있는 중이에요. 요즘 이런저런 일로 엄마와 삐걱거리는 부분들이 있어서 마음이 힘들고 그랬는데, 오늘 나가서 함께 맛있는 저녁 배부르게 먹고, 달달한 디저트 먹고 하니까,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 주네요.
덕분에 오늘 저녁에는 보다 느긋한 마음으로,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엄마와의 갈등, 스트레스를 되돌아볼 여유를 얻습니다. 엄마하고 함께 있으면서 감정적으로 마음에 흙탕물이 일어났던 상황들을 생각해 보면, 역시 그 속에는 무안함이나 수치심이 도사리고 있어요. 수치심이 한바탕 몰아치면, 마음이 많이 상하고 분노와 원망으로 이어지기 쉬운 것 같아요.
제가 엄마 앞에서 부끄러운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아니었으면 좋겠는 것. 가장 실망시키고 있다고 생각되는 무엇.
지금의 저에게 가장 수치심을 주는 것, 가장 제 인간관계를 어렵게 하는 것은 제 나이인 것 같아요. 곧 만 47세가 됩니다. 한국 나이로는 50이 다 된 거죠. 40을 넘자마자 시간은 초고속으로 꺾어지는 느낌입니다. 엊그제 ‘내가 벌써 40이야’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숨 한 번 쉬고, 눈 한 번 꿈쩍하고 나니 40 중반을 지나 있어요.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나이가 나이가…
감당 안되게 무겁습니다.
그 나이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은 느낌, 그 나이를 아름답게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데, 나이만 무서운 속도로 내 어깨 위에 쌓여 나를 짓누르는 느낌. 특히, 40이 훌쩍 넘은 나이로 70이 넘은 엄마와 맺고 있는 관계가 어느 순간부터 부끄러워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갱년기 초입에 들어선 중년의 나 자신에 대해서도, 머리가 하얗게 새고 듬성듬성해진 노년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는 엄마의 나이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생각해 보면, 인생의 모든 상황에서 저는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혼도, 출산도, 저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거부할 굉장한 소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주변에서 서두르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결혼도 했고, 좀 노산이긴 했지만 아이도 둘이나 낳았습니다. 아이들 키우는 과정은 엄마가 많이 도와주셨고, 지금은 청소년이 된 아들들을 남편이 잘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가족들이 많이 커버해 주는 덕분에, 나름 평범해 보이는 삶을 잘 유지하고 있어요.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만, 저는 저 자신에 대에서 아직 안정감이랄까요, 만족감이랄까요. 아무튼 무언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저라는 존재에 대해 마음을 놓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무언가 구멍이 뻥뻥 뚫린 듯한, 인생 자체가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뭔가 내세울 만한 성취, 남보다 뛰어난 한방이 있었으면 더 나았으려나요? 엄마가 안정감, 풍족함을 느낄 만큼, 큰 재산을 모았으면 더 나았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장 정확하게 뭐가 부족해서 문제인지를 설명하긴 힘들지만, 어쨌든, 결론은 제 나이에 대해 떳떳하기엔 제가 너무나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어쩌면, 연구원이라는 커리어를 놓아버렸던 것에 대해서 아직 후회가 남아있는 것일까요? 아니 그보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공대를 들어갔던 것부터 저는 후회를 합니다. 어릴 때 충격으로 다가왔던 남녀차별을 앓으면서, 저의 여자로서의 자아상, 정체성이 무너졌었던 탓입니다. 남자들보다 강하고, 똑똑하고, 남자들이 주류인 분야에서 증명을 해 내야 제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아서 공대에 들어가고, 운동도 열심히 했어요. 남자처럼 옷 입고, 건들거리며 걸어 다니고, 여중생 여고생들에게 팬레터를 받기도 하고, 동네 꼬마들에겐 ‘형’이라 불리던 저. 그럴수록 제가 여자라는 한계를 더 느낄 뿐이었는데 말이죠. 그 리고 그 한계는 부끄러워하고 모욕감을 느낄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제가 여자인 것에 당당하고 처음부터 기뻐하고 즐길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금 저는 여자다운 면들을 숨기고, 나답게 살지 못했던 시간들을 후회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부끄러워하며 감정 소모했던 시간. 여자들이 하는 일, 여자들에게 기대되는 일, 여자들이 관심을 갖는 일들을 오물로 여기고 쓰레기통에 팽개치고 살아왔던 시간. 부엌에 들어가서 일 하는 자체에도 감당할 수 없는 모욕감과 긴장감을 느낄 정도로 제 안의 성 개념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습니다. (부엌에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에 대해서는 더 사연이 있는데, 다음 일기에서 풀겠습니다.)
세상적 외부적 기준에 근거해 설명하자면, 저는 요리 살림에 자신이 없는, 그렇다고 커리어적인 성공을 한 것도 아닌, 나 답지 못했던 삶에 시간을 송두리째 뺏긴 과거에 대한 회한 가득한 중년 여성이라는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50이라는 나이를 맞으려니 받아들이기 부끄러운 거예요. 엄마에게 맛있는 밥상 차려 줄 능력(심리적 능력 포함)이 없는 딸인 것이 부끄러운 거예요. 지금도 엄마가 저희 가족을 위해 밥을 해 주고 계신 게 부끄러운 거예요. 나에게 힘든 일을, 엄마에겐 함부로 맡기고 있는 게 부끄러운 거예요. 그렇다고 앞으로는 내가 밥 다 차리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제가 부끄러운 거예요. 저녁상을 나에게 맡겨도 되겠다는 그런 믿음을 아직도 엄마에게 주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운 거예요. 내 딸이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다고 생각만 해도 뿌듯한 기분을 주지 못하고, 정말 좋은 딸과 결혼한 사위가 복 받은 거라고 잘 키운 딸 하나에 당당하고 자신 만만한 태도를 주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거예요.
이렇게 자신에 대해 부끄러운 게 많아서야 어찌 살아갈까요. 이 부끄러움은 정말 감당할 가치가 있는 실제이고 실체인 걸까요?
하지만, 제 안의 한 목소리는 제 삶의 여정이, 저 자신의 성향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외치고 있어요. ‘이미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일 - 내가 여자인 것- 을 부끄러워하는 실수를 한 경험도 있잖아. 쉽게 부끄러워지는 마음에 속지 마. 그건 그냥 지구가 다 망가질 것 같다는 착각을 일으키고 지나가는 폭풍 같은 거야.’라고 상기시켜 줍니다. 더 이상 부끄러워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외치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저는 모든 인생의 과정에 최선을 다했어요. 정말 열심히 살았고, 제 인생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름 굉장히 노력했어요. 공대를 다니고, 대학원 다니고, 논문을 쓰고, 유학하고, 연구소, 회사,… 그 수많은 경험 속에서, 저는 많은 인생 교훈을 얻었고, 힘들었던 만큼 성숙해졌던 거예요. 그리고 저는 이후에 나다워지는 길을 찾기 위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 나다운 삶의 길을 찾는 여정을 멈추지 않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부엌일에도 어느 정도 능숙해졌어요. 국 찌개 같은 기본적인 한식, 햄버거, 샌드위치, 피자, 파스타 같은 흔한 서양 음식들도 다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저 개인에게는 엄청난 성취입니다. 그리고 글쓰기에도 더 진중하고 성실한 자세로 다가가기 시작했고, 단편 소설 수상, 장편 소설 출판 문의를 받으며 가능성을 보여준 적도 있고, 오랜 시간 교육 칼럼니스트 활동을 했고, 지금은 브런치 작가도 되었어요.
어떤 순간에도 나 자신과 가족에게 소홀히 한적 없고, 생계유지를 위한 노력을 등한시한 적도 없어요. 연구원,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는 내려놓았지만, 이후에 도서관 사서가 되었고, 다시 교육 대학원을 다니고 교사가 되었고, 지금은 아이들 홈스쿨링을 하며, 남편과 함께 사업도 잘 꾸려가고 있어요.
딸의 역할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 엄마와 건강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 살아계신 동안 후회 없이 존경과 사랑을 표현해 드리고, 마음을 챙겨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저보다는 엄마가 훨씬 더 음식을 더 잘하시니, 엄마와 같이 있을 때는 더 잘하는 사람이 하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거라고 생각됩니다. 우린 다 엄마가 해 주는 밥이 가장 맛있으니까요. 그리고 엄마는 우리에게 음식을 해 주는 일을 기쁨으로 하고 계시다고 말씀도 하셨어요. 제가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하시는 걸 보기 고통스러워했던 건, 부엌일을 모욕적이고 비굴한 일로 여기는 제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어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백종원 씨가 지난 몇 년 간 대한민국 남자들을 부엌과 가까워지게 만들고 프로집밥러로 훈련시킨 마당에 제가 아직도 부엌을 여자들의 한 맺힌 고통과 고생의 공간, 인생 낭비의 공간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열매가 없는 부끄러운 삶같이 느껴져, 제 나이마저 부끄러워했지만 생각해 보면,
열매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제 삶 속에서 꾸준히 치유와 회복, 변화를 노력했기에 지금의 행복을 누리는 열매,
자녀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만큼,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는 열매,
남편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회복된 따뜻한 부부 관계의 열매,
힘든 상황을 함께 헤쳐 온 엄마와 평화롭게 안락하게 살아가는 열매,
많은 열매를 누리고 있는 것을, 제가 제 나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이미 되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저에게 다시 이야기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