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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Oct 07. 2020

싸이의 '강남 스타일'

내가 안 바빴으면 귀띔해 줬을 텐데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나왔던 그 여름, 체력이 약한 데다 무릎 부상까지 입고 있던 나는 2살 5살 파워 에너지 장착한 남자 꼬마들 쫓아다니느라 진짜 죽을 똥을 싸며 머리에 꽃 달기 직전의 정신 가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인생의 사각지대에서 세상 소식과 담쌓고 살던 내 눈에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마이클 잭슨의 문 댄스 이후 그에 버금가는 세계적 바이럴 현상을 일으키며 일파만파 거침없이 퍼져가는 게 보였으니, 그의 강남 스타일은 정말 대단했었다. 그때 2돌 배기였던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학교 체육시간에도 선생님이 틀어주는 강남 스타일을 들으며 체육 수업을 할 정도였으니, 강남 스타일은 아예 미국의 신나는 댄스 음악 클래식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아이들이 좀 더 자라서, 삶에 여유가 좀 생기고, 한국 뉴스도 찾아볼 여유가 생길 즈음부터, 싸이의 행보를 지켜보기 시작했는데, 그는 강남 스타일 이후 후속곡 압박에 계속 시달리는 듯 보였다. 이런저런 기발한 댄스와 컨셉을 선보이며, 여러 번의 신곡 발표 이후, 요즘의 그는 다시는 강남 스타일을 이길 노래를 만들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닫고 내려놓고 사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그렇게 강남 스타일은 대단한 곡이었고, 엄청난 문화 콘텐츠였다.


가사, 리듬과 멜로디도 재밌었지만, 뮤비로 표현한 곡에 담긴 조크 (뭣도 가진 것 없는 남자의 거의 무모한 허영심이랄까) 자체가 전 세계를 열광시킨 신선한 한방이었다고 생각한다. 컨셉도, 음악도, 춤도 단순했기에 패러디 하기 너무 좋았고, 덕분에 전 세계에서 패러디 열품이 불었다. 


그렇다. 그 곡은 패러디 맛이 있었다.


사실은 그 패러디에 답이 있었던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싸이에게 


패러디에서 답을 찾으세요!!!!!

라고 귀띔을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그때 너무 바빠서 싸이에게 말을 못 해준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물론 싸이는 강남 스타일의 재미와 덕을 충분히 보았겠지만, 사실 내가 볼 땐, 그는 후속곡에 에너지를 쏟느라, 강남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만큼 미국 스타일로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간과한 것은, 미국은 느린 나라이고, 한 번 덕후는 영원한 덕후라는 것이다. 아직도 어릴 때 좋아했던 스타워즈 영화를 보며 눈물 흘리는 아저씨들이 있는 나라. 아들도 함께 스타워즈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며 덕질을 세습하는 어른이들의 나라. 한 번 좋은 건 대대로 몇십 년 가는 나라. 한 예로, 여자들의 레깅스 패션은 지금 최소 10년째 유행 중이다. 여름에 탱크톱과 핫팬츠(매우 짧은 청바지) 패션은 내가 미국에 도착하던 1999년 그 여름부터 한 해도 유행하지 않은 적이 없다. 몇 년 전부터 검은색 운동화가 유행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미 유행이 지나갔겠지만, 미국은 앞으로 적어도 5년은 더 유행할 예정이라고 확신한다.


다시 싸이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싸이는 사실 후속곡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싸이라는 가수의 발견이 의미 있었던 것이 아니라 - 그러니 그의 후속곡이 중요하게 아닌 것이다, 강남 스타일이 불러온 세계인의 반응 자체가 폭발적인 스타워즈 현상이었던 것이다. 


열광의 주인공은 '싸이'가 아닌 '강남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강남 스타일이라는 문화 콘텐츠 하나를 만든 것만으로도 평생 누릴 수 있었다. 적어도 미국에선 말이다. 그는  강남 스타일을 가지고 미국에서 더 놀았어야 했다. 세계 사람들이 강남 스타일 패러디를 할 때, 싸이 자신도 강남 스타일로 소통하며, 전 세계를 패러디했었어야 했다. 


후속곡으로, 자신이 자신의 곡을 패러디한 '텍사스 스타일', '뉴욕 스타일', '하와이 스타일', '캘리포니아 스타일'을 만들어 냈었어야 했다. 이 말을 싸이에게 못 전해 준 게 내 일평생 한이 될 줄이야.


강남 스타일은 지금도 미국 문화 안에 살아 있다. 지금 시기에 맞는 강남 스타일 패러디곡을 발표하거나 업그레이드 버전 하나 터뜨려도 거북이의 나라 미국에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한 번 더, 세계가 한마음으로 춤추고 웃고 신나던 그때를 경험하고 싶다.


내가 육아 폭풍에 휩싸여, 미처 싸이에게 말해주지 못해서 한으로 남은 말을, 그때 남들 다 즐길 때 강남 스타일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한을, 오늘 브런치에 풀어 본다. 뒷북, 뒷북, 이런 뒷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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