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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Nov 17. 2020

김치 먹는 미국

미국에서 느끼는 여러가지 김치맛  

'트렌디'하고, '힙'한 맛: 김치는 트렌딩 중... 


이제 '김치'는 미국에서 매우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충분한 '미국인 중독자'를 양성해 낸,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음식이 되었다. 특히 수년 전, 미셀 오바마가 텃밭에서 직접 길러 수확한 배추를 가지고 김치를 담가 먹었다고, 김치 담그는 방법을 트윗을 했던 이후,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이 100% 인 우리 동네 여자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개념 있는 여자들의 음식 문화 트렌드가 되어, 모두들 김치를 담가보겠다고 난리가 났었다. 


이후, 미국 전역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사는 지역 근처에서는 김치를 팔지 않는 식료품 가게는 없고, 김치를 모르는 사람은 매우 찾기 힘들다. 


실제로, 한국 농수산식품 수출관계자의 말을 빌자면, 올해 상반기 (1월-6월) 수출만 계산해도, 미국으로의 김치 수출액이 1,133만 달러로 예년에 비해 60%가 넘는 수출 신장률로 기록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김치의 수요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경제 수치들이 입증하고 있다. http://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782/globalBbsDataView.do?setIdx=243&dataIdx=183642

미국 사람들 앞에서 불쾌감을 유발할지 모르는 생소한 냄새를 풍기기 싫은 한국인은 아침 출근 전에는 김치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을 정도로 조심하는 반면, 김치 맛을 알게 된 미국인은 전혀 조심하지 않고 대놓고 먹는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김치는 오랫동안 한국 사람들끼리나 먹는 가장 한국스러운 음식이었지만, 요즘 미국 사람들에게 김치는 그 멋진 '방탄소년단'도 먹는 세상 힙하고 트렌디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인 코로나 사망률이 낮은 비결이 '김치'에 있다니, 아이 좋고 부모 좋은 음식을 먹지 않을 이유가 없는, 너도나도 먹어보자는 '인기템'이 되었다. 



사랑의 맛: 정든 그대를 그리며...


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중 데이빗이라는, 옛 서부영화에 나오는 배우처럼 터프미와 조각미를 동시에 갖춘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매력포인트를 잘 아는 듯, 항상 서부 카우보이가 썼을 법한 모자와 부츠를 착용하고 다녔고, 그의 차림이 부각하는 그의 매력은 항상 주변 백인 여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심지어 회사 옆 샌드위치 가게 아줌마들도 한눈에 반해 버린, 그렇게 멋진 오빠가 유독 나를 따라다니며 매우 귀찮게 했다. 나에게 한눈에 반해서... 는 결코 아니었고, 나를 보고 '김치'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돌싱남이었는데, 전 와이프의 어머니, 그러니까 전 장모님이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이혼한 지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전 와이프에 대한 감정은 전혀 남아 있지 않는데, 문제는 갈 때마다 상다리 부러져라 잔치상 차려 사위를 배 터지게 대접했던, 자신을 한국음식으로 길들였던 장모에게 느끼는 그놈의 '정', 아무리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동부로 이사 와도 떨어지지 않는 그 질긴 '정'. 그는 그렇게 큰 사랑의 섬김을 그 전에도 후에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전처와는 연락이 끊어졌어도, 저 멀리 캘리포니아 사는 전 장모에게는 매년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게 된다던 그 남자, 데이빗. 


맛있는 김치를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알려달라는 그에게, 한국 마트 주소를 알아다 주며, 김치도 한 병 사다 주었다. 데이빗 오빠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실험실 한가운데서 - 점심 먹는 휴게실이 따로 있는데도 불구 -, 김치병을 옆에 신줏단지처럼 끼고, 한 손에는 샌드위치를, 다른 한 손으로는 터프한 카우보이답게 커다란 김치를 맨손으로 들고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한국의 맛: 한국으로 통하는 문


남편은 꼭 김치가 필요한 건 아닌 것 같고, 미국 생활 초기 김치 없는 시간을 지나온 나도 김치를 매일 꼭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서, 우리는 김치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꼭 먹고 싶으면 가서 사 오면 되는, 김치 산업화 세대'기 때문인 듯도 하다. '김치를 팔지 않는 미국 마트가 없는 활발한 김치 유통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한 몫 하는지 모른다. 어쨌든 우리에겐 그런 '김치 여유'가 있다.


그런 우리에게 김치가 떨어지면 곤란한 이유가 생겨버렸다. '김치를 찾는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런 식이다. 흰밥엔 배추김치. 돈가스엔 깍두기. 주먹밥엔 섞박지. 삼겹살엔 볶음 김치. 수육엔 겉절이. 비빔면엔 열무김치. 음식의 조합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많은 음식에 어울리는 김치. 김치가 없으면 아이가 슬퍼지는 상황인 것이다. 것도 어찌나 다양하게들 찾는지.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매운 김치, 각종 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건, 한국 사람 다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통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할머니만큼 김치를 비롯한 한국음식을 맛깔나게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안다. 그래서 할머니의 존재는 아이들에게 '보물 제1호', '인간문화재', 소중한 문화유산 그 자체다. 언젠가 한국에 꼭 가서 살아보고 싶은 그들에게 할머니는 한국 문화가 잔뜩 뿜어져 나오는 한국 그 자체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할머니와 한국어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고,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한국 음식을 잘 먹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야 언젠가 한국에 갔을 때 어려움 없이 소통하고 자연스럽게 문화 안에 녹아들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거룩한 맛: 일용할 김치를 주옵소서...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한인 마트가 어딨는지 몰랐던 동부 생활 초기에 김치 없는 시간을 견뎌야 했던 적이 있다. 김치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 어쩌겠는가. 느끼하거나 뻑뻑한 음식을 먹을 때 김치가 담당해줘야 할 역할을 나는 '오이 피클'이나 '커피'에서 찾았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와 가까이 살게 되면서부터는 김치가 떨어졌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엄마세대 분들에겐 김치는 '종교'다. 김치가 있어야만 거룩하고 평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믿는 그분들은, 김치가 떨어지는 불경하고 불안한 상황을 결코 만들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1960년대에 이민을 오신 분인데, 배추를 구할 수 없던 시절에는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 드셨다고 한다. 시부모님 댁에 드나들면서 봐도, 상차림에 김치가 나오지 않는 일은 본 적이 없다. 김치는 그분들에게 일용할 양식, 그중에서도 '핵심 필수템'인 것이다.



기대되는 맛: 오늘 담근 김치


오늘 우리 집은 '김치의 날'이었다. 지난번에 담가주신 김치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시고 다급해진 친정 엄마의 주도로 이루어진, 전쟁 피난 준비하는 것처럼 한바탕 난리같이 벌어진 아수라장 김치 파티. 나는 항상 그렇듯이 옆에서 '모지리 보조'로 존재했다. '김치가 떨어지는 게 두렵지 않은 나'이지만, 그래도 김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에 더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올 가을엔 나의 '최애' 열무김치까지 상에 올라올 예정이라 더욱 신이 난다. 야호!

열무김치, 배추김치, 양념을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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