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ening to shame
강연자 브레네 브라운은 1965년생 텍사스 출신으로, 현대인들이 겪는 - 수치심, 취약성 (Vulnerability, 무방비 상태의 상처 잘 받는 연약한 마음을 의미)과 같은 감정적 고통과 그 근원에 대해 오래 연구한 심리 전문가입니다. 현재 텍사스 휴스턴 대학교 사회복지학 대학원 연구 교수이며, 동시에 많은 베스트셀러 책을 낸 인기 있는 대중 심리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2011년 [취약성의 힘(Power of Vulnerability)]이라는 테드 강연과, 2012년 테드 강연 [수치심에 귀 기울이기 (Listening to shame}]로 폭발적인 공감을 얻으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최근엔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페셜 [나를 바꾸는 용기]에 출연했으며 그녀의 책들은 전 세계 30개국에서 번역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대표적 저서로는 『마음 가면』, 『라이징 스트롱』,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 『나는 불완전한 나로 살아간다』,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수치심 권하는 사회』, 『리더의 용기』 등이 있습니다.
오늘 저는 그녀의 2012년 [수치심에 귀 기울이기] 강연을 정리해서 들고 왔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psN1DORYYV0&list=PLLsvQw1bUb_m0cGSthOI1YKsimXajhmAA&index=282
브라운 박사는 2011년의 [취약성의 힘(Power of Vulnerability)]이라는 테드 강연을 하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쪽팔려 죽을 뻔 (the worst vulnerability hangover of my life)” 했었는지를 회고하며 강연을 시작합니다. 3일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고 해요. 3일 만에 첫 외출한 게 친구와 만나 점심 먹는 자리였는데, 그녀의 행색을 보고 친구는 “너 꼴이 말이 아니다, 얘 ("God, you look like hell.”)라고 표현했을 정도니, 자신의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낸 강연 후의 심리 상태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다음은 브라운 박사와 그 친구가 이어간 대화 내용입니다.
브라운 박사: “Thanks. I feel really — I’m not functioning.” 맞아. 나 완전 상태 안 좋아.
친구: “What’s going on?” 무슨 일 있어?
브라운 박사:“I just told 500 people that I became a researcher to avoid vulnerability. And that when being vulnerable emerged from my data, as absolutely essential to whole-hearted living, I told these 500 people that I had a breakdown. I had a slide that said ‘Breakdown.’ At what point did I think that was a good idea?” 내가 (며칠 전에) 500명의 사람에게, 취약성을 벗어나 보려고 연구원이 되었다고 말했어. 그리고는 취약함이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한 절대적 필수 조건으로 데이터 유추된다고 말하곤, 또 내가 멘탈 붕괴를 겪은 적이 있다고 말했어. ‘멘붕’이라고 적인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말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여겼는지 모르겠어.
친구:“I saw your talk live-streamed. It was not really you. It was a little different than what you usually do. But it was great.”
네 강연 라이브-스트리밍으로 봤어. 방송으로 보이는 모습이 너 같지 않았어. 네 평소 모습과 약간 달랐지만, 그래도 멋지고 좋았어!
브라운 박사: “This can’t happen. YouTube, they’re putting this thing on YouTube. And we’re going to be talking about 600, 700 people.” 이건 아닌 것 같아. 이 사람들이 내 강연을 유튜브에 올리겠대 글쎄. 그러면 내 강연을 본 사람이 600명 700명으로 늘어날 텐데…
친구: “Well, I think it’s too late.” 내 생각엔 이미 늦은 것 같은데.
브라운 박사:“Let me ask you something.” 하나만 물어보자.
친구: “Yeah.” 그래.
브라운 박사:“Do you remember when we were in college, really wild and kind of dumb?” 우리 대학시절에 못 말리는 꼴통 짓 많이 했던 거 기억나?
친구: “Yeah.” 그럼, 기억나지.
브라운 박사:“Remember when we’d leave a really bad message on our ex-boyfriend’s answering machine? Then we’d have to break into his dorm room and then erase the tape?” 우리가 전 남자 친구 전화기에 정말 심한 메시지 남기고, 걔 방에 몰래 들어가서 전화기 녹음 기록 지웠던 거 기억나?
친구: “Uh… no.” 아…니. (청중 웃음)
브라운 박사:“Yeah, me neither. Yeah — me neither.” 그래. 그럼 나도 기억 안 나. 맞아 나도 기억 안 난다고.
친구: “Are you really going to try to break in and steal the video before they put it on YouTube?” 너 정말 그 사람들이 유튜브에 (네 강연) 영상 올리기 전에, 거기 몰래 가서 비디오 훔치려고?
브라운 박사: “I’m just thinking about it a little bit.” 그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님.
친구: “You’re like the worst vulnerability role model ever.” 너 정말 최악의 취약성 롤 모델이다.
브라운 박사: “If 500 turns into 1,000 or 2,000, my life is over.” 500명이 1000명 2000명 되면, 내 인생은 끝장이야.
(친구와 대화 내용 들으며 청중들 계속 빵빵 터지네요)
브라운 박사는 4 밀리언 사람들이 그 강연을 보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었기에, 조회자수가 4 밀리언에 이르렀을 때 그녀의 인생은 끝났었다고 합니다. 인생이 끝났다 싶은 그 순간에 그녀는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크게 자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일을 세상에 알리지 못해 안달했던 만큼,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내면 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을 통해 깨달았던 점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녀가 깨달은 첫 번째 교훈은, vulnerability와 용기의 상관관계에 대해 마침내 이해한 것입니다. 취약성이 약함은 아니라는 겁니다. 취약성이 약함을 의미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나게 위험한 오해라고 말해요. 그리고 청중들에게 뭔가 vulnerable 한 무언가를 하거나, 말할 때. 속으로 “이건 약한 모습이야”라고 속으로 생각한다면 손들어 보라고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듭니다. 그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Vulnerability를 weakness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죠.
한국어로도, Vulnerability는 상처 잘 받는, 마음 약한 모습, 멘탈이 약하다는 개념으로 이해가 되니까. 미국과 한국의 문화가 상당히 다르다고 해도, 이 부분에 대한 보편적 관념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미국 문화는 독립심, 강한 멘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면이 있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더 터부시 하는 면이 있고, 한국은 남자에게 Vulnerability를 보이지 말도록 강요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술김에 보이는 것은 또 괜찮다고 허용해 주는 면도 있어서, 살짝 허용되는 정도가 다른 문화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고는 생각됩니다.
어쨌든, 다시 강연자의 말로 돌아가서,
브라운 박사는, 지난 그녀의 TED 강연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 이후, 학교와 학부모 모임부터 포춘 500에 속하는 대기업들까지 미국 전역 곳곳에서 그녀에게 강연 요청을 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 상당수의 기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Hey Dr. Brown, we loved your TED talk. We’d like you to come in and speak. We’d appreciate it if you wouldn’t mention vulnerability or shame.” 브라운 박사님, 박사님의 테드 강연 정말 좋았습니다. 저희 기관으로 오셔서 강연을 좀 해주십사 요청하고 싶습니다만. 혹시 괜찮으시면 취약성이나 수치심은 빼고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듣고, 그녀가 그럼 무엇에 대해 강연해 주기를 원하냐고 물으니, 비지니스 기관들이 원하는 답정너 주제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innovation (혁신), creativity(창조성) and change (변화).
브라운 박사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Vulnerability is the birthplace of innovation, creativity and change. To create is to make something that has never existed before. There’s nothing more vulnerable than that. Adaptability to change is all about vulnerability. (취약성이야말로 혁신과 창의성 그리고 변화의 탄생지라고.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것보다 취약한 일은 없습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일은 취약성 그 자체입니다.)
브라운 박사가 깨달은 두 번째 교훈은, 우리는 수치심에 관해 이야기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석 달 전 스포츠 용품 전문점에서 만난 여성의 이야기를 이어서 합니다. 쇼핑 중에 갑자기 “Vulnerability TED! Vulnerability TED!”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듣고 그녀는 외면하려 했지만, 그 목소리는 끈질기게 “Vulnerability TED!”라고 외쳤어요. 결국 브라운 박사는 가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브라운 박사: Hi 안녕하세요
여자: “You’re the shame researcher who had the breakdown.” 당신이 멘탈 붕괴를 겪었다는 그 수치심 연구원이죠. (이쯤에서 분위기 싸해지면서 매장에 있던 주변 사람들은 자기 아이를 끌어당기며 고개를 돌림)
브라운 박사: “It was a fricking spiritual awakening.” 골 때리는 영적 각성이었죠.
여자: “I know.” 잘 알죠 제가.
브라운 박사:…(할 말 잃음)
여자: “We watched your TED talk in my book club. Then we read your book and we renamed ourselves ‘The Breakdown Babes.'” And she said, “Our tagline is: ‘We’re falling apart and it feels fantastic.'” 저희 북클럽 시간에 당신의 테드 강연 영상을 다 함께 봤어요. 그러고 나서 우린 당신의 책도 읽었고, 우리 스스로 닉네임도 만들었어요 “멘붕 뇨자들” 우리 슬로건은 말이죠: ‘우리는 무너지고 있고, 이 느낌은 환상적이야.’
그녀는 이후 내심 “Vulnerability TED”라는 자신에게 붙은 캐릭터 이름을 즐겼다고 합니다. 원래 그녀는 수치심에 대해 6년 이상 연구해온 사람이었지만, ‘잘됐다. 취약성 전문가 타이틀을 얻은 김에,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수치심이라는 이 끔찍한 주제는 관두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2011년 테드 강연 후에 내 인생 끝났다 싶었던 시간을 살아내면서, 자신의 진짜 전문 분야인 '수치심'을 한 구석에 숨기고 있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연구원으로 서라기보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원칙을 저버린 느낌. ‘나를 파티장에 데리고 온 사람과 춤추는 예의(“you’ve got to dance with the one who brung ya”.)’를 잊어버린 그런 느낌이었다고 해요. 취약성을 포함해서, 용기, 창의성, 혁신과 같은 개념들은 그녀가 오랫동안 수치심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개념들이었거든요.
그녀는 본격적으로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브라운 박사는 한 가지 예를 듭니다. 미국에서는 인종이라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아주 조심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이 있는데, 그 이유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백인 특권(privilege)에 대한 언급 없이 인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불가능하고, 그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수치심에 몸이 굳어버릴 정도로 당황하기 때문이라고요.
브라운 박사는 또 다른 예로 수술실 이야기를 합니다. 수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가장 간단하고 좋은 방법은 체크리스트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라고요. 그건 의사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인양 교만해지지 않고, 실수 잘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수치/약점을 드러내야 체크리스트 시스템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수술실 사고 문제를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요.
그녀는 이렇게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고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심정으로 다른 테드 강연자를 언급합니다. Myshkin Ingawale, 그는 빈혈 환자들이 대책 없이 죽어가는 것을 막고자, 빈혈 검사 기술을 개발하는데 32번의 실패 과정을 거쳤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가 너무 하고 싶었던 말을 지금 하겠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You know what the big secret about TED is? I can’t wait to tell people this. I guess I’m doing it right now.This is like the failure conference. No, it is. You know why this place is amazing? Because very few people here are afraid to fail. And no one who gets on the stage, so far that I’ve seen, has not failed. (여러분 테드 강연의 큰 비밀이 뭔 줄 아세요? 저는 지금 제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말을 하려는 참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테드 강연이 실패담 컨퍼런스같다는 거예요. 진짜예요. 여기 테드 무대가 왜 대단한지 아세요? 여기 무대에 서는 사람들 중에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제가 봐 온 바로는, 아직 한 번도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보지 못했어요.)
브라운 박사 자신도 참담한 실패를 수도 없이 겪었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이 이 실패와 성공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수치심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작년 힘들었던 시기에 그녀를 구해준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언을 들려줍니다.
It is not the critic who counts. It is not the man who sits and points out how the doer of deeds could have done things better and how he falls and stumbles. The credit goes to the man in the arena whose face is marred with dust and blood and sweat. But when he’s in the arena, at best, he wins, and at worst, he loses, but when he fails, when he loses, he does so daring greatly. (중요한 것은 비평가들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서 경기자가 이래야 했었는데, 저래서 넘어졌네, 이랬니 저랬니 지적질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경기장 안에서 뛰며 얼굴이 먼지와 피와 땀으로 얼룩진 그 사람이다. 경기장 안에 있는 사람은 잘되면 이길 것이고, 못되면 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실패하고 지더라고 그는 대담하고 대단하게 진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이어갑니다.
브라운 박사는 그런 순간에 그 수치심 괴물을 조용히 시키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서 이렇게 말하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는 비평가들은 99%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자각하라고 합니다. 수치심이 내세우는 말은 항상 “자격 미달(“never good enough” )”입니다. 그것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라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브라운 박사는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를 말해줍니다.
수치심: 자신에게 집중 —> 나는 나빠 (난 나쁜 인간이야)
죄책감: 자신의 행동에 집중 —> 내가 한 행동은 나빠 (내가 나쁜 짓을 저질렀어)
누군가에게 상처 입히거나 잘못을 했을 때,
수치심: I’m sorry. I am a mistake. 죄송합니다 저라는 인간이 실수입니다 (제가 덜떨어진 놈이라서요).
죄책감: I’m sorry. I made a mistake.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아주 다른 것이며, 수치심은 중독, 우울, 폭력성, 공격성, 불리/왕따, 자살, 섭식 장애와 관련이 깊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죄책감은 좀 다른 방향입니다. 죄책감은, 우리가 되고자 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일을 저지르거나 이루고자 하는 일에 실패했을 때, 그 실수와 실패를 붙잡고 늘어지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책감은 불편한 것이지만, 데리고 살 수 있을 만한 것이라, 수치심이 우리에게 입히는 피해의 정도와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수치심은 공감 능력이 없는 소시오 패스가 아닌 이상 누구나 느끼는 (느껴 본) 것이지만, 남녀 성에 따라 그 모양새가 좀 달라집니다. (그녀의 연구 대상이 미국인들이었으므로, 아래 미국 여자, 미국 남자로 표기하였습니다.)
미국 여자: 기대되는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야 하고, 힘들어하는 모습 보이면 안 됨. (그래서 집안 대대로 텍사스 출신- 강하고 센 태도가 더욱 요구되는 문화가 있음- 의 브라운 박사가 멘탈 붕괴를 경험했다고 수 많은 대중 앞에서 고백하고 굉장히 힘들어한 것입니다)
미국 남자: 절대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됨. 곧 죽어도 터프해야 함.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수치심의 모양새에는 문화 차이도 존재하고, 세대 차이도 존재한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공통적으로 향하는 방향은, 사회적(보편적) 기대- 많은 경우 불가능하고 모순된 기대에서 오는 - 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걸리게 되는 그물이라는 것이죠.
그녀는 연구를 시작하고 4년 동안은 여자들만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책을 출판하고 북 사인회를 하는데, 한 남성이 찾아와 말을 걸었다고 해요. 다음은 그 남자와 브라운 박사의 대화입니다.
남자: “I love what you have to say about shame, I’m curious why you didn’t mention men.” 당신이 수치심에 관해 이야기 한 부분 참 좋았어요. 당신 책에 왜 남자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지 궁금하군요.
브라운 박사: “I don’t study men.” 저는 남자들은 연구하지 않아요.
남자: “That’s convenient.” 쉽게 사시는 군요. (비난조)
브라운 박사, “Why?”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남자: “Because you say to reach out, tell our story, be vulnerable. But you see those books you just signed for my wife and my three daughters?” 당신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하며, 취약해도 된다고 하지만, 당신은 사실 제 아내와 세 딸들만을 위해 사인회를 한 것이죠.
브라운 박사: “Yeah.”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네요.
남자: “They’d rather me die on top of my white horse than watch me fall down. When we reach out and be vulnerable, we get the shit beat out of us. And don’t tell me it’s from the guys and the coaches and the dads. Because the women in my life are harder on me than anyone else.” 제 아내와 딸들은 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백마 탄 채로 죽으라고 할 걸요. 우리 남자들이 나서서 취약해져도 된다고 했으면, 우린 아마 먼지 나게 처맞았을 거예요.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게 남자들 사이의 문화라거나 혹은 운동 코치나 아버지들이 그렇게 가르쳐서 그렇다고 하지 마세요. 제 인생에 여자들이 어느 누구보다 훨씬 더 저를 힘들게 - 절대 약한 모습 보이지 말라고-몰아세웁니다.
이후, 브라운 박사는 남자들을 인터뷰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런 과정을 거친 후 그녀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보스턴 칼리지의 Mahalik 연구팀의 연구를 언급합니다.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what do women need to do to conform to female norms?”
여자들이 여성에 대한 사회 보편적 기대에 (female norms)에 부합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미국인들의 대답은 이러했다고 합니다:
착할 것 (nice),
날씬할 것 (thin),
겸손할 것 (modest)
무슨 수를 써서든 잘 꾸밀 것 (use all available resources for appearance)
한국인에게 질문했어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같은 질문을 남자들에 대해서 했을 때 대답은 이렇습니다:
감정 조절 완벽히 할 것 (always show emotional control)
항상 일이 우선일 것 (work is first)
지위에 대한 야망을 가질 것 (pursue status)
몸싸움해야 하면 싸울 줄 알 것 (violence) - 폭력을 추구하라고 하진 않을 것 같아 의역을 해 봤는데, 자신이 없네요.-_-;;
남자에 대한 보편적 기대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해요. 미국보다 한국에선 남자들의 자상한 성격과 로맨틱한 태도가 더 요구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또한, 술자리에서 약한 모습 드러내는 것을 허용해주고 탓하지 않고 덮어주는 면도 있지 않나. 반면, 유교 문화, 가부장 문화의 잔재가 남아, 평생 두 집 - 원가족과 새로 이룬 가족- 살림 살아야 하는 듯한 책임지고 신경 써야 할 가족의 범위가 더 넓은 무게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브라운 박사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공감이야 말로 수치심을 처리할 수 있는 해독제이기 때문이다.
- 당신이 수치심을 배양접시에 넣고 자라게 하려면, 그것은 세 가지를 필요로 한다: 비밀, 침묵, 판단
- 당신이 수치심을 배양접시에 넣고 같은 양의 공감을 넣어주면, 수치심은 더 이상 자랄 수 없다.
- 우리가 힘들 때 가장 도움이 되는 말은: 사실 나도 그래 (me too).
-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고자 한다면, 그 길은 바로 취약성이다. (vulnerability is going to be that path)
- 경기장 밖에 서 있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나도 한다. 방탄복 잘 갖춰 입고 완벽할 때 경기장에 들어가서 한 판 승부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생각 정말 많이 든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최대한 완벽한 모습으로 방탄복을 장착하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날이 온다 해도, 우리가 보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 그러니 (두려워 말고,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기 바란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하고, 마주 보고 싶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이기든 지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대담하고 대단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제 안의 수치심을 다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차여서, 정말 한마디 한마디 귀 기울여 강연을 들었어요. 생각보다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사회적 보편적 기대가 제 삶 전반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깨달았어요. 한국과 미국 양쪽 사회의 보편적 기대 그 사이 어디 틈새에 갇혀버린 느낌. 양쪽에서 '자격 미달'이라고 공격 하는 느낌. 그래서 나이 먹을수록 마음에서 수치심을 걷어내기가 더 힘들어지고, 그게 대인관계와 자녀양육, 그리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요. 그 사회적 기준과 보편적 기대라는 것이 서로가 서로를 쉽게 헐뜯을 근거, 자기 스스로를 비관할 토대를 마련해 주는 상황인 것을 깨닫습니다.
얼마 전에 본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여주의 입장을 떠올려봅니다. 여성을 향한 상충하는 사회적 문화적 기대와, 여자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성 차별로 인해 생긴 성 역할 심리 문제 때문에 자아 분열하는 주인공의 심리적 고통.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상충하는 기대, 되고 싶은 모습, 사회가 그려주는 보편적인 여성의 모습, 현실,.... 이 사이 어느 사면초가 상황에 봉착해 사방으로 공격받으며 시달리고 있는 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들도 다른 모습으로 마찬가지의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겠구나. 그래서 현대인의 정신적 고통이 심한 거구나. 미국 사회도 이 수치심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수치심도 코로나만큼 팬데믹 상황이구나……
나도 브라운 박사의 강연에 나왔던 그 북클럽 모임 여자들처럼, 그 보편적 기대, 보편적 기준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기꺼이 무너져버려야겠다. 남의 기대에 휘둘리지 말고, 그냥 나다운 나로 즐겁고 자유롭게 살아야겠다, 사회가 문화가 조장하는 수치심이 몰려올 때, ‘네가 뭔데 헛소리야!” 하고 당당히 맞서야겠다, 내 모습 빈틈 많은 그대로를 즐기는 인생의 판타스틱한 느낌을 회복해야겠다,… 이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이 테드 강연은 제 숨통을 좀 열어주는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같은 느낌으로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다가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