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는 나, 속이는 나

내 마음을 여행 중입니다

by 하트온

삶은 누구나 속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19세기 러시아의 낭만주의 시인이자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푸쉬킨의 시 구절이다. 200년 전의 사람이 쓴 이 시 구절이 여전히 신선한 날을 번득이며 우리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들 수 있는 것은, 글이 시대와 상관없이 반복되는 중요한 인생의 원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누구나 다 인생에 속는다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 어디에 사는 누구나 속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 나 아닌 타인의 말을 듣고 믿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곤 언젠가 속았다는 걸 알게 된다. 시키는 대로, 조언해 주는 대로, 부모가 사회가 제시하는 가치관대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거기에 원하는 열매가 없다는 것을 곧 발견하고 만다.


나를 믿지 않고 남을 믿고 따라가는 길에는 열매가 없는 법이다. 처음부터 내 인생이 아닌 길로 잘못 든 것이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 크고 실한 열매처럼 보였던 것은 가까이 가보면, 착각을 불러일으킨 가짜, 허상이다.


세상에 너무나 자신의 말이 생각이 옳다고 우겨대는 어른들이 많으니, 나를 믿을 줄 모르는 아이들은 혹해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세상의 어른들은 모두 자신의 생각만 믿고 내세우는 마술 피리를 불고 있고, 아이들은 맹목적으로 따라간다. 그리고 모두 인생에 속고 마는 강물로 뛰어든다.



속은 사람이 속인다


인간은 속고 또 속고도 정신 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속은 걸 느끼면서도,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끝까지 자신을 속이기로 마음먹는다. 속았다는 걸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부모가, 내 스승이 나를 인생의 강물로 끌고 왔을 리가 없어. 여기가 그나마 다른 곳보다는 좋은 곳이니까 데려왔을 거야.


너무 오래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을 견딘다. 왜 슬픈지 모르겠는데 자꾸 눈물이 삐죽삐죽 새어 나오고, 강물에서 헤매지 않고 땅을 한걸음 한걸음 밟으며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해진다. 자꾸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나게 느껴지는 열등감의 불이 가슴을 태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끝까지 내가 속아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내 모든 삶, 내 정체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암만, 그런 인생 낭비를 할 수는 없다.


이젠 억울해진다. 그래도 이 길이 맞을 거야. 여기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는 데니까 내가 사는 이 모습이 보편적 기준인 거야. 잘못된 길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마술피리를 불기 시작한다. 여기 강물을 헤엄치며 즐기는 삶도 꽤 괜찮은 삶이라고, 피곤하게 자꾸 걸어가지 말고, 여기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평범한 삶에 안주하는 게 어떠냐고 물귀신 작전을 펼친다. 자신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 우르르 따라가 강물로 뛰어든다. 아닌 것 같아도 모두가 다 그렇게 한다니 강물 속을 헤매고 다니며 혼란과 실망을 견디고 살아간다.


이게 아닌 것 같지만, 이까지 왔고 다른 길을 모르니 그냥 괜찮은 척 행복한 척 포장하기로 한다. 모두가 마술 피리를 불어 댄다. 여기가 최고입니다. 모두가 모여드는 이곳, 평범한 삶이 최고예요! 모르는 아이들,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마술 피리를 불어 주고, 같은 처지의 서로가 서로에게 속고 속이는 삶이 괜찮은 것이라 정당화시켜준다. 우리가 이게 옳다고 하면 옳은 거지. 우리가 다수고 우리가 보편적 기준이니까.



강물을 벗어나 혼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속고 속이는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익숙한 강물도, 마술피리도 버리고,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가 될 수 있어야만 한다. 어쩌다 강물에 모여든 무리가 아니라, 진짜 서로의 길을 지지하며 성장을 응원할 내 사람들이 나타날 때까지, 혼자 길을 걷기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길의 시작이 어둡고 외롭고 황무지 같아도, 용기를 발휘하고 꾸준히 묵묵히 걸어내는 노력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옆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뭉치고 수다 떨고 즐기는 것을 보아도 눈 꾹 감고 홀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홀로 나아가는 자에게만 자신의 자신만의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내 길을 찾아낼 때에만 속이는 마술피리가 아닌 진실만을 소통하고, 진짜 열매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허상을 따라가는 삶이 아닌, 나에게 있는 힘을 확신하고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그때에 이르러서야 하루하루를 '기쁨의 날'이라 부를 수 있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gera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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