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기쁜 삶으로 가는 길
행복은 치즈가 아니야
스펜서 존슨 박사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은 두 마리의 쥐와, 두 명의 작은 사람만이 등장하는 매우 단순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 쉽고 짧은 스토리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는, 내가 삶을 깨닫는 만큼 다른 게 보이는 몹시 신기하고 요상한 마법스러운 책이다.
두 명의 작은 사람 캐릭터 이름은 '허'와 '헴'이다. '헴'과 '허'는 행복의 근원, 인생의 목적이라 믿고 살아왔던 치즈를 '어느 날 갑자기' 잃고, 몹시 실망하고 좌절한다. 언제나 치즈가 있던 안락한 생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두 사람은 치즈를 찾아다니는 끔찍한 고생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만큼, 그들에게 닥친 변화를 온 마음으로 거부하고 언젠가 다시 옛 치즈가 나타나기만을 맹목적으로 기다려 본다.
'헴'과 함께 옛 치즈가 있던 곳 주변을 파보고 살피며 기다리던 '허'의 마음에 어느 날부터 새로운 치즈에 대한 열망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열망은 비어버린 치즈 창고를 떠나고 싶게 만든다. '헴'과 같이 있는 게 마음이 안정이 되고, 헛고생만 하게 될지 모르는 새로운 도전이 두렵기도 해서 망설이고 망설이며 시간을 많이 지체하기도 하지만, '허'는 점점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설 때가 되었다는 믿음과 갈망 용기로 가득 차, '헴'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도저히 설득이 안 되는 '헴'을 두고, '허'는 망설이고 망설이다 마음을 정하고 길을 떠난다. 새로운 치즈를 조금 찾았을 때, 그것을 맛 보여 주고 '헴'을 다시 한번 설득하기 위해 되돌아가 보지만, '헴'은 새로운 치즈를 맛보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옛 치즈만을 원한다며 고집을 부린다. 어쩔 수 없이 '허'는 다시 홀로 길을 나서야 했다. 그렇게 홀로 새로운 치즈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허'는 점점 진짜 행복이 어디서 오는 지를 발견한다. 행복은 치즈 그 자체가 아니었다.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자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 과정이 몹시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익숙한 안락과 편리를 잃을까 두려워, 그 자리에 버티고 있으면 누가 언젠가 치즈를 갖다 놓겠지 하고 기다리기만 했던 자신의 과거 모습, 밖에 나가 고생하고 찾아봤자 새로운 치즈라는 것이 없으면 어떡하나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던 자신의 정신이 얼마나 나약했었는지를 깨닫는다. 지금 이 순간,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움직이고 있다는 이 선택 자체가 자신을 얼마나 강건하게 만들고 있는지, 자신을 얼마나 기쁘고 힘이 넘치게 만드는지를 자각한다.
동시에, 무엇이 자신을 더 빨리 깨닫지 못하게 시간 낭비하게 만들었는지도 깨닫는다. 바로 그 두려움. 온갖 나쁜 상상과 걱정을 하게 만들고 불안에 망설이게 만들던 그 두려움. 두려움은 최악만 상상했다. 아무것도 못 찾고 의미 없는 고생만 하게 될 거라는 두려운 상상보다 현실은 항상 더 나았고, 그는 사실 길을 찾는 내내 여기저기서 조금씩 먹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점점 더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었고, 강하고 빨라져 갔다.
'허'는 확실히 치즈를 찾는 과정, 이 길 자체가 행복임을 깨닫기에 이른다. 옛 생각, 옛 신념에 머물러 있는 것은 새로운 치즈를 가져다주지 않을 뿐임을 자각한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러한 변화가 좋은 일의 시작일 거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힘 있게 살아가는 길임을 깨달았다.
저 사람들이 먹는 치즈
나는 치즈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특히 이름 난 대학, 대학원, 직장,... 남들이 선망하는 기관을 찾아다녔다. 문제는 그게 내가 정말 원하는 치즈인지 확신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신소재를 개발해 국가 경제를 살리는 영웅이 되는 것, 이름 난 박사 교수가 되어 책을 쓰고 전 세계에 강연을 하고 다니는 정도의 성취를 하면 내가 만족할 만한 평생 믿고 살 만한 충분한 치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성공에 도달하기는커녕, 내 삶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옛날에 보았던 - 그 사람들이 먹던, 맛있어 보이던 - 치즈를 원하고 있었기에 마음이 몹시도 괴로웠다. 마음이 괴로우니 마음을 자꾸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 마음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나는 내 마음이 정말 원하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몹시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려고 발버둥 치던 나의 모든 노력이 몹시도 허무해진 한 순간, 나는 노젓기를 그만두어 버렸다.
나는 내 마음을 보았고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몹시도 '존중받는 소속감'을 원하고 있었다. 내가 영웅이 되고 싶고, 성공해서 인기 교수가 되고 싶은 것도, 다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소속감'에 도달하는 길을 몰랐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흉내 내고자 한 것이었다. 항상 제자들에게 둘러 싸여 존경받고 사랑받는 것 같은 교수의 치즈, 전 세계에서 지혜를 나눠 달라고 요청받고 인정받는 컨설턴트, 강연자들의 치즈. 그 치즈가 너무 맛있고, 영양가 있게 보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치즈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치즈가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냄새부터가 싫었고, 그것을 만들어 가는 방식도, 치즈가 떨어지지 않게 지키는 방식도 모두 내가 머물러 동참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마음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길을 바로 떠났어야 했다.
문제는, 내가 그 쓸데없는 치즈를 위해 투자해온 시간과 노력의 양에 너무 큰 가치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고난과 맞부딪칠 마음, 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마음이 없었다. 뒷걸음질 칠 자리가 없었고,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그동안 이만큼 공부하고 쌓아온 게 있으니, 금방 저 사람들 먹는 것보다 더 내 취향과 식성에 맞는 치즈를 그 근처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예전의 치즈 창고를 금방 떠나지 못하고 주변에 좀 더 내 입맛에 맞게 변형된 치즈가 없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실험대는 떠났지만 과학에 관해 글을 쓰는 과학부 기자, 과학 기술로 미술을 복원하는 일 미술 복원사, 기술 변호를 목적으로 하는 기술 특허 전문 인력,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는 아티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깨끗이 떠나지 못하고 뭔가 주변에 내 치즈가 있을 거야라고 믿는 믿음은 자꾸 헛수고하고 허탕 치게 만들었다. 이곳저곳 다른 직종들을 찔러보고 다니며 간을 보는 일은 마치 정확히 내가 원하는 치즈가 뭔지를 모른 채 시장에서 이것저것 찍어 먹어 보고 다니는 느낌 같았다. 급한 마음으로 하는 시식은 입안에서 이맛과 저 맛이 섞여,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어떤 일도 바로 내가 원하는 맛을 낼 수 있는 치즈가 아니었다. 좋은 재료를 모아 조리하고 숙성시키고 관리하는 희생을 필요로 했다. 괴로웠다. 괴로운 이유는 열매는 빨리 거두고 싶고, 길을 찾아 헤매는 희생은 하기 싫었다는 데 있었다. 더 이상 희생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떠난 엔지니어, 연구원이라는 직함을 대체해 줄 다른 대체 직함을 지금 당장 원했고, 마음이 급했다. 그 조급한 마음은, 항상 어떤 일을 시도해도 막다른 골목 위태로운 궁지로 몰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바쁘게만 만들고 아무리 노력해도 열매를 못 보는 실패감의 블랙홀 속으로 내 인생을 몰아갔다.
내 치즈를 만들고 찾는 길
결국 다른 대안이 씨가 마른 시점에 도달해서야,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했다. 옛 치즈 창고에서 한참을 머물며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다 결국 미련을 버리고, 그토록 두려워했던 길바닥에 다시 나가서 헤매 보기로 마음을 먹은 '허'처럼, 나도 깨달았던 것이다. 그 어떤 일도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리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욕심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만 하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시작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말이다.
바닥에서 시작하는 일은 의외로 힘들지 않았다. 상상했던 만큼의 비참함이나 궁색함도 없었다. 무시당할까 봐 걱정했는데, 새로 시작하는 용기에 박수를 쳐 주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리고 나처럼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제2의 커리어를 도모하는 사람들은 꽤 많이 있었고, 심지어 그때의 나보다 훨씬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도 많았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어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기도 했다.
한 번 바닥에 내려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게 만들었다. 언제든 또 바닥으로 내려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해도 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실제로 수시로 일을 하다가 제대로 쌓아진 것이 아니면 다시 허물고 바닥에서 제대로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바닥에 내려가도 먹고살 수 있었고, 나름의 즐거움과 보람이 있어서 정서적으로도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나에게 신선한 기쁨을 주었고, 정말 나에게 맞는 일은 결과보다 과정이 행복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치즈가 완성되기도 전에,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 냄새까지도 다 너무 좋아서, 내 마음에 즐거운 기대감과 설렘이 계속 들끓어 그냥 그 전 과정이 행복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아직도 바닥에서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나가는 느낌으로 내가 원하는 치즈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하루하루 즐겁게 하고 있다. 세상이 변화하면 변화하는 대로, 또 어떤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인가, 내가 이 어려움을 뛰어넘는 과정에서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 기대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내 치즈를 만들고 찾는 길, '행복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치즈라면, 그 치즈를 만드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즐겁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seth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