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기쁜 삶으로 가는 길
정말 의리 있는 친구
한 번도 두려움은 나를 떠난 적이 없다. 모두가 나를 떠나고 거절하는 비참한 순간에도, 언제나 두려움은 꼬박꼬박 찾아와서 내 곁에 머물렀다. 제발 이제 집에 좀 가래도 끄덕 없이 묵직한 엉덩이를 내 곁에 바짝 붙이고 앉아 있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함께한 절친인지. 아마도 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엄마와 나를 연결하는 탯줄을 끊고, 엄마 몸속 온기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내던져진 순간부터 나는 두려워 울었을 것이다. 더 귀한 인간이 태어난 듯 주변의 환심을 쉽게 사는 남동생을 보는 것도 두려웠고, 익숙한 엄마품을 떠나 유치원, 학교에 가는 것도 두려웠다.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학업 석차를 비롯한 모든 서열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밀려나는 것이 두려웠고, 대학은 대학대로 각종 거절감이 난무하는 관계의 정글 무법지대였다. 다른 도시로 다른 나라로 공부하러 떠나는 것도 두려웠고, 남과 결혼하는 것도 두려웠다. 아이들을 낳고부턴 두려움은 비슷하게 불쾌한 수준의 친구 패거리들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 세상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잘 살아갈 수 없을까 봐, 내가 교육을 제대로 못 시켜 아이들의 삶에 흠집을 낼까 봐,..., 너무나 새롭고 다양한 두려움이 증폭되고 확장되었다. 아이들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다스리기 시작하는가 싶으니, 나이를 먹은 몸이 전과 다른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고 나는 금세 죽음의 공포까지 들러붙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이제 끝내야 할 관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친구와 좀 헤어지고 싶은 열망을 느끼고 있다. 기억에도 없는 순간부터 함께 살아왔기에 나는 이 친구가 늘 항상 곁에 있는, 떨어질 수 없는 존재로만 생각했었다. 이 친구의 이름이 '두려움'인지도 처음엔 알지 못했다. 너무나 익숙한 감정이었고,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그를 서서히 내 마음에서 내치기 시작한 것은, 모두가 두려움과 함께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어떤 순간부터 나는 두려움에 잠식된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의 차이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전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극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 끝에 나는 두려움이 없는 전사의 자유를 선망하는 것이 아닐까 자각하기에 이르렀다. 전사는 두려움에 빠지는 것을 극도로 피한다. 마치 두려움을 마음에 들이는 자체가 불명예이며, 엄청난 수치인 것처럼 두려움에 최대한 용감히 맞서려고 애를 쓴다. 두려움에 압도되어 숨고 피하는 겁쟁이가 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그런 치욕을 당하느니 내 손으로 검을 내 목에 꽂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 드라마 속 전사에게는 항상 전사보다 못난 적이 있다. 적이 전사보다 악하고 약한 이유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비열한 전략을 짜고, 숨고 도망 다니기 바쁘다. 약한 자는 강한 자 앞에서 쉽게 비겁한 자가 되고 만다.
나는 니체의 낙타와 사자, 어린아이와 초인, 그리고 귀족 정신의 비유들을 오래 고민하면서,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 어린아이의 정신으로, 노예의 정신에서 귀족 정신으로, 자신을 극복하고 초인으로 나아간다는 의미가 모두 자신이 자신의 주인의 된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자신과 자신을 연결하는 본성의 욕구를 이룬다는 의미이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끝없이 변화하는 불확실한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뛰어넘어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임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전사와 니체는 나에게 두려움에게 조금도 지지 말고, 맞서고 이겨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두려움이라는 친구의 실체
끊어내자고 마음먹고 보니, 두려움이 평생에 걸쳐 나의 내면에서 하고 있는 짓들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를 손쉽게 끌려다니는 노예로 만들고 있었고, 언제나 쉬운 안락과 편리를 숨어 좇아 다니게 만드는 비겁한 존재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시도도 하기 전에 실패를 상상하고 나로 하여금 시작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멀쩡하게 잘 있는 것들도 무너질까 없어질까 걱정하고 불안해하게 만들었다. 두려움은 언제나 극단의 최악을 상상하는 심히 부정적인 존재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두려움 주변의 다른 친구들도 반갑지 않았다. 특히 두려움은 항상 수치심이라는 친구를 불러낸다. 내가 두려움에게 설득당하고 잠식당하는 그 순간마다 수치심이라는 그의 친구가 파고 들어와 내 마음을 더 주눅들고 너덜거리게 만들어 놓곤 했었다. 가령 사람들에게 반박을 당할까 봐 두려워 용기를 내기 어려운 순간에, 너만 우스운 꼴 당하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주게 될 거라고 몹시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들이 둘이 힘을 모아 나의 내면을 짓밟았던 것임을 깨닫고 나는 뒤늦게야 피눈물을 흘린다. 외로운 세상에 그나마 익숙한 친구라고 문을 열고 대접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이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를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다시는 이것들에게 농락당하고 살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후반까지 살았던 나폴레온 힐이라는 미국 작가는 세계 대전과 경제 공황과 같은 사회적 재앙들이 사람을 두려움에 휘둘려 모조리 쓰러지게 만드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던 사람으로서, 두려움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다! 두려움은 악의 전령이다. 어디든 두려움이 나타났다 하면 즉각 제거해야 보다 더 완전한 의미의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는 두려움이야 말로 인간 내면의 힘을 차단하고 사고방식을 뒤틀어서 모든 가능성과 기회들을 빼앗아 가는 '악'이라고 보았다. 사람의 잘됨과 성공을 저해하는 가장 악질의 방해꾼으로 여겼다. 발견되면 신속히 제거해야 하는 무엇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가난, 비판, 질병, 실연, 자유 상실, 노화, 죽음 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각각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의 대안들은 니체의 초인이 되기 위한 자기 극복, 정신화와 매우 닮아 있다. 내게 주어진 어려움들을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감사하고 긍정하며 그 안에서 유익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고, 그것이 내 삶에 유익한 의미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치유하고 극복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긍정의 신념만이 나를 무기력하고 우울한 정신으로 끌어가려는 두려움에 대한 해독제라고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나폴레온 힐도,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병증으로 죽을 고생을 했던 니체도 거듭거듭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힘든 삶이 자신에게 심히 좋은 것이었다고 깨닫기에 이른 정신화의 화신 니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고난 속에는 무엇보다 인생의 참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지루한가! 고난을 겪으면 겪을 수록 내 마음은 더 설렌다. There is rather joy in life in hardship. A voyage without wind waves, how monotonous! The more hardships I suffer, the more my heart beats.
두려움을 끌어내리고 지배하는 혁명
두려움을 버린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 통제가 안 되는 것, 안락하지 않고 불편한 것, 불확실한 변화들이 내 삶에 밀려들어도 괜찮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올 테면 와라. 내가 잘 다루겠고, 결국 내게 좋은 일로 만들 것이다.
라고 각오를 하는 것이다. '그건 너무 싫은데, 피하고 싶다. 도망갈까'라고 마음을 두려움에 휘둘리는 것과 반대의 마음이다. 니체가 말한 귀족의 정신 - 초인 정신, 정신화 -이며, 나폴레온 힐이 말한 나를 믿고 나아가는 신념의 힘이다.
또한 두려움을 버린다는 것은 내 안의 체계를 뒤집어 혁명을 이루는 것이다. 감정에게 주인 자리를 내어주고, 나 스스로를 노예로 방치했던 내면의 위계질서를 뒤집는 일이다. 내가 왕의 자리, 주인의 자리를 되찾는 일이다. 두려움은 어디 가지 않고 나의 세계 안 어딘가에 항상 있을 것이지만, 두려움이 설 자리를 정해주는 것은 나, 주인이어야 한다. 두려움은 나의 세계의 경계에 서서 국경을 지키고 때때로 위험을 알리는 저 멀리 봉우리 위 파수꾼 정도의 자리면 충분하다.
두려움, 너의 자리를 내가 정하노라.
이제 두려움은 나의 노예가 되었고, 내가 그의 귀족, 주인이 되었다. 마침내 되찾은 이 주인의 자리는 힘이 넘치고 자유롭고 상쾌하고 선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Denexb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