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미니멀리스트, 니체
인간에게 용기는 가장 훌륭한 살인자다. 공격하는 용기 그것은 죽음까지도 살해한다. 왜냐하면 용기는 "그게 삶이던가. 그럼 좋다. 다시 한 번!"이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와 미니멀리스트의 공통점
니체의 망치는 실체 없는 허상뿐인 관념을 깨기 위해 그가 사용했던 도구다. 특정 관념이나 개념이 정말 사람들이 믿고 진리로 받아들일 만한 실체가 있는지, 아무도 본 적 없고 느낀 바 없는 관념이 인생에 과한 부담과 부조리만 만들고 있진 않은지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망치로 두드려가며 확인해 본 것이다. 나에게 니체의 이 행위는 마치 물건을 킵할지 버릴지 결정하기 위해 콘도 마리에가 물건을 만져 보며 그 에너지를 느껴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콘도 마리에는 물건 정리를 위해, 물건을 다 꺼내 놓고, 하나하나 만져본다. 나에게 설레는 느낌, 에너지를 주는 건 킵. 마음에 묵직한 부담을 주는 물건은 과감하게 포기하라고 한다. 나에게 잘 맞고, 내일 당장 입고 나갈 수 있는 실용적이고 예쁜 드레스는 옷장에 잘 걸어 놓고 잘 활용해야겠지만, 나에게 더 이상 맞지 않는 옷을 예전에 거금을 들여 구매했다는 이유로 끼고 있던 옷은 없애는 것이 옳다. 무조건 물건을 없애고 가난하게 살자는 것이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물질 탐욕의 노예가 되지 말고, 내가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 나의 힘을 고양시키는 물건들만 잘 분별하여 가지고, 주도적으로 나에게 쾌적한 에너지를 주는 나다운 공간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참 의미다.
니체는 이러한 참 미니멀리즘을 사람의 가치관 관념에 적용하고 있다. 그는 35세에 잘 나가는 대학 교수직을 사퇴하고 요양 생활을 선택해야 했을 정도로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병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그는 누워서 사유할 시간이 많은 삶이었다고, 그래서 많은 시간을, 꼭 생각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쓸 수 있었다고, 자신의 삶에 대해 몹시 긍정적인 말을 한 바 있다.
그는 몸이 약한 상태에 있던 만큼 어떤 생각이 힘을 주는지 혹은 힘을 빼는지 몹시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을 옥좨고, 억누르고, 거짓으로 악하고 약한 태도로 이끄는 관념들을 접하면 두통이 일며 반응했을 것이다. 자신감을 주고 마음을 살리는 이야기들을 만나면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잠시 고통을 잊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그의 몸의 반응으로 여러 가지 철학 가치관들을 하나하나 느껴보며 진단하고 분류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니체도 미니멀리스트도 더 힘 있는 삶,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니체는 힘이 강화되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라고 믿었고, 행복을 위하여 무엇이 나에게 힘을 주는지를 민감하게 느끼고 적극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하였다. 미니멀리스트는 어떤 물건이 나에게 힘을 주는지를 느끼고, 니체는 어떤 철학이 나에게 힘을 주는지를 느낀다. 미니멀리스트는 구질구질 이고 지고 다니던 오랜 짐덩이를 탈탈 털어내, 공간을 쾌적하게 정리하고, 니체는 퀘퀘 묵은 전통 관념 철학들의 실체를 탈탈 털어, 머릿속을 정리한다. 그뿐 아니라, 니체는 '망치의 철학'이라 불리는, 현대인의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위대한 철학 가치관 정리법을 남겼다. 사람들은 이제 종교도 철학도 어떤 사상에도 쉽게 억눌리거나 끌려들어 가지 않을 수 있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다양한 생각과 관점들을 하나하나 두드려 살펴보며 과연 내 삶에 유익할 것인지를 진단해보고 결정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현대인 모두가 스스로를 믿고 당당히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주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철학 미니멀리즘
니체의 망치 덕분에 우리는 절대적으로 옳을 것이라 믿고 있던 관념들도 점점해 보아야 한다는 경각심과 용기를 얻었다. 그는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신성시하며 아무도 범접하지 못했던 기독교 사상, 소크라테스/플라톤의 사상의 중심 근본에도 망치를 갖다 댔으며, 자신이 큰 영향을 받은 정신적 스승이었던 쇼펜하우어도 빼놓지 않았다. 그의 염세주의가 불러일으키는 정신적 쇠퇴를 꿰뚫어 보고 망치를 휘두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당대 대유행이던, 다윈주의 진화론과 2차 산업혁명의 불길을 거세게 일으키며 맹신해야 할 절대적 가치의 반열에 당당히 오른 과학에도 망치질을 빼놓지 않았고, 쇼펜하우어의 영향으로 전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져가던 문예 사조인 퇴폐주의 -데카당스-에는 더욱 꼼꼼히 망치질을 했다.
이것은 마치, 지금 유행하는 - 모두가 가치 있다고 믿는- 모든 물건을 꺼내놓고, 정리를 해 보자고 덤비는 것이나 다름없다. 각 물건이 사람에게 어떤 에너지를 줄 것인지를 가늠하며, 꿰뚫어 보는 사람만 아는 기준으로 물건을 마구 버리는 것을 본다면, 보편적 기준의 통제 하에 있는 시선으로는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선호하고, 갖고 싶어 하는 걸 버리는 사람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니체는 그렇게 주변의 오해와 질시 속에서, 육신의 병과 더불어 찾아온 정신 붕괴에 시달리며, 당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철학책을 몇 권 펴냈을 뿐인 무명 철학자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용기백배했던 망치질은 이후 유럽 사회에 쇠퇴의 길을 벗어나 인간의 힘을 고양시키자는 2차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고, 그가 타계한 지 - 1900년 - 100여 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후세 사람들에게 남의 관념 남의 시선의 노예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자신의 주인으로 힘 있게 살아가는 중요성을 일깨우는 존재가 되었다.
온갖 쓸데없는 관념들과 그것들이 불러오는 두려움, 남의 시선 남의 평가에 쉽게 휩쓸리는 약한 노예 정신을 이기고, 용맹하게 자유로워져, 자신의 본질을 되찾자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며, 이것은 남이 가져야 하는 걸 나도 가져야 하는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 물질주의적 비교 의식이 부르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질적 삶의 의미를 되찾자는 미니멀리스트 목소리와 일치한다.
나답지 않은 것, 내 삶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고 나를 괴롭히기만 하는 생각들을 털어내고, 씻어내고, 깨끗이 정리해버리자는 것이다. 나를 살리고 힘을 주는 것들로 내 삶을 내 머릿속을 잘 정리하고, 내 삶을 스스로 주도하여 잘 통제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니체도 미니멀리스트도 목적은 하나다.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는 것은 버리고, 행복을 주는 것은 적극 추구하자는 것이다. 행복을 주는 것은, 어떤 세상의 관념에도 휘둘리지 않는 강하고 단단한 나의 힘, 나다운 삶이 만드는 힘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