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위버멘쉬의 명품 미니멀리즘

철학 미니멀리스트, 니체

by 하트온
삶을 향한 우리의 강인한 의지에,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긴 싸움에, 삶이 허락하는 덧없는 선물에까지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우리의 여린 심성에 인생은 합당한 축복을 내린다. 그 축복으로 우리는 마침내 삶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얻게 된다. 즉 우리의 사명을 되찾는 것이다. -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위버멘쉬란 자신을 극복하는 사람이다


위버멘쉬란 괴테가 평생에 걸쳐 공들여 완성한 <파우스트>라는 작품 속에서 최초 창작한 단어다. 이 최초의 위버멘쉬, 파우스트는 결코 만족하거나 멈추는 법 없이, 어떤 한계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로 돌진하는, 끝없이 자신을 변형시키가며 새 삶을 개척해 나가는 전무후무 새로운 이미지의 독일 지성인을 탄생시켰다.* 괴테가 창조한 생명력 넘치는 이 건강한 인간형에 영감을 받은 니체는, 뜬구름 잡는 초현실 관념들을 벗어내고 대지에 발붙인 인간, 차라투스트라라는 자신만의 위버멘쉬를 재창조해내기에 이른다.**


위버멘쉬는 초인이라 번역되기도 하고, 영어 슈퍼맨 오버맨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한다는데, 무엇이라 부르건 무슨 상관이랴. 니체가 의미한, 자신을 극복하여 더 행복하고 힘 있는 자신으로 스스로를 재창조해 낸 인간이라는 의미를 알고, 그 개념을 바로 나, 나의 인생을 재창조하는데 땔감으로 써내면, 니체는 자신의 삶이, 병마와 싸우며 꽃 피운 사유가 의미 있었다고 분명 만족하리라 믿는다.


우선 나는 위버멘쉬를 내가 이해하기 쉬운 나의 언어로 옮기고 나의 위버멘쉬로 재창조하는 작업부터 시작하겠다. 나에게 위버멘쉬는 세상에 태어나 자라는 사이 세상의 각종 관념에 억눌리고 빼앗겼던 자신의 마음을 되찾아 다시 일으켜낸 자기 마음의 정복자다. 또한, 각종 사회적 페르소나를 걷어내고, 현대 사회가 내리꽂는 각종 정신적 강박을 떨쳐 내고, 자신의 본질적 의미를 찾아 자신의 삶을 사는 나다운 미니멀리스트다.



나 위버멘쉬는 미니멀리스트라서


2022년 내가 재창조하는 위버멘쉬는 현재의 결핍과 아픔을 극복하는 자이고, 누구도 막거나 앗아갈 수 없는 자신의 힘을 키워가려는 자다. 강한 힘을 원하는 자는 자유가 필요하다. 내 심신이 어딘가에 묶여 있거나 너무 버거운 등짐에 눌려있다면 힘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한 힘을 원하는 사람이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자유일 수밖에 없다. 어떤 다른 힘보다 내면의 힘을 바라는 위버멘쉬는, 내 마음에 짐을 쌓아 힘을 빼는 관념을 정리하고 없애고자 한다.


위버멘쉬가 없애야 자유로워질 무거운 관념 중 하나는 '나도 명품을 소유해야'라는 강박이다. 여기서 명품이란 명품 가방 정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학벌부터 사회생활, 자녀 양육에 있어서까지 모든 면에서 가장 우위, 서열 최상급을 점해야 한다는 강박까지 포함한다. 위버 멘쉬는 잠시 아무 가치가 보이지 않는 실체 없는 강박에 헛웃음을 웃는다. 이런 종류의 빈껍데기 관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알고 있는 이 사람은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 인간의 내면에 이러한 압박을 만드는 생각의 근원으로 달려가 관찰한다.


강박의 뿌리 속엔 몹시 다양한 생각들이 있다. 남이 가진 걸 나도 가지지 못하면 내 존재 의미가 뿌리째 흔들리는 느낌. 보편적 무리 속에 끼지 못하면 단절되는 느낌. 물건 하나라도 최고 가치로 인정받는 걸 가져야 안심되는 느낌. 선택 하나로 나의 가치, 나의 격이 상승되는 느낌. 있어 보이고 완전해 보이는 완벽한 이미지 추구.


위버멘쉬는 그 모든 것을 꿰뚫어 사람이 진심으로 열망했던 것을 찾아낸다. 그것은 사랑과 관심, 진정한 소속감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것을 원하는 마음이 너무나 크고 급해서 몹시 비뚤어진 형태로 잘못된 소스를 골라 충족하고 있는 인간을 발견한다. 함께 어울리고 싶은 무리들이 불을 켜서 가까이 다가와 주는 따뜻한 소속감을 느끼고자, 흡연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짠 함께 기울이는 술잔 속에 정이 가득 담긴 것 같아, 음주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물건이 불러다 주는 듯한 잠시 잠깐의 특별한 관심과 스스로의 이미지가 달콤해서, 형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 영혼을 팔아서라도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끊을 수 없는 소비를 시작하였다. 마치 목이 마르다고 모래를 퍼 먹으며 중독에 이른 형국이다.


인간이 원하고 바라는 진짜가 아닌 결국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가짜 인공감미료 같은 것들이 쉽고 빠른 평안을 원하는 사람들의 내면에 급속도로 스며든다. 일시적 안정감이라는 그럴듯하게 달달한 속임수가 삶 구석구석 퍼져 나간다.


그것들이 인간에게 참 힘을 주고,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야, 술 담배도 실컷 하고, 빚을 지고 영혼을 팔아서라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집을 반짝거리고 예쁜 물건으로 도배하라고 권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자유로워질 길도 행복해질 길도 아니다. 내 형편에 부담스러운 소비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물건은 나의 주인이 된다. 비가 오면 온 몸으로 '그분'을 보호하는 당신, 바닥에 '그분'을 절대 내려놓지 않고 아무리 무거워도 이고 지고 있는 당신, 물건의 노예가 된 자신을 순식간에 발견하게 될 것이다. 끊임없는 비교와 빛나는 신상에 대한 목마름에 끌려다니는 사막 한가운데서 방황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삶을 끌어올려 주리라 믿었던 것들이, 더 심하게 삶을 내리누르고 끌어당겨 도무지 힘을 쓸 수 없는 무기력에 눈물이 터져나올 것이다.


21세기 위버멘쉬는 심신을 오염시키는 흡연 욕구 음주 욕구 소비 욕구,... 같은 가짜 소속감을 깨끗이 지운다. 쓸데없는 관념, 온갖 거짓말을 머릿속에서 털어 낸다. 모든 것을 지우고, 스스로의 어린아이 같은 본성 그대로만을 남긴다. 날아갈 듯 자유로워진다. 자유를 손에 쥐고 본성 그대로를 용기 있기 드러내며 나아간다. 이제 힘이 불끈 솟는다. 이 힘이 내 삶의 모든 걸음걸음을 독보적인 오리지널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간다. 누구나 곁에 두고 사랑하고 싶은, 진정한 소속감으로 이끌, 진짜 명품이 드디어 탄생한다.





<참고 문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정경석, 문예 출판사(2010)

*'The influence of Goethe's 'Faust' on the theory of Friedrich Nietzche', <Reality> 28 January 2011

*'니체의 위버멘쉬(초인)에 대한 원형 탐색', 이영수 (https://blog.daum.net/windada11/8768449)

**프레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황문수, 문예출판사(2010)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AbelEsco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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