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당신을 뛰어넘어야겠습니다 (1)

[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by 하트온

아빠는 내내 말씀이 없으셨다. 여자가 무슨 공대냐고 금세 반박을 해오실 줄 알았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대학 원서를 쓰려면 1년 이상 시간이 남아 있으니 지금 당장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만약 생각을 바꾸게 만들 거라면 지금부터 설득을 시작해도 모자란 시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어떤 이유에선지 말이 없었다. 말이 없을 뿐 아니라 일부러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나도 일단 뱉어내고 본 소리를 스스로 납득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왜 공대를 간다는 소리를 한 것일까. 재밌어 보이고 화려해 보이는 학과들도 많은데, 생각만 해도 불편한 남성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곳, 생소하고 어려운 과목들을 끝없이 공부해야 할 것 같은 공대를 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까.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 동네는 여자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어릴 때 동네 남자아이들이 던진 돌멩이나 야구공에 맞아 응급실에 가야 했던 적도 있었고, 몇 살 더 많고 몸집 큰 동네 남자아이들이 장난감을 뺏거나 망가뜨리는 일도 수 없이 일어났다. 심지어 갑자기 끌어 안거나 내 몸을 만지려고 하는 성추행 비슷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어릴 때의 나는 열심히 아빠에게 억울함을 고했다. 무서운 우리 아빠가 정의롭게 세상을 벌주고 내 억울함을 풀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무서운 아빠는 내가 원하는 정의를 묵살하고 오히려 짓궂고 못된 남자아이들 편을 들었다. 남자아이들은 원래 그렇다고. 그렇게 거칠고 욕구가 강하고 성질도 부리는 존재이니, 네가 조심하라고. 네가 이해하라고. 네가 참으라고. 나는 결코 느껴본 적 없는 넓이와 깊이의 관대함에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내 마음 곁이 아니라, 저 멀리 그들의 편에 서 있는 아빠에게 무한대의 거리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빠야말로 욕심 많고 제멋대로이며, 무자비한 남자아이 그 자체라는 것을 점점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나에게 아빠가 명령한 조심하고 이해하고 참는 일을 우리 집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이 엄마라는 것도. 그뿐 아니라 평생 조심하고 이해하며 참아온 여자의 삶에 지쳐 화병이 난 할머니의 심술 받이 욕받이 역할까지 하고 산다는 것도. 모두가 엄마를 함부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자각하게 되었다. 모두가 연합해서 엄마를 짓누르고 노예로 삼고 있다는 것을 선명히 보게 되었다. 언제 누가 어떤 트집을 잡고 성깔을 부리고 까탈을 떨지 알 수 없는 불안 속에서 시댁 식구들의 욕구와 필요들을 챙기느라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 같은 것 없이 공포와 학대 속에 살아가는 엄마의 삶이 너무 불쌍해서, 나만 학교 다니며 집을 빠져나오는 것이 나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나부터 살려야만 했다. 엄마도 아빠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는 걸 나는 일찌감치 알아버렸고, 나는 혼자서 발버둥을 쳐야 했다.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무참히 짓밟히는 여자의 삶, 그것을 피할 길이 없는 삶을 보는 일이 나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그런 삶을 결코 조금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함부로 학대하는 존재를 위해 정성껏 밥을 짓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강해지고 싶었다. 적어도 아빠보다는 훨씬 더 강해지고 싶었다. 아빠가 꿈도 못 꿔본 대학, 그것도 공대에 가서 수석으로 졸업해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남들이 존경하는 학위를 있는 대로 다 따서, 유명 기관의 고위직 관료가 되어, 사람들이 함부로 내 이름을 부르거나 취급할 수 없는 자리에 이르고 싶었다.


나는 모든 면에서 강하고 단단하고 안전해지고 싶은 것이었다. 할 수 있다면 나도 무섭고 무자비한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까지 해 보았다. 내 삶을 보호하고 싶은 것이었다. 전자 공학과라고 정한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크게 생각했다기보다. 여름 방학 동안 과학 과목에 이해와 흥미가 생기면서, 서점에서 점점 과학책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과학 잡지마다 쏟아내고 있는 목소리, 이 시대를 선도할 분야가 전자 공학이라는 식의 문구가 계속 눈에 띄었던 탓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모르는 새로운 이 시대의 과학을 선택하는 건, 내가 많은 구시대 남자들을 제치고 보다 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니 내가 '전자 공학'을 선택하겠다고 아빠 앞에서 외치는 것은, 당신이 말하는 구시대적 발상을 무시하고 더욱 앞서가는 선택을 할 것이니, 이제 더 이상 내게 이런저런 말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아빠는 그 목소리를 선명히 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내 안의 그런 생각들을 친구들과 진지하게 나누기는 힘들었다.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환경에서 각자의 고민을 하고 있었을뿐더러, 가고 싶은 대학에 맞추기 위해 점수를 올리기도 힘들고 바쁜데,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선택지 넓은 모범생 반장의 고민 따위는 아이들에겐 배부른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왜 재밌고 편하게 돈 벌 수 있는 거 공부하지, 힘든 공대를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


내가 강해지고 싶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두 분의 쌤들과 최강뿐이었다. 아마 동우도 아빠를 뛰어넘어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입장이라, 어느 정도는 나를 이해할 것이었다. 약해서 힘든 사람, 충분히 강하지 못한 불행을 아는 사람들만 이 심리를 이해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18세 여학생의 심리를 지배하는 것이 힘에 대한 강박만은 아니었다. 개학을 하고, 우리들의 대화 주제에 자연스럽게 학예제가 등장하고 있었다. 고2 입장에서 이번 가을 학예제는 고등학교 마지막 학예제라고도 할 수 있었다. 고3에겐 학예제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법이었다.


고등학교 과정이 입시 준비의 시간이라고만 생각하면 학예제는 학생들이 신경 쓰지 말아야 할 시간 낭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문화적으로 삭막하기가 교도소 버금가는 고등학교라는 환경에서도, 아무리 시멘트로 덮어도 결국은 틈을 뚫고 어떻게든 솟아나 이겨내는 자연처럼, 아이들은 어떻게든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린다. 나도 아이였고, 나도 그랬다. 공부할 시간에 쫓기면서도 마음은 어떻게든 자신을 마음을 표현하려고 본능적 감정을 발산하려고 길을 뚫고 있었다. 학예제라는 것은 일 년에 딱 한 번 열리는 유명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행사지만, 거기서라도 아이들은 자신을 제대로 한 번 표현하고 드러내고 발산하고 싶어 했다.


유경이와 천조는 장끼자랑 대회에 나갈 거라고 벌써 마음먹고 계획하기 시작했고, 수민이와 나는 학예제 날 배포되는 문예지에 들어갈 작품 공모전에 응모를 했다. 수민이와 나는 둘 다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써서 제출했다. 어차피 매일 쓰고 있는 글이라 또 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우리의 글이 문예지에 실릴지 말지는 하늘이 결정할 일이었고 결과는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참여하고 시도해봤다는 것만 중요했다.


문제는 수민이와 나는 그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빈 공간마다 차지하고 장끼 자랑 대회 준비를 하는 걸 보니, 그런 것과 늘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온 우리였지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아니면 춤 연습 노래 연습을 해 볼 수 있겠나 싶어 우리도 나가자고 점점 의견이 모아졌다. 수민이가 요즘 가장 뜨는 음악 '난 알아요'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일단 카세트테이프와 소리 빵빵한 대형 라디오까지 구해놓고 안무를 짜 보겠다고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천조와 유경이가 다가와서 머리를 함께 맞대더니 나지막이 욕을 했다.


"몸치 둘이서 그 위대한 스태지의 '나 알아요'를 한다꼬? 억수로 대책 없어 비는데."

"진짜 이렇게 배신 때릴 끼가! 우리 빼놓고 느그 둘이서만! 될 거라고 생각하나!! 진짜 의리 없네!!"


핵심을 찌른 유경의 말과, 어이없는 배신에 분노 가득한 천조의 절규에 우리는 웃음부터 터졌다. 우리가 생각해도 우리가 너무 대책 없이 질렀던 것이다.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우리도 이런 거 한 번은 해 보고 싶어서. 춤 연습 같은 거 우리가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 얼마 남지 않은 고2를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구."


수민이 고교시절의 낭만에 대한 꿈이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조근조근 부드러운 서울말로 감정에 호소하니, 완전히 설득되어버린 천조와 유경이는 더 이상 미쳤다고 대책 없다고 추궁하지 않았다.


"느그 진짜 운 좋다. 내가 스태지 오빠야들 왕팬이라서 안무를 다 외우고 있거든. 내가 말했제, 내 창원에서 억수로 잘 나갔다고. 우리 동네에서 내 별명 '춤신'이었다."

"나도 스태지 좋아한다. 내 한 춤 하는 거는 느그 다 마이 밨으이까 더 이상 말 안 하께. 내 보고 같이 하자는 아들 억수로 많지만, 내를 꿈 모임에 낑가 주가, 성적 오르게 해 준 일등 공신인 느그들을 외면할 수 없다 아이가. 이번엔 내가 느그를 돕기로 마음 뭇다. 고2 추억을 제대로 날라리로 만들고 싶은 느그 범생이들의 뜻 내가 이라 주께."


천조가 난 알아요 곡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하자 방금까지 시끌벅적하던 반 전체가 조용해지더니 일제히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유경이도 금방 춤을 파악하고 옆에서 따라 추기 시작했다. 심지어 다른 반 아이들까지 구경하러 몰려오기 시작해, 순식간에 복도 창문이 아이들의 얼굴로 다닥다닥 가득 찼다.


천조와 유경의 듀엣 춤이 끝나고 열화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춤신들의 춤을 더 보고 싶은 아이들은 수업시간마다 선생님 앞에서 천조와 유경이가 춤을 추게 만들었고, 선생님들도 열렬히 손뼉 치며 이번 학예제 장끼 자랑에 꼭 나가라고 입 모아 추천하셨다.


천조와 유경이는 틈틈이 우리에게 춤을 가르쳤고, 우리는 온갖 욕과 비난을 다 먹고서야 겨우 처음부터 끝까지 흉내 낼 수 있는 지경이 되어, 선생님들이 수업 중간중간 학예제 준비하는 아이들 나와서 해 보라고 할 때마다 불려 나가 함께 춤을 췄다. 천조와 유경이 둘이 할 때는 뭔가 세련되게 춤을 잘 추는 댄스 신동 느낌이었다면, 우리 넷이 춤을 추는 건 코미디가 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배가 찢어진다는 표정으로 땅바닥을 구르는 게 보였다. 나중에 뭐가 그리 웃기냐고 물어보니, 우리 반에서 가장 통통한 편인 천조와, 우리 반에서 가장 큰 키에 속하는 수민이가 함께 서서 춤추는 그림도 웃긴데, 전혀 이런 쪽으론 상상도 안 해 본 반장이 나와선 다른 아이들보다 항상 한 템포 박자를 빨리 가면서 혼자 엄청 심각한 표정으로 열심히 추는 반면, 수민이는 너무 대충 설렁설렁 움직이는 등, 대조적인 장면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게 견디기 힘들게 웃기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포복절도하며 쓰러지거나 말거나, 우리는 열심히 춤을 연습했고, 누가 춰달라고 하면 열심히 춰주면서, 드디어 춤을 완벽하게 다 외웠다. 이만하면 무대에 올라가도 되지 않을까 약간의 조급한 자신감까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오디션이 열렸다. 우리는 연습한 대로 실수 없이 춤을 추었고, 음악 쌤들이 배꼽을 잡게 하는 데까진 성공했다. 문제는 경쟁 댄스 그룹이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이었다. 바로 유경이가 꿈 모임에 들어오기 전까지 같이 어울리던, 비주얼 최강의 날라리 그룹이었다. 오디션인데도, 똑같은 옷차림에 머리띠까지 세트로 맞춰 입고 와서 똑 떨어지는 군무를 제대로 보여주어, 쌤들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만족하는 눈치라, 우린 몹시도 불안해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쌤들은 오디션이 끝나자마자 결과 발표를 바로 했다.


"댄스팀 둘 다 잘했는데, 느그 중에 하나만 뽑을 수밖에 없었던 점 양해 바란다.... 이번에 **여고 장끼 자랑에 나갈 팀은... 두구두구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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