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당신을 뛰어넘어야겠습니다 (2)

[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by 하트온

나는 2학기엔 반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 반장은 일 년 내내 반장이라고 담임 쌤 한 마디에 우린 2학기 반장 선거 따위 생략하고 그대로 2학기를 이어갔다.


선생님들은 반장을 보면 반장 손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느끼는 존재들이다. 그동안 대표로 때리고 대표로 심부름시키며 써먹어온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동시에 선생님들은 날라리들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도 않다. 겁나는 게 없는 아이들은 매우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욕을 먹고 싶지 않을 때, 선생님들은 투표 카드를 꺼내는 법이다.


"너희들 실력이 막상막하라 선생님들이 뽑을 수가 없다. 너희 같은 반이네. 잘 됐다. 너희 반 음악 시간에 투표로 결정하겠다."


오늘 결정이 날 수 없다니,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지만, 떨어졌다는 결론보단 나은 것 같기도 했다. 라이벌 팀 날라리들이 지나가면서 우리 쪽을 노려보는 시선이 살벌했다. 한 반의 반장이 되면 웬만하면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호감을 유지해야 내 말을 잘 들어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특히 목소리가 큰 아이들, 비뚤어지기 쉬운 아이들과 적당히 기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이 날라리 그룹과 감정적으로 틀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유경이 우리 꿈 모임에 합류하고 성적이 오를수록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장끼 자랑 오디션이라는 외나무다리에서 피할 수 없이 대놓고 적으로 맞서게 된 것이다.


"저 년들이 내 못 잡아 무가 혈안이 돼 있다."


유경이는 그들이 던지는 적대적인 시선에 움찔하며 나직이 말을 뱉었다.


"쟈들이 니한테 와 그라는데?"


전학 온 이후 내내 유경이가 우리와 함께 하는 모습만 보았으니, 천조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느그하고 어울리면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것도, 쌤들한테 성적 올랐다고 칭찬받는 것도 다 지들 배신 때린 기라는 거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번에 댄스 그룹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했었거든. 느그하고 하는 거 보고 빡치가 내만 보면 눈 꼬라 보고, 저 지랄이다. 쌤들 안 보이는 데서는 내한테 완전 쌍욕 한다 저것들이."

"쟤네들이 지면 너한테 해코지하는 거 아냐?"


수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저것들, 질투 나면 얼굴 할키가 흉터 만들어 놓는 것들인데... "

"우리 그냥 기권하까?"


천조가 유경의 입장을 생각해서 제안했다.


"겁나서 포기하고 도망가는 건 쫌 아인 거 같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울컥하며 이런 말이 나왔다.


"어디까지 기권할 낀데, 자들이 싫어하면 대학도 안 갈끼가? 아이잖아. 해야 하는 건 누가 머라 해도 할 끼잖아."

"오! 역시 우리 반장... 세다!"


천조가 용기를 인정한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말을 뱉은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나는 왜 요즘 이렇게 말부터 지르고 보는 것인지 속으로 스스로를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마지막 남은 용기를 짜냈다.


"내가 쟈들 만나 이야기 쫌 해 보께."

"머라 할 낀데."


이 일에 가장 영향을 받을 유경이가 다급하게 물었다.


"누가 이기든 지든 깨끗하게 승복하자고."

"자들이 그런 말이 통할 아들 같나? 저것들 양아치다. 성질 나는 대로 사람 해코지도 하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럼 아예 쟤네들을 회유하면 어때?"


정적을 깨고 이번엔 수민이 나섰다.


"쟤네들도, 우리도, 모두 원하는 건 장끼 자랑 무대에 서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이기면 쟤네가 우리 팀 백댄서 하고, 쟤네가 이기면 우리가 쟤네 팀 백댄서 하는 걸로 제안해 보면 어때?"

"쟈들이 할라 카겠나."

"떨어져도 무대 나갈 수 있는 보험인데, 하지 않을까?"

"쌤들이 그래라 카겠나?"

"쌤들은 내한테 맞기라."


유경의 의구심 가득한 질문들에 수민과 내가 돌아가며 최대한 자신 있는 대답을 주려했다.


"쟈들 억수로 얍삽하고 싸가지들이다. 같이 놀 때도 내 억수로 마이 당했다."

"앞으로 니한테 해코지 못하게 우리가 지켜주께. 내가 몇 번 말했제, 창원에서 잘 나가시던 몸이라고. 내가 싸움도 좀 하거등. 내를 믿어라."


유경이 계속 불안해하는 것 같자, 천조가 나서 지켜주겠다고 자신 있게 못을 박았다. 천조의 말이 가장 신뢰가 가는지 유경은 천조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는 음악 시간 투표 전에 날라리 그룹 아이들을 복도로 불러내서 누가 붙든 떨어진 팀이 이긴 팀의 백댄서가 되자는 제안을 했다. 의논을 해 봐야 한다며 셋이서 이마를 맞대고 말을 주고받더니, 그중 한 명이 대표로 나섰다.


"좋다. 근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만약 우리가 이기면, 유경이 저 년은 빼야 된다."


이번엔 우리 넷이 이마를 맞대고 의논할 차례였다. 유경이 나지막이 우리 귀에만 들리게 소곤거렸다.


"한다 케라. 나도 어차피 저것들이 이기면 뒤에서 백댄서 해 주는 거 싫다. 근데, 우리가 이기면 저것들이 백댄서 하는 건 꼭 보고 싶다. 이래라저래라 막 시키무면서."


그렇게 우리의 계약은 성사되었고, 투표 전에 선생님께도 말씀드려 허락을 구했다.


투표 결과에 우린 정말 충격을 받았다. 압도적인 표 차로, 날라리 팀이 이겼다. 새어 나오는 아이들 말을 들어 보니, 우리끼리 보기는 우리 팀이 재밌고 좋은데, 우리 학교 대표로 내놓기엔 비주얼이나 댄스 실력이 저쪽이 월등히 자랑스럽다는 것이었다. 학예제 장끼자랑 시간만큼은, 넓은 학교 운동장에 무대를 설치해서, 주변 학교 남학생들과 이웃 주민들까지 다 와서 보는 행사라, 쫌 자랑스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놈의 외모지상주의 능력주의 세상인 것이었다.


이 보험계약을 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한 쪽은 우리였던 것이다. 가당찮게도 우린 내내 저쪽이 떨어져 우리를 해코지할 거라는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던 거였다. 보험 잘 들었다고 수민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면, 날라리팀은 압승하자마자, 우리와 사전에 한 약속을 후회하는 것 같았다.


"느그 꼭 백댄서 해야겠나? 사실 우리는 백댄서 필요 없거든."

"약속은 약속이다."


천조가 두 주먹을 꼭 쥔 채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고 나섰다.


"우리 댄스 동작이 쫌 어려븐데 따라 할 수 있겠나? 칼군무 딱딱 마차 주야 되는데."

"하기로 했으면 해야지."


울며 겨자 먹기 느낌이 좀 있었지만, 반 아이들이 자기들을 그렇게 밀어주었다는 게 기뻐 승리감에 도취된 날라리 그룹은 한껏 잘난 척을 하며 우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관심 없다던 유경이도 살며시 아이들 틈에 끼어들어 구경을 했다. 문제는 아무리 가르치고 또 가르쳐도 수민이와 나는 완벽한 군무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잘라버릴 수도 없고, 때려 가르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하더니, 자기들끼리 이마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곤 갑자기 자신들이 전에 한 말들을 번복했다.


"유경이 니, 들어 온나. 느그 팀 반장하고 키 큰 아 야 하고 답이 없다. 니가 책임지고 쫌 가르치라. 대신 무대 올라가기 전까지 칼군무 안되면, 느그 다 뺄 끼다."


날라리들 백댄서는 자기도 싫다던 유경이는, 입가에 커다란 스마일을 걸고 나서더니, 군대 조교처럼 굴며 수민이와 나를 인정사정없이 잡았다. 이상하게 우리에겐 유경이가 통했다. 유경이의 욕설과 등짝 스매싱을 당해야 춤이 좀 나아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았다. 유경이가 들어오고, 우리의 춤이 훨씬 더 나아졌다. 유경이가 우리를 뺄 수 없게 기적을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옷도 다 같이 맞춰 사 입어야 한다는데, 그까지는 집에서 허락받기 힘들다고 중간에서 유경이 중간에서 중재하여, 날라리 3인조는 세트로 맞춘 옷과 머리띠를 그대로 하고, 우리 백 댄서 네 명은 청바지와 교복 셔츠, 베스트로 통일하고 머리띠만 그들과 맞추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이 모든 이야기를 우리 넷에게서 전해 들은 최강은 재미있다고 손뼉을 쳤다.


"나도 너희 학예제 간다. 너희들 무대에 선 모습 꼭 그려줄게."

"그래 온나. 동우도 오제. 그날 내 동생 만조 소개시키 주께. 느그 둘이 나이 같다."


최강이 온다는 말에 천조가 동우도 챙겼다. 보통 때 같으면 예 누나하고 신나야 할 동우의 표정이 몹시 이상했다.


"누나... 사실은... 내가 금요일날 학교 마치고 누나 학예제 갈 거라고 엄마한테 말하는 걸 아빠가 듣고, 아빠가 꼬치꼬치 묻는 기라. 누나 학예제 언제냐 누나 거기서 뭐하냐 묻는데 대답을 안 할 수 없었거든... 아빠도 금요일 누나 장끼 자랑하는 거 보러 온단다."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면서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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