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은 내게 무엇일까

[영화 에세이] 다시 봐야 보이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by 하트온

<흐르는 강물처럼>, 1992년 영화


나는 이 영화의 포스터가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었다. 푸른 수풀로 둘러싸인 맑은 계곡에 서서 낚싯줄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의 저 순간의 저 모습, 저 낚싯줄의 곡선마저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 안에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으로 분류되어 저장되는 파일이 있다면, 이 영화 포스터는 그 목록 안에 분명히 들어 있을 것이다.


영화는 포스터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이해도 잘 되지 않았다. 목사 아버지와 놀먼과 폴이라는 두 아들의 인생 이야기인 것 같은데, 아버지의 설교 내용을 잘 알아듣기도 힘들었고, 영어와 한국어 번역 사이에 갭이 컸는지 주인공들이 드문드문 던지는 말들이 잘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뭔가 사건이 드라마틱하게 벌어질 것 같다가도 소소하고 잔잔하게 마무리되고, 뜬금없는 장면들의 연속 같은 느낌도 들었다. 동생이 누군가에게 맞아 길에서 죽는 부분도 자극적인 장면 없이 주인공 화자의 설명으로 담담하게 지나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늙어 아내도 죽고 홀로 남은 화자 놀먼이 몬타나 계곡에서 낚시를 하는 장면 위에 그의 시적인 내레이션이 흐르며 '인간 극장'의 마지막 장면처럼 끝이 났다.



30년 후, <흐르는 강물처럼> 다시 보기


최근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1992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문득 깨달았다. 30년이 지나는 동안 미국에 살며 영어를 매일 공부해온 나는 번역에 의존하지 않고 영화 주인공들이 쓰는 영어 원어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1900년대 초반의 몬타나 주라는 시대 사회 문화적 배경을 조금은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며, 이 영화에 담긴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는 여전히 담담하고 잔잔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내 마음에 밀려 내려오는 강물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 마음이 쏴아아 물이 되어 세차게 흐르고 있다. 화사한 햇살 속에 푸른 나무 숲이 내 정신을 둘러싸고, 사방에 꽃가루가 피어오른다. 리드미컬하고 우아하게 춤추는 낚싯줄이 싱싱한 송어 한 마리를 낚고, 마침내 물고기가 물 위로 튀어 오른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들, 그리고 나중엔 성인이 된 아들들을 데리고 그 아름다운 자연 한가운데서 제물낚시(fly fishing)를 하는 장면들이 내 마음에 살아 숨 쉰다.


몬타나주 시골 마을의 목사인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설교를 하신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설교의 핵심은, 어떻게 나에게 주어진 삶을 신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신의 뜻대로 사랑하며 삶과 신앙을 하나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였다는 것이 마침내 내 마음에도 흘러 들어온다. 아버지는 착실히 자신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따라 낚시하고, 공부하고 명문대를 졸업해 교수가 되고, 작가가 된 큰 아들 놀먼을 자랑스러운 감동을 주는 존재로 기뻐하고 사랑한다. 아버지는 자신을 넘어서 새로운 자신만의 낚시법을 찾아내고, 자신만의 완벽을 이루고, 보통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아슬아슬하게 살다가 젊은 날 길거리에서 맞아 죽은 둘째 아들을 아름다운 감동을 준 존재로서 기뻐하고 사랑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만큼 그의 이른 죽음을 아파한다. 그리고 깨달음에 이른다. 자신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존재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You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완전한 이해 없이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가르칠 것들을 가르치면서도,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스스로 깨우치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교육에, 자신을 키운 몬타나의 자연에,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동생에게, 삶은 아름다운 것으로만 가득한 예술이 아님을 보여준 인생에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목격한 것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글로 그려내는 사람, 화자 놀먼 맥클레인의 마음이 영화를 통해 내 마음까지 흘러왔다. 그는 낚시를 할 때만큼은 자신이 그리워하는,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그 모든 것과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 속에서 자연과 그 자연이 품은 추억과, 강물이 아무리 흘러도 변함없이 굳건한 마음속 바위를 이룬 존재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Eventually, all things merge into one, and a river runs through it. The river was cut by the world's great flood and runs over rocks from the basement of time. On some of the rocks are timeless raindrops. Under the rocks are the words, and some of the words are theirs. I am haunted by waters. (결국, 모든 것은 하나가 되고, 그 사이로 강이 흘러간다. 강은 세계 대홍수가 끊어져 시작된 것이며, 강은 시간의 바닥에 존재하는 바위들을 넘어 흐른다. 몇몇 바위 위엔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빗방울들이 있다. 그 바위들 아래에는 말씀이 있으며, 그 말씀의 일부는 그들의 것이다. 나는 물에 사로잡혀 있다.)


강물은 무엇일까


놀먼 맥클레인 작가에게 강물은 무엇이었을까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본다. 강물은 그에게 많은 것을 의미했으리라는 짐작에 이른다. 그의 삶을 흐르는 시간. 그의 마음을 흐르는 기억. 그를 키운 자연 어머니. 흐르는 강물을 빼고 그의 인생은 없을 것이기에, 강물은 그의 마음이자 정체성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흘러와 내 마음에 흐르는 이 강물은 무엇일까. 나에게 강물은 반드시 흘러 지나가야 하는 것들로 다가온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 강물이 지나가도 남아 있는 바위에 내 마음을 나는 걸어 본다. 언제나 나의 의식 한가운데 박혀 있을 무언가. 내가 삶을 대하는 자세. 나의 가치관. 흐르는 강물에 닳고 닳혀 부드러워지고 맨들해져 가는 나의 태도. 그리고, 내 삶이 내 안에 새기고 간 기억들.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물속의 바위 위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서서, 때때로 찰나의 완벽한 예술에 감동하며, 나를 먹이고 돌보는 신의 은총을 경험하는 일상. 그런 일상이 내 마음의 강물을 헤엄치는 한 마리 송어로 떠오르고 나는 그 송어를 낚으려 줄을 던져본다.


이미지 출처: <A river runs through it> 영화 포스터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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