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다시 봐야 보이는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
1997년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
1997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국가 존속이 가능할까 싶게 강풍으로 불어닥친 외환 위기와, IMF로 나라 공기가 매섭고 어지럽던 시기였다. 그렇게 대학 가고 노력해도 망하고 잘리는 세상이라며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그냥 너희들 잘하는 거 열심히 시도해 보고 마음대로 살아보라 했고, 아이들은 마음껏 나라를 이지경에 이르게 한 어른들을 비웃고 풍자하며 춤추고 노래 불렀다. 마침내, 1대 아이돌 H.O.T가 등장하면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숭배하는 아이돌 시대가 시작되었다.
<티베트에서의 7년>이라는 이 영화는 다른 세팅에서 어른들이 아이를 숭배하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1939년, 1935년생 꼬꼬마 쿤둔(Kundun)은 전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인정받아 새 달라이 라마로 옹립되었다. 영화는 1940년 그의 즉위식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절망으로 여유 없고 혼란스러운 내 마음에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를 내가 왜 알아야 하는지도, 티베트라는 나라가 거기 있었는지도 몰랐던 때의 나는,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브래드 피트의 출연이 없었다면 이런 제목의 영화 따위 보지도 않고 지나갔을지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그냥 역사 지식 몇 가지를 머릿속에 넣는 외의 정신 활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히말라야 산에 티베트라는 나라가 있구나. 달라이 라마란 불교 종교 지도자이면서, 티베트라는 나라의 국가 대표 이기도 하구나.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하고 사람들을 많이 죽였구나. 서양문명이 20세기 중반부터 달라이 라마와 영향을 주고받고 교류하였구나. 몇 가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걸로 끝이었다. 두 번 다시 보게 될 일은 없을 영화라고 생각했다.
2022년에 다시 보는 <티베트에서의 7년>
시간은 확실히 사람의 시선을 넓힌다. 옛날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은, 영화 속 주인공이자 화자인 하인리히 하러 (Heinrich Harrer)의 내면 여정이었다.
주인공 하인리히가, 27세 (1939년)에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출산이 임박한 부인을 떼어 버리듯 떠나, 히말라야 등반길에 오르는 것이 꼬꼬마 달라이 라마 즉위식과 교차 편집되며 영화는 시작한다. 즉위식 장면에서 꼬꼬마는 어른들이 시킨 대로 기도하는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고 옆으로 치워놓기를 반복하며 몹시도 성숙하고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만, 수많은 선물 중, 드뷔시의 '달빛' 음악이 흘러나오는 뮤직 박스를 보곤 개우지 앞니를 활짝 드러내고 웃는 천진한 아이의 모습을 드러낸다.
하인리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정복하고 싶은 의지가 충만한 자신만만한 청년이었다. 전 세계 최정상에 나치 깃발을 꽂고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싶은 민족주의자들 틈에 끼여 히말라야 등반길에 나섰던 듯하다. 그는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인 동료 피터(Peter Aufschnaiter)와 함께 생사를 넘나드는 온갖 고초를 겪으며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한다. 하지만 등반 여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해 9월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했고, 당시 영국령이었던 인도에 속하는 지역에서 캠프를 하고 있던 독일 국적 등반가들은, 적국민이 침입한 케이스로 분류되어 체포되고 포로로 수감되고 만다.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시도하는 족족 실패했으므로 하인리히는 피터 및 일행과 함께 그곳에서 몇 년의 시간을 보낸다.
1944년, 하인리히는 얼굴에 먹칠을 하고 인도인으로 분장하여, 영국 장교로 분장한 피터와 함께 탈출에 성공하여 포로수용소를 빠져나온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그들은 티베트로 입국을 시도한다. 하지만, 당시의 티베트가 외국인을 금지하는 법령을 굳게 지키는 나라였던 만큼,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들어갔다가 쫓겨나기도 하며, 치안 담당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며, 하인리히와 피터는 근처에서 오랜 시간을 거지처럼 떠돌며 기회를 엿본다. 그러다가 그들은 달라이 라마에게 인사드리러 가는 순례행렬 속에 숨어들어 1946년 티베트의 수도 라싸(Lhasa)에 들어오는 데 성공한다.
라싸에서 하인리히와 피터는 자신들을 돌봐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1948년쯤에는 하인리히는 티베트 정부의 관료가 되어, 티베트 정부를 위해 세계정세를 알려주고 서구 문화와 기술을 전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결국 틴에이저가 된 14대 달라이 라마, 쿤둔을 만나, 그에게 영어와 지리 과학 등을 지도하고, 끝없는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고 대화 상대를 해 주는 개인 교사 역할을 맡게 된다. 그는 달라이 라마를 위해 영화관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영화에서 달라이 라마와 하인리히의 만남은 마치 <어린 왕자>의 화자인 파일럿 아저씨와 어린 왕자와의 만남처럼 일생일대의 운명, 나이를 초월하고 내면과 내면이 만나는 위대한 우정처럼 느껴진다. 순수함의 결정체 같으면서, 동시에 불교철학을 유창하게 설파하는 쿤둔. 그의 맑고 지혜로운 관점에 영향을 받으며 하인리히는 점점 겸손한 자아, 가장 자신다운 자아, 자신의 깊은 내면 중심을 찾아간다. 저절로 아들뻘 어린 달라이 라마에게 고개가 숙여지고, 기꺼이 절을 하고 경배하고 싶어 진다. 쿤둔의 티 없이 깨끗한 영혼이 하인리히를 아이처럼 웃게 만든다. 쿤둔과의 대화 중, 지금까지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아들 생각이 자신의 가장 중심에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고 흐느낀다. 하인리히는 티베트가 중국 공산당에게 휘둘리고 파괴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평화로운 땅에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본다. 약소국을 괴롭히고 짓밟는 중국이 옳지 않다고 느끼면서, 자신이 한 때 나치 당원이었다는 사실을,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부끄러워한다. 전쟁에 약한 티베트와 같은 약소국 또한 존재해야 할 가치가 충분한 소중한 사람들임을 그는 온몸으로 깨닫는다.
중국이 티베트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하인리히는 쿤둔을 피신시킬 계획을 세우지만, 자신의 사람들을 두고 도망가는 존재가 어찌 리더라 할 수 있겠냐며 쿤둔은 의젓하게 도피를 거절한다. 그렇다면 하인리히도 자신의 신앙이자 구원인 쿤둔 곁에서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하지만, 쿤둔은 이 또한 거절한다. 쿤둔은 하인리히에게 오스트리아에 있는 아들에게 가서 아버지가 되라고 지도자로서 말한다. 자신은 한 번도 하인리히를 아버지처럼 여긴 적이 없으니, 하인리히도 저를 아들로 생각하고 보호하려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하인리히 자신만의 구원을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어 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달라이 라마와 함께 하는 삶이 일으켜낸 하인리히의 변화가 주는 감동의 여운은 영화가 끝나고도 마음에 깊이 남는다. 하인리히는 1952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영화의 원서가 된 <티베트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은 전 세계 53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1956년에 처음 시도되었고, 1997년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이 영화는, 이 책을 영화화한 두 번째 작품이었다고 한다. 실제 14대 달라이 라마는 현재 86세이며, 하인리히는 2006년에 9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달라이 라마가 하인리히의 90세 생일에 찾아가 만났을 정도로 두 사람은 평생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고 전해진다.
아래 글은 하인리히가 쓴 저서 <티베트에서의 7년>에 나오는 내용이다.
Wherever I live, I shall feel homesick for Tibet. I often think I can still hear the cries of wild geese and cranes and the beating of their wings as they fly over Lhasa in the clear, cold moonlight. My heartfelt wish is that my story may create some understanding for a people whose will to live in peace and freedom has won so little sympathy from an indifferent world. (내가 어디에 살든 나는 내 영혼의 고향 티베트가 그리울 것입니다. 나는 아직도 맑고 차가운 달빛 영롱한 라싸를 지나 날아가는 기러기와 학의 울음소리와 날갯짓이 종종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내 진심 어린 소망은 내 이야기가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 무관심한 세상으로부터 거의 동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세상에 알려 이해를 얻고자 함입니다.)
나를 슬프고 아프게 하는 것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그들의 우정이나 하인리히의 내면 성숙 과정에 대한 감동만이 아닌 것 같다. 계속 마음 한 구석이 쿡쿡 찌르며 아프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전쟁과 약탈과 살인으로 쉽게 치달을 수 있는 존재라는 그 자체가 너무 아프다. 그런 존재들이 날뛰는 세상에서 이겨 살아 남기 위해 무기를 갖추고 군대를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 누군가들을 억지로 입대시키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유 없이 살인을 강요하리라는 것이 슬프다. 티베트 사람들을 생각할 때도 슬프지만, 총 들고 시키는 대로 무조건 돌격해야 하는 중국의 어린 병사들을 생각해도 슬프다. 그들도 리더랍시고 나서는 누군가의 힘에 대한 욕망 두려움 불안 때문에 자신을 휘둘리고 노예 병사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국가가 민족이 혹은 어느 단체가 힘을 고양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 어느 날 내가 너무나 힘이 강해져 누가 덤벼도 내가 이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은 과연 평화를 지키는 정도에서 멈출 수 있을까. 지금까지 역사로 보면 아무도 그럴 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힘을 이용하고 싶어 진다. 조금 더 위협하고, 조금 더 짓밟아서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 자꾸 눈에 보일 것이다.
힘을 고양시키고 강해지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중요한 것이겠지만, 그 이후에 어떤 삶,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지 못하면 힘이 센 쓰레기가 될 뿐이지 않을까. 인간이 누군가의 믿음을 짓밟고 없애는 것에만, 신이 없는 세상의 초인을 꿈꾸는 것에만 그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믿음을 가졌던 자들이 사람을 아끼고 사랑했던 힘을, 평화와 자비를 추구하는 삶이 이루어낸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말 중요하고 강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를 다 날려버리고 지나갈 수 있는 저 돌풍처럼 말이다.
사진 1 & 2: <티베트에서의 7년> 영화 포스터 (1997)
대문 이미지: Pixaby (by gdmoonki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