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다시 봐야 보이는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 (2002)
'잡을 수 있으면 날 잡아 봐'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영화가 나온 때는, 내가 미국에 온 지 4년째 되는 해 겨울이었다. 크리스마스 휴가 중이어서 시간도 있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배우를 좋아하는 나의 팬심이 결탁해서 이 영화는 꼭 봐야 하는 리스트에 올랐으므로 우린 개봉 소식을 듣자마자 영화관에 달려갔다.
솔직히 그 당시 나는 그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매력적인 외모와 기똥찬 연기력에만 집중했었던 것을 고백한다. 대형 비행기 회사 파일럿부터 의사 변호사까지 저렇게 여러 직종의 사람을 흉내 내고, 그토록 어린 나이에 금융시스템의 구멍을 발견하여 남의 돈을 저렇게 많이 횡령한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니, 정말 놀랍다는 생각도 했었다.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인데 사기꾼 범죄자 인생으로 끝나지 않고, 나중에 FBI에서 고용하고 미국 사회의 금융 거래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데 공헌했다니, 그 실력이 건설적으로 활용되어 정말 다행이다 해피엔딩에 만족하면서 영화관을 나왔고, 서서히 영화는 나의 뇌리에서 잊혀 갔다.
다시 보니 보이는 것들
최근 나는 넷플릭스에 올라온 이 영화 포스터를 보고, 오래전에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감흥에 젖어 반가이 클릭을 했다. 영화에 대한 설명을 잠시 읽어 보고, 영화감독이 스티브 스필버그였다는 것과, 이것이 그가 오래 사실 관계를 따져 연구하고 준비한 작품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했던 실존 인물이- Frank William Abagnale Jr.- 벌인 그 모든 일이 그가 만 19세가 되기 전에 벌인 일들이었다는 것도 새롭게 깨달았다.
두 번째 보는 김에, 1960년대라는 시대 배경도 찬찬히 살폈다. 인터넷, 스마트 폰이 없는 세상. 모든 소통은 전화선을 거쳐야 하며, 각종 감별을 도와주는 디지털 기계가 없는 시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이 정해진 규범과 기준을 넘어 서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보였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땅이 넓은 데다, 주마다 통치 법규와 시스템이 다르니, 이 주 저 주로 도망 다니면 추적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문서 위조에 능하고, 호감을 느끼면 의심하지 않고 쉽게 마음을 여는 사람의 속성을 뼛속까지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아는 대범한 사기꾼들이 날뛸만한 세상 같아 보였다.
그다음에 눈에 들어온 것은, 주인공의 가정환경이었다. 프랭크의 아버지 (Frank Abagnale Sr.)과 프랑스 사람인 어머니 폴라. 자세히 보니 그 아버지가 법망을 피해 이리저리 거짓말로 사기를 치고 다니는 원조 범법자였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는 더없이 끈끈했고, 가족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거짓된 삶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그들 가족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세금 문제로 국세청에 걸려 집을 잃고 작은 아파트로 쫓겨가기에 이르고, 어머니는 아버지 친구와 바람을 피기 시작한다. 새로 전학 간 학교는 환경도 전보다 나쁘고, 아이들도 벌써 주인공 프랭크를 괴롭히기 시작하는 조짐. 프랭크는 몸이 아파 병가를 낸 프랑스어 선생님을 대신하여 대체 교사 (substitute teacher)가 오기로 한 상황을 눈치채고, 자신이 그 새로운 대체 교사라며 자신을 우습게 봤던 아이들을 기선 제압하고, 프랑스인 어머니에게서 들은 프랑스어 풍월로 일주일이나 그렇게 프랑스어 교사 인척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 일로 학교는 발칵 뒤집히고 부모님이 프랭크의 학교에 불려 가게 되지만, 아버지는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아들을 야단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부자는 서로 장난스러운 눈빛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부자간의 즐거운 시간도 오래가지 않는다. 프랭크는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충격적인 소식과, 어머니 아버지 중에 한 사람을 골라야 하는 입장 앞에 놓이게 되면서 몹시 고통스러워한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좋아했던 만큼, 프랭크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담과 배신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그의 가출은 그로 하여금 필요한 돈을 스스로 구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그는 10살 많은 성인 행세를 하며 사기를 쳐서 돈을 조달하기 시작한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점점 더 과감해지고, 심지어 대형 항공사 파일럿으로 위장하여,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수 백만 달러의 돈을 횡령해 내기에 이른다.
프랭크의 횡령 범죄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FBI 요원 Carl Hanratty (톰 행크스 분)가 프랭크를 쫓기 시작한다. 그의 행적을 따라다니다가, 서로 얼굴 보고 대화를 나누고도 놓치는 일까지 겪으면서 그는 프랭크라는 인물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정보와 이해를 갖게 된다. 프랭크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카알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가 신분을 위장하여 늘 거짓말을 하고 다니니, 진실한 마음으로 연결하고 소통할 사람이 없는 입장인 것까지 카알은 간파하게 된다. 또한 그의 부모님을 찾아 만나게 되면서 그가 아직 고등학생 나이의 미성년자라는 것도 알게 된다.
프랭크는 자신이 의사로 위장했던 병원에서 만난 초보 간호사와 사랑에 빠져,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고, 그녀의 고향에서 변호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구해 다시 한번 신분 세탁을 하지만, 카알은 프랭크와의 전화 통화에서 단서를 얻어 그의 약혼 파티장으로 찾아오고, 프랭크는 그곳에서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도주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프랭크는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에게 진심이었던 듯하다. 도주하기 직전에 자신의 진짜 이름과 나이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급히 말해주고,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함께 하겠다면 어느 날 몇 시까지 공항 앞에서 만나 함께 떠나자는 약속을 한다. 하지만 막상 약속한 날에 프랭크가 약속 장소까지 나갔을 때, 약혼녀 주변으로 경찰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는 것을 눈치채고, 그는 그들의 눈을 따돌릴 더 기함할 일을 - 근처 대학교에서 미녀 여대생들을 승무원으로 고용하여 유니폼을 입히고 공항에서 그를 둘러싸게 하는 방식으로 - 벌려 비행기를 타고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가 결국 국외로 도주한다.
프랭크는 그렇게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곳곳에서 횡령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고, 카알은 추적 끝에 프랭크 어머니의 고향이 프랑스 Montrichard라는 것과, 프랭크가 사용하는 고품질의 인쇄 기술이 존재하는 곳이 프랑스일 것이라는 짐작에 착안하여, 마침내 프랑스의 Montrichard 마을의 한 창고에서 위조 수표를 제작 중인 프랭크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카알이 프랭크를 미국으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프랭크는 프랑스 경찰들에게 끌려가게 된다. 프랑스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열악한 환경에서 온갖 고초를 치르며 병이 든 프랭크를 카알이 온갖 노력 끝에 빼내 미국으로 데려온다. 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카알에게 그의 아버지가 이미 사고로 사망하셨다는 늦은 비보를 전해 듣고, 몹시 흥분한 프랭크는 비행기 화장실을 뜯고 - 실제로는 비행기 부엌을 통해 - 활주로에서 아직 달리고 있는 비행기에서 위험한 탈출을 시도하여 도망간다. 프랭크가 비행장을 빠져나가 도망간 곳은 어머니의 집이었다. 하지만 프랭크는 새로 만든 가정 - 실제로는 어머니가 재혼을 한 적이 없으나, 영화의 극적 묘미를 위해 99% 실화에 첨가된 허구 한 스푼이라고 한다 - 에서 단란해 보이는 어머니 집으로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그곳으로 추적해 온 경찰들에게 잡혀 재판장에서 12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소에 들어간다.
카알은 감옥에 있는 프랭크를 꾸준히 챙기고, 위조 수표를 잘 알아보는 프랭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프랭크는 카알의 도움과 주선으로 FBI를 위하며 일하는 것으로 형량을 마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늘 반복되는 과중하고 지루한 업무에 지친 프랭크는, 어느 주말 다시 비행기 파일럿으로 위장하여 공항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 움직임을 눈치챈 카알이 그를 막아선다. 하지만 카알은 이젠 쫓지 않겠다고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그 말은 더 이상 나와 너는 상관이 없다는, 네가 범죄자로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건 말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이별 통보처럼 느껴진다. 카알의 마지막 말이 프랭크의 마음속 사기꾼 욕망을 꺾었는지, 프랭크는 다시 카알에게로 돌아간다. FBI 사무실로 출근해 카알을 도와 마음 잡고 일한다. 영화는, 카알과 프랭크가 오래도록 친구로 지냈으며, 프랭크는 이후 결혼해서 3명의 자녀까지 두고 은행 사기 위조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훈훈한 미담을 남기며 끝났다.
프랭크와 카알
이 이야기는 나에게 프랭크와 카일의 운명적인 만남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프랭크의 내면에 사기꾼의 본능과 재능을 심어준 아버지, 프랭크에게 제대로 된 가치관과 기준을 심어주지 않은 아버지 때문에 그 좋은 머리로 범죄의 길에 노출된 프랭크는, 괴롭고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머리가 그쪽으로 팍팍 돌아가고, 온몸이 머리를 도와 일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제목은 약 올리는 듯한 뉘앙스로 '능력 되시면 날 한 번 잡아 보시든가' 얄밉게 들렸었다. 하지만 영화를 두 번째 보고 난 뒤엔 '제발 날 좀 잡아주세요'라고 사정하는 미성년 프랭크의 간절한 매달림이 느껴졌다. 도망 다니면서 자꾸 카알에게 전화 걸고 대화를 하려 했던 모습, 자신을 잡으러 온 카알이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를 캐묻던 모습에서, 그는 카알이 진짜 진실을 소통할 수 있는 어른인지, 자신을 바른 길로 잡아끌고 갈 수 있는 어른인지 확인하려는 것 같은 절박한 갈구가 느껴졌다.
어쩌면,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달라진 이유는, 아이를 낳아 키워본 적이 없던 때의 나와, 청소년 자녀를 키우고 있는 나, 같은 '나'이면서도 판이하게 달라진 내면 자아의 변신 때문인지 모른다. 프랭크를 한 사람의 젊은 남성으로 보던 20대 여성의 시각이, 미성년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각으로 바뀐 것이다. 어머니의 시각으로 본 프랭크는 무척이나 안쓰럽고 안타까운 존재였다. 그런 만큼, 이혼으로 가정을 잃고 자녀를 잘 만나지 못하게 된 카알과, 부모의 이혼 후 부모와 안정감 소속감을 모두 잃게 된 프랭크의 만남이 크나큰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캣치 미 이프 유 캔>은 사람과 사람이 진정한 이해와 공감과 사랑으로 연결되는, 그리하여 삶이 다시 꽃피는 축복의 기적이 일어나는 '관계'이야기였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진실한 어른을 만나는 것,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연결하고 돕는 것,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기적이 되는 것, 혈연을 뛰어넘어 가족이 되고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 사람을 막다른 골목에서 구하고 살려내는 데 필요한 그 모든 일이 펼쳐지는 인간과 인간의 스토리였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가을 겨울이 지나 만물이 다시 생동하는 봄날이 찾아오는 따뜻한 이야기였다.
대문 이미지 출처: https://www.netflix.com/title/60024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