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설레는 결혼식 (1)

[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by 하트온

최철광 선생님과 김영애 선생님의 결혼이라니, 상상도 못 했던 소식에 우린 입을 헤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언제요? 언제 연애를 하셨던 거예요? 남의 연애질...... 아, 아니, 연애질이란 말은 취소...... 암튼 누가 연애를 하면 제 촉이 보통이 넘는데, 왜 내가 몰랐지? 도대체 언제 눈이 맞... 아니, 서로 좋아하게 되신 거예요? 수민이 니도 몰랐나?"


유경이 흥분해서 마구 튀어나오려는 막말들을 겨우 다스려가며 취조하듯 물었다.


"나도 몰랐어. 완전 호박씨야 진짜. 최철광 쌤이 내 이모부가 될 줄 상상도 못 했는데......"


수민이도 정말 몰랐던 모양이었다. 최철광 쌤이 이모부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쌤 빨리 이야기해 주세요. 첫 키스는 언제 하셨어요?"


천조가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능청스럽게 질문하고, 우린 꺄악거리고 난리가 났다.


"우리는 서로 오래 알았어."


김영애쌤은 아이들 앞에서 무안한 지, 자꾸 방긋방긋 웃기만 하고 중요한 답을 피했다. 최철광 쌤도 얼굴이 붉어지신 걸로 보아, 성격상 이런 자리가 몹시 어려우신 것 같았다.


"결혼식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학교에서 하기로 했어."

"우리 학교요?"

"응. 겨울방학이라 괜찮다고 교장 선생님께서 허락해 주셨어."


왜 멋지고 화려한 결혼식장 두고 학교에서 결혼식을 하시려고 하는지 의아했지만, 묻지 않았다. 학교를 억지로 다녀야 하는 우리들에겐 삭막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지만, 두 분에겐 서로의 인연을 다시 연결시켜 준 학교가 다른 의미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이번에 너희들 옷 한 벌씩 해 줄까 하는데. 남자는 슈트, 여자는 드레스."

"와, 진짜요! 쌤, 여기 아들이 몇 명인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부모님을 닮아 돈 계산에 몹시 밝은 천조가 쌤들 걱정을 대신하며 나섰다.


"옷 해 주는 조건이 있어."

"그럴 줄 알았어. 울 이모가 얼마나 짠순인데. 안 봐도 백퍼 노예 계약이야 이건."


수민이 좋았다 말았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빈정거리자, 김영애 쌤은 수민을 향해 큰 눈을 사랑스럽게 흘기셨다.


"쌤 말해 보이소, 안 되는 거 빼곤 다 해드리께예."

"저도요! 제 성적 억수로 오르는 데 은인이신 두 분께, 저는 옷 안 해주셔도 이 한 몸 바칠 각오돼있거든요!"

"저도요 쌤! 뭐든지요!"


사실 우리 모두는 선생님들께 같은 마음이었다.


"결혼식을 학교에서 하는데 너희들 도움이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사실. 결혼식장도 꾸며야 하고, 결혼식 끝나면 뒷정리해 줄 사람도 필요해. 그리고 너희들이 축가도 불러주면, 우리 결혼에 큰 의미가 될 것 같아."


올해를 넘기지 말라는 사주 결과 때문에 급히 잡은 결혼인 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쌤들은 친척들이 모두 서울에 계셔서, 서울에서 오는 친척들을 챙기는 일만 해도 정신이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우리는 기꺼이 도와드리겠다고 동의했고, 부모님들로부터 선생님이 해 주시는 옷을 입고 결혼식에 참석해도 된다는 허락도 받았다. 다만 동우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동우도 결혼식 준비도 돕고, 결혼식에도 가게 해달라고 이해를 시키려면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 공부해온 사정을 다 말해야 하고,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김영애 쌤의 결혼식을 못 보는 것이 너무 슬프지만 대의를 위해 지금 조금 섭섭한 마음을 참겠다고 동우가 의연히 결심했다.


"이상한 선생들이네. 뭐 한다고 좋은 갤혼식장 다 나뚜고 괜히 학교에서 결혼해가 공부하는 아들한테 그런 걸 다 시키고."

"부주는 안 해도 되겠나?"


아빠는 좀 떨떠름해했고, 엄마는 결혼 부조금 부담을 느끼시는 듯했지만, 결혼식에 가지 말란 말은 하지 않으셨다.


선생님이 사주신 드레스는 발랄한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드레스였다. 붉은색과 초록색 선이 교차하며 체크무늬를 그리고 있는 드레스는 마음에 쏙 들게 예쁘면서도, 쌤들 결혼식 아침에 입고 나가는 걸 본 아빠가 아무 불만이 없을 만큼 단정했다. 드레스 위에 입으면 예쁘겠다고 막내 숙모가 아끼는 초록색 코트도 빌려주셨다.


쌤들이 결혼을 크리스마스 날로 택한 건, 두 분 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이왕 겨울에 할 거면 좋아하는 날에 특별한 추억을 더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최대한 경쾌하고 신나는 크리스마스 파티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뭔가 결혼식의 숭고한 느낌도 더 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가지 모양의 하얀 눈 결정체를 주요 테마로 장식을 했다. 물론 이 공간의 예쁜 것들은 다 최강이 만들고 그린 것이었다. 그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손이 일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좋아서,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그 느낌만으로 너무 좋아서, 이 시간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시간이 멈추기를 자주 바란다는 걸 깨달으면서, 나는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운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엄마 같은 어른이 되거나 아빠 같은 어른이 되는 걸 피할 수가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옥좨어 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김영애 쌤과 최철강 쌤을 떠올렸다. 이분들과 같은 어른이 되려면 김영애 쌤과 최철강 쌤이 겪어내야 했던 시련과 상처까지 감당해야 할 것만 같아 얼른 생각을 접었다. 어떤 어른의 인생도 따라가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나를 암담하게 했다. 어쩌면 나는 어떤 어려움과 아픔도 마주하기 싫은 비겁한 겁쟁이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파고드는 상념은 학교 앞에 도착해서야 멈추었다. 결혼식이 열리는 1층 로비는 어젯밤까지 우리들이 애쓴 흔적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최강은 벌써 와서, 최철광 쌤의 절친이시라는 사회자를 도와 마이크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검은 슈트를 멋있게 입은 최강이 어른처럼 보여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로비에 들어서자, 최강은 무심코 한 번 쳐다보곤 고개를 돌리더니, 문득 나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난 최강이 대놓고 쳐다보는 것에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어, 슬쩍 손만 흔들어 주고, 신부 대기실이라 임시 문패가 붙은 옆 서무실로 쏙 들어갔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쌤이 신화에 나오는 요정처럼 긴 머리를 풀고 화관을 쓰고 계셨다. 쌤의 언니인 수민이 어머니도 계셨다.


"안녕하세요."

"와 우리 반장! 예쁘다!"

"강이 왔어? 진짜 드레스 예쁘다! 우리 수민이가 입은 것보다 더 잘 어울리네."


이런 드레스 차림과, 이 차림에 대한 사람들의 찬사가 나는 너무도 어색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쌤 진짜 너무 예뻐요! 여신 같아요."


빨개진 얼굴로, 김영애 쌤이야 말로 얼마나 아름다우신지 느끼는 바를 겨우 고백했다.


"언니, 우리 반장도 머리 좀 만져 줘."

"강아, 여기 앉아. 아줌마가 머리 컬 좀 넣어줄게."

"네."


나는 수민이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아 고데기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해 주시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수민이는요?"

"수민이는 카페테리아에. 하객 접대 음식 준비하는 데서 심부름하고 있어."

"저도 가서 도울 게요."

"아마 거의 끝났을 거야. 수민이 데려와서 너희들은 축가 리허설 한 번 더 해."

"네."


나가면서, 슬쩍 서무실 입구에 걸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어릴 때 동네 언니들이 많이 그리던 공주님의 고동 머리가 찰랑이고 있었다. 드레스에 그런 머리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내 마음 한 구석에 어떤 만족감 같은 것이 부풀어 올랐다. 이 모습을 곧 최강이 볼 거라 생각을 하자 뿌듯하고 설렜다. 나도 예쁜 거 좋아하는구나. 나도 꾸미고 예뻐 보이고 싶구나. 지금까지 내가 너무나 억눌러 왔던 무언가가 봉인해제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무실을 나와 수민이를 찾으러 일층 끝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가는 길에 한 번 더 최강을 지나가야 했다. 이번엔 사회자 아저씨는 어디 가고, 최강 혼자 전선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지나가며 발걸음을 멈추는 걸 느낀 최강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와...... 너, 다른 사람 같아."

"니도."

"결혼식 끝나고 뭐해?"

"정리해야지."

"정리 끝나고, 영화 볼래?"

"그래."


이건 데이트 신청이야. 가슴이 마구 부풀어 올라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카페테리아로 가는 길 복도 바닥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 과정이 어떻게 다 지나갔는지. 결혼식이 시작되고, 축가를 부르고, 처음 보는 우리 학교 이사장님의 주례와 결혼 서약이 이어지고, 그 모든 과정이 꿈결처럼 지나갔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오직 최강과 나만 있는 것 같은 꿈같은 느낌. 나머지는 모두 희미한 배경이 되고, 그 애만 주인공으로 돋보이기 시작하는 느낌. 간질간질하고 두근두근한 이상한 느낌.


누군가의 사랑의 결실을 맺는 이 결혼식장에서 나는 이 세상에 내 심장밖에 존재하지 않는 듯 내 감정이 솟구쳐 세상을 뒤덮고 바다를 이루는 듯한 느낌에 잠겨 있었다. 잘 모르긴 해도 나는 이 감정에 '첫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된다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세상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내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지각 변동이었다.


허락받지 못하겠지만, 아무도 한참 공부해야 할 시기의 첫사랑을 환영하지도 않겠지만, 나는 이런 감정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 무섭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 바람으로 풍선을 가득 채운 것처럼, 둥둥 떠오르는 느낌은 세상이 떠드는 행복이라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았고,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수많은 불안과 두려움들을 더 이상 떠 올릴 여유가 없게 밖으로 밀어 내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용기의 근원인 것 같기도 했다. 이 감정을 앞세우면 뭐든 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배짱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토록 바라 왔던 힘의 근원은 사랑인 걸까? 나는 드디어 나를 누르는 그 모든 것들보다 강해질 방법을 찾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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