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별이 빛나는 밤 (2)

[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by 하트온

최강의 섬세하고 긴 손이 눈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팔을 뻗어 그 손을 잡았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논리적이면서도 따뜻한 그 손. 오늘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아는 사람의 손. 그 모든 일을 묵묵히 지켜봐 주고 기다려준 사람의 손. 그 손이 위로가 되었다. 마치 그 손이 나의 내면을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것만 같았다.


손의 주인은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한참을 걷기만 했다. 내 마음은 서서히 진정되었고, 차분해졌다. 설명할 수 없는 만족감 같고 안도감 같은 밝은 감정들이 까만 밤하늘을 수놓는 또렷한 별빛처럼 내 마음에 점점이 총총하게 내려앉았다. 여기서 삶이 멈추어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스쳤다. 하지만 내 뱃속은 생각이 달랐다. 밀려오는 허기와 함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났다.


"너 배고프구나."

"어... 뭐 별로..."

"네 배가 그렇게 크게 배고프다고 외치고 있는데 뭔 소리야?"

"아, 몰라!"


무안해진 난 최강에게 신경질을 냈다. 오늘은 몸과 마음이 다 따로 놀기로 작정한 날인가 보았다.


"맛있는 거 사 줄게. 넌 뭐 좋아하냐?"


나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릴 때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결정이 참 빠르기도 했다. 난 빨강, 난 초록, 난 사과맛, 난 포도맛..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나 맛을 분명히 알았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기호가 분명한 아이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아직도 뭐든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걸 보면,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몰라,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는 어릴 때부터 특별히 좋아하는 게 없었어. 나도 좋아하는 게 분명하면 좋겠는데."

"아냐, 너 기호가 분명해. 넌 나 좋아하잖아."


나는 울다가 웃는 것만큼은 안 하고 싶었는데, 최강의 뜬금없는 확신 발언에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는 나를 좋아하니까. 색도 나 같은 색, 음식도 나 같은 음식을 좋아할 거야 아마."


최강 같은 색은 뭘까 잠시 생각했다. 오늘 그의 색은 검은색이었다. 그래 오늘은 검은색이 좋다. 오늘은 내 미래도 내 마음도 내 삶도 다 캄캄한 밤처럼 암울하게 느껴졌다. 아예 인생이 깜깜한 김에 까만 음식 무까? 검은 음식을 생각하니, 짜장면이 떠올랐다.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짜장면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지만, 나는 갑자기 짜장면이 먹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짜장면 묵고 싶다."

"야, 나 같은 음식이 짜장면이라는 거야? 너무한데?"


최강의 확대 해석에 또 웃음이 피식 났다.


"그냥, 짜장면이 먹고 싶어."

"탕수육도 시켜줄게."

"짬뽕도. 볶음밥도."


걷다 보니 우린 온천장까지 이르렀고, 여기까지 걸은 김에, 부산대 앞까지 쭉 걸어 대학교 앞 짜장면집으로 들어갔다. 두 팀 정도의 대학생들 무리를 지나, 우리는 구석자리에 앉았다. 대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신나 떠드느라 주변에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대학교 앞이니 대학생이 주인공인 건 당연할 터였다. 긴 머리, 화사하게 화장한 얼굴, 심플하고 세련된 옷과 가방, 그리고 가장 이질감을 주는 진짜 어른 구두,... 힐끔힐끔 여대생들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나도 언젠간 저런 모습으로 시끄럽게 허세 부리는 선배들 앞에서 머리카락 조신히 넘겨가며 화장이 지워질까 휴지로 촘촘히 닦아 가며 짜장면을 먹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나도 저런 모습이 될 거라는 게 도무지 와닿지 않았다.


"넌 대학 갈 거지?"


최강의 목소리가 나의 불확실한 상념을 밀어내고 들어왔다.


"넌 공부 잘하니까 당연히 대학 가겠지."

"넌...... 안가?"

"며칠 전에 울 엄마 아빠하고 이야기를 했어. 엄마 아빠는 우리 외갓집이 있는 시골에 가서 농사짓고 살고 싶으시대. 나한테 바라는 딱 하나라며 하시는 말씀이, 너 자신을 찾고 자유를 찾아라 하시더라고. 부모님 따라 시골에 가서 농사지어도 되고, 여기 남아 삼촌하고 살면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가고 싶으면 가도 좋다고 하시고."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자식의 자유라는 부모님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나는 몹시 궁금해졌다. 대학을 가도 좋고 안 가도 좋다고 하는 부모님이라니. 고등학생 자식을 두고 시골로 내려가시는 부모님이라니. 나는 상상도 이해도 되지 않았다.


"너희 부모님 정말 특이하시다."

"특이해질 수밖에 없는 경험을 하셨으니까.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식의 장애. 자식의 죽음. 그분들의 경험과 심정은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의 경험치를 벗어나는 시련을 겪어 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나는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누나가 태어난 뒤로, 우리 부모님이 자식에게 바라는 건, 건강밖에 없었지. 누나 죽고 내 사춘기를 겪으시면서, 마음의 건강도 몸의 건강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리셨고. 그래서 두 분이 내게 지금 바라시는 건, 건강 말곤 없어."

"니는 어짜고 싶은데? 대학 가고 싶나?"

"잘 모르겠어. 지금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 나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 좋겠다."

"니도 기호 분명하다. 니 내 좋아하잖아."

"뭐? 내가 언제...... 너.... 너, 좋아한댔냐? 니...... 네가 나 좋아서 따라다니는 거잖아."


갑자기 들어온 공격이 당황스러운지 최강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말까지 더듬었다. 그 모습이 약간 귀여운 것 같아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오늘은 니가 내 찾아와서 기다린 거거든. 안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럴 수 없거든."


나는 최강 놀려 먹기에 재미가 붙어, 혀까지 내밀어 주었다. 나는 최강과 이야기를 할 때마도 몹시도 담대하고 과감해지는 스스로에게 놀라게 되는 편이지만, 오늘은 더욱 그런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상대가 나를 좋아할 거라고 자신만만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이상하게 최강에겐 믿고 당당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최강은 어이없다는 웃음을 만면에 띄우더니, 그럼 내친김에 끝까지 가보자는 듯 태세 전환을 하고 덤볐다.


"그렇다 치고. 그럼 너 같은 결정이 뭘까. 넌 좀 촌스러우니까 시골로 내려가는 게 답인가?"

"죽을래?"


테이블을 건너가서 때리려고 폼을 잡는데, 아까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음식이 니를 살맀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집이라 그런지, 동네에서 먹던 것보다 값이 싸고 양은 많은 것 같았다. 음식을 보자마자 하던 이야기를 깡그리 잊고 음식을 먹는데 열중했다. 먹으면서 내가 정말 배가 고팠구나 싶었다. 먹는 순간만큼은 앞에 앉은 최강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손이 가는 대로, 손이 음식을 입으로 가져다주는 대로 다 먹었다. 음식 그릇들이 바닥을 보이고야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와, 너 정말 잘 먹는다."

"내 사실은 억수로 배 고팠거든."

"그럴 만도 하네. 많이 춤추고, 많이 울고, 많이 걷고, 정말 많이 했다 오늘, 너! 장하다!"


최강이 칭찬을 늘어놓더니, 박수를 치고 내 머리를 헝클었다. 강아지 취급이 분명하지만, 그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우린 중국식당에서 나와, 대학교 캠퍼스 쪽으로 향해 걸어 올라갔다. 번화가인 데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제법 사람들이 붐볐다. 발걸음이 저절로 교문을 지나 대학 캠퍼스 안으로 향했다. 말만 들어본 대학 안으로 처음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대학 정문을 통과하고 바로 앞엔 시계탑이 있고, 시계탑 주변이 약속 장소 이기라도 한 것처럼 서성이며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계탑을 주변으로 길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갈라졌다.


"어느 쪽으로 갈래?"

"왼쪽으로 가서 한 바퀴 돌고 오른쪽으로 나오면 되겠다. 너 집에 빨리 가야지. 아버지한테 또 역정 안 들으려면."


아빠 이야기가 나오니 나도 모르게 크게 한숨이 나왔다.


"너희 아버지하고 많이 힘들어?"

"어. 집에 들어가기 싫을 정도로. 그래서 난 꼭 대학을 멀리 가 뿌고 싶다. 할 수 있으면 나는 다른 나라로 가버리고 싶다."

"어느 나라 가고 싶은데?"

"몰라. 그까지는 생각 안 해봤다."

"세상에서 어느 나라가 가장 자유로운 나라일까?"

"몰라. 미국? 프랑스? 근데 솔직히 자유롭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 결정할 수 있는 게 자유로운 거 아닐까?"


최강의 대답에서 나는 그가 자유에 대해 생각을 깊이 해 보았구나 싶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최강이 말하는 자유가 나에겐 가능하기나 할까 하는 막막한 의구심도 동시에 들었다.


"나는 내 평생 그런 자유가 없을 것만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해?"


질문하는 최강의 얼굴에 걱정하는 표정이 어려있었다.


"내가 볼 땐 우리 집은 아빠도 엄마도 자유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우리 할머니도. 가족으로 산다는 게 식구들끼리 서로를 꽁꽁 묶어 놓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내라꼬 자유로울 수 있겠나?"


최강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나도 답을 찾아낼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우린 골똘히 생각에 빠져 어두운 캠퍼스를 조용히 걸었다. 공부가 이제 끝나고 집에 가는지, 하나씩 둘씩 하교하는 대학생들이 곁을 스쳐갔다.


"그래서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목숨 걸고, 억수로 많은 사람들을 직이 가면서 혁명을 했는 갑다. 자유를 위해서!"

"나는 세계사 잘 몰라. 공부를 안 해서."


내가 뜬금없이 미국 프랑스혁명을 들먹이니 최강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잘 모르는 주제라는 것을 실토했다.


"내가 그 혁명들에 관해 뭘 알아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내 자유는 억수로 힘들게 서로 상처 주고 싸워야 얻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말을 하면서 순간 몹시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짜장면으로 채운 힘이 도로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내 생각에 너는 해 낼 수 있을 것 같아."

"뭘?"

"네 자유를 찾는 일."

"왜?"

"네가 원하니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강해지고 싶고 힘을 얻고 싶은 이유는 내 자유를 찾기 위해서였다는 걸. 부모님이 최강에게 바라는 것도, 내가 나를 위해 바라는 것도 같은 '자유'였다. 차이는 최강의 부모님은 최강에게 자유를 바라지만, 내 부모, 특히 아빠는 나의 자유를 조금도 바라지 않는다. 마음대로 조종되기를 원한다. 나는 아빠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막혀 왔다.


"대학도 가고, 돈도 벌어야 되고, 독립하고 자유도 찾아야 되고...... 왜 이렇게 해내야 되는 기 이래 많노!"


진로를 결정하는 일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일까지, 하나도 쉽지 않다. 이 모든 것이 다 우리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며 어깨에 한가득 짐이 얹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우린 아직 스무 살도 안됐는데, 평생을 좌우할 결정들을 지금 생각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고 벅찼다. 나도 모르게 또 크게 한숨을 쉬었던 모양이었다.


"야, 무슨 애가 그렇게 한숨을 자꾸 쉬냐. 그러다 세상 꺼지겠다."

"내가 한숨 쉬나. 나도 모르게 나오는 갑다."

"네 마음이 힘든 모양이다. 내일 고민은 내일에 맡기자. 이건 달라이 라마가 했다는 말인데, 해결되지 않을 일은 어차피 걱정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될 일은 당연히 걱정할 필요가 없잖아.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걱정은 할 필요가 없대."

"와, 달라이 라마...... 니 불교 신자가?"

"아니, 철광 삼촌이 빌려준 책에 그런 말이 있더라."

"난 진짜 여러 가지 이유로 니가 억수로 부럽다...... 그래, 뭐, 걱정하지 말자. 졸업할 때까지 아직 1년 더 남았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자."


나는 속 걱정을 털어내듯 내뱉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와! 여기 별 보인다! 하늘 바바바."

"진짜네. 밖엔 밝아서 별 안 보이는데, 여기선 별이 다 보이네. 여기가 제대로 깜깜한 모양이다."


제대로 깜깜해서 별이 보인다는 말. 그 말이 문득 위로가 되었다. 지금 좀 너무 깜깜해도 괜찮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너무 힘든 어둠 속을 지나가고 있지만, 깜깜한 어둠 속이라서 별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었다. 어쩌면 나는 많은 별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최강의 눈, 최강의 손,... 나를 위로하고 설레게 하는 별과 같은 존재를 이 어둠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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