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설레는 결혼식 (2)

[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by 하트온

어릴 때 , <숲 속의 잠자는 공주>라는 디즈니 동화를 읽은 적이 있다. 공주가 마법에 걸리기 전, 어린 시절 숨어 살던 숲 속에서 우연히 왕자님을 만나 서로에게 반하는 장면은 어린 마음에도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오늘 김영애 쌤과 최철광 쌤은 마치 눈 오는 겨울 숲 속의 왕자님 공주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철광 쌤이 입장하실 때, 다리를 많이 저실까 봐, 그래서 혀라도 차는 하객들이 있을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씩씩하고 힘찬 모습의 최철광 쌤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진짜 왕자님 같은 신랑의 위엄을 보여주셨다.


속으로 상상을 해 보았다. 최철광 쌤 같은 남편감을 인사시킨다면, 우리 아빤 어떻게 나오실까. 기를 쓰고 말릴 것이다. 살기 등등한 눈을 부릅뜨고, 미친년이라고 길길이 뛸 것이다. 네가 뭐가 아쉬워서, 어딜 가든 무시당할 절름발이와 왜 가족 관계를 만드냐고. 사람의 내면이 어떠한가 따위는 보지도 않으실 것이다. 외모와 집안과 학벌과 능력. 그런 것들에만 집중해서 보는 사람이기에, 나와 동우에게도 계속 닦달인 것이다. 가능한 더 잘나고 완벽한 사람 만나 결혼할 수 있게, 학벌도 직업도 제대로 갖추라고.


실은 아빠가 너무나 내면이 약한 사람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무시당할까 봐 전전 긍긍하며 살아가는 그 마음은 결코 어떤 약하고 불운한 것들도 품을 수 없는 게 아닐까. 문득 날카로운 의구심이 살을 찌르듯 파고들었다. 강하고 무서운 아빠라고만 착각했지만, 사실은 약하디 약한 비겁한 존재인지 몰랐다. 내가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겪어 보기도 전에 두려워하는 겁쟁이인 것이 아빠를 닮은 것인지 몰랐다. 서로의 아픔을 감싸 안아주고 받아들여주는 듯한 김영애 쌤과 최철광 쌤, 그분들의 가족들이 훨씬 더 강한 사람들인지 몰랐다.


나는 고난을 맞닥뜨려 내고 이겨 낸, 마음이 이끄는 대로 힘차게 용기 있게 살아가는 쌤들이 갑자기 몹시도 부러웠다. 이런 사람들의 일부인 수민이도, 최강도 속이 따가워질 정도로 부러웠다. 몸 한 번 상하는 일 없이 비교적 안락하게 살아온, 겉으로만 멀쩡한 내 가족에 대해 나는 숨 막히게 답답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두 분의 결혼식이 잘 끝났다는 안도와 기쁨이 신혼여행 길에 오르는 두 분을 배웅하는 모두의 마음에 충만하게 흐를 때쯤, 수민이가 아이들을 모았다.


"쌤들이 우리 같이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 주셨어."


수민이가 돈이 든 봉투를 내밀어 보여주었다.


"우리 이 돈으로 뭐할까?"

"맛있는 건 이미 많이 먹었고, 우리 이 돈으로 쌤들 선물 사드리자. 나는 옷만 얻어 입고 쌤들 결혼 선물 하나 제대로 못 사드린기 쪼매 마음에 걸린다."


천조가 제법 어른스러운 말로 우리 모두를 설득했다. 모두가 거부감 없이 설득당했다.


"그라자. 무슨 선물할까."

"일단 이 돈으로 바로 선물 사서 드리면 쫌 그러니까. 수민아 네가 돈 잘 보관하고 있다가, 기회 봐서 쌤들한테 선물하나 해 드리자. 선물 사서 신혼집으로 새해 인사 가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어른처럼 머리가 돌아가는 천조의 생각에 모두가 얼떨떨한 경외감을 느끼며 동의를 했고, 그걸로 쌤들이 주신 돈의 사용처는 결정이 난 셈이었다. 수민이는 서울에서 오신 친척들 모시고 집에 가봐야 한다고 먼저 자리를 나섰다. 엄마 교회 갔다 오시면 함께 시내 나가서 외식하기로 했다는 유경이도 신난 발걸음으로 학교를 떠났다.


"니는 친척들한테 안 가봐도 되나?"


천조가 수민이와 마찬가지 입장일 최강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난 친척들하고 안 친해."


최강은 불편한지 짧게 대답하곤 고개를 돌렸다.


"우리 이래 빼 입고 나왔는데, 그냥 집에 들어가긴 좀 안 섭섭하나. 그자?"


천조는 집에 들어가기 싫은 눈치였다.


"니 오늘 뭐 특별히 하고 싶은 거 있나?"


내가 천조에게 물었다. 여기저기 다니기 좋아하는 천조인데, 그동안 기말고사에 집중하느라, 방학하곤 직장 다니는 엄마 뒷바라지하느라 좀이 쑤실 만도 하겠다 싶었다. 최강과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갈 거란 기대감으로, 저 하늘 위로 날아가 버릴 듯 붕 떠올랐던 마음이 땅으로 내려와야 했지만, 하도 두근 거리는 마음이 진정이 안되던 차 여서, 천조가 함께 있어주었으면 싶은 마음도 들었다.


"느그 둘이 시간 보내게 자리 피해 줘야 한다는 거 아는데, 오늘 우리 엄마 회사 안 가고 집에 있는 날이 그등. 그 말뜻은 오늘이 진짜 귀한 내 자유시간이란 뜻이 그등. 오늘 같은 날은 남친 만나면 좋은 날인데......"


천조가 정말 오늘은 꼭 애인이 안되면 친구라도 있어야 하는 날이라고, 간절함을 담은 눈빛으로 호소를 하니 최강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오늘은 천조가 하고 싶은 거 하자. 그럼"

"진짜로! 최강 고맙다. 반장 진짜로 고맙데이! 진짜로 내가 낑기 가도 게안켔나!"

"당연하지."

"최강들아! 정말 고맙다!"


천조는 오늘은 방해꾼이 될 수밖에 없지만, 평소에 자신이 눈치껏 얼마나 자리도 잘 피해 주고 우릴 밀어주고 있는지 모른다며, 오늘도 함께 하는 동안 모든 시간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눈치 있게 경우 바르게 알아서 행동을 잘할 거라며 스스로의 공로를 치하하는 말을 끝없이 늘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요새 길거리 음식 트렌드 카페 트렌드를 잘 아는데, 딸기 와플이나 향이 좋은 헤이즐넛 커피 등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등의 말도 곁들였다.


"알고 있다. 네가 신경 마이 써 주는 거. 그라고 나는 천조 니하고 있는 거 좋다."

"반장, 나에 대한 니 마음이 그렇다면 진짜 감동이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느낄 겸, 시내로 나가보기로 하고, 서면 가는 버스를 잡아 탔다.


"오늘 나오는 거는 괜찮았나. 니 집에 늦게 들어가면 아버님한테 또 한 소리 듣는 거 아이가?"


천조는 학예회에서 내 뺨을 치던 아빠를 떠올리곤, 문득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오늘 허락해 주셨고. 너무 늦게 가는 거 아이면 괜찮다. 우리 아빠 보통 집에 늦게 들어오시거든."

"글나? 힘내라, 반장. 난 솔직히 니 같이 공부 잘하고 착한 모범생 딸을 그렇게 무섭게 대하시고 때리시는 게 좀 이해가 안 간다."


천조나 만조가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자식들을 그렇게 예뻐하셨다는 자상한 아버지만을 경험했던 천조가, 지나치게 외부 시선에 취약하고 권위적인 아빠의 성정을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돌아가신 아빠가 그리워서, 아빠 대신 아빠가 좋아했던 여행을 대신 다녀드리는 걸 꿈으로 삼는 천조의 마음을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 가지일 것이었다. 천조는 매일 집에서 가족들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는 우리 엄마가 해 주는 집밥을 부러워하고, 나는 남편 없이도 독립적이고 꿋꿋하게 가장 노릇을 하시며, 두 자녀를 키워 내시는 씩씩하고 쾌활한 천조 어머니의 힘이 부럽다.


"그래도 아버지가 없는 것보다는 계시는 거 훨씬 좋은 기다. 아버지 없어 슬픈 내를 생각하면서 항상 좋은 점만 생각하고 힘내라."

"그래. 그라께. 니도 힘내라. 우리가 옆에 있으니까."


우리는 손을 꼭 잡았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천조가 편했다. 전혀 다른 삶, 전혀 다른 고통을 가진 천조라서, 우린 때때로 서로의 가진 것을 부러워해 줄 수 있어서 묘하게 채워지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힘든 것들을 이야기할 때, 정말 힘들겠다,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해줄 수 있는 서로가 이상하게 힘이 되었다.


우리 앞자리에 앉은 최강은 내내 말없이 우리 이야기를 배경 소음 삼아 들으며 창 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날이 날인 만큼 이 시간에 시내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지 30분이면 갈 길을 1시간이 걸려 도착했지만, 우리의 들뜬 기분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송과, 가게마다 화려하게 장식한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들이 더 흥을 북돋아 주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 주려고 백화점 쇼핑을 나온 가족들부터, 크리스마스를 꼭 함께 보내고 싶은 연인들과 친구들과 거리는 떠들썩한 잔치 마당이나 파티장 같았다.


우린 이리저리 인파에 떠밀려 걸어 다니기도 하고, 천조가 이끄는 대로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들을 먹거나, 노점상의 물건들을 구경도 하면서, 친구 없이 혼자 왔거나 가족과 왔다면 못해봤을 경험들을 하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지나가는 한 커플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스라친 정도가 아니라, 망치로 후두부를 가격 당하는 느낌 같은, 세상이 잠시 몇 초간 멈춘 것 같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충격을 받았다.


아빠였다. 아빠가 누군가를 다정히 품에 안고 걸어가고 있었다. 여자였다. 그것도 아주 젊고 예쁜 여자. 대학생 언니 같은 느낌의 청순하게 예쁜 여자. 처음 보는 그 여자의 출현이, 처음 보는 아빠의 자상한 표정이, 나의 세계, 내가 알던 세계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있었다. 아빠와 여자는 어느 화려한 레스트랑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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