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엄마의 세탁기 (1),(2)

[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by 하트온


왜 그러냐고 재차 묻는 천조에게도, 걱정스러운 눈빛이 안쓰러울 정도인 최강에게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어로 뱉어내는 순간 모든 것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로 견고해질 것만 같았다. 아직은 아무것도 굳은 것 없는 둥둥 떠 있는 공기 같았다. 내가 본 것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잠시 모였다가 흩어질 분자 들일 수도 있다.


내 몸도 점점 해체되고 흩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천조와 최강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집에 좀 데려다 달라는 부탁밖에 없었다. 천조가 함께 와서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강과 둘이서만 있다, 아빠와 마주치기라도 했다면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너무 많은 종류의 감정이 뒤섞여 나를 무너뜨리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내가 최강을 자꾸 보고 싶은 자체가 아빠에게 배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감정을 어쩔 수 없다. 아빠가 다른 여자에게 웃음이 나고 설레는 자체가 엄마와 우리 가족에게 배신임을 아빠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빠는 감정을 어쩔 수 없어서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버지의 감정이 드러나는 행동에 내가 이 모든 혼란과 고통을 느끼는 만큼, 나의 감정 나의 행동에 아빠도 그만큼의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모든 것이 망가진 채 뒤엉켜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못한 사람은 아빠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의 죄책감이 내 심장을 후벼팠다. 타인을 향한 아빠의 그런 표정이 싫었다면, 나부터 최강을 향한 내 감정을 끊어 버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럴 수 없는데. 최강을 생각하고 그리는 것이 내게 유일한 위로고 행복인데. 더 이상 최강을 볼 수 없다면 내 인생이 의미가 없을 거라는 극단적인 생각이 밀려왔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곧 숨이 멎을 것처럼, 진짜 죽음이 시작된 것처럼 숨이 막혀 왔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온 세상이 까맣게 꺼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 같다.


***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동우의 설명을 듣고 서야, 내가 집 앞에 다 와서 쓰러졌고, 천조가 전화를 해서 엄마와 동우가 나왔고, 결국 셋이서 나를 부축하고 집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최강은 보지 못했다는 걸로 봐서, 엄마가 나올 때쯤 천조가 최강을 보내었지 싶었다.


내가 앓아누운 것을,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 생활하느라 몸이 약해져서, 그런 몸으로 쌤들 결혼 준비하느라 무리를 해서 몸살이 난 것으로 여겼다. 엄마는 나를 이끌고 한약방으로 병원으로 다니면서 검사를 받고 보약을 짓고 수액을 맞게 하셨다. 나는 매일 한약 달이는 들큰한 냄새를 경건하게 감수하며 두문불출 집에 틀어박혀 겨울 방학을 보냈다. 모두 고3이 될 준비를 해야 하니, 서로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정리하며 차근차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옳았다. 암묵적으로 꿈 모임은 해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는 너무 슬펐고 힘들었고, 최강이 너무 보고 싶었고, 그리고 엄마가 너무 불쌍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하루 종일 종종 거리며 집안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가 너무 바보 같아 보일 정도였다. 삼촌 셋과 고모 둘을 키우고 공부시키고 결혼시켜 살림 밑천까지 장만해주고, 문제 생길 때마다 뒤치닥 거리 다해 주는 엄마, 자기 인생은 없는 엄마가 내가 억울해서 더 이상은 지켜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본 것을 엄마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나는 결국 겁쟁이고 비겁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절망과 슬픔보다 두려운 것이, 그것이 불러올 내게 닥칠 변화와 시련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최강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고 위로받고 싶었다. 동우와 함께 뭘 사 온다는 핑계를 대고 밖에 나와 밤에 최강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놓고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다, 그냥 전화했다며 실없는 웃음을 희미하게 웃다가 전화를 끊곤 했다. 최강은 만날까 물었지만 나는 아니 너 공부해라고 대답하고 끊었다. 만나면 그에게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모든 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고 하루에 한 번 밤마다 같은 시간에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질식하지 않을 만큼 열린 은혜로운 숨구멍이었다.


공기가 무거워지면 액체가 되어 흐르고, 그 액체를 얼려버릴 조건이 형성되면, 막상 굳어진 고체를 들키지 않기란 어려운 모양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빠의 바람은 금세 들켜 버렸다. 초상난 집처럼 엄마의 엉엉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하혈까지 하고 실신한 엄마를 막내 삼촌이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는 정신없이 엄마와 삼촌을 따라 나갔다. 뒤에서 할머니가 넌 집에 있어라고 하는 소리가 저 먼산의 메아리처럼 미처 내 귀에 닿지 못하고 흩어졌다.


삼촌은 엄마를 산부인과로 데려갔고, 바로 입원절차를 밟았다. 간호사들이 서둘러 엄마의 바이탈을 체크하고, 엄마 팔에 바늘을 꽂고 안정제와 수액을 흘려보내는 일까지 마치고 나서야 차분한 고요가 찾아왔다. 삼촌은 엄마와 깊이 잠든 걸 확인하곤, 엄마 옷가지 등을 가지고 오겠다며 나에게 엄마 곁을 잘 지키라 하고 자리를 떠났다. 6인실 병실이었지만, 대부분 수술에서 회복 중인 환자들이라 병실은 조용했다.


나는 엄마 침대 옆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엄마 손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어릴 때 빈혈을 앓았을 때, 내가 쓰러질 때마다 엄마와 할머니가 내 손발을 주무르던 게 떠올라서였다. 엄마가 눈을 떴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을 찾았다. 내가 물을 찾는 눈치를 보이자, 옆 침대 환자를 간호하던 아주머니가 물 떠 오는 곳을 알려주셨다. 병실 밖에 정수기가 있었다. 물을 떠 와서 엄마의 목을 축이게 했다.


"말라꼬 따라왔노."

"걱정돼서."

"별 거 아이다. 그냥 어른들도 가끔 힘들고 울고 아플 때가 있다. 느그는 신경 쓰지 마라. 엄마가..."


엄마가 자꾸 숨기고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게 나는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나도 알고 있다."

"니가 머를 아는데."

"엄마가 아는 거 전부 다."


엄마는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 앉았다.


"남자들은 그럴 수 있다. 많은 남자들이 그란다. 느그 아빠는 회사 사장에 젊고 잘생깄으이까 어찌 여자가 안따르겠노?"

"엄마 상처받았잖아."

"엄마는 상처받은 기 아이고, 속상해서. 세탁기 때문에."

"세탁기?"

"김기사가 알려주데, 그 여자 사는 집을."


김기사는 아빠 차를 운전하는 기사 아저씨였다.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내내 속을 끓이다 결국 아빠의 잦은 외박에 대해 따져 묻는 엄마에게 실토했던 것이다.


"거기 가보이까 다른 것보다 침대하고 최신형 세탁기가 있는 기 눈에 확 들어오데. 그 길로 엄마 속이 뒤집힌 기다. 침대 대신 요 깔고 자는 집, 이불 빨래도 많은 우리 집에 그렇게 세탁기 하나 놓자 놓자 해도, 할매가 세탁기로는 옷 깨끗하게 안 빨리고 전기세 나간다고 반대해서 세탁기 안 샀다 아이가 지금까지......."


엄마는 없는 세탁기를 그 여자는 가지고 있는 사실이 엄마에겐 가장 현실적으로 눈 돌아가게 만드는 일이었다. 몇십 년을 하루에 몇 시간씩 대가족 빨래, 이불 빨래를 해대느라 손목이 성할 날이 없는 사람에 대한 지독한 배신이 바로 그 여자 집의 최신형 세탁기였던 것이다.


세탁기. 나는 속으로 그 세 글자를 되뇌어 보았지만, 아직 내 손으로 수건 한 장 빨아 본 적 없었던 나는 세탁기라는 배신에 대한 분노의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세탁기. 우리 집에 가장 최신형 세탁기가 있었다면, 할머니가 아무리 반대해도 아빠가 꿋꿋이 설득해서 놓아주었다면 엄마는 이렇게 하혈하고 실신까지 하며 온몸으로 분노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세탁기에 화가 났다. 그 여자 집의 세탁기를 부수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랐다. 아니, 그 여자가 사는 편리한 아파트에 엄마가 가서 살고, 그 여자가 우리 집으로 들어와 밥하고 빨래하며 대가족 수발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이젠 이 지긋지긋한 이 가부장 집단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가족은 엄마 없이 하루도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엄마가 입원한 지 이틀째가 되자, 할머니를 선두로 대가족이 들고 일어섰고, 모두가 일어서니 이 집안에서 가장 끗발 있는 돈 벌어오는 가장인 아빠라 해도 고집을 부릴 도리가 없었다. 아빠 입장에선 억지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그 여자 집에 있던 살림살이들을 삼촌들이 우리 집으로 싣고 왔다. 세탁기도 왔다. 그리고 퇴원한 엄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세탁기를 써서 매일 빨래를 하고 대가족 수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무언가가 점점 달라져 갔다. 조선 시대에 멈추어 있는 것 같던 엄마가 해동이 풀린 것처럼 진화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뭐라 하든 말든 무조건 세탁기를 돌렸다. 세탁기가 아껴준 시간 동안, 엄마는 할머니가 뭐라 하건 백화점에 가서 예쁜 옷도 사 입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도 했다. 누가 뭐라 하건 엄마는 점점 밖으로 나갔고, 어느 날 뒷집 아줌마의 소개로 보험회사 영업 직원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머리를 짧게 커트 치고, 깔끔한 정장과 구두를 갖춰 입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을 전심전력으로 돌보던 그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대하자, 엄마는 점점 업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처음 받아보는 사회적 인정은 엄마를 강하게 살려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엄마는 앞날을 예상하고 있었던 건지 모른다. 아빠의 회사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을 여자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알아챘던 것인지 모른다. 아빠는 억지로 여자를 정리당하고, 조금씩 남모르게 망가져 가고 있었다. 10년 함께 했던 김기사 아저씨를 자르고, 매일 술 마시고 취해 들어오는 날이 늘어갔다. 서서히 모든 것이 변화하고 격동하려 준비하고 있었다.


나의 고3이 시작되는 순간, 내 가족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격랑 속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3월 첫날부터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났다는 소식을 아침 뉴스 앵커가 떠들어 대는 바람에 세상 모두가 알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반장이기도 했지만, **회사 딸로도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한꺼번에 밀려드는 진심 어린 위로인지 호기심인지 정확히 분간이 안 되는 마음들이 만드는 소음 같은 질문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나는 이미 빨간 차압 딱지라는 앞 뒤로 몰고 오는 두려움과 혼란 상실감의 폭격을 거친 뒤여서 마음이 몹시 너덜너덜 지쳐있던 상태였다. 개학하기 전에 우리 집 대가족은 핵가족으로 나뉘어 뿔뿔이 흩어져 야반도주 같은 이사를 해야 했고, 아버지는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이러한 것들을 아무에게도 말하기 싫었다.


눈치 빠른 천조와 수민이, 유경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말하기 싫어하는 내 곁을 조용히 지켜주기만 했다. 갓 결혼한 김영애 쌤과 최철광 쌤은 나를 불러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하셨고, 고3이 되었으니, 한동안 적응하는 데 집중하고 꿈 모임은 잠시 접어 두자고 하셨다. 쌤들과 친한 친구들이 있는 건 주머니 안에 숨겨둔 손난로가 있는 것처럼 따뜻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견뎌내야 하는 건, 단순한 추위가 아니라 온몸을 날릴 듯한 눈보라였기에 어느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었다.


눈보라를 맞으며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웠지만, 이 와중에도 한편으론 나는 묘하게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대지진으로 지각 변동이 일어날 기회라는 것에 나는 무언가 기대되는 것이 있었다. 그전에 부당하고 부조리하다고 느꼈던 그 모든 것이 깨끗이 청소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가 내심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고3이라는 자리에 오른 나는, 도시락 두 개를 싸 들고 새벽같이 학교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일상이 시작되어 버려, 내 주변의 세상에 크게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고, 아무도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모두가 힘들어도 고3은 안정된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엄마가 언젠가 삼촌들이 분가하는 날을 위해 삼촌들 앞으로 모아주던 주택 적금들을 지금 해약해서 쓰기로 모두 합의를 보았다. 엄마는 그 돈으로 할머니와 나와 동우, 그리고 아빠가 돌아오면 지낼 거처가 되도록 작은 방 세 칸이 있는 전세 아파트를 얻었고, 나머지 돈을 똑 같이 나누어 세 쌍의 삼촌과 숙모들이 얻을 집의 보증금으로 나누어 주셨다. 아빠 회사에서 일하던 삼촌들은 곧장, 택시 기사로, 다른 회사 영업 사원으로, 막일로 급히 직종을 바꾸어 갈아타야 했다. 이 모든 일이 개학 전에 순식간에 일어났다.


이사한 전셋집은 전에 살던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멀지 않았다. 동우와 내가 학교 다니기 불편해지지 않게 신경 써서 구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새로 살게 된 집에 쉽사리 적응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아파트는 나름대로 일반 주택보다 편리한 요소들이 있었고, 이 상황에서 이 정도 집을 구할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라는 엄마의 말씀에 군말 않고 묵묵히 일상을 견뎠다.


생각해 보면 그 상황에서 우리들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엄마가 단단히 서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늘 엄마는 약하고 아버지에게 의존하는 존재 같아 보였는데, 시련이 닥친 그 순간에 도망가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서서 우리를 지킨 사람, 누구보다 강하게 바로 서 있던 사람은 그 어느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들의 엄마 어머니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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