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건강을 위하여 매일
건강은 영혼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 저는 생각하는 쪽입니다. 신이 한 줌 흙이었던 인간에게 불어넣어주신 숨, 생기, 그것이 저는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영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영혼이 죽어가는 만큼, 몸도 점점 하나의 물질로 굳어져 가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영혼과 육신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인간이 속속들이 파악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영역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은, 영혼의 죽음이 이끄는 육신의 죽음 때문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영혼이 어떤 상태여도 육신은 늙어 죽어 가도록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에 영혼이 육신에서 자유로워지고 가벼운 삶으로 갈아타는 것이 죽음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결론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인간의 육신이 왜 결국은 병들고 죽어가는 것인지, 언어로 정확히 설명할 수도 없고,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도 파악이 안 되는 영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이만할까 합니다. 아는 것이 없고,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가설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영혼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이 느낌을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고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으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라기보다, 제가 삶을 통해 통찰한 직관적인 이야기여서 충분한 설명은 드릴 수 없지만, 저는 스스로 내 영혼을 돌보고 양육하고 힘을 주고 격려하며 생기 있게 신나게 살아가는 일이 참 중요하다고 믿고 있어요. 많은 다른 사람들도 이것의 중요성을 짐작하는 것 같아요. 다만 이것에 붙이는 이름들, 이것을 설명하는 언어들이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것을 마음 챙김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셀프 페어런팅이라고도 하고, 나 자신과의 소통, 나 자신을 사랑하기,... 등등 여러 가지 이름이지만 결론은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스스로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내 건강한 삶의 원천, 내 영혼을 돌보는 일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저는 글쓰기라는 깨달음을 언젠가부터 얻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마음을 돌보는 명상 활동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요즘이지요. 인도에서 시작된 요가와 일본에서 시작된 선불교 등이 서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사람들에게 모든 잡념 잡상을 비우고 마음이 행복해지는 길을 설파합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하는 것으로만 그치는 소통은 자신의 영혼과의 직관적 교감 정도의 선에서 끝이 날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영향을 주는 정신 활동인 것은 분명합니다만, 저의 경험으로는 그 시간에 글쓰기를 더 하는 것이 더 강력한 힐링효과가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글로 풀어놓기 시작하는 순간, 언어로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정말 제대로 된 치유, 마음 곳곳을 보듬어 주는 따스한 내면 찜질이 일어나는 느낌이 듭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 분자처럼 흩어져 날아다니던 느낌과 감정들, 경험과 트라우마 같은 것들을 언어가 하나하나 이어 붙여 이야기로 만드는 순간, 그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무언가 힘이 되고 긍정적인 것으로 승화시켜 내는 순간, 분명하게 완성된 이야기를 이루는 순간, 나의 영혼은 단단해지고 굳건해진달까요? 건강한 힘이 넘치는 형체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그 힘이 온몸의 신경세포를 타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로운 숨, 새로운 피를 돌리고 나는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내 꿈은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하고, 잠은 편안해지고, 아침에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치유하는 글쓰기는 쉽지 않아요. 우리의 삶, 우리의 내면 안에 글 치유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장 첫 번째 방해물은 스스로를 속이려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항상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싶어 합니다. 이젠 꽤 이룬 것이 많다고 믿고 싶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싶은 나는, 나의 내면 구석구석 어둑하고 먼지 쌓인 지저분한 곳들을 굳이 드러내 새로운 결핍과 혼란을 발견하고 싶지 않습니다. 글을 써도, 보여주기 위한 글, 미화하고 포장하다 본질까지 잃어버린 글이 되어 버리고 말 때가 더 많습니다. 스스로의 영혼과 일말의 거짓 없이 진정으로 마주하는 글쓰기로 나아가기가 좀처럼 힘이 듭니다.
두 번째 방해물은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은 자본주의적 사고가 정신에 밴 인간의 습성입니다. 글쓰기는 시간을 들여, 나의 내면을 언어로 균형감과 짜임새가 있게 그려내고 빚어내는 노력이 필요한 하나의 예술 작업입니다. 화가가 되기 전에 음악가가 되기 전에 수많은 연습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글쓰기도 기술을 배우고 연습을 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야 몸에 나타나는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처럼, 꾸준히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연습을 하는 사람이라야 영혼에 나타나는 글쓰기의 치유 효과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눈앞의 이익과 이윤에 연연하는 사람은 돈이 안 되는 예술에 시간과 노력을 쓸 여유가 없습니다. 투자한 만큼 돌아올 가능성이 100%가 아닌 일에 꾸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요? 이 시간에 자본력을 키우는 더 실용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고 싶고, 나가서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자신을 쉽게 속이기 쉬운 본성과 습성을 가진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영혼을 위해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믿고, 매일 생계를 위해 출근을 하고, 건강 유지를 위해 운동을 하는 것처럼, 매일 나 자신과 글로써 소통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과 소통하는 글을 쓰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라야 나의 내면에 고인 진짜 이야기, 진짜 감정을 찾아내고, 그것은 이 세상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전무후무한 독특한 나만의 지문 같은 글이 됩니다. 그러한 글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고, 타인의 영혼에까지 다가가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나 자신에게 솔직한 진짜 내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 내는 것이 힘이 듭니다. 나 자신의 나쁜 습성들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수치심 때문에,... 내 영혼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기가 힘이 듭니다.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지, 이 정도면 행복한 거지, 나 자신을 안심시키는 이야기에 머물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여기에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내 영혼을 위해 진실한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나의 건강을 위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돌볼 줄 아는 것이고, 내 영혼을 진정 사랑할 줄 아는 것이 모든 좋은 일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강한 느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좋은 시작을 만들 수 있어야만, 내 글이 타인의 영혼에게도 의미로 다가가는 그런 가치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글 앞에서만은 신 앞에 불공이나 예배를 드리는 사람처럼 숙연해집니다. 내 안의 진실된 내면 그대로를 쏟아놓고 싶어 집니다. 내 모든 자존심과 가식을 내려놓고 솔직해지려고 애를 씁니다. 내 안에 고인 언어들을 그대로 드러내려고 분투합니다. 글을 위해 매일 시간을 내려고 마음을 내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삶, 영혼이 살아 깨어 있는 삶을 위한 저의 매일의 노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