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예민한 행복
사랑의 언어가 다섯 가지?
오래전에 게리 채프먼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책이 나왔을 당시엔, 상대와 나의 주된 사랑의 언어를 찾아 서로를 더 제대로 된 사랑으로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발상이 몹시도 새로운 것이어서, 전 세계적으로 반향이 대단했어요. 이 책으로 공부하는 각종 소모임도 많았고, 선물용 도서로 각광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자녀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행복한 교실을 위한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다양한 후속 시리즈도 출간되었고, 지금까지도 관계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추천 리스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책이지요. 수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 검색 없이 이 책에서 말한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정확하게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책이 내 삶에 남기고 간 발자국 또한 컸다고 생각됩니다.
이 책에서는, 인정하는 말, 선물, 상대를 위한 봉사, 함께 보내는 시간, 스킨십을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로 열거했었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득력 있게 잘 설명하였습니다. 한동안은 그것이 사랑의 언어에 관한 모든 것인 줄 알았고, 저는 그 다섯 가지 언어에 저의 마음과 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끼워 맞춰보려고 노력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랑의 언어들은 점점 지나간 유행어 같은 느낌, '몸에 좋은 다섯 가지 음식' 정도의 의미로 퇴색되어 가는 듯합니다. 더 이상은 '사람들이 너의 사랑의 언어는 뭐야?'라고 묻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생각하고 따지기 귀찮으니, 그 다섯 가지를 골고루 하면 되지 않을까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는 꽤 보편적이고 익숙한 지식으로 분류되고 마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가 저는 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오래 가진 후에 선명히 깨달아 버렸습니다. 사랑의 언어는 결코 다섯 가지가 아니라,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카테고리는, 그저 4가지 혈액형으로 나누는 성격, MBTI 16가지 성격, 사상학에서 나누는 체질별 종류, 별자리나 띠로 나누는 사람 성향... 이런 것과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좀 유형별로 분류하고 정리하고 싶은 인간 본성이 탄생시킨, 과학적 학문의 탈을 쓰고 그럴듯하게 제조된 이론일 뿐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했습니다.
보편성을 믿고 설치는 뭉툭한 분류에 만족할 수 없는 나. 발끝까지 덮어주지 못하는 허술한 이불이 불편해서 참을 수 없는 나의 성정. 나의 섬세하고 예민한 촉을 믿고 내면을 더듬어 내려가다, 나만의 사랑의 언어가 따로 있다는 걸 발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 사랑의 언어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데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성격도, 성향도, 체질도 다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몹시도 독특한 세상 유일무이한 존재일 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합니다. 신화 속에 겹치는 캐릭터의 신이 없는 것처럼, 인간도 각 사람이 타고난 장단점과 맡은 바 역할이 다 다른 독보적인 존재일 거라는 감이 옵니다.
나를 충족시키는 나만의 사랑의 언어
저의 사랑의 언어는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대충 딴 데 보고 딴생각하며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비난하고 조롱하며 듣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서 귀담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글을 쓰는 이유와도 연결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읽어주고 공감하고 내 말이 그 사람의 세계를 열고 다가가 어떤 진지한 의미로 자리 잡게 될 때, 나는 큰 사랑을 받는 충족감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진짜 이유였구나. 역시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쓰고 있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남편과 제가 어떻게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신혼 초에는 잘못된 만남, 잘못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로 많이 싸우고 부딪치고 우리의 결혼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왜 우리가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모든 아슬한 위기를 다 넘기고 함께 그럭저럭 잘 살고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남편은 보통의 인간답게 단점이 많음에도 보통의 사람들과 아주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는 저의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귀 기울여 주고, 꼼꼼하게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덕분에, 나는 내내 깊은 충족감을 느끼고 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나에게는 내 남편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주기 힘든 사랑을 충족시켜 주는 정말 고마운 나의 단짝이구나 잘 만난 거구나 확신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전에는 이런저런 단점이 눈에 거슬려, 자꾸만 싫다고 말해주고 고쳐 달라고 했는데, 깊숙한 가장 중요한 것을 충족시켜 준 사람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요구했구나 욕심을 부렸구나 생각이 들면서, 이젠 내가 받는 가장 중요한 사랑 그것에만 집중하고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랑의 언어는 자신이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이젠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나 자신 한 사람뿐인 것 같아요. 물론 부모님이 꼼꼼히 관찰하고 정확히 찾아 주시는 운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부모도 자신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자녀의 마음을 깊이 충족시키는 사랑의 언어를 찾아내기 힘든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저런 세상이 말하는 사랑의 언어를 다 구사해 보려는 노력을 했던 부모님 덕분에, 혹은 전혀 노력조차 안 했던 부모님 덕분에, 우리는 여러 가지 감정을 경험하며 무엇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우리 자신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는 밑거름을 얻은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나만의 사랑의 언어를 몰랐더라도, 부모님 및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한 경험들, 그것을 바탕으로 더듬어 나가다 보면, 찾을 수 있어요. 저 또한 무엇이 필요하건 저 스스로 찾아내야만 하는 쪽이었어요.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요소들을 파고들었어요. 사람들이 내 말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느낌,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 굳이 마주 보고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느낌, 내 말을 오해하고 꼬아서 부정적으로 듣는다는 느낌,... 이런 느낌들을 받을 때 저는 고통스럽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서, 이런 느낌과 반대의 느낌이 나를 깊이 충전시키는 사랑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들과는 서로의 말을 소중히 여기는 대화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과는 말 대신 글로 소통하는 것을 훨씬 더 편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글은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오해할만한 요소들을 걸러낸 후, 개인적 감정을 잘 다스리고 차분히 가라앉힌 후, 더 어른스러운 마음 가짐으로 성숙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글도 때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대충 읽고 쓴 부정적인 뉘앙스의 댓글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함께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다가 느끼는 감정보다는 훨씬 그 정도가 미약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로 소통하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었고, 글을 많이 쓰다 보니, 모 웹툰 드라마에서 표현한 대로 '작가 세포'가 메인 세포로 자리 잡은 그런 케이스인 듯합니다.
저는 타인의 사랑의 언어도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의 사랑의 언어를 정확히 알고 상대에게 요구하는 만큼, 나의 가족, 나의 가까운 사람들 또한 나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는다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사랑의 언어를 알아낸 과정이, 상대의 언어를 알아내는 과정을 도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힘들어하던 것들을 생각하면서, 상대가 힘들어하는 순간을 찬찬히 살펴보면 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장 힘들어하는지 많이 관찰하고 많이 관심을 가지다 보면, 상대의 마음을 시원하게 충족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인간으로서 수많은 단점들을 끼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깊은 마음을 충족해 주고 충족받는 관계를 만들어 간다면, 적어도 내 마음과 내가 맺는 관계들만은 훨씬 더 행복해지고, 흡족해지고, 뿌듯해질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