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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Nov 06. 2022

구독자 700분과

함께 살아갑니다

구독자 700분과 만나다


지난여름 - 6월 초 - 나는 구독자 600분과 캠프파이어를 하는 상상을 담아 을 발행했었다. 600이라는 숫자가 너무 대단해서 나는 잔치를 열고 싶었고, 모두 바닷가로 초대해 모닥불을 피워놓고 어울려 먹고 마시고 춤추고 밤을 새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흘러 오색 찬란 가을 비단 끝자락을 밟고 선 채 지나간 시간을 돌아본다. 지난 5개월 동안 나는 글 32편을 발행했고, 다섯 권의 브런치 북을 묶었으며, 100분의 새 구독자님들을 만났다. 내게 이 수개월의 시간은 사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이래, 가장 글을 쓰기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글쓰기가 문득문득 낯설고 어색해서 글 한 편을 써내는데 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몸도 마음도 힘들고 위태로운 시간을 잘도 버티고 있었다는 걸 지금 글을 쓰며 깨닫는다. 내가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힘을 주는 수많은 구독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구독자는 항상 기적이다. 나의 글을 계속 보고 싶어 하는 분이 700분이나 계시다고? 내 글이 올라올 때마다 읽기를 원하신다고! 구독자수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브런치 구독자수는 누군가 내 글을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는 증명으로써, 나의 글쓰기를 의미 있게 만들어주고, 나를 참 행복하게 하는 무엇이다. 


이렇게 먼 곳에서 글을 쓰고, 타국 언어문화의 영향이라는 급류를 타고 한국에서 살아갈 때와는 경험도 사고도 모든 것이 원래와 전혀 다른 성질과 모양으로 변해버렸는데, 원래 보편성과는 담쌓고 겉돌던 인간이 더 고립되고 별난 인간이 되어 버렸는데, 그런데도 700분의 구독자가 내가 쓴 글 가까이로 다가왔다는 건 내겐 엄청나게 놀라운 사건이다! 나의 글이 내 자아를 세상과 연결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그토록 목말랐던 이해를 받고 공감을 받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살맛을 만들어 주는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700 구독자 앞에서 다시 돌아보는 내 글쓰기의 의미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연 나는 그러했는가? 지금까지 브런치에 700편에 달하는 글을 쓰고 발행하고 여러 권의 브런치 북을 묶으며 깨닫는 것은, 내 글은 철저히 나를 위한 것, 내 마음을 위하고 사랑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나의 내면이 타인의 마음을 열고 다가갔다면, 그것은 내가 의도하고 계획하고 노력한 것이었다기보다, 글이라는 것이 진실한 마음을 전하는 '전달' 속성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내가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고 요구한 것이 아님에도, 저마다의 갈급한 갈증을 달래기 위해 '어느 낯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처럼, 다양한 이유로 마음에 끌림을 느끼고 '하트온'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한 분 한 분이 문을 두드리는 사연을 들었다. 이분들이야 말로 내 글이, 내 심연이 초대한 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몰라도 만난 적 없어도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특별한 존재라고 느꼈다. 나의 글이 불러내는 소중하고 특별한 관계들은 내 영혼에 하나하나 새겨졌다. 눈으로 본 사람들은 하루만 지나도 망각의 무덤에 갇혀 버리는데, 영혼으로 본 존재들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한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내 글이 일어나 손잡는 나의 사람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실하기. 진실되게 살기. 그저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내 마음이 말하는 그대로 진실된 이야기를 쓰기. 그것만이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과 손잡을 수 있게 돕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 아닐까. 



700 구독자와 함께 살아가기

 

나는 이 가을 내 곁에 와 머물러 준 700 구독자들을 생각하다가, 앞으로 쭉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라는 생각 종착역에 이른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뜨겁게 차오른다. 이 브런치 방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700명의 사람들을 만나 앞으로 오랜 만남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이 행운에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글을 쓸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하는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나는 나, 진정한 나이기만 하면 될 것이다. 내 마음이 다가가는 대상과 교류하고, 내 마음이 노래하는 글을 그대로 잘 받아 적어 '나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며 함께 살아가면 될 뿐이다. 현실 생계 때문에, 많은 것을 책임지는 입장이 감당해야 할 각종 의무로 인해 늘 장애와 방해가 곳곳에서 튀어나와 흰 종이를 펼치는 내 앞을 가로막지만, '나의 독자들'에게 들려줄 '내 노래'를 소홀히 하지 말자고 되뇌고 또 되뇐다. 눈앞의 현실에 온 마음이 다 휩쓸리지 않게 '내 안의 어린 시인'을 지켜내자고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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