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트온 Jul 24. 2022

대문호 앞에서 내 글이 주춤거릴 때

2022년 7월 23일 일기 

매일 글을 이어가던 손이 갑자기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지금도 썼다 지웠다 겨우 첫 문장을 시작했다. 아무리 고쳐 쓰고 또 고쳐 써도 내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이제 이 현상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다. 글 쓰던 손이 방향을 잃는 것은 늘 같은 이유다. 내가 쓸 수 있는 글보다 더 큰 글을 원할 때, 내 손은 힘을 잃는다. 실제의 나 자신보다 더 큰 내 이미지를 원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쭈그러들고 꺼져버리는 것이다. 기대가 커지는 만큼 오히려 나는 작아져 버리는 것이다. 


기대가 커져 버린 것은, 최근, 남의 훌륭한 글을 너무 많이 읽었던 탓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디세이아>를 읽으면서, 신화 속 신들과 영웅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기상천외한 모험담 전개에 넋을 잃었고,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설들을 읽으면서, 내 안의 들춰보기 싫은 음산하고 무서운 영역까지 다 끌어 와서 제대로 맵고 쓰고 달고 짠 손에 진땀 빼는 드라마를 쓰고 싶어 졌으며, 스탕달의 <적과 흑>처럼 지금 이 시대를 생생히 담아내는 소설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특히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를 읽으면서 필력, 문체, 집중력, 구성, 깔끔하게 떨어지는 마무리, 생생하게 되살려낸 시대정신과,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 다 가진 명품 소설에 눈이 하늘까지 치솟아 버렸다. 


나는 요즘 왜 이렇게 남의 글에 빠져 지내고 있을까. 그 위대한 고전 작품들을 읽으며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좋은 글 많이 읽어봤다는 만족감을 얻는 대신 내 글을 잃어버린다면, 남의 잘난 글 따위가 무슨 소용이람? 물론 독서가 잘못은 아니다. 좋은 글을 쓴 대문호들의 잘못도 아니다. 그들을 만나며 또 점점 균형을 잃어가는 내 유약한 자아 정체성, 글존감이 문제일 뿐이다.


이 불균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내 역량에 대한 나의 기대치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완벽주의자 기질이 자꾸만 꾸며내려고 하는 이상적 이미지를 생기는 족족 찢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것이 오직 '나 자신 있는 그대로' 일 뿐이어야 한다. 그러면 다시 나의 세계 안에서 나는 강해진다. 그래야 내가 가장 힘이 강한 존재가 되고, 나의 힘은 내가 나의 목소리만으로도, 민낯으로도 당당하게 힘차게 전진하도록 돕는다. 


내가 읽었던 대작가들의 글들을 내 마음에서 지워낸다. 그들의 삶과 글은 훌륭하지만, 내 것이 아니다. 그들을 만나서 반가웠고, 알게 되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기뻤던 걸로 충분하다. 나는 그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사색과 성찰의 기회는 누리되, 내 안의 고유한 것들이 변질되지 않도록 잘 지키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 특히 나의 글을 써 나갈 내 안의 연료 창고와 무기 창고는 최선을 다해 독립적으로 지켜내야 한다. 어떤 것도 훔쳐와서도 안되며, 빼앗겨서도 안된다.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존경하는 대상일수록 서로의 선을 잘 지키고 각자의 것을 분명히 해야 오래갈 수 있다. 


나만의 색으로 그리는 나만의 글을 완성한 후에, 당당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나만의 장르를 개척해 냈다는 그 독창성에 있어서 만큼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대작가라도 나와 동등한 인간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 세간의 인기와 인정의 차이가 있을 뿐, 나까지 나서 그의 글과 나의 글을 차별할 필요는 없다. 내 세계 안에서는 나의 글에 가장 큰 존중과 애정을 쏟아부어 줄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고, 이루지 못해도, 평생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지만, 나는 나만의 글을 쓰는 일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고 싶다. 


나를 위해서 이 글을 썼다. 이 글이, 내면에 지킬 것이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힘과 영감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발행한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FunkyFocus)

   

매거진의 이전글 구독자 600분과 함께 하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