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한, 그리고 상처 입은 아이들
할머니는 평소 깔끔하고 반듯한 분이셨지만, 한 번씩 멘탈이 무너지는 날이 있으신 것 같았다. 일 년에 한 번쯤, 할머니는 혼자 소주를 마시면서, 눈물을 흘리시곤 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깊은 한숨을 섞은 노래를 부르셨다.
한 많은 대동강아.... 내가 한 많은 대동강이다. 내 이 눈물이 다 한 맺힌 대동강 물이다...
나는 그 '한'이라는 게 싫었다. 할머니가 토해내는 소주와 눈물범벅의 '한'은 그 냄새도, 소리도 싫었고, 땅으로 푹 꺼지는 듯한 그것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더욱 싫었다.
그놈의 '한'이란 걸 우리 할머니만 품고 사셨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한국인은 '한'이 많은 민족이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어왔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 참 궁금하게 생각했었다.
그것은 '한' 많은 역사 때문이라고 했다. 왜란, 호란, 기아, 보릿고개, 한일합방, 일제 압제, 전쟁, 분단, 독재, 학살, 군부 치하,… 와 같은 한국의 과거 역사를 드러내는 단어들이 학교 교과서를 통해 내 머릿속에 들어왔지만, 마음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역사가 개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나는 몰랐었다.
중년이 된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깨닫는다.
밖에 나가면 총칼을 찬 일본 군인들이 일본어로 말하지 않는 아이들을 때리는 나라에 태어난 할머니. 삶을 갈갈이 찢어놓은 전쟁, 그 과정에서 수많은 죽음... 할머니는 소중한 첫 아들을 잃었다.
우리 할머니 뿐이랴. '한국인의 한' 이라는 건, 한국인은 개인의 신체적 정서적 경계선을 무참히 짓밟히는 고통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그러한 사람들의 자손들이라는 뜻이다. 상처 입은 아이가 또 아이를 상처 입게 하고, 그 아이가 또 상처 입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이렇게 여기까지 온 것이다. 물론 힘들었던 역사가 상처만 남긴 것은 아니다. 우리를 강하게 만들었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식을 교육시키고 살아남는 생활력과 불굴의 의지를 낳았고, 당당히 IT 강국, 문화 선진국으로 거듭난 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 개인의 삶, 특히 아이들에게 정서적 환경은 여전히 힘들다. 술에 취해 소리 지르고 쉽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자녀들의 삶을 틀어 쥐고 열심히 공부해서 남부럽지 않게 성공해 달라고, 기댈 곳은 너 하나라고 죄책감을 주는 어머니.
물론 안다. 그들 자신도 상처 입은 아이였다는 거. 온갖 정서적 질병을 앓으며,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현실을 피할 가장 손쉽고 값싼 도피처인 술에 기대 살고 있다는 거. 그런 남편을 의지할 수 없어,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어머니들, 공부시키느라 바빠 정서적인 부분을 돌봐 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녀 자신도 안정감 없는 불안한 정서적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이 그 자체니까.
이제는 알겠다.
모두가 부족한 사랑에 허덕이면서도, 왜 그런지 알지도 못하고 살아가야 했던 상처 입은 아이들임을, 먹고살기 바빠 마음 따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불쌍한 존재들임을......
그러나, 나는 달라져야겠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한', 깊은 상처를 스스로 이겨내고 극복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대로 내 자식에게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것은 악순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 가정을,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난파시키고 말 거라는 걸 이제는 알겠다.
스스로를 일으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