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외모지상주의 위에 나는 순대

[힐링 푸드 에세이] 내 마음을 먹여 살리는 밥

by 하트온

외모지상주의


케이팝과 아이돌 문화가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온 세계로 폭발적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보면서, 티 없이 맑은 피부를 강조하는 케이 뷰티와 외모에 대한 기준도 함께 번져가는 것을 봅니다. 그러한 문화적 영향력을 가진 한국, 한국인이 자랑스럽고, 세계인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가는 깔끔하고 세련되고 예쁘고 잘생긴 한국 사람에 대한 이미지도 다 좋습니다.


다만, 저는 이 외모에 대한 높은 기대가 좀 두렵습니다. 아이돌 같은 비율, 인형 같은 외모를 타고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외모일 때 느끼는 좌절은 다 어떻게 할 건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회가 그리는 외모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결핍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고수익 시장을 발견한, 영리한 인재들이 성형외과 피부과에 몰리고, 병을 고쳐 주는 의사가 점점 줄어가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감당할 건가 걱정이 됩니다. 사회가 반기는 외모로 빠르게 운항하는 케이 사회 케이 문화라는 배에 훌쩍 수월하게 올라탄 사람들 뒤에 낙오된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미친 속도로 달려가는 사회를 그저 망연자실 바라보며 좌절하고 실망하는 젊은이들의 거대한 결핍감과 혐오감은 어떻게 할 건지 불안합니다.


저는 웬만하면 모든 상황 속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만큼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담긴 글을 쓰는 일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이 엄청난 강도의 외모지상주의 물결에 대한 제 안의 두려움은 더 이상 덮고 좋은 점만 볼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모가 곧장 자본으로 이어지면서 아이들의 내면에까지 엄청난 외모 강박을 심고 밀어 뜨리는 이 절벽 앞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주는 어른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순대를 외모로 판단했던 나


사실 한때는 저도 심하게 겉모습만 따지는 외모지상주의자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인간이 외모지상주의를 품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에만 집중하는 태도는 인생을 살면서 극복되어야 할 미성숙인 걸까요? 우리 모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볼 줄 아는 성숙과 지혜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일까요?


동생은 컵라면, 소시지, 햄, 스팸, 참치 캔,... 마트에서 파는 모든 음식을 다 잘 먹었습니다. 자신이 먹는 음식들이 어떤 동물 어떤 부위를 사용하여 어떤 방식으로 제조되는지 당연히 몰랐습니다. 그저, 최종적으로 상위에 오른 것이 맛이 좋으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냥 엄마가 주는 건 뭐든 믿고 먹는 평범한 아이였을 뿐이죠.


동생은 순대, 어묵, 떡볶이, 국수, 전, 잡채,... 시장에서 파는 모든 음식도 다 잘 먹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조리과정을 거쳐 이 음식들이 만들어지는지 세세히 몰랐고 따져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최종적으로 제 앞 접시에 놓인 음식 맛만 좋으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생긴 것도 출처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키우기 호락호락한 아이가 못되었습니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면 잘 먹지 않았고, 몸에 좋은 성분 가득한 자연산이 아니면 입에 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어릴 때 내내 허약했던 덕분에, 몸에 좋은 재료, 안전한 음식을 많이 따지는 성향이 어릴 때부터 몸에 배었습니다. 엄마 손으로 만든 집밥 말곤 찾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간식거리로 시장에서 음식을 사 오실 때가 가끔 있었는데, 대부분 미심쩍어했지만, 특히 순대만큼은 절대 먹지 않았습니다. 순대는 색깔부터 거무튀튀한 것이 뭔가 인체에 굉장히 해로워 보였습니다. 하얀 쌀밥에 붙은 잡티도 하나하나 다 떼 내고 먹던 제가, 잡티 모음 잡탕인듯한 음식을 가까이할 리는 결코 없었습니다. 외모지상주의 정도가 아니라, 조그만 흠도 허용하지 않는 외모완벽주의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엇갈린 순대 사랑


저의 외할아버지는 정말 못하는 게 없는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지리산 산촌 마을은 찾아가기 쉬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포장된 길도 없어서, 차를 타고 울퉁불퉁 흔들리며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들어가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가야 드문드문 몇 가구가 모여 사는 산촌 마을이 나타나는 곳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문명과 거리가 먼 그곳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거뜬히 살아가실 수 있는 만능 자연인에 가까운 분이었어요.


우리 가족이 도착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정말 마술사처럼 뚝딱뚝딱 닭을 잡고 염소를 잡고, 거기에 과장 조금 보태서 100 가지 각종 산나물 약초 요리로 상을 꽉꽉 채워 밥상을 차려 주셨습니다. 지리산 계곡에서 수영하고 놀다가 닭다리 하나 들고 뜯으면 정말 꿀맛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그 꿀닭은 약초 가득한 지리산 산골에서 뛰어놀던, 금방 잡은 신선한 유기농 오골계였던 거지요.


할아버지는 밥상을 차려 주시고도 한시도 쉬지 않고 우릴 위해 음식을 만드셨습니다. 닭이나 염소를 잡을 때는 주로 우리가 보이지 않는 집 뒤편으로 가셔서 작업을 하셨기 때문에 조리 과정을 볼 수가 없었는데, 한 번은 할아버지가 마당 한가운데 불을 지펴놓고 몇 시간을 서서 음식을 하셨습니다.


시골 환경이 생소한 동생과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대청마루에 앉아 할아버지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고요.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엄마가 도시 현대식 부엌에서 저녁 차리는 스케일을 넘어서는 뭔가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 생소하고 특이한 작업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뭔가를 이리저리 조리하고 섞어 만드시더니, 길고 얇은 반투명 껌 같고 고무 같은 재질의 튜브 안에 만든 음식을 쭉쭉 밀어 넣고, 시뻘건 액체를 흘려 넣으셨습니다. 다른 어른들은 옆에서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는데, 나는 저게 음식이 될 수 있나 싶은 생각까지 들만큼 이상해 보였습니다. 저 뻘건 액체가 뭐냐고 물어보니, 돼지 피라고 말씀해 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게 순대라고 엄마가 옆에서 거들며 대답했어요. 그 순간 동생은 곧 토할 것처럼 새파래진 얼굴로 방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습니다.


나 이제 절대 순대 안 먹어.


순대를 그렇게나 잘 먹던 동생이 순대를 안 먹겠다고 선언하던 그날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제 기억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반면, 저는 그날부터 순대를 먹었습니다. 순대 색깔이 거무튀튀한 게 더러운 손으로 만들거나, 쓰레기 먼지가 들어가서 그런 게 아니라, 자연적인 음식 고유의 색이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외할아버지가 만드시는 거라면 믿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전까지 외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해마다 보내주신 모든 것이 몸에 무척 좋은 거라고 어른들이 귀하게 여기며 먹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내 마음엔 지리산과 외할아버지에 대한 큰 신뢰가 쌓여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금방 쪄내신 따끈따끈한 순대, 먹어 보니 너무나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 순대를 이제 안 먹겠다고 하는 동생을 모두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고집이 센 동생은 한 번 안 먹는다고 하면 안 먹는 아이였어요. 동생은 자라면서, 각 음식의 제조 방법을 이해하면서 먹지 않게 된 음식이 늘어갔습니다. 반면 저는, 더러운 게 아니었구나, 이렇게도 만들 수 있는 거구나 깨달으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점점 더 늘어갔어요.



그러니 맘대로 안 되는 외적 기준을 버렸으면 해요


순대처럼 보기엔 그래도 속은 꽉 차고 맛있는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우리는 왜 높은 외모 기준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차별하고 좌절시키고 있나요. 어떻게 생겨도 자연적인 저 사람 고유의 외모구나 아름답게 보아주고 긍정적으로 받아주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티브이에 나온 코디미언들이 못생긴 외모라며 비하당하지도, 스스로 비하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노인 주름진 외모를 혐오하며 늙기를 두려워하기보다, 용기 있게 삶을 헤쳐온 지혜와 연륜이 쌓인 흔적으로 소중히 여기고 당당히 자랑스러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외모 아이돌 외모만 기준이 되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외모가 똑같이 동등한 가치로 느껴지고 대등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금방 만든 신선한 순대는 너무너무 맛있고, 그 맛의 기억은 너무나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무식하고 편견에 가득 찬 저의 외모지상주의를 뛰어넘어 내 입으로 날아 들어왔던 순대가 저는 참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감히 그 좋은 것을 보기에 아름답지 않다고 꺼렸던 그 옹졸했던 수준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저는 순대 덕분에 제 안의 미성숙한 외모지상주의를 점점 밀어 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눈으로만 알 수 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발견해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차린 성찬에 무작정 끌리기보다 시골 할아버지가 만든 지리산 순대 한 접시의 가치를 잘 알고 기꺼이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사회 기준이 떠받들어 주는 아름다움에 현혹되기보다, 사람들이 잘 못 보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더 빨리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이유로 좌절하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이루는데 한몫 거들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자랑스럽게 '순대적' 자신감을 추구하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각광받고 만발한 세상을 꿈꾸고 추구합니다.



*반전 있는 순대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대문 이미지 출처: https://www.kurly.com/goods/5026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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