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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하 Oct 24. 2021

몸으로 하는 일본어 학습 과정

2-4 살아있는 외국어 공부의 실제, 어학 공부는 시끄러워야한다

제가 어떻게 일본어를 학습했는지 구체적으로 공유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참고가 될 수 있을 지도 몰라서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저는 일본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서 일본 애니메이션 시청과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일본어의 인토네이션과 발음에 익숙해진 상태였고 연극부 활동을 통해서 체험했던 “말”의 역할과 안에 마음을 담은 발화의 진정성의 중요성 또한 어학 공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네이티브 발화의 “듣기”가 어느 정도 쌓였을 때 어떻게 했던 공부가 효과적이었을까요?


그것은 조금 무식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대화문의 “통 암기”이었습니다. 제가 속했던 일본어 교실의 수업은 선생님이 워낙 뛰어나셔서 언어 학습에서 필수적인 일본어의 언어로서의 감각적인 설명이나 문화적인 배경 등을 수업 간간히 들을 수 있었고 일본에 직접 가지 않았더라도 그런 생생한 체험기가 일본어의 느낌적인 틀을 세우는데 큰 바탕이 되었습니다. 언어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감각적인 틀 자체를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배고픔을 느꼈을 때, 그 의미를 머릿속으로 다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배고파”라고 느끼고 발화할 수 있게 되듯이 말입니다. 즉 세심하게 내가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어떤 감각이나 개념, 느낌과 말을 연관시켜서 학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화문의 “통 암기”가 효과적이었는데, 이 방식이 문자 그대로 나오는 말을 머리로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문의 의미를 파악한 후에 그것을 내가 지문을 보지 않아도 발화 할 수 있을 정도로 암기하고(즉 그 문장 자체를 내 안에 의미와 언어적인 감각, 뉘앙스와 더불어서 체화하고) 짝을 정해서 그 문장을 실제로 내가 직접적으로 사용해보면서 대화를 하는 경험을 꾸준히 쌓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저는 이러한 발화 중심의 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직접 내가 발화를 해 보면 속으로 책을 보고 의미만 파악하는 것과는 달리, 내 발음과 억양 등을 스스로 느끼고 그것이 어색한지 아닌지도 파악하며 시정하는 과정을 계속 거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시정은 이미 어떤 발화가 덜 어색한 발화인지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가능한데, 이야기했듯이 저는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청을 통해서 네이티브의 발화의 느낌이 많이 각인이 된 상태여서, 제가 스스로 발음하고 문장을 말했을 때의 어색한 정도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습니다. 이 스스로 시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언어 학습에서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내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네이티브의 발화를 많이 접함으로서 키울 수 있습니다. 


어학을 책으로만 공부한다는 것은 이러한 발화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책의 글씨를 보고 의미만 파악한다던가, 글씨를 노트에 옮겨 적어보며 암기한다든가 한다면 그렇게 됩니다. 단어 암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어를 수십 번 수천 번 써가면서 철자를 외운다 할지라도 그 정확한 발음, 그 뿐만 아니라 그 단어가 감각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그 단어가 가진 고유한 감각과 색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쓰이는지에 대한 학습이 없으면 단어 철자와 뜻만을 연결해서 암기하는 단어는 언어로서 살아서 움직이기 힘듭니다. 그냥 사전에 나온 동의어를 암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의어라고 분류되어있는 단어라 할지라도 우리는 발화를 할 때, 우리가 쓰고 싶은 어휘를 그때그때 선택해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단어마다 가지고 있는 함축적인 색깔, 뉘앙스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뉘앙스는 단어만 따로 나열해서 암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를 문장 속에서, 나아가 상황과 맥락 속에서 학습할 때 점점 익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 상황을 가정한 대화문의 통 암기를 통해서 단어를 학습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대화문의 의미를 문화적인 배경 설명과 더불어서 파악하고, 그냥 파악하고 의미를 아는 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모든 문장의 발음을 익히고, 그 발음을 문장의 의미를 전달하고 담은 채로 소리 내서 발화하려고 노력하고, 내가 직접 발화하는 말로 대화를 해보는 연습은 언어의 단순한 학습에서 사용과 활용까지를 폭넓게 담은 학습법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어를 학습할 때 조용히 책을 보거나 사전을 보면서 의미를 찾거나 이어폰으로 어학 음성 자료를 들으며 공부합니다. 어학 학습은 시끄러워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는 어학 공부를 하지 못합니다. 계속 중얼중얼 말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작게라도 혼잣말이 가능한 카페 등이 낫고 집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는 되도록 오디오북이나 TTS(Text-To-Speech)를 함께 듣습니다. 글자만이 아니라 소리로 함께 언어를 익히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스피커로 책을 읽을 경우에는 조용한 곳에서의 독서도 어려워서 산책을 하며 듣거나 집에서 듣거나 합니다.


어학은 절대적으로 문자와 소리가 함께 가야 합니다. 문자와 소리와 의미의 결합, 그 세 개가 자연스럽게 통합이 되면서 이루어져야 듣기 학습, 말하기 학습, 읽기 학습, 쓰기 학습이 따로 놀지 않고 내 안의 통합된 언어 자체로서 기능하기 시작합니다. 듣기를 할 때도 그 듣기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읽기를 할 때도 그 문자를 소리 내어서 정확한 발음으로 읽고 나아가 외워서 발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으로 앉아서 가만히 철자를 공부하고 뜻만 찾아서 공부한다면 언어의 반의반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됩니다. 계속 소리 내서 말을 해봐야 하고, 더 좋은 것은 내가 책을 소리 내서 읽으며 공부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네이티브의 발음을 듣고, 그 의미를 파악하고 나도 최대한 그 네이티브의 느낌에 근접하게 말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초급 학습자가 오디오 자료 없이 글을 읽으며 어학공부를 한다면 제대로 그 글을 읽을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합니다. 이는 자기 식으로 지어낸 잘못된 발음과 발화 습관을 고착화시킬 확률이 높습니다. 오디오 자료가 없는 어학 학습은 그래서 초급일수록 되도록 지양되어야 하고 오디오 자료는 그래서 아직 올바른(네이티브에 가까운) 소리가 완전히 귀에 익어서 내가 스스로 어느 정도 생산해 낼 수 있을 때까지는 반드시 중심적으로 필요합니다. 언제나 오디오 자료가 같이 있는 편이 더 좋습니다. 그냥 오디오 없는 책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언어를 언어로서 제대로 익히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책을 읽으며 하는 조용한 ‘공부’나 수험생의 이미지에서 떠오르는 독서실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고 암기하고 이해하는 공부는 지식으로서 기능하는 다른 많은 과목에는 통할지언정, 그 자체로만은 어학 공부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 암기식 수험 공부가 다른 시험이나 다른 과목에는 통할지 몰라도, 심지어 수능 영어에도 통할지 몰라도 진짜 언어로서 어학공부를 하는 데는 통용되지 않습니다. 언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어학공부는 시끄러워야합니다. 만약 어학 학습을 하는데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칠판 앞에서 수업을 하고 학생은 받아 적기만 하고 있다거나 선생님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는 시간이 많고 학생이 발화하는 시간이 아예 없거나 적자면 그 수업에 대해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목표 언어로만 수업하는 집중학습(Language immersion)의 경우는 그 목표언어의 노출을 늘려준다는 의미에서는 유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중학습에서도 학생 발화가 있는 경우가 더 유리하고 이러한 학습은 학생이 이중 언어 구사자(bilingual)일 때 더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제가 다녔던 일본어 교실은 그렇게 “시끄러운”학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에 끊임없이 발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선생님은 끊임없이 발화를 통해서 문장을 들려주었고 학생들은 중얼중얼 소리 내어 배운 내용을 암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나중에는 두 명씩 모두의 앞에서 돌아가면서 외운 내용을 대화하며 발화하는 일종의 작은 연기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맥락과 상황과 함께 문장 전체로 익힌 언어는 수업이 진행됨과 더불어 한 문장 한 문장이 자연스럽게 몸 안에 쌓이고 체화되면서 내 안에 그 언어만의 고유한 체계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 언어의 틀이 점차적이고 직접적으로 몸으로 형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책상에 앉아서 속으로 혹은 눈으로 책을 보면서 어학을 학습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몸의 기관을 내가 사용해 보면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단어를 시정하고 아직 뜻이 완전히 몸 안에 들어오지 않아서 국어책처럼 어색하게 발화하는 발화를 수정하고 하면서 좀 더 자연스럽게 문장을 말하고 정말 말로서 그 언어를 발화할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을 거듭하면서 점점 체화된 것입니다. 


처음에 외국어를 발화하려고 시도하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정확한 발음을 바로 해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예 모국어에서는 해보지 않았던 발음 방식으로 평소에는 쓰지 않는 근육과 호흡 방식을 이용해서 나에게는 낯선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몸의 학습은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반복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단 들리는 그 소리를 어떻게 하면 비슷하게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 스스로의 시도와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누가 옆에서 도와줄 수는 있지만 만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근육을 사용해야하고 스스로 몸의 기관을 컨트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감각적인 부분은 말로 설명해서 힌트는 될 수 있어도 그것으로 이해되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직접 많은 시도를 해보면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발화 연습이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을 잘 말하기는 힘듭니다. 무엇보다도 모국어의 발화 습관이 그것을 크게 방해합니다. 우리는 이미 모국어라는 한 가지 언어를 굉장히 깊게 익혔고, 다른 언어를 배워도 무의식중에 그 언어를 모국어에 빗대서 이해하고자 하는 습관과 욕구가 있습니다. g와 ㄱ의 발음이 아무리 달라도 비슷하다고 느끼고 r과 l은 영어권 학습자라면 아예 헷갈릴 수 없는 아예 철자 자체가 다르고 조음 방식 자체가 다른 별개의 음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둘 다 ㄹ과 비슷하다고 느끼며 혼동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모국어의 간섭입니다. 우리가 실제 ㄱ과 다른 실제의 g발음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끊임없이 탐구하며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고 발화하는 연습을 하거나, r과 l발음이 각각 무엇인지 ㄹ과는 무관하게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저 습관적으로 g를 ㄱ처럼, r이나 l을 ㄹ처럼 발음한다면 우리가 내뱉는 발화는 영어와 어느 정도 유사하지만 다른, 한국어 억양의 영어가 됩니다. 그리고 이 억양은 그 언어 안에서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방해가 됩니다. 


이렇게 설사 시도를 한다고 해도 발음을 익히는 것은 내가 써보지 않은 기관을 이용해서 내가 만들어 내본 적 없는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예를 들어 유럽권 언어의 떠는 r발음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기 때문에 익히는데 시도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독서실에 앉아서 하는 어학 공부는 반의 반쪽도 되기 힘든 것 입니다. 어학공부는 반드시 시끄러운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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