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살아있는 외국어 공부의 실제, 외국어와 친숙해지기
문장 통 암기는 언뜻 들으면 구시대적인 무식한 학습 방법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냥 무조건 주먹구구식으로 문장을 암기하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문장 통 암기가 빛을 발하는 것은, ‘문장이 어떤 상황과 맥락 속에서 쓰이는가?’ 자체를 나 스스로가 충분히 학습하고 그 문장 안에 있는 어휘나 표현을 전부 내 것으로 체화를 하여서 직접 내가 입으로 소리를 내서 발화를 해보는 경험에 있습니다. 즉 머리로 하는 암기가 아니라 내가 즉각적으로 사용하고 말할 수 있는 단계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경험이 쌓이면 내 안에 진짜 언어 재료가 조금씩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내가 실제로 비슷한 상황, 비슷한 감정에 처했을 때 불쑥 튀어나와 쓸 수 있는 어휘나 문장이 다른 언어로 하나 더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버스가 안와서 기다리는 상황에서 “いらいらするなぁ。”하는 발화를 배우고 해봤다면 그 “いらいら”라는 감정이 그 상황과 맞물려서 기억이 되는 식입니다.
제가 한국어 교육을 위해서 교재를 보러 서점에 갔을 때 한 교재에 “아슬아슬, 매우 위태로운 모양을 나타내는 말”하는 식으로 한국어의 의성어와 의태어 목록이 적혀 있는 교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한국인도 ‘앗 저것은 매우 위태로운 모양이야 그러니까 아슬아슬 이라는 말을 써서 표현해야지.’하고 ‘아슬아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슬아슬한 무언가를 보고 느껴지는 그 위태로움을 표현하고자 ‘아슬아슬’이라는 어휘를 즉각적으로 그 감각과 연결해서 씁니다. 차라리 무언가 떨어질 듯 말 듯한 사진이나 위험한 상황을 보여주고 그에 따른 ‘아슬아슬’이 들어간 예문을 학습하는 것이, 맥락 없이 나열된 의성어 의태어 뜻 목록을 외우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머리로 단어의 뜻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단어의 감각을 익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로 단어와 뜻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문맥과 맥락이 있는 상황속의 문장 통 암기가 효과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지는 암기라는 외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자를 보지 않고도 즉각적으로 내 감각과 연결해서 그 단어를 쓸 수 있게 될 수 있을 만큼 그 단어와 친해지고 익숙해지고 써보는 경험을 가지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사용해 가면서 어휘는 점차 내 것이 되어가고 그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어휘의 폭도 늘어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 문장 통 암기와 그 사용연습보다 조금 쉬운 단계로는 섀도잉 학습도 있습니다. 섀도잉도 물론 섀도잉 자체만 했을 때는 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지만 매 발화하는 문장 전체의 내용을 내가 이해하고 최대한 내가 하는 발화로 그 발화를 만들면서도 그 인물의 어조와 말투에 맞게 섀도잉을 한다면 그 학습 효과는 더 좋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앵무새처럼 뜻을 모르고 들리는 것을 따라서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발화의 의미를 이해하고 내가 그 인물이 되어서 말을 한다는 느낌으로 감정과 마음을 실어서 실제로 발화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제가 일본어 노래를 뜻도 모르는 채 따라 불렀던 것이 일본어 발음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듯이 그저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섀도잉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더 좋은 것은 각 문장을 내 언어로 완전히 소화해서 발화를 해나가는 것입니다.
통역에는 크게 들으면서 바로 통역을 하는 동시통역과 듣고 나서 통역을 하는 순차통역이 있는데 동시통역이 훨씬 어렵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단계가 “같이 말하기”입니다. 상대가 말을 시작하면 한두 음절 정도 텀을 두고 말한 내용을 그대로 거의 동시에 따라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섀도잉은 통역 공부에도 쓰이듯이 어학 학습에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실제로 저는 일본에 거주할 때 주변의 일본인들 이야기나 수업중의 교수님 이야기를 소리 내지 않고 입을 움직여서 중얼중얼 따라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바로 이 섀도잉 연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渋谷~ 渋谷~です。”같은 지하철 안내방송까지도 곧잘 따라하곤 했습니다. 슈퍼의 안내 방송, 백화점의 안내 방송 등 귀에 들리는 일본어들이 있으면 그때그때 중얼중얼 따라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같은 일본인이라도 그 사람의 성격, 고향, 언어 습관, 성별, 나이 등에 따라서 말씨가 다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일본인들을 접하며 그 차이를 직접 느끼고 들으며 또 중얼중얼 따라도 해보는 경험은 일본어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습니다. 당시 제가 중얼중얼 따라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친구는 신기해하기도 했는데 어학 학습중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었습니다. 그냥 머리로 듣는 것과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직접 입을 움직여서 발화를 해보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섀도잉에 한창 빠져 있을 때는 영화를 봐도 영화대사를 한두 음절 간격으로 중얼중얼 따라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따라하는 단계는 어느 정도 고급 학습자가 되어서 내용이 거의 다 들리고, 뜻을 알아들을 수 있고, 어떤 문장을 말하고 있는지를 즉각적으로 알 수 있을 때 더 효과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느리더라도 문장을 듣고, 멈추고, 뜻을 찾아보고, 문장 내용을 이해하고 따라 해보고, 다시 들어보는 좀 더 천천히 문장 하나하나를 알아가는 학습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일본어를 공부한 이후에, ‘언어 학습’의 관점에서 영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영어를 다시 저렇게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을 보면서 한 문장 단위로 모르는 단어 뜻을 찾아보고 문장 전체를 이해하고 제가 직접 말해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더딘 과정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차근차근 문장과 상황과 맥락 속에서 학습한 단어는 그 뉘앙스가 내 안에서 점점 형성이 되어서 내 안에 그 맥락과 함께 기억에 남아서 기억도 더 잘 나고 끄집어 쓰기도 더 쉬워지기도 합니다.
요즘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핸드폰 어플리케이션 중에서도 문장 단위로 재생을 해주는 어플리케이션도 있고, 자막을 클릭하면 자막의 뜻을 자동으로 보여주는 어플리케이션도 있고 크롬 넷플릭스 확장 프로그램 중에는 넷플릭스를 이중 자막으로 보여주는 기능을 가진 확장 프로그램 등도 있어서 기호에 맞게 찾아서 이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에는 이도 저도 귀찮아서 원어에 한국어 자막으로 가장 많이 보지만, 저도 더 본격적으로 어학을 학습할 때면 이런 프로그램이나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