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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하 Oct 24. 2024

회피형 나르시시스트 (17) 회피형 나르시시스트-최종화

소설, 이별의 불가능성

그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누군가가 나에게 재회 사이트가 있고 재회 상담을 해주는 곳이 있는데 네가 인간관계를 배우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추천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검색하는 과정에서 책 한권을 읽었다. 애착관계 이론에 관한 책이었다. 애착 관계에 대해 사람을 안정형, 회피형, 불안형으로 나누고 있었는데, 이 책의 불안형이 나와 닮았고 회피형이 그와 닮아있었다. 책에서도 불안형과 회피형의 만남은 쫓고 쫓기는 지옥의 구도였다. 내가 5개월간 겪은 그림의 축소판 예들이 책에 빼곡히 실려있었다.

그와의 관계가 처음으로 다른 시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좋고 싫고 이전에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관계 자체가 불편했던 것일까. 그에게 들은 그의 전 여자친구들과의 관계가 머리에 그려졌다. 모두 진지한 관계가 되려는 시점에서 그가 관계를 거부하며 이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시점은 훨씬 길었다. 전에 데이트 하던 사람은 5년동안 "여자친구"라는 이야기조차 듣지 못한 채 섹스와 데이트만 하다가 헤어졌다. 그 전 여자친구는 결혼을 이야기하는 시점에 그가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었다고 들었다. 그 전 여자친구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거부로 헤어졌다고 했다.

상대에 대해 비난을 하고 비판을 쏟는 회피형의 특징들이 그와 겹쳐 보였다. 그를 단순히 하나의 프레임으로 고정할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와의 관계를 다른 틀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마음을 돌리는 큰 수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회피형의 특징은 관계에서 상대방을 탓하고 불안형의 특징은 관계에서 자신의 잘못을 탓하는데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서만 파고들고 관계 자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는 시각은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이 옳았고 나는 모든 것이 틀렸다. 그게 그의 시각이기도 했다.

불안형이 불안 요소가 사라지면 충분히 독립적이 된다는 구절이 와닿았다. 바로 이부분이었다. 나는 마음이 편해져서 다시 내 일상에 복귀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려고 하면 그는 다시 나를 자극하고 나는 거기에 끊임없이 반응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사실 사귀는 사람과 한달 이상 연락하지 않고도 잘 지낼수 있는 사람이었다. 1년 이상의 장거리 연애 경험이 두번이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삶의 그 어느때보다도 잘지내곤 했다. 연애 상대가 있었지만 적당히 거리감이 있었고 그만큼 나는 내 생활에 충실했다. 그러한 것이 그와의 관계에서는 아예 시작될 여지도 없었다. 내가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상대가 아닌 내 생활에만 집중하게 될 기반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회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여러 우려의 글도 있어서 알아보다가 재회 사이트가 아닌 상담을 해주는 곳을 찾아서 신청을 했다. 전화로 1시간 정도 상담을 해주는 곳이었다. 그와의 사연을 적고 전화 통화를 했다. 그가 회피형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상담사도 그가 회피형인 듯 하다는 것에 동의하며 더불어 다른 이야기를 했다. "나르시시스트인것 같은데요." 낯선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상담사분은 서로 사귀게 되면 내가 상대에게 다 맞춰야하는데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재회를 원하는지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일단 일을 잘 해보는게 어떻냐고 했다.


문득 아는 분 집에 가고 싶었다. 잘 아는 분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연애를 하시고 이별을 겪으신 분이었다 뭔가 삶의 지혜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턱대고 연락했는데 흔쾌히 초대해주시고 맞아주셨다. 그리고 긴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잠까지 자면서 거의 12시간에 걸쳐서 나는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또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그분이 말했다. "그 사람, 나르시시스트인것 같은데?" 나는 재회 상담소에서 들은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한 상태였다. 갑자기 나도 그도 잘 모르는 제 3자에게서 듣는 두번째의 동일한 단어가 내 귀에 걸렸다. 첫번째는 가볍게 흘려들었는데 두번째가 되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분의 시각에서 왜 그를 나르시시스트로 느꼈는지를 들었다. 회피형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아귀가 맞아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당연히 행동해주리라고 기대했던 행동 양식이 그의 안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조차 않았으리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내가 알고 있는 그가 이렇게 행동을 하지 않을텐데 왜 그러지 하고 그 왜를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계속 실패를 했는데,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 자체가 내가 만들어낸 그에 대한 이미지이고 실제의 그는 그가 행동한 모습일 수도 있었다. 적어도 그 모습도 그의 일부였다. 그것은 큰 쓴 약을 삼켜야 하는 일이었다. 메트릭스의 빨간약을 과연 먹을 것인가.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빨간 약의 효과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환상 밖에서의 내가 바라지 않았던 실재가 가만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질투를 하지 않는 다는 그의 말도 다르게 이야기가 되었다. 질투는 하지 않아야지 한다고 안하게 되는 것이 아닌데 그걸 안한다고 확신하는 것 자체가 상대가 자기 아래로 들어와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또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던 것 자체도 다르게 이야기 되었다. 그와 처음 만나서 내가 도움을 받은 이야기를 하자 그건 달리말하면 이 사람은 내 영향을 받기 쉬운 사람이네 하고 인식이 된 것일수 있다는 해석이었다. 그 좋아함이었다. 좋아함의 결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를 듣는 이야기들로 오직 규정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떤 이야기들이 다른 시야를 주었다.

나는 그가 내가 상처받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어떤 행동을 해서 내가 상처받았다는 것을 안다면 적어도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사과를 해주고 그러한 행동을 멈추려고 노력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새로 그려진 그의 모습안에 그는 내가 상처를 받는지 아닌지 자체가 아예 안중에도 없고 고려 대상도 아닌 그가 있었다. 그 자체가 그의 그 어떤 행동 동기도 아닌 그가 있었다. 아는 분은 분명히 말했다. 그 사람과 사귀려면 결국 네가 다 없어져야 하는데 가능하겠냐고 그렇지만 연애 감정은 어려운 것이고 선택은 네 몫이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와 사귄다면 결국은 그 지옥의 5개월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뭔가 다른 방향으로 눈이 떠졌다. 그저 그와 다시 사귀고 싶고 그에게 보상을 바라며 울던 나와는 다른 상태가 되었다. 그 상태로 그와 다시 회의를 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일을 진행시켰다. 그나마의 작은 진전이었다.


다음 날은 경찰이 알려준 상담사와 상담이 잡혀있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공항에서 통화한 상담사였다. 이미 공항에서 대충의 상황을 한번 들었던 상담사라서 그 전후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나는 우리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이 상담사도 그가 회피형에 나르시시스트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와 사귀는 것은 내가 없어져야하는 일인데 그것은 건강한 관계가 아닐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내 성격상 그럴 수도 없을 거라고도 했다. 

더욱 충격적인 말들이 이어졌다. 상담사가 보기에 그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설사 상담을 오래 받아도 변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옳고 모든 것이 틀리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의 수행자로서의 태도도 그러한 그가 옳다는 자기 확신을 공고히 하는데만 쓰일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그 옳은 사람에게 상대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다 맞춰주는 것밖에는 없다고 했다. 상대가 틀렸기 때문이다. 이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살아있는 지옥이었던 지난 5개월이 다시 그려졌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가 2개월도 채 못간 것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부족하거나 못나서가 아닐 수있다고 격려해주었다. 다만 이 사람은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와 갈등에 취약하고 그것을 회피하고 참아내지를 못하는 성격인데,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시점이 길었다면 내가 짧았을 뿐이었을거라고.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건강했다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현상에 대한 다른 시각, 다른 해석이었다. 적어도 내가 나 스스로를 다독이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그러며 상담사는 그와의 가장 기대할 수 있는 큰 관계는 친구일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을 듣는 것은 슬펐다. 그 이유는 단지 그가 연애 관계 자체에 서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는 내 문제나 내 행동을 떠난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는 그는 연애나 결혼 등의 가까운 관계에서 같이 있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을 견디지 못해 보인다고 했다. 그것은 그가 나에게 표현했던 여러 표현들과도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그는 구속이 없는 연애를 하고 싶다고 했었다. 문제의 초점이 나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나를 고쳐서 관계를 회복하는데만 초점을 맞추었던 나에게 다른 시각을 주었다. 그에 관해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택이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부분이 남아있었다. 계속해서 그와 다시 사귀는 미래를 꿈꿀 것인가. 그 자체에도 물음표가 찍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를 사랑했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를 향한 어떤 마음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가 완벽하고 멋있고 나에게 상냥하고 자상하고 모든것을 해주는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모든것이 아님에도 내 안에 있는 그에 대한 순수한 지지였다.

이 지지는 그와 연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으며,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던 시점에도 서로 같이 공원을 걸으며 편안한 시간을 함께 보내게 해주었던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나는 그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관계에 커다란 물음표가 내 앞에도 찍히고 있었다. 



- 끝 -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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