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별의 불가능성
그와 다시 만났다. 그는 차를 운전해서 근처의 산으로 나를 데려갔다. 계곡 옆에 앉았다. 연어 떼가 죽어있었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오른다는 말을 소설에서나 읽었었는데 실제로 연어의 사체가 산 가장 위 계곡에 쌓여있었다. 죽은 연어 떼 냄새가 났다.
우리는 뭔가 대화를 하려다가 말았다.
결국 우리는 자리를 옮기고 다른 곳을 향해 갔다. 그곳에 앉아서 나는 내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2일에 걸친 비행기와 시골로 내려가는 길에 탄 기차와 버스는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에 대한 마음은 들쭉날쭉했지만 그래도 한풀 꺾여있었다.
그는 다시 나에게 말했다. "나는 너와 헤어질거야. 다시는 사귀지 않을거야." 그는 분명히 말했다.
그 이후 많은 대화를 했다. 그가 나를 우려해서 신고한 경찰과 그 경찰로 부터 내가 받은 번호로 내가 요청한 테라피스트가 출동하기도 했다. 그들의 도움도 받으며 우리는 2일에 걸쳐서 길고 긴 대화를 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너는 내게 최악의 남자친구였어."라고 그에게 말하는 순간 뭔가가 빠져나갔다. 그렇다. 그는 최악의 남자친구였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내가 있었고 그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했던 내가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그는 최악의 남자친구였다. 그것도 사실이었다.
이후에 우리는 같이 돌아다녔다. 언제나 함께 다니면서 느꼈던 그 편안함이 둘 사이에 여전히 있었다. 마지막 데이트를 했던 가장 좋아했던 장소였던 공원을 다시 같이 걸었다. 그는 서로가 서로를 그저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던 때를 상기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서로에 대한 그런 태도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처음부터 연애 베이스가 아니었다. 그 이전에 가진 관계의 독특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했다.
그렇게 밤이 되었다. 새벽 1시에 잠에서 깼다. 그의 방에 갔다. 그는 깨어 있었다. 그의 방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그는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마지막 밤이 아니냐고 했다. 적어도 그와 다시 만나면 그와 밤을 함께 보내리라고 항상 여기고 있었다. 헤어지고 나서야 그와 다시 만나게 될줄은 알지 못했다. 그는 결국 마지막 밤을 함께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밤은 내가 그렸던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결국 우리 관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베이스는 섹스도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다른 공원에 가자고 했다. 그 공원을 함께 걸었다. 여전한 편안함이 그곳에 있었다. 서로의 앞과 뒤에서 서로를 따라 걸으며 때로는 철학적인 토론을 때로는 말없이 걷는 시간을 보냈다. 여전하다면 여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공항까지 나를 배웅했다. 이번에는 포옹을 해주었다. 나는 입을 맞춰달라고 했고 그는 마지못해 입술과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출국심사대로 내가 떠나는 모습까지 확인하고서야 그는 자리를 떴다.
자리를 뜨기 전에 그는 다시 말했다. 나는 이제 네 남자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너의 문자도, 전화도 답장하지 않을거라고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거기에 어떻게 대꾸할 시간도 없었다. 다만 답장이 없을 것을 알면서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는 않았다. 그가 도착하면 도착했다고 연락을 달라기에 그러면 적어도 읽었다는 이모티콘이라도 표시해주면 그러겠다고 하자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돌아왔다. 돌아오고서야 상실감이 밀려왔다. 매일 통화했던 그가 더이상 없었다. 그 당연함이 이제는 당연함이 아니게 되었다. 매일같이 싸우고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 조차도 사라진 지금이 더 편안한건지 아닌지 헷깔렸다.
집에 바로 돌아가지 못한채 공항 근처 숙소에 묵었다. 집에 돌아가지 못했기에 그에게는 연락을 바로 하지 않았다. 며칠 있다가 그에게 집에 돌아가지 않아서 바로 연락을 안하고 있었다는 문자를 짧게 날렸다. 하트 이모티콘이 도착했다.
친구들에게 실연 소식을 다시 전하고 울었다. 처음 겪는 실연이었다. 이전에도 연애를 했지만 한번도 실연의 아픔에 시달려본적이 없었다. 그만큼 낯설고 이상한 감정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일을 아직 같이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같이 일을 마무리 할 생각이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다만 처음의 조율은 커플 조율을 하고 있는 친구를 끼고 만나는 것이 어떻느냐고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하며 약속을 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 친구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고 나중에서야 상황을 자세히 듣고 셋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는 결국 하와이에 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가 하와이에 가기로 계획한 것은 그가 헤어지자고 말하기도 훨씬 전부터였다. 하와이로 간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5개월동안 보지 못했다. 그가 나를 보러오지 않는 것은 가족을 돌봐야해서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기로 한 곳은 하와이였다. 5개월동안 참은 나를 제치고 5일 전에 이야기한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 깊게 가슴을 찔렀다. 너무나 아팠다. 한동안은 분노에 차서 애꿎은 중간에서 커플을 중재해주는 친구를 붙잡고 감정을 토로했다. 그가 내 상처를 보상해줬으면 한다고 보상을 울부짖었다. 그는 나에게 요구를 하고 내가 그것을 거절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바라는 보상이 없지만 나는 다르다고 그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러한 상처를 달랠 보상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매우 이상한 말이었지만 보상에 대한 내 주장은 한동안 이어졌다. 내 머리를 잘라주는 미용사는 웃으며 세상에 감정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농담을 했다. 나는 그래도 끝까지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말을 놓지 않았고 미용사는 그렇게 타인의 말을 안들었으면 남자 친구 말도 안들었을것 같다고 하며 웃었다. 그런 주변의 작은 농담들은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렇다. 보상 자체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보상을 바랄 정도로 마음이 다치고 힘들다고 그렇게 내 마음이 소리치고 있었다. 중재를 하는 친구를 붙잡고 그가 해줬으면 하는 보상을 읊었다. 그 속에는 하와이를 핵폭탄으로 폭발시켜주기가 있었다. 하와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고 싶을만큼 하와이로 간 그를 참을 수 없었다.
중재는 그리해서 그가 하와이에 있는 동안 일어났다. 회의가 끝나고 할일이 있다고 하는 그의 말이 끝나고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할것이라는 말로 들렸다. 그러나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나는 보상을 외치다가 결국 그래 그가 일을 도와준다면 그 일을 보상으로 받겠어라며 친구들과 통화를 하고 마음을 다잡은 참이었다. 그렇게 그를 오랜만에 만난 참이었다.
그러나 그의 회의 첫마디는 이러했다. 나는 돈을 받고 싶어. 이전에 자신은 돈을 바라지 않고 너를 도와주는 거라고 했던 그가 다시한번 갑자기 바꾼 태도였다. 그의 한마디에 나의 마음속에 스스로 만들어낸 내가 받을 보상이 무너져내렸다. 그가 하와이에 있는 현실이 너무나 거대한 분노로 다시 다가왔다. 나는 중재하는 친구와 같이 다른 공간으로 가서 둘만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내 말을 대신 전해주기를 요청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 슬펐다면서, 자신이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았으면 좋겠고 자신이 나를 보러 오지 않은 이유가 자신에게 내가 소중하지 않아서라고 내가 생각한다고 자신이 느끼게 되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돈을 원하냐고 다시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했고 그날 회의는 그렇게 결렬되었다.
다음 회의는 잡히지도 않았다. 중재자가 각각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회의를 잡을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돈을 요구했던 그의 태도에 내 감정은 극에 달했고 그럼에도 그에게 돈을 주고자 마음의 결심을 했지만 중재가가 그것을 제대로 전달을 못했다고 판단해서 중재자와도 싸웠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와 직접 연락을 했다. 직접적인 연락을 받지 않으리라 말했던 그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 둘이 다시 2차 회의를 했다. 그리고 2차 회의는 다시 파국을 맞았다. 나는 그에게 돈을 줄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사귀는 당시에도 우리가 헤어진다면 다달이 돈을 보내는 일은 없을 거라고 못을 박았고 그도 그 이야기에 동의했었기 때문에 그가 차마 나에게 다달이 돈을 요구하리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돈을 다달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돈을 요구하는 것에 이은 다시한번의 충격이었다. 그는 그렇게 언제나 그가 행동하리라고 내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범위의 밖의 행동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언쟁은 거세졌고 결론은 나지 않은채 또 마무리 되었다. 다만 내가 그렇게 다달이 돈을 원한다면 내가 따로 투자한 돈들도 당연히 동업자로서 반반 부담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때 그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우리 관계가 처음부터 비지니스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비지니스 관계로 가는 것은 아닐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이렇다할 결론도 없이 우리의 이야기는 종결되었다.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