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별의 불가능성
"헤어지자." 갑자기 그가 말했다. 업무 10분 전의 시간이었다. 그에게 말했다 내가 업무 10분 전인 것은 아느냐고. 그는 당황했고. 나는 업무를 미뤘다. 도저히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적어도 헤어지려면 직접 만나서 말하는 성의를 보여줬으면 했다. 그런 것이 필요했다. 이렇게 업무 10분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내 안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헤어지는 것이 불가능했다. 내 안에서 헤어지는 것이 불가능해져있었다. 분명 5개월전에는 짐을 싸서 나갈 만반의 준비를 했다 헤어지는 것이 가능했다. 헤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나도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고 혼란스러웠다. 대체 왜?
이 상태에서 헤어짐을 생각하자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현재 헤어지는 것이 불가능해보인다고 일단 홀드하자고 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어딘가 절박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그는 대체 헤어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무엇이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장문의 메일을 나에게 썼다. 그러나 나도 나에게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헤어짐을 생각하면 그와 더불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같이 올라왔다. 대체 5개월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나는 잘 살고 있었다. 그와 연애 가능성을 논하기 이전에 삶의 위기로부터 5년, 삶에서 가장 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주변 상황 모든 것이 완벽하거나 모든 것이 잘 돌아가거나 모든 주변사람과의 관계가 좋다고도 할 수 없었지만 그 상황속에서도 잘 지내고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모든 좋은 관계 속에서 잘 지내는 것 이상의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단단해져 있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삶의 위기 같은 진정한 위기감하고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그저 이별이 불가능했다. 이별 자체가 불가능성으로 내 안에서 튀어올라있었다. 그 자체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5개월이었다. 특히 사귄 이후의 1개월은 생지옥이었다. 수백번 나는 굿바이라는 문자를 적고 차마 보내지 못했었다. 그때마다 그의 우는 마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차마 모질어지지 못했다. 몇번을 헤어지는 가능성에 대해서 그에게 묻기도 했다. 그런 반복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는 헤어짐의 불가능성을 마주하고 있었다. 헤어지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헤어진것인지 아닌지 미묘한 상태로 실날 하나를 이은 것 같은 관계를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말했다.
"나 다음주에 하와이에 가."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하와이는 언젠가 둘이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래? 그럼 나도 갈까?"라고 하며 같이 여행 계획을 짜려다 그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하와이는 어쩐 일이냐고 묻자 어떤 아는 여자친구가 자신의 별장으로 자신을 초대해서 가는 것이라고 한다. 엄청난 이유였다. 심지어 그의 엄마가 그렇게 하라고 그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의 엄마가 나를 탐닥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자친구가 있는 이에게 다른 여자의 별장으로 가라고 설득 하는 것은 나에 대한 어떤 일말의 존중도 배려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 초대한 친구는 그가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적어도 그럼 그 사람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 "싫어."
"그럼 내가 다른 숙소를 끊어줄 테니까 그 사람 숙소 말고 거기 묵으면 안돼?" "싫어."
그렇게 내 모든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바람을 피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가는 것이고, 그녀가 초대했으니 어느정도 어울려는 줘야겠지만 크게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으며 그녀와는 다른 공간을 따로 쓰기로 하고 차도 따로 쓰기로 했으며 그녀가 나한테 딱히 호감을 표시하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자신이 여자친구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실례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일단 그 통화는 끝났다.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나 뻔했다. 그게 뭐냐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더더욱 감정이 올라왔다. 그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물었다. "내 생일에 뭔가 하려고 생각한 것 있어?" 그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생일에 3주 전부터 선물을 생각하며 묻고 일찌감치 국제 우편을 보냈었다. 먼거리라서 생일선물을 생각한다면 그정도의 준비가 필요했었다. 내 안에는 적어도 엄청난 준비는 아니더라도 그가 내 생일에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하리라는 마음이 있으리라는 정도의 기대는 존재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크지 않았다 혹시 그가 묻는다면 나는 그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달라고, 그리고 가능하면 내가 꽃집에 갈 테니 꽃을 골라달라고 할 생각었다. 물론 내가 직접 살 생각이었다. 그냥 그와 함께 꽃을 보고 싶었다. 그정도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생일에 아무것도 생각해놓은 것이 없으며 지금부터도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큰 충격을 주었다. 그렇게까지 당당하게 미안함 한마디 없이 할 수 있는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와이와 더불어 마음이 궁지에 몰려있었다. 그는 헤어지자고 다시 말했다. 삶의 종말의 충동이 강하게 올라왔다. 그 이전에 경험해본 그 어떤 충동과도 결이 달랐다. 진정으로 마음이 궁지에 몰려서 추락하고 삶의 위기가 찾아온는 듯한 그런 충동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 멀쩡했고 그럼에도 그 충동은 나와 함께 있었다. 그는 나의 충동을 눈치챘다. 그는 삶의 종말의 충동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사귀고 있는 현실을 견딜 수없다고 했다. 나를 여러 말로 회유하고 설득하더니 나중에는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이내 경찰과 소방관들이 왔다. 그의 신고로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편지를 보냈던 만큼 우리집 주소를 알고 있었다. 백방으로 검색해서 구조대에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가 메시지를 남겼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러나 나는 그 목격자가 되지 않을거야. 나는 너를 블록하겠어.
그는 그렇게 모든 연락을 차단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비행기를 바로 끊어서 탔다. 죽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조차 없었다. 경찰에게서 받은 위기 번호에 전화를 걸고 현재 상황을 상담했다. 상담사는 부디 건강히 잘 다녀오고 다녀와서 보자고 약속을 잡아주었다.
갑자기 끊은 비행기는 직항이 없었다. 그래서 2일간의 긴 날을 돌아서 갔다. 또한 그는 현재 공항 근처 도시에 없었고 교통이 거의 닿지 않는 아래 시골에 내려가 있었다.
가는 길을 검색해보았지만 주말에는 직행으로 가는 버스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의 도시 집 근처로 머물면서 돌아올 날을 기다려야 하나 망설였지만 내 목적지를 물어보던 옆좌석에 앉은 분이 그정도 거리면 걸어갈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러나 비행기의 도착 시간은 한밤중이었다. 내려간다고 해도 다음날이었다.
그 밤을 어떻게 할까, 공항에서 지샐까 고민하다가 그의 집에 가기로 했다. 그의 하우스메이트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녀의 친절에 기대어 보고자 했다. 그렇게 무턱대고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야밤에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자 그는 내가 누구냐며 의야해했지만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자 태도를 바꾸면서 나를 환영해주었다. 그로부터 아직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너무나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녀 품에 안겨서 울었다. 그녀는 나를 달래주고 마실 것을 주고 잘 곳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같이 시간을 보낼 계획을 짜주기도 했다. 그녀의 계획 대로 같이 그녀와 시간을 보냈어도 즐거웠을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다음날 그가 있는 시골에 내려가기로 했다. 그와 엇갈릴수도 있고 그가 만나지 않을 수도 있고 경찰을 부를 수도 있고, 하우스메이트가 연락해서 그가 영영 숨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한참을 내려가는 도중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블록이 풀린 상태의 전화였다. 하우스 메이트한테서 내가 와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어디냐고 물었다. 거의 네가 있는 시골에 다가가고 있다니까 왜 놀랍지 않지라고 이야기하며 마중나갈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1시간 이상을 걸어서 그가 있는 시골에 갈 계획이었던 내 걷기 계획은 거기서 끝이 났다. 그는 나를 마중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