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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하 Oct 21. 2024

회피형 나르시시스트 (14) 파국

소설, 이별의 불가능성

사귀는지 아닌지 조차 우리는 번복하며 여자친구 남자친구 언쟁을 일주일동안 계속했다. 서로에게 있어서 고문이었다. 그리고 언쟁이 그가 남자친구 여자친구 인증을 하며 끝났다 한들 그를 믿을 수조차 없었다. 


그후 일주일 동안 연락을 하며 다시 일을 하느니 마느니 하다가 그가 일주일간 연락하지 말자는 선언을 다시 했다. 잠시 일에 스톱이 걸려 있었던 때였다. 그리고 연락은 하지 않더라도 따로 각자 하기로 한 일은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일을 완전히 팽개친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일을 다시 해야할 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마감이 있는 일이었다. 같이 하던 일을 도중에 갑자기 팽개치고 놓아버린 그와 일의 진행 상황이 아연했다. 그가 일을 그만둬도 그 자신은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실제로 계약서에 싸인을 한 것은 나였기 때문이다. 무책임한 그에 대한 화가 올라왔다. 


한참을 논쟁 끝에 우리는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며 우리에게 입장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자신도 같이 사인한다고 생각해달라."라는 말을 그대로 듣고 그와 동업을 하면서 함께 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는 내 일을 간간히 조언하고 서포트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그의 참여나 열의가 너무나 부족했고 그의 안에서는 내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이러한 입장 차이를 서로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일은 마무리를 해야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불만은 쌓여있었다. 그는 일을 어느정도 도와주었지만 내가 30시간을 일한다면 그는 2시간 일했다. 그만큼 투자하는 시간도 열의도 차이가 났다. 초반에 거의 반반 일을 함께 한다고 느꼈던 내 마음은 차츰 기울어서 그의 일에 대한 기여도를 다시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내가 초반에 생각했던 보수의 공유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나중에 그에게 보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는 다달히 보수를 받고 싶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게 큰 지분을 이야기하기에 그의 일에 대한 태도 자체가 너무나 낮았다. 나는 동업자로서가 아니라 여자친구로서 함께 데이트 통장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그 이야기를 그러냐고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가 헤어진다면 나는 너한테 다달히 돈을 보내는 상상은 하지 못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알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던 보수가 나중에 다시 붉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던 당시의 일이었다.


그 와중에 그에 대한 불만이 붉어졌다. 이러한 그의 모든 태도와 더불어서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처음부터 나를 초대하고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섹스를 하고 나중에서야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아무렇게나 말했던 그에 대한 상처와 분노가 터졌고 다시 언쟁으로 이어졌다. 그 언쟁은 결국 그가 내가 당시 썼던 비행기 값의 절반을 보내주는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싸우고 다시 서로 좋아지려던 찰나가 3시간이 있으면 그는 그 3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면 그는 이내 나에 대한 비판을 하고 비난을 했다. 내가 대체 왜 그러냐고, 나는 너에 대해 비난을 하지 않지 않냐고 하자 그는 나도 한다고 했는데, 나는 다시 나는 네가 나에게 한 행동, 너와 나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너에게 불만을 이야기하는데 너는 그게 아니지 않냐고, 너와 전혀 상관없는 나와 나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나의 직업을 폄하하고 나의 외모를 비판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그때서야 그건 다르다고 인정했다.

그에게 말했다. 그가 나에게 하는 말은 사실은 나는 친구로서도 용납을 못하는 것들이라고, 너는 지금은 친구로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나와 친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의 그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그와 친구였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나의 모든 친구에게 그렇듯이 나는 기본적으로 그의 편이었다. 나의 주변 사람들이 그의 직업의 불안정함과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난색을 표하며 비판해도 나는 그를 옹호했으며 그에게 그런 말 자체를 언급하지조차 않았다.  그런데 그는 직접적인 비난을 나에게 쏟아내고 있었고 나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이 있다고 확실히 말하고 있었다. 어디를 봐도 그는 나의 편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그의 태도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안의 마음은 슬픔이었을까. 


어느 날은 내가 딱 한번 그에게 폰섹스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옷을 벗고 그런 것도 아니고 목소리로 조금은 성적인 이야기를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내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 일은 큰 충격을 주었는데, 그는 나에게 폰 섹스를 꽤 많이 요구했으며 나는 그때마다 흔쾌히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의 경우에는 당연히 그도 그래 주리라는 나의 기대감이 있었다. 적어도 10번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1번은 내 이야기도 들어주리라는 그런 기대가 내 안에는 있었다. 그런데 그 한번이 거절된 것이다. 미안함도 다른 이야기도 없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들은 거절이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금 그에게 화를 냈다. 그만큼 나는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몰려있었다. 그의 태도 하나하나에 서서히 마르고 피폐해지고 있었다. 마음은 시들고 살아있는 지옥에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 하루가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잠시 좋은 찰나의 순간이 있으려나 치면 그는 돌아서서 다른 이야기를 하기에 바빴다. 그 연속이 계속되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를 잊고 내 일상에 집중하며 편안히 보내고 싶었다.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고 계속 나를 자극하며 비수를 던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내가 멀쩡해야한다고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똥을 던지는데 그 똥을 그대로 맞으면서 웃고 있으라는 것 같았다.


그의 집에 가기 전의 삼주 동안의 섹스 논쟁도, 그의 집에 갔을때의 폭탄 선언도, 그와 사귀느니 마느니 한 한달 이상의 시간도 말라가기에 충분했지만 그와 사귄 며칠의 시간은 살아있는 지옥이었다. 나는 그저 행복하게 그를 남자친구로 부르고 서로에게 애정 표현을 하며 같이 일을 잘 마무리 하고 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서로 꾸역꾸역 일을 해냈다. 나는 열흘 이상을 근처 카페와 공유 오피스를 전전하며 밤을 샜다. 그만큼 고된 작업이었다.


그리고 일이 끝나자 그는 의무감에서 해방되고 기다렸다는듯이 다시 연락하지 말자고 했다. 나는 그래서 그에게 그럼 나는 연락하지 않을테니 네가 연락하고 싶을때만 연락하라고 연락 선택권을 오로지 그에게 넘겼다. 그는 귀국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내 이런 요구를 해왔고 나에게 거절 권한이나 선택지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우리의 관계는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가 하는 말에 대한 거부권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은 그가 거부할 명분이 되었다. 둘 사이의 조율도 타협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나와 연락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내가 그를 존중하지 않는 다는 증거가 되었으며 그가 연락해주기를 바라는 나의 바람은 집착적인 요구로 비난당했다.


그러던 와중에 그가 동창회에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창회에 다녀온 그에게 내가 전화로 이야기했다. "그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있었어?" 예전에 그가 말했던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도 데이트를 할거야. 그런데 그걸 너에게 말하지는 않을거야."라는 이야기는 그 이후 번복이 되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 안에서 아직 살아있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기분나빠하며 네 감정은 네가 돌보라고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다시 통화를 했다. 나는 그의 말대로 내 불안을 날리고 그와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시쿤둥했다. 나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더니 그는 급작스럽게 이야기했다. 

"헤어지자."

이것은 과연 그가 몇번째 한 헤어짐 선언인 것인가.

그의 집에 갔을 때, 그의 안에서는 사귀고 있지조차 않았던 상태에서의 선언. 귀국후 이틀만의 선언. 그 이후에도 그가 매일 전화를 하기 전에 보기로 한 약속을 미룰때 한번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한창 사귀는 중에 "너는 여자친구로 생각이 안된다."는 선언. 거기에 덧붙여 다시 한번 그가 말했다.

내가 업무를 시작하기 10분 전의 시간이었다. 세탁기가 돌고 있고 나는 오갈 데가 없을 새벽 2시에 그런 말을 했던 처음처럼 그는 나의 상황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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