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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하 Oct 20. 2024

회피형 나르시시스트 (13) 계속되는 갈등

소설, 이별의 불가능성

"꺼져버려."

그가 적은 그 글자를 보고 나는 정말로 "꺼져 줄"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귀국 후 한달 내내 이미 너무나 힘에 부쳐있었다. 이미 나는 나의 한계를 진작에 맞이하고 있었다. 그게 소원이면 이대로 "꺼져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는 덕담과 함께 "7년동안 친구로 있어주어서 고마워. 그리고 2일동안 남자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마워."라는 작별 문자를 적었다. 그러나 차마 그 문자를 보내지는 않고 조금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그의 마음이 다시 느껴졌다. 그와 의식적으로 연결 되어있는 나는 종종 이렇게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지곤 했다. 그가 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후회가 느껴졌다. 그러며 목소리도 들렸다. "가지마.", "꺼져버리지 말아줘. 부탁이야."동시에 문자가 다시 울렸다. 조금은 분노가 줄어든 어조로 미안하다고 말이 심했다고 자신은 지금 너무 피곤하고 잘 거라고 문자를 남겼다. 

나는 적었던 작별의 문자를 일단 뒤로 하고 "미안해."하는 한마디만을 남겼다. 그러나 그 이후 그다지 그에게 다시 연락할 마음은 없었다. 작별의 문자는 보내지 않았지만 "꺼져 줄"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한번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는데 그 다음날 부터 그가 매일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거는 전화를 나는 무시하지 못하고 계속 받았다. "꺼져버려."라고 말했던 그가 자신의 말과 다른 행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행동에 순수한 기쁨을 느끼기에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이 지쳐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같이 전화를 했다.

그리고 전화를 한 지 3일째 되는 날 밤 나와 폰 섹스를 하고 싶다고 했다. 폰 섹스라고는 해도 그냥 서로 옷을 벗고 앉는 정도이다.

서로가 마주앉은 상태에서 그가 물었다. “내가 뭐 해줄 게 있을까?” 폰 섹스에 관한 내용이었겠지만 다정한 그의 말을 듣고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내 남자친구가 되어줄래?”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하고서 한 이야기였다. 차라리 그냥 끝이라는 결론을 내고 편해지고 싶었다 질질 끄는 애매한 관계 속에서 나는 심정적으로 이미 한계를 넘어서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던 내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말했다. 만면의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래.“

그가 ”그래.“라고 말했다. ”너는 내 여자친구이고. 나는 너의 남자친구야.“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무언가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 상태로 통화를 끊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관계는 내 안에서 오래 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를 완전히 믿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2일 정도는 서로 따뜻하게 통화를 했다. 그러나 3일째 밤 챈들러의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들렸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큰 일을 계기로 나는 그가 다시는 나에기 연락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잠깐씩 연락했지만 우리는 큰 대화를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에게도 그 급작스러운 일은 큰 충격이었고 나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아버지 그림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보낼까 말까를 망설였다.

그러다가 그림을 보냈다. 그는 그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우편으로 부쳐달라고 했다.


나는 그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다시 길을 잃었다. 그는 스님이 되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나에게는 그가 단순히 자신이 꾼 꿈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을 말하는 듯 했다.

그는 내 안에서 더 이상 남자친구가 아니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장문으로 보내곤 했던 문자도 중단했다.

그는 다시금 여전히 거의 매일 연락을 주었고 내 일을 도울 수 있게 같이 공부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그의 아침에는 공부를 같이하고 저녁에는 하루 일상이 어땠는지를 간단히 나누는 며칠간이 지속되었다. 내 마음은 많이 닫혀있었다.

그렇지만 그만큼 안정되기도 했다. 그의 행동 변화에 일희일비하지도 또 그의 행동을 기대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나에게 큰 제안이 왔다. 프로젝트성 일이었다. 지금 챈들러와 함께 하고 있는 공부와도 충분히 연관될 수 있었다. 계약서에 싸인을 할까 망설이는 나에게 그는 싸인을 한다면 내가 함께 한다고 생각해달라고 했다.

그 말은 힘이 되었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결국에는 싸인을 했다.


이날부터 우리는 단순히 그가 내 일을 보조해주며 같이 공부를 하는 사이가 아니라 같이 일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의 아침에는 여전히 통화를 했지만 일에 관한 논의였고 저녁에는 여전히 일상을 나누는 통화가 지속되었다.

그러던 중에 그는 문득 나에게 다시 그가 있는 곳으로 와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제안한 시간은 일의 중반이었지만 제안이 기쁘기도 했지만 금전적으로 큰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와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다. 그러며 자신이 이전에 데이트 하던 사람과 갔던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그 이야기룰 들은 나는 기분이 식었다. 다른 사람 추억을 떠올리는 장소 따위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그의 아침에는 일을 저녁에는 간단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가 연락은 거의 안하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같이 일을 한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가 문득 말했다.


“나는 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있어.”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최근에 그는 그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했으며, 자신의 삶의 방향성이 없음을 지적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 친구 사이일때는 방향성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 사이는 모르뎄다고 했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그런데 그 사랑은 나를 뒤에서 밀어주고 싶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러며 너는 내 여자친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말은 나에게는 헤어지자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으로 처음 말한 것도 헤어지자고 하는 말을 그가 나쁘게 들리지 않게 포장히고 싶은 그의 이기심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불안정해졌다. 그리고 의미를 되물었다. 

다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나와 사귀는 사이라는 생각은 들어도 내가 그의 여자친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을 굳이 나에게 하는 이유나 과정도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너무 복잡했다. 그러면 나는 사람들에게 그를 사귀는 사이는 맞는데 남자친구는 아니고 하는 식으로 소개해야하는가? 그도 사람들에게 그럴 것인가? 그런 관계는 또 무엇인가? 그렇게 묻자 그는 또 사람들이 나를 여자친구라고 칭한다면 굳이 그걸 아니라고 정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니 그렇다면 굳이 그 이야기를 나에게 꼭 해야만 하는 그의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이 이야기가 중요한 논점 자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듣기 좋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좋아한다는 직장 동료를 예로 들으며 혹시 그 사람과 사귄다면 그 사람은 여자친구라고 생각할 것 같다고 했다. 굳이 그렇게 다른 사람을 예로 들며 비교까지 했다.

그로 인해 그가 얻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굳이 그 말을 왜 그렇게 했어야했을까. "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있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우리는 이날 이후 일을 멈춰버렸다. 이 여자친구 논쟁으로 하루에 10시간 이상 통화를 하면서 언쟁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물론 둘다 지쳐갔고 그는 평일에 일하지 않았지만 나는 특히 출퇴근까지 하고 있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왜 그에게 중요했는가. 단순히 거리두고 밀어내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이었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어려워서 또 관계를 애매하게 만들고 싶은 그의 욕망이었나.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의 이 이야기로 일은 완전히 멈추었고, 그래서 데드라인이 있는 일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는 가중되었고 더불어 끊임없는 언쟁으로 인해서 사이도 악화되었다. 무엇을 위한 이야기였는지 알 수가 없다. 나와 멀어지고 싶은 수단이었다면 정답이긴 했다.

이 언쟁은 결국 그가 양보하며 여자친구 남자친구 인증을 하면서 마무리 되었지만 그 조차도 애매했다. 이로 인해서 나는 이후에 그래서 너는 아직 내 남자친구가 맞긴 하냐고 끊임없이 되묻게 되었고 그 역시 내가 그렇게 물어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언쟁이었다.

나는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할때 한달도 더 오랜 시간동안 사귀는지 아닌지 알수조차 없는 사람이 있는데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말을 하는 것도 지긋지긋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사귀기는 하는데 남자친구는 아니고라는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다시 오게 되는것이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는 나는 그를 남자친구라고 칭해도 되고 자신은 나를 여자친구로 칭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그게 더욱 싫었다. 나는 그러면 솔직하게 상대는 나를 여자친구라고 안부르는 남자친구가 있는데라고 말해야 할 판이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지 상상해도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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